진화적 창조(Evolutionary Creation, EC)는 기원에 관한 기독교의 입장 중 하나입니다. 이 입장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권위 있는 말씀이라고 진지하게 여기는 동시에, 과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여깁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진화적 창조는 두 가지 기본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하나님 형상인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 둘째, 진화는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의 다양성과 유사성에 대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과학적 설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진화는 신뢰할만한 과학이다.
그럼 진화적 창조를 정의하는 핵심 사상은 무엇일까요? 진화적 창조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유지하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그러시듯, 우린 하나님이 목적을 갖고 창조하신다고 믿으며,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창조를 지속 및 유지하신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삼위일체를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신성과 인성,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도 믿습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며, 모든 인간이 죄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을 통하여 은혜에 의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진화적 창조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에 대한 최선의 과학적 설명으로 진화를 받아들입니다. 생물학에서 진화는 “변이를 동반한 유전”을 의미하며, 이는 모든 종이 여러 세대에 걸쳐 하나의 공통조상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가설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상 모든 생명체가 공통조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과학적 증거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여기에 포함된다고 해서 우리 안의 하나님 형상이 부인되는 건 아닙니다.
진화적 창조는 과학에도 신학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 학문으로부터 최고의 지성을 통합하려는 설명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진화적 창조는 신학과 과학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진화적 창조가 우주의 기원에 관해 다른 관점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바이오로고스는 진화주의, 지적설계, 창조론과 어떻게 다른가요?” 편을 보시기 바랍니다.
“진화적 창조”는 “유신 진화”와 구별된다.
“진화적 창조”라는 용어는 아마도 1990년대 초에 처음으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1) “유신 진화”(Theistic Evolution)는 진화적 창조보다 더 오래 더 널리 사용된 용어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두 용어를 차이 없이 서로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습니다.2) 그러나 여기 바이오로고스에서 우리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유신 진화보다는 진화적 창조를 선호합니다.
첫째, 우리는 본질적으로 창조론자이기 때문에 진화적 창조를 선호합니다. 우리는 단순한 유신론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성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성자 하나님을 통해,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과 창조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무엇보다 우선인 것입니다. “진화적”이라는 단어는 창조를 묘사하며, 단순히 생명의 다양성과 유사성을 과학적으로 가장 잘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진화 과학을 수용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형용사일 뿐입니다.
둘째, 우리는 “유신 화학” 혹은 “유신 물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고로, 우린 “유신 진화”라는 말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학적 사실에 대해 기독교만의 어떤 특별한 해석을 제안하지도 않습니다.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를 연구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과학이 제공하는 통찰을 우리가 믿음의 눈을 통해 살펴본다면, 본질에 대한 더 완전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요하네스 케플러가 오래전에 쓴 것처럼, 과학은 세상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3)
셋째,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유신 진화를 이신론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유신 진화는 종종 하나님이 세상과 모든 자연법칙을 창조하셨으나 더 이상 적극적으로 우주를 지배하거나 관여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진화적 창조가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이해하는 방법과 매우 다릅니다. 바이오로고스에서는 성경적인 기적(가장 대표적으로 부활)을 인정하며,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하나님이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그분의 섭리로 모든 자연적인 과정들을 이용하여 일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자연적인 과정들과 초자연적인 기적들은 공히 하나님의 작품인 것입니다.
바이오로고스 설립자인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가 유신 진화를 대신하여 바이오로고스라는 용어를 처음 제안했다는 점을 여기에서 언급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4) 이 용어는 두 그리스 단어 “bios (‘생명’을 의미)”와 “logos (‘말씀’을 의미. 요한복음 1장 1절이 하나님의 아들을 묘사하는 방법을 참조)”의 합성어입니다. 그는 그의 2006년 저서 <신의 언어>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바이오로고스’는 하나님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고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의지를 반영한다는 믿음을 표현한다”(p. 203). 바이오로고스는 단지 이러한 관점을 나타내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단체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진화적 창조는 많은 성경적, 과학적 질문에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 어떤 단체에서도 모든 사람이 완전 똑같은 것을 믿지는 않습니다. 어떤 믿음은 주요하며 그 단체를 정의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어떤 믿음은 부차적이며 논쟁의 여지가 있기 마련입니다. 진화적 창조를 수용하는 이곳 바이오로고스에도 예외는 없습니다.
‘바이오로고스 믿음 선언문’은 모든 직원 및 이사회 구성원에 의해 확인된 믿음과 우리 단체 안에서 대부분이 공유하는 신념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단체 안에는 많은 주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주제에 대해서만큼은 어떤 특정한 하나의 견해만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바이오로고스 전원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음을 믿지만, 그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의 인지 능력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우리의 고유한 영적 능력이라고 여깁니다.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 형상을 나머지 피조물들을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 대표적인 존재라고 해석합니다.
아담과 이브를 떠올려 봅시다. 진화적 창조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생물학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창세기의 앞장들을 해석하는 방법에서는 제각각입니다. 일부의 진화적 창조는 아담과 이브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부부라고 믿습니다. 한편, 또 다른 일부의 진화적 창조는 그 이야기를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거나 인류 전체에 대한 상징적인 이야기로 봅니다. 여태껏 이에 대한 많은 해석이 제안되었으며, 이는 여전히 흥미진진한 연구 분야로 남아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진화적 창조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권위 있는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주류 교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경의 어떤 구절이 반드시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성경 “무오성”이 과연 유용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적인 측면에서는 모든 진화적 창조가 공통조상의 존재를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어떤 생물학적인 메커니즘이 시간이 지나면서 진화적 변화를 일으키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 할 수 있습니다. 첫 생명체의 기원에 관련해서도 일부 진화적 창조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생각하지만, 또 다른 일부 진화적 창조는 하나님의 섭리 하에 일어나는 다양한 자연적인 과정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바이오로고스 진화적 창조 단체의 책무
지난 10년 간 진화적 창조에 대한 고조된 관심과 지원 덕분에 이곳 바이오로고스 공동체는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는 단순히 이념으로만 정의되지 않습니다. 대신, 가치와 책무에 의해서 정의됩니다.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과 진화적 창조에 대한 우리의 책무와 더불어 바이오로고스에서 우리는 진리 추구에 전념합니다. 진리 추구는 공동체, 탐험, 토론을 요구합니다. 여기서 “의심도 괜찮습니다”라는 태도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우리는 성경과 자연 세계, 이 두 가지 모두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학자, 성경학자, 신학자, 철학자의 전문성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기독교 단체 내부에 있는 목회자와 지도자의 민감성과 영적인 이해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과학을 사랑하는 많고 많은 일반인들의 경험과 재능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기독교의 여러 주장을 탐구하는 사람들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직화된 종교를 신뢰하지 않거나 기독교인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들의 치유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그들을 환영합니다.
여기 바이오로고스에서 우리의 또 다른 책무는 겸손과 정중한 대화입니다. 물론 우리가 항상 옳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우리의 주장을 희석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라 타당한 예의를 갖추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존중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탁월함을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린 과학이 강력하면서도 동시에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과학은 자연의 역사와 현상을 묘사하는 것에 관한 한 방대한 주석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몇 가지 정말 중요한 질문, 이를테면 왜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혹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등에 답하기에는 적절한 도구가 아닙니다. 우리는 과학적 사실에 대한 기독교만의 특별한 대안 해석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대신 과학적 합의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신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적 합의는 증거, 테스트, 동료 심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학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을 때면 우리는 다양한 견해를 수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발견이 기존의 과학적 합의를 뒤집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열린 마음으로 합리적인 자세를 고수할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우리의 접근에서 탁월함이란 타당한 해석 원칙을 염두에 두고 읽어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어진 구절의 목적과 성경의 첫 청중에게 의미했던 말씀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비록 그러한 이해가 우리 시대의 질문에 대해 답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원저자들도 이해하지 못했을 과학적 사실들을 성경이 밝혀주길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 시대의 사람들이 과학 발생 이전의 생각과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성경의 증거를 해명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성경 교사와 학자들로부터 배우면서 성령의 인도를 구합니다.
이 모든 것은 때때로 사람들을 과학이나 신앙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두려움, 냉소, 의심을 우리가 거부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겐 경이감과 자신감, 기쁨을 가지고 과학과 성경 모두를 대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번역: 김영웅 박사 (미국 City of Hope Staff Scientist, 과신대 정회원)
“진화적 창조”라는 용어가 실제로 언제 처음 사용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테리 그레이(Terry Gray)와 하워드 반 틸(Howard Van Till)은 1994년과 1995년에 각각 이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그레이와 데니스 라무룩스(Denis Lamoureux)와의 개인적인 서신에 나옵니다. 그레이는 이전에 사용된 비슷한 용례를 소개하는데, 1899년에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가 “진화”에 대한 강연에서 “진화론적 창조”(evolutionistic creation)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말합니다. 또 1954년에 버나드 램(Bernard Ramm)은 <과학과 성경의 대화>(Christian View of Science and Scripture)에서 “유신론적 진화적 창조”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역사학자 테드 데이비스(Ted Davis)는 “유신 진화”(Theistic Evolution)라는 용어가 적어도 1877년부터 사용되었다고 지적합니다. 데이비스는 “유신 진화”라는 용어를 선호하지만 어떤 용어를 사용하든 이 용어를 정의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이 비유는 케플러가 1599년 4월에 바이에른의 수상이었던 Herwart von Hohenburg에게 쓴 편지에서 나옵니다. Carola Baumgardt, Johannes Kepler: Life and Letters (1951), p. 50. “그 (자연의) 법칙은 인간 정신의 손아귀 안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도록 자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창조했고, 그 사실을 알기 원하셨다.”
“진화적 창조”라는 말은 과학자이자 신학자인 데니스 라무룩스가 콜린스의 책 <신의 언어>가 나온 이후에 대중화시킨 용어다. 콜린스가 진화적 창조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책을 쓸 당시에는 이런 용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진화적 창조는 무엇인가요?
What is Evolutionary Creation?
진화적 창조(Evolutionary Creation, EC)는 기원에 관한 기독교의 입장 중 하나입니다. 이 입장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권위 있는 말씀이라고 진지하게 여기는 동시에, 과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여깁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진화적 창조는 두 가지 기본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하나님 형상인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 둘째, 진화는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의 다양성과 유사성에 대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과학적 설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진화는 신뢰할만한 과학이다.
그럼 진화적 창조를 정의하는 핵심 사상은 무엇일까요? 진화적 창조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유지하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그러시듯, 우린 하나님이 목적을 갖고 창조하신다고 믿으며,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창조를 지속 및 유지하신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삼위일체를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신성과 인성,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도 믿습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며, 모든 인간이 죄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을 통하여 은혜에 의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진화적 창조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에 대한 최선의 과학적 설명으로 진화를 받아들입니다. 생물학에서 진화는 “변이를 동반한 유전”을 의미하며, 이는 모든 종이 여러 세대에 걸쳐 하나의 공통조상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가설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상 모든 생명체가 공통조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과학적 증거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여기에 포함된다고 해서 우리 안의 하나님 형상이 부인되는 건 아닙니다.
진화적 창조는 과학에도 신학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 학문으로부터 최고의 지성을 통합하려는 설명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진화적 창조는 신학과 과학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진화적 창조가 우주의 기원에 관해 다른 관점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바이오로고스는 진화주의, 지적설계, 창조론과 어떻게 다른가요?” 편을 보시기 바랍니다.
“진화적 창조”는 “유신 진화”와 구별된다.
“진화적 창조”라는 용어는 아마도 1990년대 초에 처음으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1) “유신 진화”(Theistic Evolution)는 진화적 창조보다 더 오래 더 널리 사용된 용어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두 용어를 차이 없이 서로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습니다.2) 그러나 여기 바이오로고스에서 우리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유신 진화보다는 진화적 창조를 선호합니다.
첫째, 우리는 본질적으로 창조론자이기 때문에 진화적 창조를 선호합니다. 우리는 단순한 유신론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성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성자 하나님을 통해,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과 창조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무엇보다 우선인 것입니다. “진화적”이라는 단어는 창조를 묘사하며, 단순히 생명의 다양성과 유사성을 과학적으로 가장 잘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진화 과학을 수용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형용사일 뿐입니다.
둘째, 우리는 “유신 화학” 혹은 “유신 물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고로, 우린 “유신 진화”라는 말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학적 사실에 대해 기독교만의 어떤 특별한 해석을 제안하지도 않습니다.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를 연구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과학이 제공하는 통찰을 우리가 믿음의 눈을 통해 살펴본다면, 본질에 대한 더 완전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요하네스 케플러가 오래전에 쓴 것처럼, 과학은 세상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3)
셋째,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유신 진화를 이신론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유신 진화는 종종 하나님이 세상과 모든 자연법칙을 창조하셨으나 더 이상 적극적으로 우주를 지배하거나 관여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진화적 창조가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이해하는 방법과 매우 다릅니다. 바이오로고스에서는 성경적인 기적(가장 대표적으로 부활)을 인정하며,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하나님이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그분의 섭리로 모든 자연적인 과정들을 이용하여 일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자연적인 과정들과 초자연적인 기적들은 공히 하나님의 작품인 것입니다.
바이오로고스 설립자인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가 유신 진화를 대신하여 바이오로고스라는 용어를 처음 제안했다는 점을 여기에서 언급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4) 이 용어는 두 그리스 단어 “bios (‘생명’을 의미)”와 “logos (‘말씀’을 의미. 요한복음 1장 1절이 하나님의 아들을 묘사하는 방법을 참조)”의 합성어입니다. 그는 그의 2006년 저서 <신의 언어>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바이오로고스’는 하나님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고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의지를 반영한다는 믿음을 표현한다”(p. 203). 바이오로고스는 단지 이러한 관점을 나타내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단체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진화적 창조는 많은 성경적, 과학적 질문에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 어떤 단체에서도 모든 사람이 완전 똑같은 것을 믿지는 않습니다. 어떤 믿음은 주요하며 그 단체를 정의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어떤 믿음은 부차적이며 논쟁의 여지가 있기 마련입니다. 진화적 창조를 수용하는 이곳 바이오로고스에도 예외는 없습니다.
‘바이오로고스 믿음 선언문’은 모든 직원 및 이사회 구성원에 의해 확인된 믿음과 우리 단체 안에서 대부분이 공유하는 신념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단체 안에는 많은 주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주제에 대해서만큼은 어떤 특정한 하나의 견해만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바이오로고스 전원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음을 믿지만, 그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의 인지 능력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우리의 고유한 영적 능력이라고 여깁니다.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 형상을 나머지 피조물들을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 대표적인 존재라고 해석합니다.
아담과 이브를 떠올려 봅시다. 진화적 창조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생물학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창세기의 앞장들을 해석하는 방법에서는 제각각입니다. 일부의 진화적 창조는 아담과 이브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부부라고 믿습니다. 한편, 또 다른 일부의 진화적 창조는 그 이야기를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거나 인류 전체에 대한 상징적인 이야기로 봅니다. 여태껏 이에 대한 많은 해석이 제안되었으며, 이는 여전히 흥미진진한 연구 분야로 남아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진화적 창조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권위 있는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주류 교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경의 어떤 구절이 반드시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성경 “무오성”이 과연 유용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적인 측면에서는 모든 진화적 창조가 공통조상의 존재를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어떤 생물학적인 메커니즘이 시간이 지나면서 진화적 변화를 일으키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 할 수 있습니다. 첫 생명체의 기원에 관련해서도 일부 진화적 창조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생각하지만, 또 다른 일부 진화적 창조는 하나님의 섭리 하에 일어나는 다양한 자연적인 과정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바이오로고스 진화적 창조 단체의 책무
지난 10년 간 진화적 창조에 대한 고조된 관심과 지원 덕분에 이곳 바이오로고스 공동체는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는 단순히 이념으로만 정의되지 않습니다. 대신, 가치와 책무에 의해서 정의됩니다.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과 진화적 창조에 대한 우리의 책무와 더불어 바이오로고스에서 우리는 진리 추구에 전념합니다. 진리 추구는 공동체, 탐험, 토론을 요구합니다. 여기서 “의심도 괜찮습니다”라는 태도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우리는 성경과 자연 세계, 이 두 가지 모두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학자, 성경학자, 신학자, 철학자의 전문성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기독교 단체 내부에 있는 목회자와 지도자의 민감성과 영적인 이해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과학을 사랑하는 많고 많은 일반인들의 경험과 재능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기독교의 여러 주장을 탐구하는 사람들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직화된 종교를 신뢰하지 않거나 기독교인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들의 치유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그들을 환영합니다.
여기 바이오로고스에서 우리의 또 다른 책무는 겸손과 정중한 대화입니다. 물론 우리가 항상 옳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우리의 주장을 희석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라 타당한 예의를 갖추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존중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탁월함을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린 과학이 강력하면서도 동시에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과학은 자연의 역사와 현상을 묘사하는 것에 관한 한 방대한 주석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몇 가지 정말 중요한 질문, 이를테면 왜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혹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등에 답하기에는 적절한 도구가 아닙니다. 우리는 과학적 사실에 대한 기독교만의 특별한 대안 해석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대신 과학적 합의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신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적 합의는 증거, 테스트, 동료 심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학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을 때면 우리는 다양한 견해를 수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발견이 기존의 과학적 합의를 뒤집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열린 마음으로 합리적인 자세를 고수할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우리의 접근에서 탁월함이란 타당한 해석 원칙을 염두에 두고 읽어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어진 구절의 목적과 성경의 첫 청중에게 의미했던 말씀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비록 그러한 이해가 우리 시대의 질문에 대해 답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원저자들도 이해하지 못했을 과학적 사실들을 성경이 밝혀주길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 시대의 사람들이 과학 발생 이전의 생각과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성경의 증거를 해명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성경 교사와 학자들로부터 배우면서 성령의 인도를 구합니다.
이 모든 것은 때때로 사람들을 과학이나 신앙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두려움, 냉소, 의심을 우리가 거부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겐 경이감과 자신감, 기쁨을 가지고 과학과 성경 모두를 대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번역: 김영웅 박사 (미국 City of Hope Staff Scientist, 과신대 정회원)
감수: 장왕식 교수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 과신대 자문위원)
원문: biologos.org/common-questions/what-is-evolutionary-creation
“진화적 창조”라는 용어가 실제로 언제 처음 사용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테리 그레이(Terry Gray)와 하워드 반 틸(Howard Van Till)은 1994년과 1995년에 각각 이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그레이와 데니스 라무룩스(Denis Lamoureux)와의 개인적인 서신에 나옵니다. 그레이는 이전에 사용된 비슷한 용례를 소개하는데, 1899년에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가 “진화”에 대한 강연에서 “진화론적 창조”(evolutionistic creation)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말합니다. 또 1954년에 버나드 램(Bernard Ramm)은 <과학과 성경의 대화>(Christian View of Science and Scripture)에서 “유신론적 진화적 창조”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역사학자 테드 데이비스(Ted Davis)는 “유신 진화”(Theistic Evolution)라는 용어가 적어도 1877년부터 사용되었다고 지적합니다. 데이비스는 “유신 진화”라는 용어를 선호하지만 어떤 용어를 사용하든 이 용어를 정의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이 비유는 케플러가 1599년 4월에 바이에른의 수상이었던 Herwart von Hohenburg에게 쓴 편지에서 나옵니다. Carola Baumgardt, Johannes Kepler: Life and Letters (1951), p. 50. “그 (자연의) 법칙은 인간 정신의 손아귀 안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도록 자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창조했고, 그 사실을 알기 원하셨다.”
“진화적 창조”라는 말은 과학자이자 신학자인 데니스 라무룩스가 콜린스의 책 <신의 언어>가 나온 이후에 대중화시킨 용어다. 콜린스가 진화적 창조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책을 쓸 당시에는 이런 용어가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