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의리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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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 나간 한강 변에는 그랑자트 섬의 오후가 연출되고 있었다. 캠핑 의자를 갖고 나와서 일행들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있었고 연인과 나란히 앉아 책을 보는 세상없이 부럽고 예쁜 모습도 있었다. 돗자리를 펼쳐놓고 누워서 한잠 자는 사람, 수다하는 사람, 사발면 먹는 사람, 도시락 까먹는 사람, 음악 들으면서 발장단 맞추는 사람 등 산책하는 내 시선 속으로 여러 인상이 스쳐 갔다.

저 어느 햇볕 아래에서는 제주도에서 일어난 역사의 아픔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이곳에는 연을 날리며 마구 달리는 아이들이 있었고, 저기 어느 누군가 뭉클뭉클하게 되살아나는 어떤 절규가 있을 때, 이곳 누군가는 그냥 무심하고 태연하게 강을 응시하고 있었다. 우린 내가 속한 곳과 내 시선이 닿는 곳까지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게 되는 것이어서 어쩔 수 없이 좁은 시야의 세상만 마주하고 살아간다.

산책을 하는 동안 나는, 만나는 나무마다 손으로 껍질을 만져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거칠거칠한 질감이 손에 닿는 것에 집중했었는데 며칠이 지나면서는 나무의 생김새와 살을 트고 가지를 뻗는 방식에 관심이 간다. 그러다가 땅 위로 드러난 벚나무의 뿌리를 보게 되었는데 순간 깜짝 놀랐다. 언젠가 친구와 위로 뻗은 가지만큼 땅속으로 뿌리가 깊고 넓게 뻗어 나간다면 나무들마다 땅속에서는 서로 뿌리와 뿌리가 엉켜있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이야기가  현실적이고 실제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위에서는 따로 존재하는 나무여도 땅 밑에서는 온갖 뿌리들이 얽혀서 흙 속의 양분을 들여오기도 하고 내보내기를 반복하며, 그 반복을 쉼 없이 해오고 있었을 나무들. 네 것과 내 것의 경계를 나누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뿌리를 이루고 있는 세포들끼리 이미 주거니 받거니 한통속이니까. 빈틈없이 세상을 죄다 얽어매고 있는 나무들의 거대한 연대 앞에서 나와 너를 가른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생명이 죽어 흙으로 돌아가면 그 흙은 뿌리를 타고 이동해 세계를 이루고 있으면서 세계의 소식이 되어준다. 죽음이라는 것은 생명의 실체인 몸, 그것의 형체가 사라지는 것일 뿐, 그 외의 것들은 어느 것 하나 분실하거나 소진되지 않고 무엇엔가 전해져 보관되고 기억되고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은 어느 한 순간조차도 홀로 존재해 본 적이 없었고 늘 그물망 안에서 서로를 이루고 있었음을 목도했다.

푸릇 푸릇하고 빨긋빨긋한 새잎을 돋우고, 빨갛고 노랗게, 분홍빛으로 보랏빛으로 하얀빛으로 하늘의 별들이 꽃이 된 듯이 꽃으로 피고, 열매로 영글고, 단풍으로 물들고, 이파리를 떨궈 빈 몸이 되는 나무. 그러나 사실, 그것은 나무라기보다 차라리 흙으로 돌아간 생명들의 회귀이며 다채로운 순환의 한 지점들이다.

그러니 저곳에서 누군가 아프다면, 저곳에서 누군가 허망해하며 분노하고 있다면 이곳에 있는 우리도 아프고, 허망해하고, 우리도 분노해야 한다. 나와 당신의 울고 웃음이 결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저들이 곧 우리들이므로. 오늘은 산책길에 만난 벚나무의 뿌리에게서 생명의 의리를 배웠다.

 



글 | 백우인

감신대 종교철학과 박사 수료. 새물결플러스 <한달한권> 튜터. 신학 공부하면서 과학 에세이와 시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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