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신』에 대한 비판적 감상문 ②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2-06-10
조회수 66

『만들어진 신』에 대한 비판적 감상문 ②

리처드 도킨스의『만들어진 신』을 읽고

 

 

『만들어진 신』 / 리처드 도킨스 지음 / 김영사 펴냄 / 604쪽 / 2만 5000원


도킨스 주장의 문제점

(이 부분을 이해하는 데 연세대 김균진 교수의 논문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그 타당성과 문제점 」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18. 도킨스는 과학적 실증주의의 입장에서 과학을 통하여 설명되고 검증할 수 있는 것만을 실재로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망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은 종교에서 근본주의가 문제 되는 것처럼 과학에서 또 하나의 근본주의적 극단적 경향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것을 과학주의라고 한다. 과학주의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원칙상 과학을 통해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과학을 통해 해결될 수 없는 어떤 신비의 영역도 허용하면 안 된다는 입장인데 바로 이것이 과학적 무신론의 본질이다.

19. 과학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정의, 선악, 삶의 의미, 행복, 기쁨과 슬픔 등 삶에 늘 함께하는 중요한 가치들은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본질의 문제도 경험과학을 넘어서는 철학적, 신학적 영역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경험하는 것도 그 사람에게는 하나의 현실이다. 도킨스는 이것을 착각, 망상이라고 하지만 어떤 근거로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만일 하나님이 과학적으로 검증된다면 더 이상 신이라 할 수 없다. 인간이 과학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은 자연계 사물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감동하고 눈물까지 흘리지만 이러한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이것을 망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20. 과학은 이성과 인식을 바탕으로 성립한 것이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이미 이 관념을 파괴했다. 도킨스도 이것을 인정하고 있다.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유명한 솔베이 학회 토론에서 아인슈타인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나의 사랑하는 하나님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이에 대해 닐스 보어는 "하나님이 주사위를 가지고 뭘 하든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라."는 말로 답하였다.

21. 과학적 분석에서는 대상을 객관화하여, 분석과 환원과 재구성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사물을 이해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 한 편을 글자 하나하나 분리하여 분석하여 재구성한다고 해서 그 아름다움을 파악할 수 있을까? 인간의 몸 역시 분해하여 원자나 DNA를 아무리 분석해도 삶의 가치나 의미를 찾아낼 수는 없다. 그런데 도킨스는 “왜 사람들은 어떤 궁극적인 질문에 대해 과학이 대답할 수 없다면 종교는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까?”라는 편협한 의식 태도를 보이고 있다. 평생을 과학자로 살아온 그는 대상을 이해하는데 인격적인 참여와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인문학적 분석방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



인간 본성에 대한 도킨스의 이중적인 태도


22. 도킨스는 인간이 종교가 없더라도 착하고 윤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착한 사람이 종교 때문에 악한 행동을 한다고 하면서, 종교의 해악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중근세의 기독교와 현재의 이슬람의 대표적인 해악 사례를 들고 있다.  그런데 종교와 관계없는 더 큰 해악 사례 즉, 무신론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나 무신론 독재정권에 의한 해악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있다. 또 최근에 시작된 여성해방운동을 예로 들면서 인간의 도덕성은 시대정신에 의해 발전(진화)해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는 날이 갈수록 더 도덕적이고 더 선해지고 있다.

 

23.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그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한 주장과도 정면 배치되는 태도이다. 그는 진화론의 입장에서 비정한 이기주의가 유전자의 본성이라고 했다. 그가 쓴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유전자에는 아무런 도덕성도 기대할 수 없다. 그저 있을 뿐이며 자기를 유지하고 확장시키고자 하는 본능만 가진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는 이기적 유전자의 운반체요 생존 기계이며 지금까지 생존해 온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그램 기계다” 고 주장했다. 이런 로봇같이 아무 감정도 없고 오직 생존만 추구하는 본능체가 어떻게 착하고 윤리적인 사람을 만든다는 것인가?

 

24. 그러면서 인간의 이타주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하여 집단선택, 혈연선택, 상호호혜, 평판과 과시 등이 간접적으로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또 이런 이론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희생에 대하여는 돌연변이설까지 꺼내고 있지만 이러한 이론들은 다른 진화론자들에 의하여 주장된 가설들을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다.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나, 자기 사회나 민족이나 국가나 종교나 혈연 등 아무 관계 없는 아프리카 땅까지 가서 희생한 이태석 신부나, 그 밖의 수 없이 많이 인류 역사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희생을 과연 집단선택, 혈연선택, 상호호혜, 평판과 과시 같은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면 그들은 돌연변이인가?



과학이 인간과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가?


25. 과연 세상은 도킨스의 말대로 진화하여 과거보다 사람들은 점점 더 행복해하고,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되어가고 있는가? 과학이 이 세상에 파라다이스를 이룰 것인가? 도킨스와 비슷한 사상을 가진 유발 하라리 조차도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과학의 발달로 인류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겠지만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불만은 많고 무책임한 신이며,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어디 있을까? 하고 반문하여 책을 맺고 있다. 많은 과학자는 과학은 가치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유전 질환 치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유전공학에서의 각종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군사적, 상업적, 정치적 목적으로 과학을 이용하면서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우생학적 오용과 무분별한 상업적 폐해를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첨단 과학이 만들어낸 생화학무기와 핵무기가 과연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오고 인간을 구원할 것인가?

 

26. 제정 러시아는 교회가 권력과 결탁하여 신도에 대한 횡포가 심하였다. 그 덕분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들에게는 마르크시즘이 빈곤과 수탈을 해결해줄 수 있는 대안으로 생각되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공산주의의 무신론 하나님을 없앤 자리를 공산당 독재자가 차지했다. 결국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더 심한 경제난을 겪다가 소련 공산주의는 무너졌다. 공산주의는 그들이 목표로 한 유토피아도 이루지 못했고, 신이 없는 인간사회를 위한 대안도 되지 못했다.

 

27. 신 때문에 이 세상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모든 문제는 인간 때문에 생긴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종교가 타락하는 것은 신 때문이 아니고 인간이 종교를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도 신이 시킨 것이 아니다. 유럽의 왕들과 패권 다툼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교황의 권력욕에 따른 선동이었다. 기독교의 경우 하나님의 뜻에 따른 통치가 바르게 이루어지면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다.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을 이용하여 비뚤어지게 나갈 때 생긴다.

 

28.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바른 신앙을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 바로잡는 기회가 있었다. 유대교가 잘못되어 가니 예수님이 오셔서 바로잡아 주셨다. 구교가 잘못되니 마르틴 루터가 나타나 개혁을 했다. 지금도 구교나 개신교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에 따라 올바른 믿음을 가진 용기 있는 지도자가 다시 나타나 바로잡을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29. 만일 신이 없다고 하면서 오랫동안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법, 윤리, 도덕 기준을 깡그리 다 무너뜨리면, 앞으로 무슨 기준으로 인간의 악한 속성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도킨스의 소망대로 종교가 없어져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고, 아니 더 심해질 것이다.  절대적 기준을 다 무시하고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폐해가 이미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종교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와 관계없는 침략전쟁,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은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

 

도킨스는 생명의 원리로 신 대신 '자연선택'을 택했다


30. 그의 논리에 따르면 무엇인가에 의하여 한 개의 분자로 이루어진 생명체가 출현했다. 이 생명체에는 자기복제장치가 내장되어 있어서 그다음 어떻게 되어갈지 다 프로그램되어 있다. 스스로 알아서 환경에 적합하게 진화되어 간다. 아무도 간섭하거나 개입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기가 막힌 장치가 나타났는데, 이 장치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설명하지 못하면서 절대 신이 만든 것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과학에 의하여 설명될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피력하고 있다. 도킨스는 신의 존재가 과학적 방법으로 입증이 안 되니까, 신의 자리에 유전자와 자연선택을 가져왔다. 그리고 신은 없다고 하면서, 과학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처럼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도킨스는 유전자와 자연선택을 신으로 섬기는 과학교의 사제처럼 여겨진다.

 

에필로그


31.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방법으로 계시하셨다. 자연을 통한 계시(일반계시)와 성경을 통한 계시(특별계시)이다. 두 가지 계시는 다 한 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기 때문에 서로 모순이 없어야 한다. 만일 서로 모순이 있다면 하나님이 두 분이시거나 두 가지 계시 중 하나는 거짓이 된다. 일반계시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이성으로 자연을 이해하는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 과학이다. 과학을 통해 자연을 알아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 원리에 대하여 감탄하게 된다. 하나님은 처음에는 자연으로만 계시하셨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 못 하니 성경을 통해 더 직접적으로 더 상세하게 계시하셨다.

 

그런데도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 성경을 이성의 눈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다. 성경을 이성으로 이해하려면 모순투성이다. 사실은 모순이 아니라 내가 이해하지 못해서 받아들이지 못한 것뿐이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너희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요한복음 20:29)”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이해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으니 이해가 되는 것이다.

 

32. 그런데 과학을 통해 자연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진리로부터 멀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 방향은 양 극단이다. 한쪽은 자연을 알고 그 작동원리를 발견할수록 신이 세상을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과학의 발견과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과 대조해가며 한쪽은 성경이 틀렸다고 하면서 신은 없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한쪽은 성경의 사건들과 일치하지 않는 과학의 발견은 잘못된 것이라고 부정하고 과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둘 다 맹신이다. 하나는 과학에 대한 맹신, 다른 하나는 종교에 대한 맹신.

 


33.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인간이 우주 만물의 창조와 운행의 원리를 다 밝혀낼 수는 없다. 현대가 첨단과학의 시대라고 하지만, 아직도 우주를 움직이는 힘의 원리는 겨우 4% 정도 이해했을 따름이라고 한다. 중력과 척력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22%의 암흑 물질과 74%의 암흑 에너지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 물론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이 또한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올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또 다른 더 큰 미지의 세계와 원리가 나타날 것이다. 인간의 지식의 원의 반경이 커질수록 미지의 세계와 닿는 원주의 크기는 훨씬 더 큰 비율로 커지기 때문에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인간이 우주만물을 다 이해할 수 있는 시기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4. 형이하학의 세계와 형이상학의 세계는 같이 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두 세계가 공존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두 세계가 합하여 완전함을 이루는 것이다. 창세기 창조사건을 자꾸 이성의 눈으로 해부하려고 하고, 과학의 발견에 맞추어 그 틀 안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하면서 설명이 점점 어려워지고, 복잡해지고, 설명을 듣더라도 뭔가 뒤끝이 남는 것 같이 개운하지 않다. 이성의 칼날이 날카로워질수록 믿음은 조금씩 뒷걸음치는 것이다.

 

35. 과학의 발견이 성경의 내용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과학이 잘못되었다고 억지 주장하거나 반대로 과학에 맞추어 성경을 너무 난도질하지 말고, 신비한 하나님 말씀의 믿음의 눈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양자역학의 아버지 닐스 보어가 한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종교에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진리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판단도 과학적인 규준을 따라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세계를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으로 완전히 나누는 것은 지나친 강제성이다. 모든 시대의 종교에서 상징, 비유와 역설이 말해지고 있는 것은 종교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파악하는 다른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진실성이 없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진실의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으로 나누는 일은 별로 쓸모없는 일이라는 것이다.”(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에서 인용) ⓢ

 



글 | 송윤강 편집위원

과학강연, 영화, 도서 등 과학 관련 리뷰를 기고하고 있다. 현재 아름다운서당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