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앙 사이①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2-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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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사이』를 읽고

 

『과학과 신앙 사이』| 김도현 지음| 생활성서사 펴냄| 168쪽




이 책의 저자는 물리학자이면서 사제이다.

카이스트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신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여 사제 서품을 받고 신부로도 활동하고 있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분이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학생에게 이론물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과학과 신학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충분한 권위를 가진 분이 쓴 책이라 생각되어 더욱 흥미가 가서 신문에 난 서평을 보고 사서 단숨에 읽어봤다.
이 책은 저자가 최근에 가톨릭평화방송에서 ‘과학 시대의 신앙’이라는 주제로 4차에 걸쳐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 한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강의를 한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깊지는 않지만, 과학을 모르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게 썼고, 논지도 비교적 명쾌한 책이라 생각된다.

저자는 이 책의 저술 목적은 ‘21세기 현대 과학 시대에도 여전히 신앙이 필요하다’라는 점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라 했다.
그는 과학시대를 사는 우리는 과학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가 있고, 과학 시대에 맞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필요가 있지만, 과학만능주의라는 신념까지 무차별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했다.

현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과학기술의 시대이지만, 물질을 연구하는 일부 과학자들이 자신의 영역을 넘어 영적인 분야에까지 도전하여, 감히 하나님은 없다 신앙과 종교도 필요 없다는 무신론적 과학만능주의 주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한 무신론적 과학 만능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은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호킹으로 그들의 사상은 다른 나라는 물론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했다.

저자는 4차례의 강의 주제에 따라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된 이 책에서 그 두 무신론 과학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1장에서는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규명하고, 과학의 한계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2장에서는 빅뱅 우주론에 대하여 설명하고 스티브 호킹이 대표하는 다중 우주론에 입각한 무신론적 주장의 한계와 맹점을 비판한다.
3장에서는 진화론에 대하여 설명하고 현대의 주류 진화론인 신다윈주의의 한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4장에서는 우주론과 진화론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공식입장을 이야기하고, 현대의 과학 시대에서도 여전히 신앙은 필요하며,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과학과 신앙이라는 십자가의 두 축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했다.

 



 

1장 과학만능주의의 내용과 한계(요약)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자연과학이 지배하고 있고, 이 자연과학이 신앙과 적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학과 신앙은 처음부터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많은 신앙인은 자연을 바라보면서 그 자연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 묻는 동시에 그 자연의 창조자가 누구인가 알고자 한다. 따라서 자연과학과 신앙은 출발점이 동일하며 다만 질문만 다르다.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자연을 저런 식으로 유지해 주는 근본적인 법칙이나 원리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면, 신앙인은 저 웅장한 자연을 만드신 분이 어떤 분인가 묻고 있다.
그래서 과학과 신앙은 사실상 한 어머니에게서 난 쌍둥이다.

과학과 신앙이 본격적으로 갈라지기 시작한 것은 1800년경 계몽주의 사상이 유럽을 지배하면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과학과 신앙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자연이나 사회현상에서 발견되는 경험적인 사실들의 관찰에서 축적된 데이터에서 재현성과 보편성이 일정 수준 이상에 이르면 그 경험법칙과 원리들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신앙은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으로부터 단 한 번 있는 계시를 통해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모세가 떨기나무 사이에 나타난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건이 그와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사건은 역사상 다른 어느 사람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이며 반복적으로 주어지는 경험도 아니다. 경험한 사람은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과학은 자연과 사회에서 발견되는 경험에서 얻어지는 많은 데이터에서 보편적인 법칙을 찾는 것이며, 신앙은 역사 안에 주어진 ‘유일회적인’ 계시 사건을 사람들이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생겨나고 퍼져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계시 내용을 접한 사람들이 그 내용과 자신들 삶의 경험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며, 그 계시는 권위를 얻게 된다.

과학에서는 이러한 유일회적인 사건을 계시로 받아들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잘 납득하지 않는다. 오히려 ‘측정의 오류’ 또는 ‘데이터 조작’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의 모든 사건이 특정한 법칙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설명 불가능한 고유성이 있으며, 그 고유성 안에서 활동하는 신적 존재의 계시를 찾을 수 있다고 여긴다.

 



과학은 법칙이라는 보편성의 눈으로 모든 사건의 개별성을 설명하려 하고, 신앙은 특별한 계시 사건이라는 개별성의 눈으로 모든 사건의 보편성을 설명하려고 한다.
과학과 신앙은 사건에 대하여 정반대의 접근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과학과 종교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커진다.

그 예가 창세기 1~2장의 천지창조 기사에서 제시된 우주의 나이에 대한 계산 문제와 인류 첫 조상의 창조에 대한 것이다.

신학과 과학이 충돌할 때 과학이 대중에게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과학은 누구나 확인 가능한 보편성이 있고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반면, 계시는 극소수만 확인 가능한 신앙의 눈으로만 이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수의 근본주의적 신앙인들은 신앙의 문제를 방어하기 위하여 ‘창조과학’이라는 스스로 과학이라 부르는 방패를 이용할 정도로 절박함으로 보이고 있다.
이처럼 과학이 발전해 감에 따라 신앙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약해져 가는 것처럼 보인다.

무신론 과학자들은 그들이 강조하는 이성적이고 회의적인 추론방식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고 관찰 불가능한 신, 천사 등 영적 실체들의 존재에 대하여도 의문을 제기한다.
그 대표적인 과학자가 리처드 도킨스다.

그는 ‘과학은 합리주의의 한 형태이지마 종교는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미신이다’고 주장하며 무신론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고, 세계의 젊은이들 사이에 그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다.

과학이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신념을 ‘과학만능주의(Scientism)’라 한다.
과학만능주의에서는 과거 종교의 영역에 속했던 초자연적인 현상들까지 다 명확하게 이성적 논리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무신론은 사회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결합되어 있어 하나의 사회체제가 무너지면 그 무신론도 함께 무너지는 식이었다(예를 들면 공산주의).
그러나 과학만능주의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와 무관하게 자연과학의 발달과 함께 정규교육 과정을 통해 아주 수월하게 펴져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도킨스를 포함한 진화론적 무신론자들은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어느 순간 확률적으로 우연히 지구 상에 생명체가 출현하였다. 그 후 그 생명체의 후손들이 오랜 기간의 진화 과정으로 거쳐 현재의 인간을 비롯한 지구 상의 생명체들이 형성되게 되었다”

다른 과학만능주의자인 스티븐 호킹은 그의 저서 ‘위대한 설계’에서 빅뱅은 물리학 법칙만 작용한 결과로 우주는 자연스럽게 탄생하였으며, 신과 연관된 우주 창조의 개념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무신론적 과학만능주의자들의 주장은 공통적으로 우주와 생명의 첫 출발점을 ‘확률적 우연성’에 기반하고 있다.
‘확률적 우연성’이란 필연적으로 어떠한 원인이나 이유 없이 0에 가까운 지극히 낮은 확률로 어떤 현상이 발생함을 의미한다.
과학적 무신론은 이처럼 하나님을 확률적 우연성으로 대체하고 있다.

과학은 과학법칙에 의존한다. 그러나 사실상 과학자들은 과학 법칙의 원리조차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이란 ‘질량을 가진 두 물체가 있을 때 그 두 물체는 서로 떨어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게 서로 잡아당긴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물체의 거리의 ‘제곱’에 즉 ‘2승’라는 숫자로 정확하게 반비례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그 숫자가 ‘2.0001’이나 또는 ‘1.9999’로 조금만 틀어져도 이 우주의 모든 질서는 와해되고 만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우주의 중력이 어떠한 이유로 정확하게 2이라는 숫자와 관련되게 되었는지 설명을 못 한다.
그냥 경험적으로 관찰해보니 ‘2승’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낸 것뿐이다.
이는 정전기학의 쿨롱의 법칙도 마찬가지다.

‘제곱’ 즉 ‘2승’이라는 말은 ‘공간이 3차원이다’라는 말과 수학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질량 또는 전하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반드시 제곱(2승)에 반비례한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공간의 차원은 정확히 ‘3차원이다’라는 말과 동일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공간은 왜 3차원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과학자들은 답을 하지 못한다.
다만 생명체는 3차원이 아니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물리학은 ‘이 세상에 시간과 공간이 있고, 모든 물질은 질량과 전하가 있다’는 것을 기본전제로 하여 출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시간, 공간, 질량, 전하의 존재는 물리학이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리학은 이 세상의 많은 자연현상을 잘 설명해 주는 학문이지만, 그러한 현상들이 자연계에 왜 존재하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해주지 못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과연 자신의 법칙도 설명하지 못하는 과학이 비물질적인 존재에 대하여 의미 있는 설명을 할 수 있겠는가?
결국 과학이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과학만능주의자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신념이나 신앙이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음 호에 계속)

 




글 | 송윤강 편집위원

과학강연, 영화, 도서 등 과학 관련 리뷰를 기고하고 있다. 현재 아름다운서당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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