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칼럼
“영생을 주는 소녀” 에서 그리는 뇌과학의 미래
글ㅣ김성신
한양대 데이터사이언스학부 심리뇌과학전공
과신대 연구모임
최근 IVP 출판사에서 발간한 인기 웹툰 ‘영생을 주는 소녀’를 재미있게 읽고 북토크의 패널로 참가하게 되었다. 최근 IVP 출판사에서 발간한 인기 웹툰 “영생을 주는 소녀”를 3부까지 재미있게 읽고 북토크 패널로 나와 웹툰에서 그리는 뇌과학 관련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북토크 패널로 섭외가 들어왔을 때 거절하지 않았던 이유는 나의 연구 분야인 신경조절 기술을 웹툰에서 흥미롭게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경조절 기술 (Neuromodulation)은 글자 그대로 신경계의 활동을 인위적으로 조절해서 인지상태 및 행동을 변화시키는 기술을 가리킨다. 거창하게 들릴 수 있으나 카페인이 포함된 커피를 마시거나 시차가 바뀐 곳으로 여행을 하였을 때 종종 먹는 멜라토닌과 같은 것들도 약물로 인한 각성을 일으키거나 수면을 유도하는 등 우리 뇌의 인지기능을 조절하기 때문에 신경조절이라고 할 수 있다.
(1) 화학적 신경조절 기술 : 옥시토신의 예
웹툰에서는 ‘옥시토신 (Oxytocin)’ 이 인간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물질로 그려진다. 옥시토신은 자궁수축호르몬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호르몬이다. 옥시토신은 뇌하수체의 후엽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서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자궁 입구에서 태아로부터 받는 압력에 의한 신경신호가 말초신경을 통해 뇌까지 전달되어 분비가 되며 자궁수축을 유도함으로써 출산을 돕는 역할을 한다. 또한 옥시토신은 아이가 엄마의 젖을 빨 때도 그 자극이 뇌로 전달이 되어 분비됨으로써 모유 수유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이의 출산과 양육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옥시토신은 뇌의 기능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 (또는 신경조절물질)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말초 혈관을 통해 기능을 하는 호르몬과는 달리 뇌 안에 분비되어 신경세포의 기능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로서의 옥시토신은 인간의 사회성과 애착, 유대감과 관련된 인지기능에 영향을 준다. 옥시토신이 출산과 양육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호르몬이므로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 같다.
그림1. 옥시토신의 분자구조. 시판 중인 옥시토신 스프레이
옥시토신은 1953년, 미국 생화학자 빈센트 뒤비뇨 (1901-1978)가 합성에 성공을 하였고 이는 195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현재 합성된 옥시토신은 스프레이로 사용할 수 있게 판매가 되고 있는데 콧구멍을 통해서 뇌까지 전달이 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그림 1). 흥미롭게 옥시토신 스프레이는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여겨져 꽤 비싼 가격이지만 대중적으로도 판매가 되고 있다(30mL에 7만 원 정도). 옥시토신을 콧구멍에 분사하여 그 효과를 검증하는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된 바가 있다. 예를 들어 남자들이 다른 여자의 사진을 봤을 때보다 배우자의 사진을 보았을 때 도파민의 활동과 관련된 뇌 보상회로의 주요 영역(복측 선조체)이 더 강하게 반응한다는 연구는 옥시토신이 남자들의 바람기를 잡는데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실제로 옥시토신 연구로 유명한 래리 영(1967-2024) 교수는 인간을 제외한 포유류에서 드물게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초원 들쥐는 그렇지 않은 산악 들쥐에 비해서 뇌에서 많은 옥시토신 수용체들이 발견이 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수컷 초원 들쥐는 짝짓기 후 새끼를 암컷과 함께 돌보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옥시토신을 코에 분사하였을 때 상호간의 신뢰감이나 공감도를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흥미롭게도 옥시토신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만의 배타적인 애착감을 높여서 민족 중심의 배타적인 유대감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는 자신의 배우자와 가족을 돌보는 성향을 높여주는 옥시토신의 효과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2) 전기적 신경조절 기술
지금까지 옥시토신과 같은 약물을 사용하는 신경조절에 대한 논의를 하였으나 사실 필자는 이보다는 뇌를 전기적으로 자극하는 신경조절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뇌의 기능을 전기자극으로 조절할 수 있는 이유는 뇌에 존재하는 100억 개가 넘는 신경세포들이 마치 모스부호와 같은 전기적인 신호를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전기신호는 신경세포의 내외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양이온이나 음이온들의 이동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신경세포에서 만들어지는 전기적인 신호는 전선과 같은 신경축삭(axon)을 통해 전달이 되다가 다른 신경세포에게 시냅스를 통해서 전달이 되는데 시냅스에서는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이처럼 우리의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또는 화학적 반응이 우리의 인지기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앞서 논의한 바대로 옥시토신과 같은 약물을 통해 화학적 반응을 통해 기능을 조절하거나 전기적인 자극으로 조절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림2. 원숭이와 황소의 뇌에 전극을 심어서 공격성을 낮추는 실험을 했던 호세 델가도 교수 (Lorusso 등, Artificial Organs, 2022에서 인용)
뇌에서 전류가 흐른다는 사실은 19세기 말경에 이미 발견이 되었고 다소 엽기적이고 비윤리적인 뇌 전기자극 실험들이 행해지기도 했었다. 예일대 신경과학자인 호세 델가도(1915-2011)는 이후 뇌의 해부학적 구조에 기초한 현대적 뇌자극 실험을 했는데 그가 투우 경기장에서 황소의 미상핵에 심어진 전극에 무선으로 전류를 흘려 황소의 공격적인 행동을 즉각적으로 멈추게 한 실험은 당시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다(그림 2). 이러한 뇌자극은 뇌의 특정 부위를 직접 전류를 흘려줌으로써 즉각적인 자극 효과를 보일 수 있는데 현재는 심뇌자극(DBS: Deep Brain Stimulation)이라는 방식으로 파킨슨병 환자나 심각한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DBS는 뇌수술을 통해서 뇌의 특정 영역에 전극을 심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적용되기 어려워서 뇌수술 없이 비침습적으로 뇌를 자극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연구되어 왔다. 이와 같은 비침습적 뇌자극에는 대표적으로 경두개자기자극(TMS: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이나 경두개전기자극(TES: Transcranial Electrical Stimulation) 방식이 있다. 경두개자기자극(TMS)은 강력한 자기장의 변화를 통해 두개골 밑에 약한 유도전류를 만들어서 자극하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해서 자기장으로 뇌를 자극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그림3. 필자의 연구실에서 수행하는 경두개자기자극 실험의 예시 (중앙일보 2018년 8월 24일자 뉴스 인용)
TMS 는 2008년 미국에서 최초로 우울증 치료의 효과를 미 식약청(FDA)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임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13년부터 승인을 받고 일부 병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병원에서는 항우울제를 통해 효과를 보지 못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4주 정도의 뇌자극 프로그램으로써 시행되고 있다. 현재는 강박증이나 편두통과 같은 증상에도 효과를 인정받고 있으며 자폐증, 파킨슨, 경도인지장애의 치료에 적용하려고 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필자도 TMS를 활용한 연구를 오랫동안 해 왔는데 2018년에 TMS를 이용하여 일반인의 연관기능을 높일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고 올해 (2024년) 5월 삼성서울병원과 함께 한 공동연구를 통해서 초기 치매환자의 인지능력 저하를 늦출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여 신문과 방송에서도 수차례 소개된 바가 있다(그림 3).
웹툰에서도 뇌자극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공포를 공감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기초과학연구원 인지및사회성연구단의 금세훈 박사의 연구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이다. 금세훈 박사의 연구에서 사용한 뇌자극 방법은 광유전학 (optogenetics)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기술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특정한 파장의 빛 자극 (레이저)에 특정 신경세포가 반응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해당 신경세포의 기능과 관련된 인지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광유전학적 뇌자극 방식은 스탠포드 대학의 칼 다이서로스 (1971-현재) 교수가 개발하여 2005년에 최초로 논문으로 발표한 이래 혁신적인 뇌자극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광유전학적 자극은 특정한 신경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뇌자극 방식과는 차별성을 가진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광유전학을 이용해서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던 공포 기억을 조작하거나 식욕을 조절하는 등의 흥미로운 연구결과들이 소개된 바가 있다. 다만 현재까지 유전자 조작과 관련된 기술적, 윤리적 문제로 인해서 설치류를 제외한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에는 적용되고 있지 않다. 향후 광유전학이 인간에게 성공적으로 적용이 된다면 웹툰에서 그리는 것처럼 우리가 조절하고자 하는 인지기능을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과거의 트라우마와 같은 기억들을 선택적으로 삭제하거나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수 있으나 타인의 판단이나 감정을 조작하는 것도 가능해질 수 있으므로 이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윤리적 문제들도 우리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3) 뇌-뇌 연결 기술
웹툰의 후반부에서는 단순하게 뇌를 자극하는 방식을 넘어서서 인간의 뇌를 서로 연결해서 공감력을 높이는 장면이 나온다(그림 4). 필자는 이 점에서 뇌과학자로서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을 하였다.
그림4 . 웹툰에서 인용된 광유전학적 자극으로 신경세포를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기술
이처럼 두 개의 뇌를 직접 연결해서 정보를 공유한다는 아이디어는 미국 대선의 결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라는 회사에서 연구 개발 중인 뇌-컴퓨터 (또는 뇌-기계) 접속 기술에 기반하는 것이다(그림 5). 많은 대중들에게는 마치 일론 머스크의 아이디어처럼 알려진 뇌-컴퓨터 접속은 사실 2000년도 초반 미국 듀크대 미구엘 니콜렐리스, 브라운대학의 존 도너휴, 피츠버그 대학의 앤디 슈왈츠와 같은 신경과학자들에 의해서 원숭이 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인간 대상 실험도 2006년도에 이미 저명한 과학 잡지 네이처에 발표된 바가 있다. 필자가 대학원생으로 석사과정에 진학하였을 때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된 연구들이 이 시점에 나왔고 시카고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한 차세대 폐쇄형 뇌-컴퓨터 접속에 필수적인 촉각자극 전달에 대한 중요한 논문들도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하였다. 오바마의 대통령 퇴임식 때 이미 제 차세대 뇌-컴퓨터 접속에 대한 언급이 나올 정도로 사실 뇌-컴퓨터 접속은 역사가 꽤 오래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론 머스크는 사업가로서 이 기술을 발전시켜 사용자 편의성과 안전성을 높여 연구실 차원을 넘어서 일반인에게까지 상용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뉴럴링크라는 회사를 창립했다고 볼 수 있다(그림 5).
그림5.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
뉴럴링크가 공개한 영상들을 보면 사용자가 뇌-컴퓨터 접속을 통해 이메일을 보내거나 체스 게임을 두는 일들이 가능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샌프란시스코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UCSF)의 에드워드 챙 교수 연구팀은 말을 하지 못하는 환자가 생각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뇌-컴퓨터 접속 기술도 개발한 바가 있다.
웹툰에서 소개한 소위 ‘뇌-뇌 접속’ 은 먼저 뇌-컴퓨터 접속을 통해 A의 뇌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해석하고 이를 B의 뇌에 전달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즉, 두 개의 뇌 사이의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은 실제로 뇌-컴퓨터-뇌 접속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현재 뇌-컴퓨터 기술은 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종류의 신호를 상당한 수준의 정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신호에서 해석된 정보를 B의 뇌에 전달하려면 B의 뇌에서 이 정보와 관련된 신경세포들을 찾은 후 정확하게 자극을 해서 이 신경세포들을 활성화시켜줘야 한다. 이처럼 특정한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기술은 앞서 언급한 광유전학 기술을 통해서 가능하지만 위에서 논의한 바대로 아직까지 이러한 기술을 인간에게 사용하는 데에는 현재까지 많은 한계점이 있다. 또한 A의 뇌에서 해석된 정보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수많은 신경세포들이 동시에 활성화됨으로써 표현되는 것인데 이들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상대방의 뇌에 해당 정보와 관련된 신경세포들을 동시에 자극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모든 신경세포들이 정확하게 검출이 되고 자극이 가능하더라도 외부의 광유전학적 자극으로 인해서 강제적으로 반응하는 B의 신경세포가 만들어내는 정보 (또는 인지기능) 가 과연 A의 신경세포가 자연적으로 만들어내는, 즉 B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정보와 일치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다.
현재 뇌-뇌 접속이라고 소개하는 연구는 대부분 매우 간단한 감각운동반응에 기초한 것으로서 웹툰에서 그리는 복잡한 감정을 전달하여 공감하게 하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미국 워싱턴 대학의 라오 교수가 2014년 발표한 연구에서는 A가 손가락을 움직이려고 하는 의도를 뇌파 (EEG)를 통해 얻어진 신호로 해석한 다음 B의 운동피질을 자극해서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뇌-뇌 접속이라고 하기에 민망한 수준이다. 이후로 발표된 몇몇 연구들도 이러한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들이지만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뇌를 연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과 동물의 뇌를 연결하려는 몇몇 연구들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연구들도 아직까지는 앞서와 같이 간단한 감각운동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향후 인간의 뇌의 정보를 동물에게 전달해서 동물을 생각만으로 조정 한다거나 동물의 뛰어난 감각기관(예를 들어 개의 후각)을 통해 뇌에서 처리되는 정보를 인간에게 전달하여 인간의 감각기능을 향상시키는 연구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정리하면 현재까지 앞서 설명한 이유로 웹툰에서 그리는 뇌-뇌 접속의 개발은 가까운 미래에 가능하지 않겠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광유전학적 기술이 적용이 가능한 시점에서는 웹툰에서 그리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의미 있는 뇌-뇌 연결 기술이 가능한 세상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4) 마인드 업로딩과 뇌지도
마지막으로 웹툰에서 필자의 관심을 끌었던 내용은 뇌의 활동을 가상현실에서 시뮬레이션하는 것인데 이 또한 작가의 상상력이 매우 돋보이는 부분이었다(그림 6). 이 아이디어는 사실 1999년 상영한 매트릭스라는 영화에서 소개된 바가 있다.
그림6. 웹툰에서 그려진 마인드 업로딩과 시뮬레이션
이 영화에서 필자가 가장 충격적으로 봤던 장면은 영화 속 여주인공 트리니티(흥미롭게도 삼위일체를 의미함)가 헬리콥터를 조정하는 프로그램을 자신의 뇌에 다운로드 받은 후 헬리콥터를 운전하는 장면이다. 웹툰에서도 가상현실에 업로드 된 뇌를 시뮬레이션해서 뇌자극 방식의 효과를 시험해 보는 장면이 나온다. 웹툰에서 그려진 것처럼 뇌를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하는 것이 가능할까? 트랜스 휴머니즘에 대한 논의에서 항상 빠짐없이 등장하는 질문이 뇌에 있는 모든 정보를 컴퓨터에 업로드해서 디지털 자아를 만들어 영생을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먼저 뇌의 복잡도를 따져보아야 하는데 마침 올해 10월 초에 저명한 과학 잡지 네이처에 발표된 초파리의 뇌지도에 대한 연구가 그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림 7).
그림7. 초파리 뇌지도 (2024년 10월초 Nature 에 발표)
네이처에 무려 9개의 논문이 동시에 발표가 되었는데 초파리의 뇌지도는 예쁜꼬마선충에 의해서 전체 뇌가 완성된 두 번째 경우로서 현재까지 완성된 가장 복잡한 뇌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초파리의 뇌의 크기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mm 도 되지 않는데 이 안에 14만 개의 신경세포와 5천5백만 개 정도의 시냅스가 있다. 모든 신경세포들의 연결 패턴을 분석하기 위해서 머리카락 두께보다 2000배 이상 얇은 40nm 두께로 얇게 썰어진 뇌의 전자현미경 이미지를 분석하였다. 이를 데이터의 용량으로 계산해 보면 대략 1PB (페타바이트), 약 1000 TB (테라바이트)나 되는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과학자들의 다음 목표는 쥐의 뇌지도를 완성하는 것인데 같은 방식으로 초파리보다 1000배 정도 큰 크기 쥐의 뇌지도는 1000PB, 즉 1EB (엑사바이트)의 데이터가 필요할 것이다. 과학자들은 쥐의 뇌지도를 완성하는데 향후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쥐의 뇌보다 1000배 이상 큰 인간의 뇌에 대한 뇌지도를 만든다고 하면 10억 TB 즉, 1ZB (제타바이트) 정도의 데이터가 필요할 것이다. 2023년 1년 동안 전 세계에서 인터넷을 통해 생산된 데이터의 총량이 120ZB라고 하니 인간의 뇌의 복잡도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전자현미경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로 계산된 데이터의 크기이므로 정보의 절대적인 양이라고 할 수 없고 그 이상 또는 그 이하가 될 수도 있다. 아무튼 전체 뇌에 존재하는 신경세포들의 연결도 정보가 대략 제타바이트 수준의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데 이를 시뮬레이션하려면 어느 정도의 컴퓨팅 자원이 필요할지 감히 상상이 잘되지 않는다. 아마도 미래에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된다면 전체 뇌의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뇌의 정보를 업로드 또는 다운로드를 하여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서 우리의 의식과 자아가 새롭게 생성이 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여전히 자아와 의식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설령 나와 동일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디지털 뇌가 완성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매 순간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뇌의 가소성의 무작위성 때문에 디지털 뇌가 원본 뇌와 동일하게 작동할 것이라고 예측하기 어렵다.
맺음말: 나는 나의 뇌인가?
이러한 문제는 결국 우리의 정신활동이 물질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아니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관련이 있다. 사실 뇌과학자들은 대부분 전자의 가설을 기반으로 인간의 모든 정신활동을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화학적 현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뇌과학자들의 관점은 뇌가 인간의 정신활동을 만들어내는 본질이라는 다양한 증거들이 발견이 되면서 강화되어 왔다. 전두엽이 손상된 피니어스 게이지의 성격이 급격하게 바뀌었고 해마체를 제거한 헨리 몰라이슨이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지 못한 사례를 비롯하여 현대 뇌과학이 발견한 수많은 실험적 증거들은 뇌가 인간 정신 활동의 본질이라는 것을 지지한다. 전두엽의 활성화도가 낮은 사람이 타인을 잘 공감하지 못하는 싸이코패쓰 성향을 보인다는 결과 (그림 8), 전두엽에 종양이 있었던 환자가 아동 포르노그래피를 수집하는 범죄를 저지른 예, 타인을 돕고자 하는 인간의 이타적인 행동도 측두정엽 정합 영역 (TPJ: Temporoparietal junction) 의 회백질 크기로 설명이 된다는 연구 결과들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림8. 양전자방출단층 촬영 (PET) 으로 비교한 정상인과 사이코패스의 뇌 (사진 출처:tvN '알쓸신잡' 8회)
더 나아가 인간의 행동이나 의지를 옥시토신, 항우울제 심지어는 마약과 같은 신경조절물질이나 전기적 뇌자극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결과는 우리의 인간성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여겨진다. 기독교인으로서 지, 정, 의로 이루어진 우리의 신앙도 이러한 신경조절기술로 인해서 조작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면 신앙의 기반까지 흔들리는 것 같다. 정신과 물질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아주 오랫동안 철학의 난제로만 여겨져 왔고 과학이 다룰 수 있는 주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 뇌과학의 발전은 정신과 물질의 문제를 과학의 주제로 가져왔으며 심지어 기독교인들에게도 다양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필자는 지동설에 대한 질문, 진화 현상에 대한 질문이 우리의 신앙에 반하지 않은 것처럼 인간의 정신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질문은 결코 우리의 신앙에 반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이런 도전적인 질문들을 피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민하고 신학자, 철학자, 과학자들 간 진지한 대화와 연구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의 본질을 더 풍성하게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메인 칼럼
“영생을 주는 소녀” 에서 그리는 뇌과학의 미래
글ㅣ김성신
한양대 데이터사이언스학부 심리뇌과학전공
과신대 연구모임
최근 IVP 출판사에서 발간한 인기 웹툰 ‘영생을 주는 소녀’를 재미있게 읽고 북토크의 패널로 참가하게 되었다. 최근 IVP 출판사에서 발간한 인기 웹툰 “영생을 주는 소녀”를 3부까지 재미있게 읽고 북토크 패널로 나와 웹툰에서 그리는 뇌과학 관련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북토크 패널로 섭외가 들어왔을 때 거절하지 않았던 이유는 나의 연구 분야인 신경조절 기술을 웹툰에서 흥미롭게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경조절 기술 (Neuromodulation)은 글자 그대로 신경계의 활동을 인위적으로 조절해서 인지상태 및 행동을 변화시키는 기술을 가리킨다. 거창하게 들릴 수 있으나 카페인이 포함된 커피를 마시거나 시차가 바뀐 곳으로 여행을 하였을 때 종종 먹는 멜라토닌과 같은 것들도 약물로 인한 각성을 일으키거나 수면을 유도하는 등 우리 뇌의 인지기능을 조절하기 때문에 신경조절이라고 할 수 있다.
(1) 화학적 신경조절 기술 : 옥시토신의 예
웹툰에서는 ‘옥시토신 (Oxytocin)’ 이 인간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물질로 그려진다. 옥시토신은 자궁수축호르몬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호르몬이다. 옥시토신은 뇌하수체의 후엽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서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자궁 입구에서 태아로부터 받는 압력에 의한 신경신호가 말초신경을 통해 뇌까지 전달되어 분비가 되며 자궁수축을 유도함으로써 출산을 돕는 역할을 한다. 또한 옥시토신은 아이가 엄마의 젖을 빨 때도 그 자극이 뇌로 전달이 되어 분비됨으로써 모유 수유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이의 출산과 양육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옥시토신은 뇌의 기능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 (또는 신경조절물질)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말초 혈관을 통해 기능을 하는 호르몬과는 달리 뇌 안에 분비되어 신경세포의 기능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로서의 옥시토신은 인간의 사회성과 애착, 유대감과 관련된 인지기능에 영향을 준다. 옥시토신이 출산과 양육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호르몬이므로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 같다.
그림1. 옥시토신의 분자구조. 시판 중인 옥시토신 스프레이
옥시토신은 1953년, 미국 생화학자 빈센트 뒤비뇨 (1901-1978)가 합성에 성공을 하였고 이는 195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현재 합성된 옥시토신은 스프레이로 사용할 수 있게 판매가 되고 있는데 콧구멍을 통해서 뇌까지 전달이 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그림 1). 흥미롭게 옥시토신 스프레이는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여겨져 꽤 비싼 가격이지만 대중적으로도 판매가 되고 있다(30mL에 7만 원 정도). 옥시토신을 콧구멍에 분사하여 그 효과를 검증하는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된 바가 있다. 예를 들어 남자들이 다른 여자의 사진을 봤을 때보다 배우자의 사진을 보았을 때 도파민의 활동과 관련된 뇌 보상회로의 주요 영역(복측 선조체)이 더 강하게 반응한다는 연구는 옥시토신이 남자들의 바람기를 잡는데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실제로 옥시토신 연구로 유명한 래리 영(1967-2024) 교수는 인간을 제외한 포유류에서 드물게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초원 들쥐는 그렇지 않은 산악 들쥐에 비해서 뇌에서 많은 옥시토신 수용체들이 발견이 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수컷 초원 들쥐는 짝짓기 후 새끼를 암컷과 함께 돌보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옥시토신을 코에 분사하였을 때 상호간의 신뢰감이나 공감도를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흥미롭게도 옥시토신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만의 배타적인 애착감을 높여서 민족 중심의 배타적인 유대감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는 자신의 배우자와 가족을 돌보는 성향을 높여주는 옥시토신의 효과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2) 전기적 신경조절 기술
지금까지 옥시토신과 같은 약물을 사용하는 신경조절에 대한 논의를 하였으나 사실 필자는 이보다는 뇌를 전기적으로 자극하는 신경조절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뇌의 기능을 전기자극으로 조절할 수 있는 이유는 뇌에 존재하는 100억 개가 넘는 신경세포들이 마치 모스부호와 같은 전기적인 신호를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전기신호는 신경세포의 내외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양이온이나 음이온들의 이동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신경세포에서 만들어지는 전기적인 신호는 전선과 같은 신경축삭(axon)을 통해 전달이 되다가 다른 신경세포에게 시냅스를 통해서 전달이 되는데 시냅스에서는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이처럼 우리의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또는 화학적 반응이 우리의 인지기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앞서 논의한 바대로 옥시토신과 같은 약물을 통해 화학적 반응을 통해 기능을 조절하거나 전기적인 자극으로 조절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림2. 원숭이와 황소의 뇌에 전극을 심어서 공격성을 낮추는 실험을 했던 호세 델가도 교수 (Lorusso 등, Artificial Organs, 2022에서 인용)
뇌에서 전류가 흐른다는 사실은 19세기 말경에 이미 발견이 되었고 다소 엽기적이고 비윤리적인 뇌 전기자극 실험들이 행해지기도 했었다. 예일대 신경과학자인 호세 델가도(1915-2011)는 이후 뇌의 해부학적 구조에 기초한 현대적 뇌자극 실험을 했는데 그가 투우 경기장에서 황소의 미상핵에 심어진 전극에 무선으로 전류를 흘려 황소의 공격적인 행동을 즉각적으로 멈추게 한 실험은 당시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다(그림 2). 이러한 뇌자극은 뇌의 특정 부위를 직접 전류를 흘려줌으로써 즉각적인 자극 효과를 보일 수 있는데 현재는 심뇌자극(DBS: Deep Brain Stimulation)이라는 방식으로 파킨슨병 환자나 심각한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DBS는 뇌수술을 통해서 뇌의 특정 영역에 전극을 심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적용되기 어려워서 뇌수술 없이 비침습적으로 뇌를 자극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연구되어 왔다. 이와 같은 비침습적 뇌자극에는 대표적으로 경두개자기자극(TMS: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이나 경두개전기자극(TES: Transcranial Electrical Stimulation) 방식이 있다. 경두개자기자극(TMS)은 강력한 자기장의 변화를 통해 두개골 밑에 약한 유도전류를 만들어서 자극하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해서 자기장으로 뇌를 자극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그림3. 필자의 연구실에서 수행하는 경두개자기자극 실험의 예시 (중앙일보 2018년 8월 24일자 뉴스 인용)
TMS 는 2008년 미국에서 최초로 우울증 치료의 효과를 미 식약청(FDA)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임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13년부터 승인을 받고 일부 병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병원에서는 항우울제를 통해 효과를 보지 못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4주 정도의 뇌자극 프로그램으로써 시행되고 있다. 현재는 강박증이나 편두통과 같은 증상에도 효과를 인정받고 있으며 자폐증, 파킨슨, 경도인지장애의 치료에 적용하려고 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필자도 TMS를 활용한 연구를 오랫동안 해 왔는데 2018년에 TMS를 이용하여 일반인의 연관기능을 높일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고 올해 (2024년) 5월 삼성서울병원과 함께 한 공동연구를 통해서 초기 치매환자의 인지능력 저하를 늦출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여 신문과 방송에서도 수차례 소개된 바가 있다(그림 3).
웹툰에서도 뇌자극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공포를 공감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기초과학연구원 인지및사회성연구단의 금세훈 박사의 연구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이다. 금세훈 박사의 연구에서 사용한 뇌자극 방법은 광유전학 (optogenetics)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기술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특정한 파장의 빛 자극 (레이저)에 특정 신경세포가 반응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해당 신경세포의 기능과 관련된 인지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광유전학적 뇌자극 방식은 스탠포드 대학의 칼 다이서로스 (1971-현재) 교수가 개발하여 2005년에 최초로 논문으로 발표한 이래 혁신적인 뇌자극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광유전학적 자극은 특정한 신경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뇌자극 방식과는 차별성을 가진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광유전학을 이용해서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던 공포 기억을 조작하거나 식욕을 조절하는 등의 흥미로운 연구결과들이 소개된 바가 있다. 다만 현재까지 유전자 조작과 관련된 기술적, 윤리적 문제로 인해서 설치류를 제외한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에는 적용되고 있지 않다. 향후 광유전학이 인간에게 성공적으로 적용이 된다면 웹툰에서 그리는 것처럼 우리가 조절하고자 하는 인지기능을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과거의 트라우마와 같은 기억들을 선택적으로 삭제하거나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수 있으나 타인의 판단이나 감정을 조작하는 것도 가능해질 수 있으므로 이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윤리적 문제들도 우리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3) 뇌-뇌 연결 기술
웹툰의 후반부에서는 단순하게 뇌를 자극하는 방식을 넘어서서 인간의 뇌를 서로 연결해서 공감력을 높이는 장면이 나온다(그림 4). 필자는 이 점에서 뇌과학자로서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을 하였다.
그림4 . 웹툰에서 인용된 광유전학적 자극으로 신경세포를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기술
이처럼 두 개의 뇌를 직접 연결해서 정보를 공유한다는 아이디어는 미국 대선의 결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라는 회사에서 연구 개발 중인 뇌-컴퓨터 (또는 뇌-기계) 접속 기술에 기반하는 것이다(그림 5). 많은 대중들에게는 마치 일론 머스크의 아이디어처럼 알려진 뇌-컴퓨터 접속은 사실 2000년도 초반 미국 듀크대 미구엘 니콜렐리스, 브라운대학의 존 도너휴, 피츠버그 대학의 앤디 슈왈츠와 같은 신경과학자들에 의해서 원숭이 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인간 대상 실험도 2006년도에 이미 저명한 과학 잡지 네이처에 발표된 바가 있다. 필자가 대학원생으로 석사과정에 진학하였을 때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된 연구들이 이 시점에 나왔고 시카고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한 차세대 폐쇄형 뇌-컴퓨터 접속에 필수적인 촉각자극 전달에 대한 중요한 논문들도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하였다. 오바마의 대통령 퇴임식 때 이미 제 차세대 뇌-컴퓨터 접속에 대한 언급이 나올 정도로 사실 뇌-컴퓨터 접속은 역사가 꽤 오래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론 머스크는 사업가로서 이 기술을 발전시켜 사용자 편의성과 안전성을 높여 연구실 차원을 넘어서 일반인에게까지 상용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뉴럴링크라는 회사를 창립했다고 볼 수 있다(그림 5).
그림5.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
뉴럴링크가 공개한 영상들을 보면 사용자가 뇌-컴퓨터 접속을 통해 이메일을 보내거나 체스 게임을 두는 일들이 가능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샌프란시스코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UCSF)의 에드워드 챙 교수 연구팀은 말을 하지 못하는 환자가 생각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뇌-컴퓨터 접속 기술도 개발한 바가 있다.
웹툰에서 소개한 소위 ‘뇌-뇌 접속’ 은 먼저 뇌-컴퓨터 접속을 통해 A의 뇌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해석하고 이를 B의 뇌에 전달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즉, 두 개의 뇌 사이의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은 실제로 뇌-컴퓨터-뇌 접속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현재 뇌-컴퓨터 기술은 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종류의 신호를 상당한 수준의 정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신호에서 해석된 정보를 B의 뇌에 전달하려면 B의 뇌에서 이 정보와 관련된 신경세포들을 찾은 후 정확하게 자극을 해서 이 신경세포들을 활성화시켜줘야 한다. 이처럼 특정한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기술은 앞서 언급한 광유전학 기술을 통해서 가능하지만 위에서 논의한 바대로 아직까지 이러한 기술을 인간에게 사용하는 데에는 현재까지 많은 한계점이 있다. 또한 A의 뇌에서 해석된 정보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수많은 신경세포들이 동시에 활성화됨으로써 표현되는 것인데 이들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상대방의 뇌에 해당 정보와 관련된 신경세포들을 동시에 자극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모든 신경세포들이 정확하게 검출이 되고 자극이 가능하더라도 외부의 광유전학적 자극으로 인해서 강제적으로 반응하는 B의 신경세포가 만들어내는 정보 (또는 인지기능) 가 과연 A의 신경세포가 자연적으로 만들어내는, 즉 B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정보와 일치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다.
현재 뇌-뇌 접속이라고 소개하는 연구는 대부분 매우 간단한 감각운동반응에 기초한 것으로서 웹툰에서 그리는 복잡한 감정을 전달하여 공감하게 하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미국 워싱턴 대학의 라오 교수가 2014년 발표한 연구에서는 A가 손가락을 움직이려고 하는 의도를 뇌파 (EEG)를 통해 얻어진 신호로 해석한 다음 B의 운동피질을 자극해서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뇌-뇌 접속이라고 하기에 민망한 수준이다. 이후로 발표된 몇몇 연구들도 이러한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들이지만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뇌를 연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과 동물의 뇌를 연결하려는 몇몇 연구들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연구들도 아직까지는 앞서와 같이 간단한 감각운동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향후 인간의 뇌의 정보를 동물에게 전달해서 동물을 생각만으로 조정 한다거나 동물의 뛰어난 감각기관(예를 들어 개의 후각)을 통해 뇌에서 처리되는 정보를 인간에게 전달하여 인간의 감각기능을 향상시키는 연구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정리하면 현재까지 앞서 설명한 이유로 웹툰에서 그리는 뇌-뇌 접속의 개발은 가까운 미래에 가능하지 않겠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광유전학적 기술이 적용이 가능한 시점에서는 웹툰에서 그리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의미 있는 뇌-뇌 연결 기술이 가능한 세상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4) 마인드 업로딩과 뇌지도
마지막으로 웹툰에서 필자의 관심을 끌었던 내용은 뇌의 활동을 가상현실에서 시뮬레이션하는 것인데 이 또한 작가의 상상력이 매우 돋보이는 부분이었다(그림 6). 이 아이디어는 사실 1999년 상영한 매트릭스라는 영화에서 소개된 바가 있다.
그림6. 웹툰에서 그려진 마인드 업로딩과 시뮬레이션
이 영화에서 필자가 가장 충격적으로 봤던 장면은 영화 속 여주인공 트리니티(흥미롭게도 삼위일체를 의미함)가 헬리콥터를 조정하는 프로그램을 자신의 뇌에 다운로드 받은 후 헬리콥터를 운전하는 장면이다. 웹툰에서도 가상현실에 업로드 된 뇌를 시뮬레이션해서 뇌자극 방식의 효과를 시험해 보는 장면이 나온다. 웹툰에서 그려진 것처럼 뇌를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하는 것이 가능할까? 트랜스 휴머니즘에 대한 논의에서 항상 빠짐없이 등장하는 질문이 뇌에 있는 모든 정보를 컴퓨터에 업로드해서 디지털 자아를 만들어 영생을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먼저 뇌의 복잡도를 따져보아야 하는데 마침 올해 10월 초에 저명한 과학 잡지 네이처에 발표된 초파리의 뇌지도에 대한 연구가 그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림 7).
그림7. 초파리 뇌지도 (2024년 10월초 Nature 에 발표)
네이처에 무려 9개의 논문이 동시에 발표가 되었는데 초파리의 뇌지도는 예쁜꼬마선충에 의해서 전체 뇌가 완성된 두 번째 경우로서 현재까지 완성된 가장 복잡한 뇌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초파리의 뇌의 크기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mm 도 되지 않는데 이 안에 14만 개의 신경세포와 5천5백만 개 정도의 시냅스가 있다. 모든 신경세포들의 연결 패턴을 분석하기 위해서 머리카락 두께보다 2000배 이상 얇은 40nm 두께로 얇게 썰어진 뇌의 전자현미경 이미지를 분석하였다. 이를 데이터의 용량으로 계산해 보면 대략 1PB (페타바이트), 약 1000 TB (테라바이트)나 되는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과학자들의 다음 목표는 쥐의 뇌지도를 완성하는 것인데 같은 방식으로 초파리보다 1000배 정도 큰 크기 쥐의 뇌지도는 1000PB, 즉 1EB (엑사바이트)의 데이터가 필요할 것이다. 과학자들은 쥐의 뇌지도를 완성하는데 향후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쥐의 뇌보다 1000배 이상 큰 인간의 뇌에 대한 뇌지도를 만든다고 하면 10억 TB 즉, 1ZB (제타바이트) 정도의 데이터가 필요할 것이다. 2023년 1년 동안 전 세계에서 인터넷을 통해 생산된 데이터의 총량이 120ZB라고 하니 인간의 뇌의 복잡도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전자현미경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로 계산된 데이터의 크기이므로 정보의 절대적인 양이라고 할 수 없고 그 이상 또는 그 이하가 될 수도 있다. 아무튼 전체 뇌에 존재하는 신경세포들의 연결도 정보가 대략 제타바이트 수준의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데 이를 시뮬레이션하려면 어느 정도의 컴퓨팅 자원이 필요할지 감히 상상이 잘되지 않는다. 아마도 미래에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된다면 전체 뇌의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뇌의 정보를 업로드 또는 다운로드를 하여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서 우리의 의식과 자아가 새롭게 생성이 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여전히 자아와 의식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설령 나와 동일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디지털 뇌가 완성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매 순간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뇌의 가소성의 무작위성 때문에 디지털 뇌가 원본 뇌와 동일하게 작동할 것이라고 예측하기 어렵다.
맺음말: 나는 나의 뇌인가?
이러한 문제는 결국 우리의 정신활동이 물질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아니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관련이 있다. 사실 뇌과학자들은 대부분 전자의 가설을 기반으로 인간의 모든 정신활동을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화학적 현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뇌과학자들의 관점은 뇌가 인간의 정신활동을 만들어내는 본질이라는 다양한 증거들이 발견이 되면서 강화되어 왔다. 전두엽이 손상된 피니어스 게이지의 성격이 급격하게 바뀌었고 해마체를 제거한 헨리 몰라이슨이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지 못한 사례를 비롯하여 현대 뇌과학이 발견한 수많은 실험적 증거들은 뇌가 인간 정신 활동의 본질이라는 것을 지지한다. 전두엽의 활성화도가 낮은 사람이 타인을 잘 공감하지 못하는 싸이코패쓰 성향을 보인다는 결과 (그림 8), 전두엽에 종양이 있었던 환자가 아동 포르노그래피를 수집하는 범죄를 저지른 예, 타인을 돕고자 하는 인간의 이타적인 행동도 측두정엽 정합 영역 (TPJ: Temporoparietal junction) 의 회백질 크기로 설명이 된다는 연구 결과들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림8. 양전자방출단층 촬영 (PET) 으로 비교한 정상인과 사이코패스의 뇌 (사진 출처:tvN '알쓸신잡' 8회)
더 나아가 인간의 행동이나 의지를 옥시토신, 항우울제 심지어는 마약과 같은 신경조절물질이나 전기적 뇌자극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결과는 우리의 인간성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여겨진다. 기독교인으로서 지, 정, 의로 이루어진 우리의 신앙도 이러한 신경조절기술로 인해서 조작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면 신앙의 기반까지 흔들리는 것 같다. 정신과 물질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아주 오랫동안 철학의 난제로만 여겨져 왔고 과학이 다룰 수 있는 주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 뇌과학의 발전은 정신과 물질의 문제를 과학의 주제로 가져왔으며 심지어 기독교인들에게도 다양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필자는 지동설에 대한 질문, 진화 현상에 대한 질문이 우리의 신앙에 반하지 않은 것처럼 인간의 정신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질문은 결코 우리의 신앙에 반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이런 도전적인 질문들을 피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민하고 신학자, 철학자, 과학자들 간 진지한 대화와 연구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의 본질을 더 풍성하게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