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스테리아 : 과학과 종교, 그 얽히고설킨 2천 년 이야기 (전경훈)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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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스테리아 시리즈

마지스테리아 MAGISTERIA 
과학과 종교, 그 얽히고설킨 2천 년 이야기


글ㅣ전경훈 
《 마지스테리아》  역자






 마지스테리아  : 과학과 종교, 그 얽히고설킨 2천년 이야기
  니컬러스 스펜서 저, 전경훈 역ㅣ책과함께ㅣ2024
   

번역자가 자신의 번역서에 대해 언급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여러 차례 면밀하게 책을 읽었지만 결국 자신이 쓴 책은 아니기에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는 없다. 더구나 번역한 책의 내용이 방대하고 번역자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닐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럴 때 번역자는 그저 저자의 뜻을 최대한 정확하게 옮기는 데서 그칠 뿐, 말을 아껴야 한다. 『마지스테리아』를 번역한 내가 바로 그러하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과신뷰>의 연재 요청에 선뜻 응한 것은, 열심히 번역한 책의 내용을 많은 사람과 진지하게 나누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다. 행여 번역자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고 말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번역자의 몫이다. 앞으로 열두 번에 나누어 책의 내용을 살펴볼 텐데, 이 첫 번째 글에서는 책의 제목과 서론에서 밝히고 있는 저자의 기본 입장과 그에 따른 책의 구조를 간단하게 훑어보려 한다.


이 책은 그 제목이 관심을 끈다. ‘마지스테리아Magisteria’는 마지스테리움Magisterium이라는 라틴어 단어의 복수형이다. 마지스테리움은 교사를 뜻하는 마지스테르Magister에서 파생된 단어로 ‘가르침’이나 ‘가르치는 권한’을 나타내며, 특히 가톨릭교회에서 신자들을 가르칠 교회의 권한, 곧 교도권敎導權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이 개념을 확립한 것은 1950년 교황 비오 12세가 발표한 회칙 「인류Humani Generis」다. 교황은 이 회칙을 통해 교회 안 신학자들에게는 자유로운 연구를 인정하면서도 계시된 진리에 대한 정통적 해석을 바탕으로 믿을 교리를 확정할 권한이 교황을 비롯한 주교들에게 속해 있음을 확인했고, 교회 밖 과학자들에게는 자연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인정하면서도 종교와 도덕에 관한 논의는 교회의 영역에 속해 있음을 확인했다. 교회 안에서는 새로운 현대 신학이 대두되어 전통 신학이 위협받고, 교회 밖에서는 현대 과학의 발전이 종교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교황이 ‘선’을 분명히 그어 좁아진 교회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자 했던 것이다.


지난 세기 말에 이 마지스테리움 개념을 받아서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조금 더 분명하게 규정하고자 한 것은 미국의 유명한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였다. 굴드는 마지스테리움을 ‘한 가지 형태의 가르침이 유의미한 담론과 해법에 적합한 도구를 지닌 하나의 영역’이라 정의하고, 과학과 종교를 서로 겹치지 않는 별개의 마지스테리움이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과학은 물질세계의 경험적 사실들을 다루는 마지스테리움이고, 종교는 의미와 윤리를 다루는 마지스테리움이다. 둘 사이의 경계는 명확하며, 각자 자기 영역에서 고유한 역할을 수행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여 서로 충돌할 이유가 없다. 과학과 종교의 충돌은 이를테면 범주의 오류인 셈이다. 굴드는 진화론을 종교는 물론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 등에 적용하려는 시도들에 반대하는 한편, 과학을 근거로 한 무신론으로 종교를 공격하는 과학자들을 비판하면서 NOMA(non-overlapping magisteria) 즉 ‘서로 겹치지 않는 마지스테리움들’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이로써 마침내 과학과 종교 사이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는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Unsplash, Jannis Nöbauer


그러나 『마지스테리아』의 저자 니컬러스 스펜서는 이렇게 과학과 종교를 서로 다른 마지스테리움으로 규정하여 잠정적 평화를 얻으려는 NOMA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는 ‘과학과 종교의 얽힌 역사들The Entangled Histories of Science & Religion’이라는 이 책의 부제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방점이 찍히는 부분은 ‘얽힌entangled’이다. 현대 물리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란 현상에서 가져다 쓴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스펜서는 두 개의 양자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에도 서로 얽혀 있어 영향을 주고받듯이 과학과 종교 또한 제각기 독립된 영역을 이루고 있다 해도 서로 얽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둘이 맺어온 관계는 충돌과 갈등으로 점철된 단일한 역사가 아니라 다양하고 중층적인 ‘역사들’로 이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스펜서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보여주는 주요 사건들을 포착하여 그 배경과 경과를 면밀히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과학과 종교가 늘 충돌과 갈등의 관계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 널리 유포된 충돌 서사에서처럼 과학과 종교가 서로 부딪치기 시작한 것은 과학이 독립된 학문 영역으로 성립되는 근대 이후부터였으며, 오히려 그 이전에는 과학이 종교의 보호 아래에서 태동하고 성장했음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면서 발생한 충돌의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갈릴레이 재판이라든가, 진화론자들과 종교인들 사이의 대결은 훨씬 더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졌으며 중층적인 측면들을 포함하고 있다. 더욱이 근‧현대 과학 발전을 주도한 인물들 가운데는 종교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그들의 신앙이 오히려 과학 탐구에 복합적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과학의 발달이 종교에 끼친 영향은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도, 과학과 종교가 맺는 관계와 그 역사를 단일한 충돌의 역사로 서술하려는 것은 언제나 어느 한 쪽을 배제하려는 이들의 거짓되고 헛된 시도에서 비롯했음을 주지해야 한다.


@Unsplash, Clarisse Meyer


스펜서는 다만 역사적으로 과학과 종교가 서로 얽혀서 중층적인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을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학과 종교가 서로 얽혀드는 필연적인 이유를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것은 과학과 종교 모두가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고,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 질문을 공유하기에 과학과 종교는 서로 관계 맺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답을 ‘누가 말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두고 갈등하게 된다. 결국 이 두 가지 문제를 축으로 과학과 종교는 수천 년에 걸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양하고 중층적인 역사들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스펜서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총 열아홉 개 장에 걸쳐 지난 2천 년 동안 종교와 과학의 역사들을 살핀다. 고전 세계에서 1600년까지 기간을 다루는 1부에서는 아직 근대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다루는데 그리스도교만이 아니라 이슬람과 유대교에서 이성과 신앙의 관계와 그 전개 양상을 다룬다. ‘창세기’라는 제목이 붙은 2부에서는 근대과학이 성립되는 17세기와 18세기를 다루면서 새로운 철학의 잉태와 양성과 발전을 종교가 어떻게 도왔는지를 주로 살펴본다. ‘탈출기’라는 제목의 3부에서는 19세기에 과학이 종교에서 어떻게 분리되어 멀어지게 되었는지를 논의하고 이 시기에 과학과 종교의 충돌이라는 신화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20세기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급격히 발달하는 과학 기술로 종교와 과학의 권력관계가 역전되면서 나타난 양상들을 다룬다. 그리고 앞선 논의들을 토대로 오늘날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며 실제로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지 고민한다. 


분량 자체가 적지 않고 다루는 내용 또한 방대하기에 서양사 전반이나 그리스도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과학의 여러 분야에 낯선 사람들이 『마지스테리아』를 정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독자들이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본 번역자 역시 그러한 독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부담을 덜고 마음 편하게 책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의 본문을 나누어 같이 살펴보면서 역사 속에서 과학과 종교가 맺어온 관계를 고찰하고, 앞에서 요약적으로 제시한 저자의 관점과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드러나는지를 계속 생각해 본다면 책을 끝까지 읽어나가는 동력이 될 수 있겠다. 그렇게 해서 책의 마지막에 이르게 된다면, 과학주의 시대라는 오늘날에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얻고, 더 나아가서는 종교와 신앙의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에도 조금은 더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모쪼록 부족한 번역자가 나누어 소개하는 책의 내용이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추구하는 <과신뷰>의 독자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다면 무척 기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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