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제이 굴드의 NOMA 이해 (임창세)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5-02-14
조회수 163

스티븐 제이 굴드의 NOMA 이해

- 과학과 신앙 -


글ㅣ임창세
용산제일교회 담임목사
칼바르트 공공신학센터 소장


1. 들어가는 말

스티븐 제이 굴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진화론자이다. 그의 단속평형론(Punctuated equilibrium)은 기존의 진화론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기존 진화론에 대한 오해는 우선 진화와 진보와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진화란 진보나 발전이 아니다. 라틴어 evolre에는 진보한다는 의미보다 펼쳐진다는 뜻이 강하다. 굴드에 따르면, 허버트 스펜서 Herbert Spencer가 <진화>라는 단어를 생물학적 용어로 사용하면서 진보의 의미를 담게 되었으며, 다윈은 처음에 이 단어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1) 굴드에게 있어서 진화란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확대이다. 이는 선캄브리아 시대에 있었던 생명의 대폭발이 증명해 준다.    


또한 굴드에 따르면, 진화론의 핵심 개념인 자연선택설도 달리 해석되어야 한다. 부분적인 종- 예를 들면 매머드의 등장-이 진화할 때에는 자연선택설이 타당하지만, 전체 생명의 차원으로 보면 자연선택에 의한 진보라고 말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 굴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 @나무위키

“ 변화의 역사를 무엇인가 어디로 움직여 가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풀하우스)에 걸쳐 일어나는 변이의 확장이나 위축으로 보아야 한다.”2)


이런 굴드의 주장이 마치 진화론이 부정되는 것처럼 오해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창조과학에서는 굴드가 마치 진화론 전체를 부정하고 창조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굴드는 그의 글에서 여러 차례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에 대해서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이런 창조과학과 같은 오류나 과학의 무모한 종교비판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 굴드는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올바로 설정하기 원해서 NOMA(Non- Overlapping Magisterium)를 제안한다. 이 NOMA를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종교와 과학이라는 두 영역을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NOMA는 단순히 두 영역의 분리가 아니라 상호 대화를 통한 발전적 관계를 모색하고자 하는 굴드의 노력이다. 굴드는 그의 저서 『Rocks of Age』에서 종교와 과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잘 정리하였다.  본 소고에서 필자는 굴드가 제안한 NOMA에 대해서 정확하게 정리하고 NOMA에 대한 필자의 해석을 피력하고자 한다.


2. NOMA의 정의

 우선 굴드는 종교와 과학은 인간 삶에 꼭 필요한 두 영역임을 강조한다. 이는 기존의 대부분의 과학자들, 특히 진화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이 종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굴드에 따르면, 과학은 자연세계의 사실적인 특성을 탐구하여 그 사실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키는 학문이다. 반면 종교는 과학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영역인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과학이 해결할 수 없는 인간 삶의 의미나 목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과학이 자체적으로 윤리적 기준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는 과학에 필요한 윤리적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 종교와 과학은 서로의 필요 때문에 상호 영역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상호 존중의 의미를 위해서 굴드는 Magisterium이라는 단어를 제안한다. 이 단어는 라틴어에서 스승을 가리키는 magister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어떤 가르침에 대한 권위를 의미한다. 물론 이 단어가 가톨릭 신학에서 자주 사용되지만, 굴드는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한다. 가톨릭에서는 어떤 권위나 위엄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특정한 형태의 가르침이 자신만의 원칙에 따라서 토론하고 논의할 수 있는 영역을 의미한다. 즉, 가르침의 권위가 세워지고 그 권위 아래서 일정한 원칙과 방법에 따라서 토론하고 대화하지만, 그 가르침 자체의 권위는 인정하고 순종해야 한다.3)  


정리하자면, 과학의 마지스테리움은 경험적인 영역을 다룬다. 즉, 우주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사실)와 그것이 왜 그렇게 작동하는가(이론)에 관한 것이다. 반면, 종교의 마지스테리움은 궁극적인 의미와 도덕적 가치의 문제를 아우른다. 이 두 마지스테리움은 서로 겹치지 않으며 모든 탐구를 포함하지도 않는다. 흔한 표현을 빌리자면, 과학은 "암석의 연대"를 연구하고, 종교는 "영원의 반석"을 다루며, 과학은 "천체의 운행"을 연구하고, 종교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가르친다.


그렇다고 굴드에게 있어서 NOMA는 종교와 과학의 철저한 분리가 아니다. 이는 과학과 종교가 상호존중하고 심지어 사랑으로 조화를 이루는 협약과 같은 것이다. 그 협약이란 종교가 사실적 영역에 속하는 과학의 결론에 대해서 지시 혹은 명령을 하지 말아야 하고, 마찬가지로 과학 또한 세상의 경험적 구성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도덕적 진리에 대해 더 높은 권위가 있다는 식으로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4)


굴드는 이러한 NOMA의 원리가 성경에서도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바로 부활을 의심한 도마의 행동에 주목한다.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도마는 예수님의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만져보기를 원했다. 이는 과학적인 검증의 자세이다. 실제로 보고 만져서 검증 가능한 것일 믿겠다는 자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도마의 과학적 자세(?)를 허용하셨다. 경험적 검증을 허용하신 것이다. 그러고는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더 복되다.”이는 종교와 믿음의 영역에 관한 말씀이다. 신앙은 보고나 만져서는 알 수 없는 영적인 차원의 것임을 설명하신 것이다. 즉, 예수도 경험적 탐구과 신앙적 믿음을 분리하면서도 모두 인정하셨고 NOMA의 원칙을 지지하셨다는 것이다. 


2.1 찰스 다윈의 삶과 사상 속에서 NOMA를 발견할 수 있다.

다윈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혹자는 그의 저서들, 특히 『종의 기원』에서 언급한 창조주- 한국어 번역에서는 의도적으로 삭제했지만-라는 단어를 근거로 기독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윈은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굴드는 이런 불신앙적 태도 혹은 불가지론적인 태도의 원인을 다윈이 겪은 개인적 불행에서 찾는다. 

 다윈은 캠브리지 대학 신학과에 입학했다. 굴드에 따르면, 이는 신앙적 동기보다는 삶의 수단으로 목사직을 선택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곳에서 프레일리의 자연신학에 심취했다. 한때, 다윈은 시골 목사직에 대해서 고민도 했지만 당시 성공회의 모순을 비판하는 글들을 접한 뒤로 신앙적 신념에 회의를 품게 되고, 마침내 비글호를 타게 되었다.


 다윈이 신앙에 더 큰 회의를 품게 된 이유는 장녀 애니의 병사 때문이다. 다윈에게는 10명의 자녀들이 있었다. 그 중에 3명의 자녀가 10세 이전에 사망했는데, 특별히 다윈은 장녀 애니를 너무 사랑했다. 다윈은 그의 형제 에라스무스에게 쓴 편지에서 애니의 죽음으로 인한 큰 슬픔과 절망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과 그를 향한 신앙이 위로가 되기 보다는 오히려 회의를 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굴드에 따르면, 애니의 죽음 이후 다윈은 불지론자가 되었다.5)

 그 이후 다윈은 학문적 연구에 열중했다. 굴드에 따르면, 다윈은 철저하게 과학적인 자세로 연구에 임했다. 다윈의 과학탐구의 자세를 굴드는 ‘냉수욕 이론(cold bath)“이라고 이름붙였다.6) 즉, 자연을 연구함에 있어서 어떠한 선입견이나 가치관을 갖지 않았고 냉정한 입장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보통 자연을 연구하면 자연이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반대로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할 때도 많다. 예를 들어서 돌고래가 동료들을 돕고 협조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기생충과 숙주와의 관계를 보면 아름답기보다는 생존경쟁의 치열함과 잔인함을 느낀다. 그러나 과학자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한 입장을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다윈은 과학을 연구함에 있어서 어떤 선입견도 갖지 않으려 노력했다. 다윈에게 있어서, 자연은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대상일 뿐이다. 심지어 그 속에서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를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없다. 더욱이 다윈은 자연을 보면서 그 속에서 신의 섭리나 존재 혹은 설계의 흔정을 찾으려는 노력도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관찰할 뿐이다. 굴드에 따르면 이런 다윈의 입장은 NOMA의 원리에 충실한 것이다. 과학자는 자연을 있는 대로 관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7)

따라서 다윈은 아서 그레이에게 보내 편지 속에서 자연에서 신의 섭리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하다고 강조했다. 다윈은 자연의 사건들을 신학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을 반대했으며, 인간과 자연의 기원이 설계의 산물이라는 논증에도 반대한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은 마지막까지 교인으로서의 삶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굴드에 따르면, 다윈은 교회 예배에 참여하려고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교회 프로그램에 많은 헌금과 기여를 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휴식처를 마련해 주었으며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해서도 헌금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헉슬리를 비롯한 몇 명의 친한 친구들은 다윈의 사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아이작 뉴턴의 옆자리에 묻혀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들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또한 당시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피아노 반주자가 작곡한 다윈의 장례곡에는 잠언 3장 13-17절의 말씀이 삽입되었다. 이에 더하여 굴드는 거기에 다음과 같은 잠언 3장 18절도 삽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9)


굴드는 다윈의 연구 자세와 신앙생활을 통해서 NOMA 원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다윈은 과학자로 철저하게 냉정한 입장을 취했다. 자연 속에서 도덕적 가치나 신앙적 의미를 찾지 않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고 연구하는 자세를 견지했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 자세와는 별개로 - 그의 신앙적 실망이나 회의에도 불구하고- 교인으로서의 삶을 성실하게 수행하려고 노력했다. 다윈은 두 가지 Magisterium이 충돌하지 않으면서 잘 조화를 이루어 보려고 노력했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었다. 굴드는 다윈의 장례곡에 잠언 3장 18절을 삽입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다윈도 신앙인으로 도덕적인 삶을 살았으며 구원받을 만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1970년대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굴드@amnh.org

2.3 신앙과 과학의 충돌역사에 대한 평가

굴드는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서 종교와 과학이 충돌한 역사를 재점검한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사건이 바로 갈릴레이 갈릴레오와 교황청 사이의 충돌이다. 굴드는 이런 충돌이 본질적 이유보다는 서로에 대한 오해와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한다. 16세기 교황청의 경우, 종교개혁과 개신교의 공격으로 매우 민감한 상태에 있었다. 당시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가톨릭의 신학과 세계관을 비판하였다. 이런 상황에 가톨릭의 자연신학에서 탄생한 천동설을 비판한 과학혁명가들에게 종교개혁자들은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런 개신교와 과학자들의 연대(?)에 교황청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과학혁명가들의 주장이 가톨릭의 신학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다. 그와 함께 갈릴레오는 다혈질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서 도발적인 글을 자주 썼다.10) 이런 상황적 이유가 충돌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19세기 말엽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기에 기독교와 과학의 갈등을 각인시킨 결정적인 서적들이 출판되기 시작했다. 그 책 중에 대표적인 것이 앤드류 딕슨 화이트가 저술한 『A History of the Warfare of Science with Theogogy in Christendom』과 윌리암 드래퍼가 저술한 『History of the Conflict Between Religion and Science』이다. 이 두 책은 과학혁명가와 교황청 사이의 갈등을 과장되게 묘사하는 경향이 있었고, 심지어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저자가 임의대로 서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인간의 진보는 과학을 통해서 종교에 승리함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11)  


 이 두 책이 출판될 때, 교황은 비오 9세(Beatus Pius PP.Ⅸ)였다. 비오 9세는 교황 무오설을 주장했고, 이를 비판한 과학자들과 지성인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특히 비오 9세 시대에는 마르크시즘을 비롯한 유물론 철학이 크게 성장하였고, 교황은 진화론 역시 무신론적인 과학으로 인식하였다. 유물론 철학의 성장은 자연스럽게 종교에 대한 비판과 공격의 성향을 강화시켰고, 이런 상황에서 과학사를 저술한 드래퍼와 화이트는 종교와 과학의 갈등을 더욱 참예하게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12) 

굴드에 따르면, 이렇게 일부 특수한 상황과 독단적인 종교지도자들 외에는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과학에 대해서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2.4 미국 창조과학 논쟁의 본질

종교와 과학의 갈등 역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사건이 바로 오랫동안 지속된 미국의 창조과학과 진화론의 논쟁이다. 이 논쟁의 과정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기에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 논쟁을 평가한 굴드의 입장은 주목할 만하다.


윌리엄 제임스 브라이언 @위키백과


굴드는 창조과학 논쟁에서 기독교의 입장을 변호했을 뿐만 아니라 그 운동을 처음부터 주도했던 윌리암 제임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 1860~1925)이라는 인물에 주목한다. 그는 변호사였으며 민주당 대선 후보를 세 번이나 추천될 정도로 저명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브라이언은 개신교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하였으며, 평생을 서민들과 민중들을 편에서 정치적 개혁을 주도하였다. 타고난 리더십을 가진 브라이언이 창조과학의 입장을 대변하기 시작하면서 창조과학 진영의 리더가 되었고 진화론과의 싸움에서 조직력과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굴드에 따르면, 브라이언이 없었다면 창조과학의 교과서 운동과 재판과 같은 체계적인 활동도 불가능했을 것이다.13)


굴드는 브라이언의 이런 상반된 행동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즉, 그는 정치인으로서 매우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합리적 정치개혁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는 언제나 시민들의 편에 서서 대변하였으며 평등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헌신했다. 이렇게 합리적 사고를 하던 그가 왜 지성인들과 동료 정치인들에게 조롱을 당하면서까지 창조과학 운동에 열정을 쏟았을까? 굴드는 그 이유를 우생학에서 찾는다. 굴드에 따르면, 미국의 창조과학 논쟁은 단순히 진화론에 대한 근본주의적 기독교의 반란으로 평가할 수 없다. 


19세기 말부터 우생학은 미국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 우생학을 근거로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의 보편화되었으며, 대부분의 주정부들은 우생학을 근거로 인종차별적인 법률들을 입법화하였다. 이런 법률들을 근거로 정부 주도로 각종 인종차별적인 정책들이 행해졌으며 흑인들과 동양인들에 대한 비인간적 대우와 조치들이 확대되고 있었다. 

브라이언은 이런 인종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맞서 싸웠던 정치인이다. 그가 보기에 우생학의 뿌리인 진화론은 약육강식을 조장하는 과학이다. 그에에 따르면, 진화론은 강자가 약자를 밀어내는 부정의를 정당화해 주는 사이비 과학이다.14) 브라이어인이 보기에 다윈주의는 성경에 기반한 도덕적 사회를 파괴시키는 이데올로기이다. 따라서 그는 진화론이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계급적 불평등 사회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창조과학 운동을 사랑과 평등의 실천을 위한 믿음의 행위였다.15)(Rocks of Ages, 155).


2.5 사회생물학과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굴드의 투쟁

굴드는 평생 우생학의 현대적 버전인 사회생물학과 유전자 결정론과 투쟁했다. 1960년대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과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출판되자 무엇보다도 과학계의 비판이 이어졌다. 그 비판의 대부분은 두 저서가 방법론적으로 지나친 환원주의에 입각한 연구였고, 또한 두 저서는 과학적 연구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윌슨과 절친한 사이였고 함께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과 진화론을 연구하는 스티븐 굴드( Steven J. Gould 1941~2002)와 리처드 르윈틴(Richard C. Lewontin, 1929~ 2021)은 사회생물학 연구집단을 만들어 윌슨의 작업을 비판하는 글을 발행했다, 이들은 사회생물학은 과학이 아닌 정치이며 우생학을 탄생새킨 사회다윈주의를 생각나게 한다고 꼬집었다. 이들에 따르면 사회생물학은 "통속 멘델 주의와 통속 다윈주의, 통속 환원주의를 하나로 묶어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16)


 굴드가 보기에 사회생물학과 유전자 결정론은 인간 사회의 평등을 파괴하는 비윤리적 학문이다. 과학 연구가 윤리적 결과를 고려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인간 사회에 큰 피해를 초래할 뿐 아니라 인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윤리적 가치를 무너뜨리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무책임한 과학을 견제할 만한 윤리적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굴드에 따르면, 인간 사회의 가장 강력한 윤리적 뿌리와 동력은 종교이다. 그가 NOMA의 원리를 주장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학은 윤리적 담론에 취약하다. 그런데 사회가 건전하려면 반드시 도덕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도덕적인 질문은 과학적인 질문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갖고 발전해 왔다. 물론 일반 인문학에서도 도덕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종교가 인문학보다 더 강력한 도덕적 담론을 갖고 있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기여하였다. 왜냐하면 인문학은 소수의 지식인을 위한 학문이지만, 종교는 대중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굴드에 따르면, 과학의 시대에 바로 이런 강력한 종교에 기반한 도덕적 담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도덕적 담론이 부족한 과학 연구의 결과가 인간 사회에 큰 피해를 줄 수 있고 더 나아가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NOMA의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17)


2.6. 과학신학 및 유신진화론에 대한 굴드의 비판

굴드는 그의 저서 『Rocks of Ages』를 마무리하면서, 종교와 과학이 중용과 대화를 제안한다. 동시에 이러한 중용과 대화는 혼합주의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굴드에 따르면, 최근 발전하고 있는 과학신학이나 유신신화론은 혼합주의에 해당된다.

굴드는 1998년에 템플턴 재단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버클리대학에 세워진 종교와 과학 센터를 혼합주의로 판단하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이 센터에서 시도하는 연구는 종교가 과학의 영역을 침공했기 때문에 NOMA의 원리에 위배된다. 과학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입증하는데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굴드는 현대 과학신학이 주장하는 세 가지 중요한 논제를 혼합주의라고 비판한다. 

첫 번째로 그리스도론과 양자물리학의 결합이다. 존 폴킹혼을 비롯한 과학신학자들은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존재의 유비로 설명한다. 즉, 빛의 이 이중성, 즉 파동과 양자, 이 두 가지 속성으로 유비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굴드는 빛의 이중성이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유비는 적절하지 않다.

두 번째로 다윈의 진화론이 하나님의 계속창조를 설명하는 것이라는 아서 피콕 주장이다. 아서 피콕은 또한 빅뱅이론과 창세기가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굴드가 보기에 창세기는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 말하는 반면, 빅뱅이론은 현재의 우주 확산을 설명하기 위한 과학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창세기와 빅맹이론은 공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과학은 세상의 기원에 대한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 번째 혼합주의는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이다. 인류원리에 따르면, 우주 초기에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미세조정과 프로그램이 존재했다고 한다. 굴드는 이는 순환논리라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우주의 법칙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인가? 이는 지나친 인간중심적 사고이다. 굴들에 따르면, 우주와 지구의 진화는 어떤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 전적으로 우연적이다.18)


필자가 보기에 과학신학의 주요한 주제들에 대한 굴드의 비판은 과학적 입장에서 보면 타당할 수 있다. 굴드가 생각하는 과학은 추측이나 유비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또 과학이 어떤 전제나 목적론적 논리로 전개될 수는 없다. 그러나 굴드는 신학의 중요한 방법론을 간과했다. 신학은 지금까지 시대의 정신과 사상을 신학화하면서 발전했다. 성경적 진리가 시대마다 선포되기 위해서는 시대적 사상과 문화 그리고 언어로 번역되고 설명되어야 한다. 그래서 철학의 신학화 혹은 문화의 신학화가 신학 발전의 동력이었다. 이는 절대적 진리를 상대적 문화와 사상 속에서 설명하기 위한 신학의 노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어거스틴과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어거스틴은 당시의 시대적인 지배 사상은 플라톤 혹은 신플라톤주의의 방법론과 개념적 언어로 성경과 교리를 설명했다. 또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당시의 과학적 사고를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자연학을 신학화했다. 과학의 시대도 예외가 아니다. 성경과 교리는 과학의 시대에 새롭게 번역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신학에 필요한 과학적 개념들을 수용하고 신학화해야 한다. 이러한 신학적 작업을 굴드가 표현한 것처럼 혼합주의로 매도될 수는 없다. 굴드의 관점에서 보면, 어거스틴도 토마스 아퀴나스도 혼합주의인 것이다. 이는 신학을 과학적 잣대로 이해하려는 것이고 굴드 자신이 주장하는 NOMA의 원리를 스스로 위반하는 것이다.


3. 나오는 말

지금까지 필자는 굴드의 NOMA 원리를 설명하고 비평하였다. 20세기 이후 시대를 대표하는 과학자들은 대부분 종교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그러나 굴드는 예외이다. 굴드는 과학과 종교는 인간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두 기둥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인간 사회에 필요한 도덕적 담론은 종교가 가장 강력하게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굴드의 생각은 그가 평생 동안 비판하고 싸웠던 사회생물학과 관련이 있다. 사회생물학과 유전자 결정론은 인종주의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이데올리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는 세계화를 계기로 확산되었는데, 무한 경쟁을 통한 승자독식을 지지한다. 이는 서구 자본주의가 제3세계의 시장을 독점하는 이데올리기적 근거를 제공하고 전 세계적인 경제적 불평등을 조장하였다. 사회생물학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사상의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사상과 인종주의를 견제할 유일한 방법은 도덕적 담론이다. 평등과 사랑의 가치관이 확산되어야만 자본 및 기업의 횡포와 인종주를 막을 수 있다. 이러한 도덕적 담론의 무력화하기 위해서 사회생물학과 유전자결정론은 종교에 대해서 공격적이다. 그들에게 종교는 과학시대에 사라져야 할 대상이고 과학적 담론으로 종교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굴드는 이러한 사회생물학의 종교비판을 위험한 것이라 평가한다. 이는 도덕적 근거를 무너뜨리고 인간 사회를 분해시킬 수 있는 위험한 시도이다.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강력한 도덕적 동력을 제공하는 종교. 특히 기독교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굴드가 NOMA를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굴드는 NOMA의 원리를 더 발전시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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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 Gould, 『풀하우스』, 이명희 옮김, (서울 ; 사이언스북스, 2023), p.190.

2)  ibid., p. 203.

3) S. Gould, 『Rocks of Ages』, (New York : Ballantine Books, 1999), p. 5.

4)  ibid., p. 9.

5)  ibid., p. 32.

6)  ibid., p. 193

7)  ibid., p. 193

8)  ibid., p. 203

9)  ibid., p. 45.

10) ibid., p. 73. 

11)  ibid., p. 102. 

12) ibid., p. 106.

13)  ibid., p. 152.

14)  ibid., p. 154.

15)  ibid., p. 155.

16)  코너 커닝햄, 『다윈의 경건한 생각 : 다윈은 정말 신을 죽였는가?』, 배성민 옮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2) p. 314

17)  ibid., p. 55.

18)  ibid., p.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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