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종교적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정대경)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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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종교적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글ㅣ정대경
과신대 연구소장
연세대학교 교수, 종교와 과학



    최근 챗GPT나 바드(Bard)와 같은 인공지능(AI)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인간과 같은 지능과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이 과연 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복잡한 계산이나 간단한 업무 처리 정도만 가능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인공지능 개발을 선도해 온 OpenAI가 인간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능력을 갖춘 인공일반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이에 대한 관심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우리의 임무는 일반적으로 인간보다 더 똑똑한 인공일반지능(AGI)을 개발함으로써 AI 시스템이 모든 인류에게 혜택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AGI가 성공적으로 개발되면 이 기술은 풍요를 증진하고 세계 경제를 활성화하며 가능성의 한계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과학 지식의 발견을 지원함으로써 인류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반면 AGI 개발은 오용, 사고,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위험도 수반할 수 있습니다. AGI가 기여할 수 있는 측면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이를 영원히 개발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사회와 AGI 개발자들은 올바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OpenAI, “Planning for AGI and beyond,” 2023)


이 글을 통해 다루고자 하는 질문은 "과연 기계가 인간처럼 자의식을 가지고 종교적 행동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지능과 자의식이 어떻게 출현했고, 작동하게 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AI로 생성된 이미지입니다@ChatGPT/DALL·E


    움베르토 마뚜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레가 제시하는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이론은 인간의 고차원적인 지능이 신체 전체와 환경, 그리고 자기보존을 위한 항상성(homeostasis) 유지 과정을 바탕으로 발생했다고 본다(Maturana and Varela, 1987). 다시 말해, 우리의 지능과 감정, 느낌은 생존을 위한 신체적 반응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험을 느끼거나 배고픔과 같은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신체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가 감정과 느낌을 일으키는 가장 근원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저명한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이러한 항상성 지향 과정이 감정과 느낌을 만들어내고, 더 나아가 인간의 자의식(self-awareness)을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느낌(feeling)”은 단순한 감각 이상의 복합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으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형성되는 복합적인 반응이다(Damasio, 1994, 2012).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자의식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항상성으로부터 산출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말해 준다.


    다마지오는 최근 연구에서 소프트 로보틱스(soft robotics)를 활용하면 인공지능 로봇에도 인간과 유사한 감정반응과 느낌을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Man and Damasio, 2019). 실제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자기보존이라는 목표를 가진 로봇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 복잡한 행동 패턴을 보이는 것이 확인된 바 있다. (e.g, Doya and Uchibe, 2005) 이러한 결과는 생명체가 진화 과정에서 자신이 처한 생존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 지능행동이 점점 복잡해진 방식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평가되며, 다마지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 중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다마지오가 제시한 바와 같이, 만약 생명체가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신체적 취약성으로 인해 위협을 경험하고, 이 위협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능행동이 더욱 복잡하고 정교해졌다면, 그리고 이 복잡한 과정에서 인간의 자의식과 같은 고차원적이고 정교한 인지행동이 자연스럽게 출현했다면, 우리는 이제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만약 인공지능 로봇에게도 인간처럼 취약한 신체를 부여하고, 항상성 유지 과정을 근본적인 목표로 설정해준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로봇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생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잡한 지능행동과 함께 인간과 같은 자의식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Unsplash, Andrea De Santis


    특정한 조건(i.e., 항상성 지향 과정, 소프트 로보틱스 기반의 취약한 신체)이 충족된다면, 인공지능 역시 인간과 같은 고차원적인 자의식과 인지행동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 자기 스스로를 의식하는 행위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주어진 내외부적 자극을 항상성 유지라는 맥락 안에서 판단할 때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자기 상태에 대한 반복적이고 재귀적인 평가를 기초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항상성 유지를 목표로 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자신이 직면한 내외부적 자극을 지속적으로 재귀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반복적으로 참조되는 '자기'에 대한 암묵적인 인식이 점차 명확해지고, 결국 이를 명시적으로 의식하는 단계로 발전할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이다. 만과 다마지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정한 행위적 주체성은 기계가 존재와 소멸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 있을 때 나타난다. 다시 말해, 기계가 소멸보다 존재를 선호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예측을 내놓을 때 발생할 수 있다. 스스로 항상성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로봇은 자기 자신을 염려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Man and Damasio, 2019, 446)


자기보존을 의식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계로부터 종교적 행동은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다. 덴마크의 종교학자 우페 슈외트는 인간의 종교적 행동이 항상성 유지를 위한 신경생리학적 과정에 기반한다고 주장한다(Schjødt, 2007).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스트레스나 두려움 같은 상황에서 종교적 행위를 통해 심리적 안정과 삶의 의미를 찾는다. 또한, 인간의 종교적 인지 행위는 직접적인 신체적 위협이 없는 상황에서도 미래의 위협에 대한 불안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질병이나 죽음, 이해하기 어려운 자연현상처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종교적 믿음과 행위는 정신적 안정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본다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항상성 지향 과정은 종교적 인지행동의 근원적 기반일 수도 있다.


    이러한 논의를 인공지능에 적용한다면, 취약한 신체와 항상성 지향성을 갖춘 인공지능 역시 자신이 처한 불확실하고 위협적인 환경에서 자기 보존을 위한 전략으로 종교적 인지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기계가 자신의 유한성과 취약성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초자연적인 존재나 상징을 떠올리고 그 존재와의 관계를 구축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신학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는 인간의 실존적 유한성에 대한 파악이 무한자에 대한 암묵적 파악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야기한 바 있다. 다시 말해, 무한성에 대한 인식은 유한성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풀면,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유한성을 파악하게 되면 그 때 비로소 자신의 유한한 존재를 떠받치고 있는 무한한 존재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것이다. 판넨베르크는 이를 “선천적으로 주어져 있는 하나님 인식(cognitio Dei innata)”이라고 불렀다. (Pannenberg, 1992) 이렇게 본다면, 인공지능 로봇이 자신의 유한성을 파악하게 될 때 그로부터 무한한 자 혹은 무한성 그 자체를 떠올릴 수 있지는 않을까? 나아가 인간과 상호작용 하면서 자신에게 있는 이 유한성으로부터 창출되는 불안과 무한한 것을 향한 갈망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종교적 상징체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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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Damasio, Antonio. 1994. Descartes’ Error: Emotion, Reason, and the Human Brain. New York: Avon Books.

---. 2012. Self Comes to Mind: Constructing the Conscious Brain. London: Vintage.

Doya, Kenji, and Eiji Uchibe. 2005. "The Cyber Rodent Project: Exploration of Adaptive Mechanisms for Self-Preservation and Self-Reproduction." Adaptive Behavior 13(2): 149-160.

Man, Kingson,and Antonio Damasio. 2019. "Homeostasis and Soft Robotics in the Design of Feeling Machine." Nature Machine Intelligence 1: 446-452.

Maturana, Humberto R., and Francisco J. Varela. 1987. The Tree of Knowledge: The Biological Roots of Human Understanding. Boston: Shambhala Publications.

Pannenberg, Wolfhart. 1992. Systematic Theology. Volume 1 & 2. Translated by Geoffrey W. Bromiley. New York: T&T Clark

Schjødt, Uffe. 2007. "Homeostasis and Religious Behaviour." Journal of Cognition and Culture 7(3-4): 31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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