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3) 오, 판토크라토르여! (김재상)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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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3) 

오, 판토크라토르여!


글ㅣ김재상
이서교회 목사
과신대 정회원, 목회자모임 멤버


  『프린키피아』 ‘일반주해’를 보면,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이 왜 이 책을 썼는지 알 수 있다. 신학적 의도 역시 그중 하나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신론이라는 관점에서 『프린키피아』를 읽으며 뉴턴을 비판했다. 이에 뉴턴은 그런 비판에 맞서며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 위해 일반주해에서 ‘판토크라토르(παντοκράτωρ)’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체팔루 대성당의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 @Andreas Wahra, Wikimedia Commons



1. 우주의 절대 통치자

  판토크라토르는 그리스어로 ‘모든 것을 다스리는 자’라는 뜻이다. 뉴턴에게 이 판토크라토르는 우주를 통치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신이었다. 뉴턴은 일반주해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고의 신은 영원하고 무한하며 절대로 완전한 존재자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완전해도, 지배의 힘이 없는 존재자는 ‘주인 신’이라고 할 수가 없다. … 그리고 진정한 지배로부터, 신은 살아 있고, 예지가 있으며, 그리고 힘을 지닌 존재라는 점이 밝혀진다. 또한 그 밖의 여러 가지 완전성 때문에 신은 지고의 존재이자 가장 완벽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신은 영원하고 무한하며 전지전능하다.”(Newton, 2006)

뉴턴의 독특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진정한 힘과 지배력이 있어야 진정한 신이 된다고 생각했다. 지배력이 없는 신은 “그냥 운명이나 자연일 뿐”(Newon, 2006)이라고 했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유행했던 이신론과 뉴턴이 얼마나 다른 생각을 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17세기말 유럽에서 인기 있던 이신론에서는 신을 시계공 같은 존재로 봤다. 우주라는 거대한 시계를 만들어놓고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고, 자연법칙에 따라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는 신 말이다. 하지만 뉴턴에게 그런 신은 진짜 신이 아니었다. 뉴턴은 우주를 계속 다스리는 신의 의지를 강조하며 이신론과 정면으로 맞섰다. 『프린키피아』 일반주해는 바로 이신론 때문에 잘못 이해되는 신과 자연신학을 바로잡으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2. 우주 설계자의 증거들

  뉴턴은 일반주해에서 신이 세계를 설계하고 창조했다는 증거들을 제시했다. 뉴턴의 눈에 우주는 정교하게 설계된 작품이었다:

“태양, 행성, 혜성의 운동 체계들은 지혜와 힘을 모두 가진 신의 깊은 설계와 다스림 없이는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별들이 비슷한 여러 체계의 중심이라면, 그것들 모두도 비슷한 설계와 한 분의 다스림에 따라 만들어졌을 것이다.”(Newton, 2006)

이 문장에서 뉴턴의 우주관이 명확히 드러난다. 뉴턴의 신은 자신의 뜻에 따라 물질을 만들었고, 물질이 움직이도록 법칙을 설계했으며, 물질과 운동 법칙을 다스린다. 이는 단순한 철학적 추측이 아니라 수학으로 증명한 만유인력 법칙에 바탕을 둔 확신이었다. 뉴턴은 이런 설계 논증을 통해 판토크라토르가 뉴턴 과학의 기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당시 유럽의 많은 자연철학자들이 기계적인 우주관에 빠져 있을 때, 뉴턴은 오히려 우주의 정교함과 질서를 통해 지적인 설계자가 있다고 확신했다. 행성들의 타원 궤도, 달의 복잡한 움직임, 바닷물의 밀물과 썰물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수학 법칙으로 설명되는 놀라운 질서 속에서 뉴턴은 창조주의 손길을 보았다.


@Unsplash, Cosmic Timetraveler


3. 판토크라토르, 성경의 신

  뉴턴은 우주의 통치자 판토크라토르를 성경의 신으로 묘사했다. 단순히 철학적인 신이 나 자연의 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 성경에 나타난 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Snobelen, 2001). 뉴턴은 신에 대한 성경 표현을 일반주해에서 여러 번 인용했다. ‘주 하나님’, ‘나의 하나님’ 같은 표현은 요한계시록과 여러 예언서와 관련된다. ‘신 중의 신’은 신명기 10장 17절, ‘주의 주’는 시편 136편 3절과 디모데전서 6장 15절에서 가져왔다. 또한 잠언 22장 2절, 로마서 10장 12절, 여호수아 3장 11, 13절, 스가랴 6장 5절 등을 통해 ‘만물의 주인이자 창조주’라는 개념을 분명히 했다.

  이런 성경 인용들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뉴턴은 자연 세계와 인간 역사를 모두 다스리는 신을 전제로 하고 자연을 연구했다. 그리고 뉴턴의 판토크라토르는 유일한 신이다. “여러 항성들이 유사한 여러 체계의 중심이라면, 그것들 모두도 유사한 설계와 유일자의 지배에 따라 만들어졌을 것이다.”(Newton, 2006) 무수히 많은 별들의 세계가 있더라도, 그 모든 것을 다스리는 분은 오직 한 분뿐이라는 뜻이다.


4. 판토크라토르와 뉴턴 과학

  일반주해에서 뉴턴은 절대시간, 절대공간, 능동원리, 만유인력의 역제곱 법칙 같은 핵심 개념들을 신의 속성과 연결해서 생각했다.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에 대한 뉴턴의 신학적 사고를 살펴보자:

“신은 언제나 불변하고, 모든 곳에 존재하며, 또한 언제나 그 모두에 존재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이룬다. 공간의 그 어느 미소한 부분도 ‘항상’ 존재하고 시간의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순간도 ‘어디에나’ 존재하므로, 만물의 주인이자 창조자가 ‘반드시’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다.”(Newon, 2006)

  이 문장은 뉴턴 과학의 철학적 바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뉴턴은 하나님이 변하지 않고 어디에나 계시며 영원하다는 속성을 시간과 공간과 연결시켜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당시 대부분의 자연철학자들은 기계론적 관점에서 시간과 공간을 물질들 사이의 관계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뉴턴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과 연결했다. 이는 뉴턴의 과학이 단순한 기계론적 세계관이 아니라 신학적 바탕 위에 세워져 있음을 보여준다.


5. 신학이 뉴턴 과학에 미친 영향

  그렇다면 『프린키피아』 일반주해에서 나타나는 뉴턴의 신학과 과학은 어떤 관계일까? 유명한 과학사학자 리처드 웨스트폴(Richard S. Westfall)에 따르면, 뉴턴의 과학은 그의 신학과 하나님 이해에 영향을 주었다(Westfall, 1996). 그런데 그 반대는 생각할 필요가 없을까? 

  일반주해는 언급된 뉴턴 과학의 핵심 요소인 절대시간, 절대공간, 만유인력 등에 대한 신학의 영향을 주목하게 한다. 뉴턴은 자신의 과학은 신학과 분리될 수 없는 통합적 세계관의 결과였다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과의 교류, 데카르트의 기계론에 대한 비판, 연금술 관련 연구 등을 통해 신에 대한 뉴턴의 이해가 어떻게 발전했으며 그의 과학적 사고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판토크라토르에 대한 뉴턴의 신학적 사유는 과학 탐구를 위한 철학적 자원이 되었다.



참고문헌

Newton, Isaac. 2006. “프린키피아(Principia).” 『과학고전선집』. 홍성욱 엮음. 서울대출판부.

Snobelen, Stephen D. 2001. “God of Gods, and Lord of Lords: The Theology of Isaac Newton's General Scholium to the Principia.”  John Hedley Brooke et al.(ed). Osiris, Vol.16: Science in Theistic Contexts: Cognitive Dimensions. 169-208.

Westfall, Richard S. 1996. “Newton and Christianity.” in: J. M. van der Meer(ed.). Facets of Faith and Science. Vol.3: The Role of Beliefs in the Natural Science. Ancaster, Canada: Pascal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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