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4)
뉴턴의 공간과 신학
글ㅣ김재상
이서교회 목사
과신대 정회원, 목회자모임 멤버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니던 1660년대, 이 대학에는 지적 활력을 불어넣는 여러 모임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Cambridge Platonists)라고 불리는 모임으로, 헨리 모어(Henry More, 1614-1687), 랠프 커드워스(Ralph Cudworth, 1617-1688), 아이작 배로우(Isaac Barrow, 1630-1677) 등이 활동했다. 뉴턴은 이들로부터 신학과 철학에 대한 자극을 받았으며, 이들과의 교류 속에서 자기 생각을 발전시켜나갔다.
1640-50년대에 형성된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저작들과 플로티노스(Plotinos, 204-270) 같은 신플라톤주의자의 저서들을 열심히 읽었다. 이들은 플라톤의 원칙에 따라 모든 기독교 교리가 이성적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성적 기독교’를 세우고자 했다. 당시는 종교전쟁의 상처가 깊던 시기였고, 이들은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통해 종교적 극단주의를 극복하려 했다.
1. 랠프 커드워스의 영향
뉴턴은 랠프 커드워스의 글을 요약한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열심히 읽었다. 커드워스는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조직신학자였다. 그는 당시 무신론 색깔이 짙다고 여겨지던 원자론에 실은 유신론적 측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방대한 원자론의 역사를 기술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커드워스가 고대 원자론 형성에 기여한 모쿠스(Moschus 혹은 Mochus)라는 인물이 구약성서의 모세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고대 이집트 지식의 우선성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커드워스의 영향으로 뉴턴은 고대 이집트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초대 교회의 원형을 탐구하게 되었다. 또한 성서의 연대기를 연구하는 작업에도 계속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랠프 커드워스(Ralph Cudworth, 1617~1688) @wikipedia
2. 헨리 모어와 절대공간
뉴턴은 커드워스뿐 아니라 헨리 모어로부터도 깊은 신학적 영향을 받았다. 1687년 모어가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은 우정을 나누었다. 모어는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 중에서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뉴턴은 모어가 쓴 신 존재 증명에 관한 글을 읽고 우주의 질서를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로 여기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뉴턴은 질서의 존재에 대한 설계 논증을 구상했고, 『프린키피아』와 일반주해에 그 내용을 담았다.
특히 뉴턴은 모어를 통해 '절대공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이 절대공간 개념은 뉴턴 과학의 핵심 토대가 되었다. 모어는 신이 어디에나 계신다는 '편재성'을 신의 '연장'(extension, 공간을 차지함)과 연결하며 신학적 사고를 철학적 사고로 전환했다. 그는 무한하게 펼쳐진 공간을 특정한 실체라고 여겼고, 이 실체는 물질이 아닌 영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어에 따르면, 신은 자신의 대리인인 '자연의 정기'(spirit of nature)를 통해 자신을 연장해 공간을 채울 수 있다. 따라서 모어는 신과 공간을 거의 동일하게 보았다. 더 나아가 그는 공간이 가진 속성들 - 단일성, 단순성, 영원성, 비물질성, 침투성, 포괄성 등 - 이 신의 속성과 매우 유사하다고 보았다. 모어에게 절대공간은 신의 속성이 부여된 공간이었으며, 어떤 의미에서 신이 곧 절대공간이었다.

헨리 모어(Henry More, 1614~1687) @wikipedia
3. 뉴턴의 절대공간 개념
뉴턴은 헨리 모어와의 교류를 통해 절대공간을 자신의 우주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로 삼았고, 『프린키피아』 일반 주해에서 이를 설명했다. 그는 신의 영원성, 무한성, 전지전능성, 편재성 등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펼치면서 절대공간을 정당화했다.
뉴턴에게 신이 없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뉴턴이 쓴 『중력에 대하여』(De Gravitatione)라는 책을 보면, 신이 어디에나 계시는 편재 속에서 신의 영원성과 불변성이 흘러나와 공간 역시 영원하고 불변한다고 설명했다. 즉, 신의 편재성이 절대공간의 근본이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뉴턴은 모어처럼 신의 편재성에 대한 신학적 사고에서 시작해 절대공간에 대한 철학적·과학적 사고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절대공간을 자신의 과학 이론의 주제이자 형이상학적 전제로 삼아 일반 주해에 기술했다. 이처럼 뉴턴의 절대공간 개념에는 신학의 깊은 영향이 있었다.

@AI 생성 이미지
4. 신과 공간의 관계
그런데 뉴턴은 모어처럼 신과 절대공간을 완전히 동일하게 여겼을까? 일반 주해에서는 신과 절대공간의 동일성 또는 차이점에 대해 명확한 설명이 없다. 하지만 미출간된 원고들을 보면 뉴턴에게 공간과 신은 달랐다. “공간은 장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어떤 존재이다. 그런데 장소는 제한된 어떤 존재를 포함하는데, 신은 자신의 무한한 능력으로 공간을 그 존재로 바꾸어버린다.” 뉴턴은 모어와 달리 신과 공간을 구분했다. 신이 공간의 창조주이지만, 공간 그 자체가 신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은 어디에서 형성되었을까? 바로 '헤르메스 전통'(Hermetic tradition)이다. 뉴턴은 연금술 연구를 진행하면서 여러 사상을 접했는데, 헤르메스 전통, 생기론, 스토아철학 등으로부터 다양한 영향을 받았다. 헤르메스 전통은 고대 이집트의 지혜를 담았다고 전해지는 헤르메스 문서들에 기반한 사상 체계였다.
5. 헤르메스 전통과 뉴턴의 공간 개념
헤르메스 전통과 뉴턴은 신의 창조와 편재에 대해 매우 비슷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헤르메스 전통에 따르면, 공간을 창조하지 않거나 어디에나 계시지 않으면 신이 아니다. 신은 자신의 능력이 드러나는 모든 장소를 통해 공간을 다스린다. 신은 자신이 계신 모든 곳의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 그래서 신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헤르메스 전통의 신은 공간에 편재하며, 공간을 다스리며, 모든 것을 아신다. 그리고 물질을 창조할 때 자신이 만든 형태를 통해 자신만의 속성을 표현했기 때문에, 공간의 속성은 신 자신의 속성과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헤르메스 전통에서도 신은 공간의 창조주이지, 공간 그 자체는 아니다.
공간을 만든 신과 절대공간의 구분은 물질의 특성인 '연장'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당시 데카르트를 비롯한 기계론자들은 연장이 물질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주장했다. 뉴턴은 이런 생각을 신과 결부시켰다. 신 자신 안에 연장을 지니고 있어 공간을 창조하지만, 신과 연장은 서로 구별된 채 존재하는 두 개의 개체라고 본 것이다. 뉴턴은 이렇게 발전시킨 절대공간을 뉴턴 운동 법칙의 선행 조건으로 삼아 절대 운동에 대한 논의를 전개했다. 절대공간이 있기 때문에 절대 운동을 정의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관성의 법칙 같은 운동 법칙들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6. 뉴턴의 공간 : 신학에서 과학으로의 전환
뉴턴 과학 체계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인 절대공간에 대한 뉴턴의 생각은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 헨리 모어와 연금술의 헤르메스 전통이라는 신학적 요소를 밑천 삼아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과 절대공간에 대한 철학적, 과학적 사고로 발전했다.
우주의 통치자인 뉴턴의 신이 가진 편재성, 영원성, 불변성 등 여러 속성에 대한 신학적 사유는 점차 절대공간에 대한 철학적, 과학적 사유로 전환되었다. 이것이 바로 뉴턴 과학의 독특한 특징이다. 뉴턴에게 과학은 단순히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창조와 다스림을 이해하는 거룩한 작업이었다. 이처럼 뉴턴의 절대공간 개념은 신학에서 출발해 철학을 거쳐 과학으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Ashworth, William B. Jr. 2001. “Christianity and the Mechanistic Universe.” in: David C. Lindberg and Ronald L. Numbers(eds.). When Science and Christianity Meet. Chicago: Chicago UP.
Brooke, John Hedley. 1991. Science and Religion: Some Historical Perspective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Hughes, M. 1992. “Newton, Hermes and Berkeley.” The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43(1992/1). 1-19
Newton, Isaac. 2006. “프린키피아(Principia).” 『과학고전선집』. 홍성욱 엮음. 서울대출판부.
Newton, Isaac. 1978. A The Unpublished Scientific Papers of Isaac Newton. R. Hall and M. B. Hall(eds.). Cambridge Univ. Press.
Rodney, Joel M. 1970. “A Godly Atomist in Seventeenth Century England: Ralph Cudworth,” The Historian 32(1970/2). 243-249
Rogers, G. A. John. 1979. “Locke, Newton, and the Cambridge Platonists on Innate Ideas.”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 40(1979/2). 112-205
Sailor, Danton B. 1988. “Newton's Debt to Cudworth.”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 49(1988/3). 511-518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4)
뉴턴의 공간과 신학
글ㅣ김재상
이서교회 목사
과신대 정회원, 목회자모임 멤버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니던 1660년대, 이 대학에는 지적 활력을 불어넣는 여러 모임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Cambridge Platonists)라고 불리는 모임으로, 헨리 모어(Henry More, 1614-1687), 랠프 커드워스(Ralph Cudworth, 1617-1688), 아이작 배로우(Isaac Barrow, 1630-1677) 등이 활동했다. 뉴턴은 이들로부터 신학과 철학에 대한 자극을 받았으며, 이들과의 교류 속에서 자기 생각을 발전시켜나갔다.
1640-50년대에 형성된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저작들과 플로티노스(Plotinos, 204-270) 같은 신플라톤주의자의 저서들을 열심히 읽었다. 이들은 플라톤의 원칙에 따라 모든 기독교 교리가 이성적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성적 기독교’를 세우고자 했다. 당시는 종교전쟁의 상처가 깊던 시기였고, 이들은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통해 종교적 극단주의를 극복하려 했다.
1. 랠프 커드워스의 영향
뉴턴은 랠프 커드워스의 글을 요약한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열심히 읽었다. 커드워스는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조직신학자였다. 그는 당시 무신론 색깔이 짙다고 여겨지던 원자론에 실은 유신론적 측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방대한 원자론의 역사를 기술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커드워스가 고대 원자론 형성에 기여한 모쿠스(Moschus 혹은 Mochus)라는 인물이 구약성서의 모세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고대 이집트 지식의 우선성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커드워스의 영향으로 뉴턴은 고대 이집트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초대 교회의 원형을 탐구하게 되었다. 또한 성서의 연대기를 연구하는 작업에도 계속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랠프 커드워스(Ralph Cudworth, 1617~1688) @wikipedia
2. 헨리 모어와 절대공간
뉴턴은 커드워스뿐 아니라 헨리 모어로부터도 깊은 신학적 영향을 받았다. 1687년 모어가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은 우정을 나누었다. 모어는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 중에서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뉴턴은 모어가 쓴 신 존재 증명에 관한 글을 읽고 우주의 질서를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로 여기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뉴턴은 질서의 존재에 대한 설계 논증을 구상했고, 『프린키피아』와 일반주해에 그 내용을 담았다.
특히 뉴턴은 모어를 통해 '절대공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이 절대공간 개념은 뉴턴 과학의 핵심 토대가 되었다. 모어는 신이 어디에나 계신다는 '편재성'을 신의 '연장'(extension, 공간을 차지함)과 연결하며 신학적 사고를 철학적 사고로 전환했다. 그는 무한하게 펼쳐진 공간을 특정한 실체라고 여겼고, 이 실체는 물질이 아닌 영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어에 따르면, 신은 자신의 대리인인 '자연의 정기'(spirit of nature)를 통해 자신을 연장해 공간을 채울 수 있다. 따라서 모어는 신과 공간을 거의 동일하게 보았다. 더 나아가 그는 공간이 가진 속성들 - 단일성, 단순성, 영원성, 비물질성, 침투성, 포괄성 등 - 이 신의 속성과 매우 유사하다고 보았다. 모어에게 절대공간은 신의 속성이 부여된 공간이었으며, 어떤 의미에서 신이 곧 절대공간이었다.
헨리 모어(Henry More, 1614~1687) @wikipedia
3. 뉴턴의 절대공간 개념
뉴턴은 헨리 모어와의 교류를 통해 절대공간을 자신의 우주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로 삼았고, 『프린키피아』 일반 주해에서 이를 설명했다. 그는 신의 영원성, 무한성, 전지전능성, 편재성 등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펼치면서 절대공간을 정당화했다.
뉴턴에게 신이 없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뉴턴이 쓴 『중력에 대하여』(De Gravitatione)라는 책을 보면, 신이 어디에나 계시는 편재 속에서 신의 영원성과 불변성이 흘러나와 공간 역시 영원하고 불변한다고 설명했다. 즉, 신의 편재성이 절대공간의 근본이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뉴턴은 모어처럼 신의 편재성에 대한 신학적 사고에서 시작해 절대공간에 대한 철학적·과학적 사고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절대공간을 자신의 과학 이론의 주제이자 형이상학적 전제로 삼아 일반 주해에 기술했다. 이처럼 뉴턴의 절대공간 개념에는 신학의 깊은 영향이 있었다.
@AI 생성 이미지
4. 신과 공간의 관계
그런데 뉴턴은 모어처럼 신과 절대공간을 완전히 동일하게 여겼을까? 일반 주해에서는 신과 절대공간의 동일성 또는 차이점에 대해 명확한 설명이 없다. 하지만 미출간된 원고들을 보면 뉴턴에게 공간과 신은 달랐다. “공간은 장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어떤 존재이다. 그런데 장소는 제한된 어떤 존재를 포함하는데, 신은 자신의 무한한 능력으로 공간을 그 존재로 바꾸어버린다.” 뉴턴은 모어와 달리 신과 공간을 구분했다. 신이 공간의 창조주이지만, 공간 그 자체가 신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은 어디에서 형성되었을까? 바로 '헤르메스 전통'(Hermetic tradition)이다. 뉴턴은 연금술 연구를 진행하면서 여러 사상을 접했는데, 헤르메스 전통, 생기론, 스토아철학 등으로부터 다양한 영향을 받았다. 헤르메스 전통은 고대 이집트의 지혜를 담았다고 전해지는 헤르메스 문서들에 기반한 사상 체계였다.
5. 헤르메스 전통과 뉴턴의 공간 개념
헤르메스 전통과 뉴턴은 신의 창조와 편재에 대해 매우 비슷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헤르메스 전통에 따르면, 공간을 창조하지 않거나 어디에나 계시지 않으면 신이 아니다. 신은 자신의 능력이 드러나는 모든 장소를 통해 공간을 다스린다. 신은 자신이 계신 모든 곳의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 그래서 신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헤르메스 전통의 신은 공간에 편재하며, 공간을 다스리며, 모든 것을 아신다. 그리고 물질을 창조할 때 자신이 만든 형태를 통해 자신만의 속성을 표현했기 때문에, 공간의 속성은 신 자신의 속성과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헤르메스 전통에서도 신은 공간의 창조주이지, 공간 그 자체는 아니다.
공간을 만든 신과 절대공간의 구분은 물질의 특성인 '연장'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당시 데카르트를 비롯한 기계론자들은 연장이 물질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주장했다. 뉴턴은 이런 생각을 신과 결부시켰다. 신 자신 안에 연장을 지니고 있어 공간을 창조하지만, 신과 연장은 서로 구별된 채 존재하는 두 개의 개체라고 본 것이다. 뉴턴은 이렇게 발전시킨 절대공간을 뉴턴 운동 법칙의 선행 조건으로 삼아 절대 운동에 대한 논의를 전개했다. 절대공간이 있기 때문에 절대 운동을 정의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관성의 법칙 같은 운동 법칙들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6. 뉴턴의 공간 : 신학에서 과학으로의 전환
뉴턴 과학 체계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인 절대공간에 대한 뉴턴의 생각은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 헨리 모어와 연금술의 헤르메스 전통이라는 신학적 요소를 밑천 삼아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과 절대공간에 대한 철학적, 과학적 사고로 발전했다.
우주의 통치자인 뉴턴의 신이 가진 편재성, 영원성, 불변성 등 여러 속성에 대한 신학적 사유는 점차 절대공간에 대한 철학적, 과학적 사유로 전환되었다. 이것이 바로 뉴턴 과학의 독특한 특징이다. 뉴턴에게 과학은 단순히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창조와 다스림을 이해하는 거룩한 작업이었다. 이처럼 뉴턴의 절대공간 개념은 신학에서 출발해 철학을 거쳐 과학으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Ashworth, William B. Jr. 2001. “Christianity and the Mechanistic Universe.” in: David C. Lindberg and Ronald L. Numbers(eds.). When Science and Christianity Meet. Chicago: Chicago UP.
Brooke, John Hedley. 1991. Science and Religion: Some Historical Perspective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Hughes, M. 1992. “Newton, Hermes and Berkeley.” The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43(1992/1). 1-19
Newton, Isaac. 2006. “프린키피아(Principia).” 『과학고전선집』. 홍성욱 엮음. 서울대출판부.
Newton, Isaac. 1978. A The Unpublished Scientific Papers of Isaac Newton. R. Hall and M. B. Hall(eds.). Cambridge Univ. Press.
Rodney, Joel M. 1970. “A Godly Atomist in Seventeenth Century England: Ralph Cudworth,” The Historian 32(1970/2). 243-249
Rogers, G. A. John. 1979. “Locke, Newton, and the Cambridge Platonists on Innate Ideas.”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 40(1979/2). 112-205
Sailor, Danton B. 1988. “Newton's Debt to Cudworth.”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 49(1988/3). 51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