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 인간존엄성의 신학적 근거 (김경래)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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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인간 존엄성의 신학적 근거

 

글ㅣ김경래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최근 Chat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우리 사회에 거대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AI는 이제 단순히 데이터를 계산하고 패턴을 인식하는 도구를 넘어, 한때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여겨졌던 창의적 글쓰기, 예술 창작, 전문적 분석과 같은 고차원적 지적 활동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최신 AI 모델들이 인간의 평균 IQ 점수를 훌쩍 넘어서고, 변호사 시험이나 의사 면허 시험에 상위권으로 합격하는 현실은 더 이상 놀라운 뉴스가 아닙니다.

이러한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만약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특별한 지위를 누렸던 근거가 ‘이성’과 ‘지능’이었다면, 우리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며 방대한 지능을 가진 존재가 등장했을 때, 인간의 위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2024년 공개된 넷플릭스의 영화 <아틀라스>에서처럼, AI가 비효율적이고 갈등을 일으키는 인간을 우주의 ‘암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제거하려 드는 미래는 단순한 공상 과학의 상상일 뿐일까요? 이 질문은 우리에게 실존적 위기감을 안겨줍니다. 만약 우리가 인간 존엄성의 근거를 전통적으로 그래왔듯 ‘인간의 고유한 능력’에서 찾는다면, 우리의 존엄성은 지금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인간 존엄성의 근거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다시 질문해야 할 시대적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영화 '아틀라스'의 한 장면. 사진제공=넷플릭스


무너지는 전통적 근거: '하나님의 형상'의 위기

서구 문명과 기독교 윤리의 근간을 이루어 온 인간 존엄성의 신학적 토대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이는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신성한 가치를 지닌다는 선언입니다. 이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시도 되었지만, 크게 ‘실체론적 해석’, ‘관계론적 해석’, 그리고 ‘기능론적 해석’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형상’ 개념을 통해 인간의 특별한 점을 찾는 것은 어떤 해석을 취한다 할지라도 AI 시대에 심각한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첫째, ‘실체론적 해석’의 한계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 내면에 있는 ‘영혼’, 혹은 영혼의 특성인 ‘이성’, ‘기억’, ‘의지’와 같은 고유한 실체적 능력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 능력은 더 이상 인간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가 수십 년간 난제였던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해결하고, ‘알파고’가 인간 바둑 챔피언의 창의성을 뛰어넘는 전략을 구사하는 현실은, 이성이나 지능을 인간 존엄성의 배타적 근거로 삼기 어렵게 만듭니다. 만약 이성이 존엄성의 척도라면, 고도의 지능을 갖춘 AI가 인간보다 더 존엄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위험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둘째, ‘관계론적 해석’의 한계입니다. 칼 바르트와 같은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나와 너’의 관계성에서 찾았습니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존재이기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역 역시 AI에 의해 침범당하고 있습니다. ‘레플리카’와 같은 AI 반려 챗봇은 사용자와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며, ‘파로’ 같은 돌봄 로봇은 노인이나 환자에게 말벗이 되어주며 정서적 교감을 시도합니다. AI가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고 ‘공감’을 시뮬레이션하는 단계에 이르면서, ‘관계성’조차 인간의 고유성으로 주장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셋째, ‘기능론적 해석’의 한계입니다. 게르하르트 폰 라트 등은 하나님의 형상을 ‘다스리는 기능’에서 찾았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를 신의 아들, 화신, 형상 등으로 칭하며 신의 대리인으로서 다스린다고 주장한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창조 세계를 관리하고 다스리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부여 받았다는 해석입니다. 하지만 이 해석은 AI의 도전 앞에 가장 취약합니다. 이미 AI는 인간의 직관과 경험을 뛰어넘어 복잡한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글로벌 물류망, 거대한 에너지 그리드, 금융 시장의 리스크 관리, 재난 상황에서의 자원 배분 등에서 AI는 인간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정확한 ‘관리자’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뒷받침해 온 전통적인 세 기둥—실체, 관계, 기능—은 모두 AI의 도전에 의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세 가지 해석 모두 태아, 중증 장애인, 혹은 혼수상태의 환자처럼 특정 능력이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들의 존엄성을 온전히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성능’이나 ‘유용성’에 좌우되지 않는, 더 근본적이고 견고한 존엄성의 토대를 필요로 합니다.

 

새로운 대안적 근거: 연약한 인간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인 ‘성육신’(Incarnation)이 우리에게 새로운 통찰과 견고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성육신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즉 우주를 창조한 말씀(Logos)이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와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교리입니다. 이 사건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두 가지 혁명적인 함의를 가집니다.

첫째, 인간의 존엄성은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합니다.

성육신 사건에서 먼저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전능한 초월적 지능이나 천사, 혹은 다른 어떤 피조물의 모습이 아닌, 바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구원 계획의 대상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인간의 가치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우리의 지능, 기능, 생산성)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누구인지’(하나님께서 사랑하고 당신과 연합하기로 선택한 바로 그 존재)에 근거합니다. 이것은 AI와 비교 불가능한 ‘존재론적’ 가치입니다.

이러한 존엄성은 ‘AI 시대’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AI가 아무리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다 할지라도, AI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부가 되시기로 선택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 자신의 창조물과의 경쟁에서 획득하는 점수가 아니라, 창조주로부터 부여 받아 생득적인 절대적인 선물입니다.

둘째, 성육신은 ‘연약함’과 ‘취약성’을 긍정합니다.

또 우리가 성육신 사건에서 바라봐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강하고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오셨다는 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절대적인 무력을 가진 지배자가 아닌,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이 가진 어떠한 능력이 빛을 발할 때가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가장 ‘무력하게’ 죽어갈 때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는 능력, 지성, 효율성을 중시하는 세상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는 사건입니다. 성육신은 인간의 존엄성이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연약함 속에서’ 온전히 존재함을 선언합니다.

이것은 전통적인 하나님의 형상 해석들이 가졌던 치명적인 약점—연약한 자들을 배제할 위험성—을 보완합니다. 성육신 교리에 따르면, 태아나, 중증 장애를 가진 이나, 노인이나,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존엄한 인간임을 가장 분명하게 증거하는 존재들입니다.

 

사진: Unsplash의 Karl Magnuson       


결론: 인간 존엄성의 새로운 좌표

물론, 이러한 성육신에 기반한 인간 존엄성이 오만한 ‘인간 중심주의’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은, 영혼 뿐 아니라 물질세계 전체가 선하다는 긍정이며, 오히려 인간에게 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돌보아야 할 ‘청지기’로서의 책임을 부여합니다. 성육신은 타자를 위한 ‘자기 비움’(Kenosis)의 사랑을 모델로 제시하기에, 진정한 인간 존엄성은 군림이 아닌 자기 비움의 섬김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인공지능 시대는 우리에게 인간의 ‘우월성’이라는 교만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더 똑똑한 존재’라는 정체성에 집착한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우리 스스로 만든 존재 앞에서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인간 존엄성의 근거는 우리의 능력이나 기능이 아닌,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가장 뛰어난 존재’가 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여 친히 그 일원이 되신 존재’가 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그 어떤 AI도 결코 획득할 수 없고, 그 어떤 인간도 결코 상실할 수 없는 존엄성의 유일하고도 영원한 근거입니다. 이 견고한 토대 위에서 우리는 다가오는 AI 시대를 그릇된 우월감이나 두려움이 아닌, 겸손함과 책임감 있는 희망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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