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스테리아] 11. 무신론과 창조과학 (전경훈)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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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과 창조과학

- 마지스테리아 16, 17장 -


글ㅣ전경훈
《마지스테리아》 역자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합리주의를 따라 근대 학문 체계가 재편되면서 종교 자체를 학문의 대상으로 삼는 학자들이 등장했다. 이미 18세기 이후 회의론자들은 종교가 자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추론했고, 19세기에 들어서는 이러한 추론에 과학이란 외투가 걸쳐졌다. 이른바 ‘종교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등장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제 확실히 사회의 권위는 종교에 있지 않고, 과학이 종교를 객체화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종교 과학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찰스 다윈이다. 그는 『인간의 유래』에서 종교라는 개념을 ‘보이지 않거나 영적인 행위자들에 대한 믿음’이라 정의하고 이것이 문명화되지 않은 원시인들에게도 존재하고 고등 종교도 그로부터 ‘진화’한 것이라는 이론을 시사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세기에 본격적으로 ‘종교 과학’에 몰두한 대표적인 인물은 E.B.타일러다.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유럽 이외 지역의 여러 민족을 연구했던 그는 옥스퍼드대학 최초의 인류학 교수가 된 인물이다. 그가 시도한 것은 ‘종교의 자연사’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그는 유럽 이외의 ‘원시 문화들’을 관찰했고, 역사가 세 단계로 거쳐 발전한다고 보았는데, 가장 원시적인 단계에서 꿈을 영적 존재로 혼동하여 애니미즘이 발생하고 이로부터 신 개념이 나오며 이것이 문명 단계에서도 잔존하여 종교가 생겨난다고 보았다. 이러한 타일러의 생각을 더 광범위하게 발전시킨 사람이 프레이저다. 1890년에 처음 출간되어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증보된 『황금가지』는 초판의 부제처럼 ‘종교 비교연구’를 통해 세계 여러 종교의 공통 요소를 찾아냄으로써 종교를 규명하고자 했다. 여러 시대와 지역에 걸쳐 수많은 신화와 전설을 수집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프레이저는 ‘살해된 신의 개념’으로부터 그리스도교의 기본 개념들이 원시 부족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인류가 자연을 직접 통제하려는 시도가 마술로부터 과학에 이르는 몇 단계의 과정을 통해 발전해 왔다고 생각하고, 결국 종교란 마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wikipedia


이러한 맥락에서 결국 종교란 원시 문화, 곧 인류의 유아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켜 종교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프로이트다. 그런데 인류학자가 아닌, 신경과 전문의이며 정신분석학자인 그에게 종교란 단지 남아 있는 유아기가 아니라 유아기의 컴플렉스와 트라우마에서 비롯한 신경증이거나 신경증을 쫓기 위한 (미숙한) 기제다. 『토템과 터부』는 그 부제가 ‘야만인들과 신경증 환자들의 정신생활 공통점’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야만인들의 집단적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결국 부친 살해의 모티프로 작용하고, 이를 의례적으로 기념하고 해소하는 것이 토템 축제이며, 도덕과 종교의 시작이라 주장한다. 프로이트는 생물학에서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라는 에른스트 헤켈의 법칙을 빌려와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한다. 즉 개별적 인간의 오이디푸스적 본능은 아버지를 죽이고 먹는 원시적이고 보편적인 행위의 반복이며, 종교는 이 원초적 죄를 속죄하려는 개인과 공동체의 시도라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이전에 단지 종교가 자연의 위협을 통제하려는 욕구에서 비롯했음을 인정하면서도 내면적이거나 사회적인 위협에 대한 대응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렇게 역사학과 생물학과 정신분석학의 관념들을 종교에 대한 과학적 서술로 통일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프로이트만의 독창적 사고였고, 이후로 줄곧 학문과 사회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타일러와 프레이저와 프로이트의 이론들은 실증적이지 못하다는 점에서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타일러는 직접 원시 문화를 관찰하기는 했지만 그가 본 사례들은 부분적일 뿐 아니라 대표적이지도 않다. 프레이저는 원시 문화를 직접 관찰한 적도 없고, 수많은 원시 문화의 사례들을 수집하여 방대한 저술을 남겼으나 그 사례들이 얼마나 정확하며 대표성을 갖는지도 검증하지 못했다. 프로이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그가 말하는 친부살해라든가 그에서 유래하는 토테미즘 의례는 실제 사례로 관찰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게 이후 인류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무엇보다도 이 학자들이 종교의 기원과 발전을 전개하는 과정은 추정에 불과할 뿐 아니라, 애초에 실증이 불가능하다. 그들은 무척이나 과학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제시하는 듯했지만, 이론이 증거를 너무나 앞서 나가고 말았다.

EE 에반스-프리처드 @wikipedia


20세기 들어 앞선 종교 연구와 이론에 대한 반성적 차원에서 중요하게 등장한 인물이 에번스프리처드다. 아마존 지역의 두 부족을 오랜 시간 관찰하고 저술한 『아잔데족의 마술과 신탁』은 원시적인 사람들의 종교적 믿음을 단순히 유아적이고 망상적이라 이해하던 입장에서 멀어져, 그들의 마술을 유럽의 과학과 같은 수준에 올려놓는 일종의 상대주의를 정당화한다. 그가 관찰한 아잔데족의 믿음은 그 나름의 체계 안에서 감각적 경험에 모순되지 않으면서 나름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인류학과 과장을 오래 맡기도 한 에번스프리처드는 스스로 가톨릭으로 개종함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는 종교를 연구하는 기존 인류학자들의 반反종교적 가정들을 날카롭게 비판했고, 합리주의나 인본주의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동료 학자들로부터 되려 비판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탈식민지 시대가 도래하면서 서구 중심의 ‘진보’의 개념들은 타격을 받았고, 종교에 대해 우월적 태도를 지녔던 초기 인류학자의 우월성은 유지되지 못했다.                          

     

아잔데족의 마법, 신탁, 그리고 마법 (1937) @wikipedia


한편, 20세기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 이데올로기와 과학과 종교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 에번스프리처드 같은 훌륭한 인류학자가 등장하였음에도 종교에 대한 전체적인 기조는 프로이트와 같은 생각에서 종교를 원시적/유아적 망상으로 치부하고 이성에 근거한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자연히 없어지리라는 것이었다. 소비에트 공산주의는 이러한 견해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종교를 일소하고자 노력했다. 그들이 과학적 사관이라 말하는 유물론적 역사관에 따르면 신의 섭리 같은 전통적 요소는 실존의 물질적 조건, 특히 재화의 생산과 교환과 소비에 의해 타당하지 못한 것이 된다. 오히려 인류는 이러한 관계들의 역학을 이해함으로써 역사의 경로를 분별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 세상의 방향을 스스로 다시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종교는 자연히 없어질 뿐 아니라, 없애야 할 것이 되었으며, 이제 신의 섭리가 아닌 과학이 미래를 통치해야 했다. 이를 위해 소련 정부에서는 우선 가시적 종교 제도를 와해하기 위해 교회를 파괴하고 수도원의 재산을 국유화했으며 성직자의 지위를 박탈했다. 

그리고 민중의 신앙을 없애기 위해, 기사, 포스터, 시위, 강의, 토론, 연극, 영화 등을 모두 동원하여 체계적인 반反종교 선전을 벌였다. 그리고 종교가 없어진 자리는 과학적 세계관에 기초했다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차지했다. 이 이데올로기는 그 탁월성을 실현하고 선전할 방법으로 기술 개발과 산업 발전을 적극 추진했다. 특히 1950년대 시작된 우주항공산업의 발전은 소련의 체제 선전에 적극 활용되었으며, ‘하늘을 침공’하는 사건으로서 신과 천국에 대한 적극적 공세로 널리 홍보되었다. 유인 우주 비행에 성공하면서 우주인은 슈퍼스타로 떠올랐고, 최초의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의 말대로 그들은 우주 어디에도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언하는 과학적 무신론의 첨병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성스러운 공간은 절대 텅 빈 채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대로, 신과 종교가 사라진 그 자리를 이데올로기와 과학이 채워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혁명 사상이 신앙의 지위를 차지하고, 그에 대한 교육과 예식이 이루어졌으며, 선전 포스터와 지도자들의 동상이 성화와 성상을 대신했다. 한편으로 인류는 마침내 지구를 넘어서 하늘을 정복하면서 신의 지위에 올라섰고 과학은 인류 구원을 약속했다.

 

사진: Unsplash의 Elena Mozhvilo  

소련의 경우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소련과 체제 경쟁에 돌입한 미국의 경우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더 부유했고 과학 기술 면에서도 훨씬 앞서 있었지만, 소련의 무신론적 유토피아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우월한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정신적 힘이란, 곧 하느님도 믿지 않는 저 사악한 공산주의자들을 물리칠 신앙이었다. 1950년대에 본격적인 냉전 체제에 들어가면서 미국에서는 오히려 전국적인 신앙 운동이 일어나면서 종교가 부흥했다. 체제 경쟁의 최전선이 된 우주 탐사에서도 미국인들은 공식적이지는 않았지만 결코 완전히 비밀스럽지도 않게 신앙을 드러냈다. 소련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우주인들은 전국적인 슈퍼스타가 되었고 이들은 우주 탐사를 통해 오히려 더욱 강해진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에게는 우주 탐사가 신의 부재를 증명하기는커녕 오히려 신의 신비를 직접 느끼는 경험이었다. 미국 국민에게 우주인들은 마치 ‘저세상에 다녀온 사람’으로 다가갔다. 

물론 무한한 우주에 무한한 은하와 별과 행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간의 유일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복잡한 신학적 질문들을 일으키긴 했지만, 그것이 미국의 일반 신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오히려 문제는 과학을 배척하기보다 과학을 끌어안으려는 시도가 종교 안에서 다시 적극적으로 일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성경 축자주의에 근거해서 성경의 내용을 과학으로 설명하려는, 이른바 창조과학이 태동했다. 1961년 젊은 지구 창조론을 기반으로 지구 차원의 대홍수를 옹호하는 『창세기의 홍수』가 출간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1963년에는 창조연구회가 설립되었다.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의 대결이 다시 일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는 창조론을 교과과정에 포함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이전에 반진화론 운동의 주동자들이 그저 성경 축자주의 같은 믿음에 근거하였다면 이제는 과학을 이용해 스스로를 뒷받침하려 한다는 점에서 달라져 있었다. 이는 사회적 권위가 확실히 (종교에서) 과학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였다. 냉전 체제에서 소련이 과학적/무신론적 공산주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종교의 언어와 개념을 전용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미국의 그리스도교 근본주의는 과학의 언어와 개념을 사용했다. 역설적이게도 냉전 시기에 과학과 종교는 자신의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서로 옷을 바꿔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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