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교회 공동체의 현실과 회복의 방향
글ㅣ최현철 교수
영남대학교 전자공학과
평신도신앙실천운동 실행위원
지난 십수 년 동안 한국 교회는 이단과 사이비와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내부적으로도 재정 비리, 권력 남용, 세습, 성추행, 정치적 편향 등 반복적으로 드러난 문제들로 인해 교회가 세상 가운데 드러내야 할 거룩함과 사랑의 증거를 흐리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라고 부르지만, 오늘의 교회 현실은 이 말씀과 어긋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와 성도들의 무비판적 추종이 결합하여, 성도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게(마 5:16)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로부터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이라 지탄을 받는 상황입니다.

사진: Unsplash의Daniel Tseng
교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며 몇 가지 진단을 제시해 왔습니다. 첫째, 문제를 일으킨 개인의 신앙과 인격의 미성숙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고 하셨지만, 때로는 중심이 준비되지 않은 이들이 지도자의 자리에 서게 되고, 권력과 편안함의 유혹 앞에서 무너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둘째, 교회가 세속적 성공주의에 물들어 버렸다는 지적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고 하셨지만, 현실에서는 큰 예배당과 많은 교인이 곧 ‘성공한 교회’라는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셋째, 담임목사나 소수의 리더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제도권 교회의 구조적 한계입니다. 초대교회는 각 사람이 은사를 따라 서로 봉사하면서(벧전 4:10) 공동체를 세워 갔지만, 오늘의 교회는 권위가 한곳에 집중되면서 견제와 균형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 가지 진단을 종합하면, 개인의 죄성, 왜곡된 교회관, 세속적 성공주의, 권위 집중 구조가 서로 맞물려 교회의 건강성을 무너뜨려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디에서 회복의 길을 찾아야 할까요.
무엇보다 개인의 변화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 3:3)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회복은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변화시키시는 은혜의 역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세속적 성공을 추구하기보다 약자와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 25:40)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무리한 양적 성장을 지양하고, 돌봄과 교제가 가능한 적정 규모를 유지하며, 필요할 때 건강하게 분립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 지점에서 가정교회 운동, 평신도 중심 교회, 김교신의 무교회주의와 같은 대안적 교회운동이 건강한 쇄신의 방향과 방법에 대한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운동들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제도권 교회가 가진 구조적 약점—권위 집중, 세속적 성공주의, 성직자 중심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사진: Unsplash의Ray Kim
가정교회 운동은 초대교회의 가정 모임을 현대적으로 회복하려는 시도로, 교회의 중심을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성도들의 삶의 자리로 옮기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본회퍼가 『나를 따르라』에서 강조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일상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는 통찰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교회에서는 이 운동이 또 다른 형태의 통제 구조로 변질되거나, 특정 매뉴얼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인해 본래의 자율성과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문제도 나타났습니다.
평신도 중심 교회는 성직자 중심 구조를 최소화하고, 성도 개개인이 신앙적 책임을 지며 공동체 운영에 참여하는 형태를 지향합니다. 이는 루터가 종교개혁 당시 강조한 “만인제사장” 정신을 실제 교회 구조 속에서 구현하려는 시도입니다. 다만 제도적 안정성과 공동체 구성원 각자의 신앙 성숙을 이루도록 힘써야 하며, 기존 제도권 교회처럼 공동체가 리더 개인의 역량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평신도 중심 교회는 성도 다수가 교회의 주체로 서야 한다는 중요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김교신의 무교회주의는 예배당과 교회 전통적인 제도 자체를 신앙의 본질로 보지 않고, 성경과 개인의 신앙 양심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조합니다. 이는 제도권 교회의 권위주의와 세속화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자,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사상적 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 안에서는 이러한 사상이 충분히 연구되거나 균형 있게 수용되지 못하고, ‘비정통’이라는 단순한 낙인 속에 주변부로 밀려난 측면이 큽니다. 그 결과, 제도교회의 문제를 성찰하고 갱신할 수 있는 중요한 신학적 자원이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이 세 가지 운동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핵심은, 교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권위의 분산, 성도의 참여, 공동체적 돌봄, 신앙의 본질 회복이 필수적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초대교회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행 2:42)는 모습과도 일치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들이 그간 충분히 연구되고 제도권 교회 안에서 균형 있게 수용되지 못한 채 주변부에 머물러 있어서, 한국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할 기회를 놓친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앞으로의 교회는 기존 제도권 교회 안에서의 개혁을 지속하는 동시에, 이러한 대안적 운동들이 제기한 문제의식과 개선의 노력을 지금이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어떻게 만들어 지는 지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성경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고전 12:27)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특정 지도자나 소수의 집단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함께 세워가는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회복 또한 새로운 형태의 권위적 집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함께 하나님 앞에서 본질을 회복하는 과정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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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공동체의 현실과 회복의 방향
글ㅣ최현철 교수
영남대학교 전자공학과
평신도신앙실천운동 실행위원
지난 십수 년 동안 한국 교회는 이단과 사이비와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내부적으로도 재정 비리, 권력 남용, 세습, 성추행, 정치적 편향 등 반복적으로 드러난 문제들로 인해 교회가 세상 가운데 드러내야 할 거룩함과 사랑의 증거를 흐리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라고 부르지만, 오늘의 교회 현실은 이 말씀과 어긋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와 성도들의 무비판적 추종이 결합하여, 성도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게(마 5:16)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로부터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이라 지탄을 받는 상황입니다.
사진: Unsplash의Daniel Tseng
교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며 몇 가지 진단을 제시해 왔습니다. 첫째, 문제를 일으킨 개인의 신앙과 인격의 미성숙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고 하셨지만, 때로는 중심이 준비되지 않은 이들이 지도자의 자리에 서게 되고, 권력과 편안함의 유혹 앞에서 무너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둘째, 교회가 세속적 성공주의에 물들어 버렸다는 지적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고 하셨지만, 현실에서는 큰 예배당과 많은 교인이 곧 ‘성공한 교회’라는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셋째, 담임목사나 소수의 리더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제도권 교회의 구조적 한계입니다. 초대교회는 각 사람이 은사를 따라 서로 봉사하면서(벧전 4:10) 공동체를 세워 갔지만, 오늘의 교회는 권위가 한곳에 집중되면서 견제와 균형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 가지 진단을 종합하면, 개인의 죄성, 왜곡된 교회관, 세속적 성공주의, 권위 집중 구조가 서로 맞물려 교회의 건강성을 무너뜨려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디에서 회복의 길을 찾아야 할까요.
무엇보다 개인의 변화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 3:3)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회복은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변화시키시는 은혜의 역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세속적 성공을 추구하기보다 약자와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 25:40)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무리한 양적 성장을 지양하고, 돌봄과 교제가 가능한 적정 규모를 유지하며, 필요할 때 건강하게 분립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 지점에서 가정교회 운동, 평신도 중심 교회, 김교신의 무교회주의와 같은 대안적 교회운동이 건강한 쇄신의 방향과 방법에 대한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운동들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제도권 교회가 가진 구조적 약점—권위 집중, 세속적 성공주의, 성직자 중심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사진: Unsplash의Ray Kim
가정교회 운동은 초대교회의 가정 모임을 현대적으로 회복하려는 시도로, 교회의 중심을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성도들의 삶의 자리로 옮기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본회퍼가 『나를 따르라』에서 강조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일상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는 통찰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교회에서는 이 운동이 또 다른 형태의 통제 구조로 변질되거나, 특정 매뉴얼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인해 본래의 자율성과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문제도 나타났습니다.
평신도 중심 교회는 성직자 중심 구조를 최소화하고, 성도 개개인이 신앙적 책임을 지며 공동체 운영에 참여하는 형태를 지향합니다. 이는 루터가 종교개혁 당시 강조한 “만인제사장” 정신을 실제 교회 구조 속에서 구현하려는 시도입니다. 다만 제도적 안정성과 공동체 구성원 각자의 신앙 성숙을 이루도록 힘써야 하며, 기존 제도권 교회처럼 공동체가 리더 개인의 역량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평신도 중심 교회는 성도 다수가 교회의 주체로 서야 한다는 중요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김교신의 무교회주의는 예배당과 교회 전통적인 제도 자체를 신앙의 본질로 보지 않고, 성경과 개인의 신앙 양심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조합니다. 이는 제도권 교회의 권위주의와 세속화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자,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사상적 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 안에서는 이러한 사상이 충분히 연구되거나 균형 있게 수용되지 못하고, ‘비정통’이라는 단순한 낙인 속에 주변부로 밀려난 측면이 큽니다. 그 결과, 제도교회의 문제를 성찰하고 갱신할 수 있는 중요한 신학적 자원이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이 세 가지 운동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핵심은, 교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권위의 분산, 성도의 참여, 공동체적 돌봄, 신앙의 본질 회복이 필수적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초대교회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행 2:42)는 모습과도 일치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들이 그간 충분히 연구되고 제도권 교회 안에서 균형 있게 수용되지 못한 채 주변부에 머물러 있어서, 한국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할 기회를 놓친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앞으로의 교회는 기존 제도권 교회 안에서의 개혁을 지속하는 동시에, 이러한 대안적 운동들이 제기한 문제의식과 개선의 노력을 지금이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어떻게 만들어 지는 지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성경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고전 12:27)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특정 지도자나 소수의 집단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함께 세워가는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회복 또한 새로운 형태의 권위적 집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함께 하나님 앞에서 본질을 회복하는 과정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