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자의 신앙공부 (1) (김영웅)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6-01-14
조회수 505

연재 칼럼
생물학자의 신앙공부 (1)


글ㅣ김영웅 박사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 선임연구원
과신대 정회원, 후원이사



들어가며

    한국 교회에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거나 이미 사라졌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교회 밖에서만이 아니라 안에서도 이런 목소리들은 점점 견고해지고 있다. 여전히 교회만이 희망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언젠가부터 가느다랗게 떨리고 의심과 불안의 기운이 감돈다. 맹신과 광신 혹은 근본주의적 신앙에 반기를 들며 한때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외치던 자들도 이제는 오히려 자신의 이성을 내려놓아야만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다. 과연 한국교회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이러한 시대적 사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지금은 가나안 성도가 되었거나, 특정 교회에 등록되지 않은 채로 떠돌이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고 있거나, 교회를 떠났지만 마음이 곤고해질 때나 예기치 못한 일을 경험할 때 여전히 하나님을 생각하고 온라인에서 메뚜기로 여러 설교들을 골라 들으면서 한때 뜨거웠던, 소위 첫사랑이라 불렀던, 신앙의 향수를 달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야말로 21세기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늠 짓는 새로운 기준일지도 모르겠다. 서글픈 현실이다.


    그렇다면 교회라는 공동체가 아닌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신앙은 어떠한가. 복음의 공공성은 소리소문 없이 메마른 지 이미 오래이지만, 코로나19를 지나고 계엄과 탄핵 등 정치적인 대혼란을 겪어내면서 기복신앙 및 번영신앙과 결탁했던 사적인 신앙마저도 이제는 향방을 잃은 것 같아 보인다. 그리스도인이 의례히 가져야 할 성경적인 신앙은 마치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믿고 따라야 할 모델이 보이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믿고 따랐던 모델들이 속속들이 돈과 성 문제로 추락하는 현상들을 우린 일상으로 경험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복음은 좋은 소식인가. 복음은 우리의 사상과 인격과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여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살도록 이끄는 힘이 있는가. 과연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인가. 아, 어쩌다가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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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의Daniel Bernard


    이 거대한 질문 앞에서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각자의 전문 분야 시선으로 저마다 다른 해석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 연재 글은 생물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하나의 해석 내지는 통찰로 볼 수 있다. 신학자나 목회자의 시선이 아니라는 점은 지금 우리에게 닥친 이 문제들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눈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도 좋을 것이다. 기존에 신학자나 목회자의 글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가끔은 낯선 시선이 더 객관성을 띄기도 하므로, 이 연재 글은 모든 독자에게 하나의 신선하고 새로운 통찰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기본적으로는 세포생물학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을 세포 단위로 축소하여 살펴볼 것이다. 믿어질 지 모르겠지만, 우리 몸은 약 37조 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고, 200가지 이상의 다양한 종류로 구성되는데, 모든 세포를 다룰 수는 없으므로 대표적으로 몇몇 세포들, 특별히 줄기세포와 암세포의 대비, 분화세포와 미분화세포의 대비, 그리고 이 세포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등을 통해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의 신앙, 그리고 교회라는 공동체까지 살펴볼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우리 몸의 각 지체로 비유한 것을 떠올리면 이 글에서 사용할 세포 비유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바울과 달리 나는 생물학을 전공한 자라는 이유로 지체라는 단어보다 더 많은 것들을 추출할 수 있는 세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한다.


    바라기는 연재하는 동안 위에서 언급한 거대한 질문에 대한 작은 답을 할 수 있으면 한다. 나아가 한국교회에 희망이 아직 있다고 말하는 목소리에 조금은 더 이유 있는 힘이 실리게 되기를 바란다. 향방을 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적힌 대로 복음의 능력을 다시 체험하고 건강한 신앙을 회복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1. 줄기세포(Stem cell)와 암세포(Cancer cell)

(1) 불멸(Immortality)    

    사전에 따르면, 줄기세포란 스스로 복제할 수 있고 다양한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미분화 세포를 말한다. 반면, 암세포는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정상적인 조절 능력을 상실하고 끊임없이 증식하여 결국 몸을 해치는 비정상적인 세포를 뜻한다. 두 세포는 공통점을 가진다.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능력, 그래서 늙지도 죽지도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영생불멸. 그렇다. 줄기세포와 암세포는 기본적으로 불멸의 세포다.


    두 세포가 가진 불멸성이 똑같지는 않다. 원래 주어진 능력인지, 스스로 획득한 능력인지에 따라 구분이 가능하다. 줄기세포의 불멸성은 원래 주어진 능력이다. 원래 주어졌다는 건 존재론적인 특징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만들어졌다는 건 둘 중 하나다. 스스로 만들어졌든지,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만들어졌든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그 누군가는 반드시 그 세포보다 먼저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그 불멸의 세포를 만든 자는 반드시 불멸성이 무엇인지 잘 알고 다룰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여야 한다. 줄기세포의 불멸성은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닌 실제의 능력이기에, 이 불멸의 세포를 만든 자 역시 불멸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먼저 존재하고 있던 자, 불멸성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타 존재자에게 심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 그래서 불멸성을 먼저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자.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연스레 머릿속에 창조주 하나님을 떠올렸을 것이다. 줄기세포의 기원, 나아가 생명의 기원은 여전히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지 않은 신비에 속한다. '틈새의 신' 이론을 굳이 들먹일 필요까진 없겠지만, 나 역시 생물학자로서 줄기세포의 기원을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서 찾는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생명도 창조하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줄기세포 역시 어떤 알려지지 않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줄기세포의 불멸성을 하나님이 부여하신 특징이라고 믿는 것은 억측일 수 없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수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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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의National Cancer Institute


    반면, 암세포의 불멸성은 스스로 획득한 능력이다. 스스로 획득했다는 건 처음부터 그렇게 주어진 게 아니라, 원래 없던, 혹은 없어졌던, 혹은 누군가 없앴던 능력을 자발적으로 복구시켰다는 말이다. 즉 없어야 할 능력을 스스로 취해서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잘 아는 피부세포나 뇌세포, 혹은 혈액세포나 간세포 등 각 기관과 조직을 이루며 기능을 충실히 담당하는 세포들은 모두 줄기세포로부터 만들어진다. 이 과정을 총칭하여 '분화'라고 한다. 분화과정 중 불멸성은 점차 사라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생각해 보라. 우리의 피부만 보아도 매일 각질이 떨어져 나가고 있지 않은가. 머리카락이 매일 빠지고 있지 않은가. 어마어마한 양의 적혈구가 매시간 죽어나가고 있지 않은가. 불멸의 줄기세포가 분화하면 할수록 필멸의 세포가 되는 것이다. 분화한 세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즉 필멸할 수밖에 없는 세포라는 것은 생명의 순리다. 이것이 모든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분화과정이다. 


    만약 분화했는데도 불구하고 불멸성을 가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가? 죽어야 할 세포들이 죽지 않고 계속 증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그 어떤 일이 바로 암이다. 필멸해야 할 세포가 불멸성을 스스로 획득하여 자기 자신만을 위해, 자기 자신을 영원히 복제하는 세포가 바로 암세포이기 때문이다. 물론 암의 시작이 줄기세포일 경우도 많다. 이 경우엔 불멸성을 애써 획득할 필요 없이 줄기세포의 불멸성을 그대로 이용하면 되는데, 이용하는 목적과 과정, 그리고 결과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다는 점이 큰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 줄기세포의 불멸성은 모두를 위한 것이지만, 암세포의 불멸성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한편, 줄기세포로부터 분화된, 그래서 불멸성을 잃기 시작한, 혹은 이미 잃어버린 세포들이 다시 불멸성을 스스로 취득하기도 한다. 만약 이들이 다시 불멸성을 얻은 후 암세포가 아니라 도로 줄기세포가 된다면, 즉 분화의 역방향인 역분화가 일어난다면 모르겠지만, - 실제로 이런 경우도 왕왕 생긴다. 아직 우리는 생명 현상을 모두 다 알지 못한다. 완전히 분화했다고 알려졌던 세포가 다시 줄기세포로 역분화하여 망가진 조직과 기관을 되살리는 경우도 실제로 있다. 생명의 신비이자 나 같은 생물학자들이 여전히 연구에 매진해야 할 이유가 된다 -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이들은 줄기세포가 되지 않고 암세포로 변질된다. 아주 특수한 역분화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스스로 획득한 불멸성을 가진 세포는 암세포가 된다. 즉, 분화과정이라는, 다시 말해 불멸성에서 필멸성을 입는 자연스러운 생명의 순리를 거스르는 세포가 바로 암세포인 것이다. 


(2) 반역(Rebellion)

    그리스도인 독자라면, 이렇게 순리를 거슬러 취하지 말아야 할, 혹은 취하도록 허락되지 않은 불멸성을 스스로 획득한 암세포를 머릿속에 떠올려보길 바란다. 어떤 존재가 떠오르는가? 많은 경우 하나님께 반역 및 불순종했던 아담과 하와를 떠올렸을 것이다. 뱀에게 속아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즉 영원하시고 언제 어디에나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시고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창조주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우리 모두의 조상이지만 피조물에 불과했었던, 성경에 기록된 첫 인간 말이다. 물론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쫓겨나게 되며 그 결과로 동산 중앙에 있던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영생을 얻게 되었는지의 여부를 떠나, 그들의 불순종과 반역 행위에 방점을 둔다면, 그들을 스스로 생명의 순리를 거스른 암세포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과 반역 행위로부터 수직적인 죄의 시작을 말한다. 암세포도 불순종과 반역 행위로부터 시작하고 그 목적과 결과가 자기 자신만을 무한 증식하는 것이므로 죄의 시작과 닮은 점이 많아 보인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의 개념을 자기중심적인 자기애 혹은 교만이라고 해석할 때 암세포는 죄를 곧장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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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의Priscilla Du Preez


    이에 반하여 줄기세포의 불멸성은, 앞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자기 자신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목적을 가진다. 성인의 경우 평균 37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나 많은 세포들은 200가지 이상의 다양한 종류로 구성된다. 또한 매일 우리 몸 안에선 약 3천억 개의 세포가 죽어나가고, 또 그만큼의 세포가 새롭게 만들어진다.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런 엄청난 일들이 우리 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이 가능한 궁극의 이유를 우린 줄기세포의 존재로부터 찾을 수 있다. 각 조직과 기관에 극소수로 존재하는 성체줄기세포들은 불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만을 복제하지 않는다. 암세포와 확연히 다른 지점이다. 이들은 분화한다. 분화하여 각 조직과 기관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세포들을 만들어낸다. 각 조직과 기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조직과 기관의 성체줄기세포는 평상시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특정한 공간에 숨어 있기도 한다. 그러나 위급한 상황, 이를테면 방사선에 노출되거나, 어떤 세균 혹은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상처가 나거나 할 경우, 손상된 조직과 기관을 재생시키기 위해 숨어서 있는 듯 없는 듯 마치 잠자고 있는 것 같던 줄기세포가 깨어나 자기 복제를 실행하고, 자기보다 불멸성은 덜하나 빠르게 세포분열을 할 수 있는 중간 세포를 만들고, 그 중간 세포로부터 그 조직과 기관의 완전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세포를 빠른 시간 내에 만들어낸다. 이른바 자가 복구 시스템이다. 우리가 치유라고 부르기도 하는 과정이다. 이런 복구 시스템이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줄기세포의 존재인 것이다. 


(3) 교만(Selfishness)

    줄기세포의 불멸성은 이기적이지 않다. 이타적이다. 자신의 불멸성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은 뒤로 숨어 자신이 맡은 조직과 기관이 원활히 작동될 수 있도록 다양한 세포들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며, 일정한 수의 세포가 늘 유지될 수 있도록 전체를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해결사로 등장하여 손상된 조직과 기관을 재생시키는 근원적인 힘으로 일한다. 오로지 '나'의 증폭에 혈안이 되어 있는 암세포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암세포가 죄로 시작하여 여전히 죄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 그래서 타자와 세상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을 대변한다면, 줄기세포는 죄에 물들지 않은, 아니 죄 문제로부터 해방된 자들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죄 문제를 자기중심적인 자기애, 즉 교만이라고 해석할 때 죄 문제가 해결된 줄기세포와도 같은 자들은 곧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대변한다. 이런 논리라면 암세포는 자연스레 거짓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할 것이다. 


    암세포 역시 한때 정상세포였다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한때 참된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외부로부터 침입한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과 싸워 이기지 못해 건강을 잃거나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사망률을 따져볼 때 암이 굳건히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암세포야말로 우리가 거듭 주의해야 하는 존재일 것이다. 진짜 적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었다는 사실. 우리를 무너뜨리는 존재는 밖이 아닌 안에서 함께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 암세포에 잠식당하여 생명을 잃게 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실제로 기독교를 공격하는 세력은 불교나 이슬람교 등 타 종교가 아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가 힘을 잃어버리게 된 것도 타 종교가 기독교를 공격했기 때문이 아니다. 적은 내부에 있었다. 기독교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내분일 것이다. 기독교는 탄생 이래 끊임없이 내부에서 다투고 갈라지고 분열되어 왔다. 한국 기독교에서 가장 큰 몸통인 장로교만 보아도 수백 개의 교단으로 나눠져 있다. 이런 분열의 역사가 기독교 신앙의 성장과 성숙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언제나 의문이다. 특히나 기독교의 신뢰도가 그 어느 때보다 급락한 이 시대에 그렇게 분열된 교단들이 과연 명맥이나 유지할지 모르겠다. 


(4) 우상숭배(Idolatry)

    그렇다면 암세포와 같은 내부의 적들, 거짓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추종하는가? 신명기 사관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면 답은 금방 나온다. 그들은 구약의 여러 실패한 왕들처럼 우상을 추종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우상이라 함은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아론의 송아지나 열왕기서에 나오는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 혹은 아합 왕이나 므낫세 왕이 만들었던 아세라 석상 같은 가시적인 현물이 아니다. 대신, 맘몬이라고도 알려진 돈이 가장 큰 우상일 것이다. 그들은 더 많은 돈을 취하기 위해 마치 돈이 목적이 아닌 것처럼 거짓 합리화를 해대며 은밀하게 돈을 쫓는다. 마치 암세포가 오로지 무한한 자기 증식을 위한 더 많은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기 위해 주위 환경으로부터 원래 없던 혈관을 자기만 사용할 수 있도록 신설하는 것처럼 말이다. 돈을 쫓는 거짓 그리스도인들이나 더 많은 영양분과 산소를 쫓는 암세포의 공통된 목적은 자기 배를 불려 무한히 자기 증식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무식할 정도로 단순하게 보이는 무한 자기 증식을 무한히 시도하면서 암세포는 자기와 똑같은 암세포 클론들을 계속 만들어낸다. 그 결과는 곧 암세포의 비대로 이어지지만, 이 비대는 어디까지나 숙주가 버티면서 살아 있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 암세포 비대의 끝은 숙주의 죽음이다. 숙주가 끝내 죽으면 그 안에 갇혀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암세포 역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결국 자기 자신도 죽이고 자기 자신이 머물던 숙주까지 죽이는 이 아이러니한 비극이 바로 암세포의 종말인 것이다. 


    마찬가지다. 거짓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아닌 맘몬을 숭배한 결과로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주로 교회)의 비대를 도모하게 되는데, 이 비대 역시 어디까지나 기독교라는 큰 틀이 안전할 때에 국한된다. 암세포의 자기 증식이 숙주인 몸 전체를 죽음으로 이끄는 것처럼 종교집단 이기주의에 불과한 거짓 그리스도인들의 담합은 거시적인 기독교라는 큰 틀의 존립 자체를 흔들고 위협하는 존재로 작용한다. 2024년 12월 어처구니없는 계엄으로 번진 대통령 탄핵과 그와 관련된 여러 국가적인 문제들 가운데 극에 달한 전광훈 현상은 기독교 자체가 병들고 사회의 해악이 될 수 있다는 가시적인 증거를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건강한 몸 안에서 돌연변이로 인해 자라난 암세포의 비대가 몸의 죽음을 가져오듯, 건강한 기독교 안에서 예수가 아닌 우상을 쫓으며 생겨난 거짓 그리스도인의 비대는 기독교의 종말을 예고하는 전조증상일지도 모른다.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5) 정의(Justice)

    암세포는 독식한다. 무한 자기 증식을 위해 원래 없던 신생혈관을 만들어 자기만의 영양분 공급 통로로 확보한다. 문제는 암세포 주위에 있는 정상세포들이다. 암세포가 생기지 않았다면 각 조직과 기관을 이루는 모든 세포들은 정상적인 영양분의 최적화된 공급으로 저마다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얻었을 것이다. 그런데 암세포의 등장과 그들의 비대로 인해 이들은 영양분 결핍을 겪게 되고, 그 결과 에너지를 얻지 못하여 제 기능을 담당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그 조직 혹은 기관은 기능 장애를 보이거나, 극한 경우 정상세포들이 죽어나가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 암세포의 독식은 정상세포들의 결핍을 초래한다. 조화와 질서의 파괴를 가져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약 80퍼센트가 미자립 소형교회로 분류된다고 한다. 반면 대형교회는 전체의 1퍼센트 미만인데도 불구하고 전체 교인의 약 2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대형교회의 폐단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상식이 되었다. 물론 모든 대형교회가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이미 기록된 한국교회 역사는 일부 대형교회 담임목사 몇몇이 돈과 성 문제에 관련된 비리와 범죄 행위에 가담되었다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사적인 아들 사랑을 공적인 교회 세습으로 둔갑시킨 수치스러운 사례도 기록하고 있다. 2017년 11월 14일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손석희 아나운서는 당시 명성교회 세습 문제에 대해서 집중 보도를 하기도 했다. 알다시피 JTBC는 기독교 방송국이 아니다. 그만큼 한국 초대형교회 중 하나인 명성교회 세습 문제는 한국교회 내부만이 아닌 한국사회 전체에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손석희는 앵커브리핑을 마치고 사족이라며 운을 뗀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미국 상원의 채플 목사였던 리처드 핼버슨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해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가서는 제도가 되었다. 그다음에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다. 마침내 미국으로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대형교회의 세습을 비판한 영화 '쿼바디스'의 김재환 감독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교회는 한국으로 와서는 대기업이 되었다" |


    한국교회 구성원 중 하나로서 나는 저 방송을 보며 수치심을 느꼈다. 내 믿음과 신앙이 약하거나 부족해서 느끼는 수치심이나 내 죄의 발견으로 인한 죄책감이 불러오는 수치심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사적인 수치심이 아닌 공적인 수치심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교회가 아닌 한국사회였고, 조금 더 확장하면 세상이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어야 할 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걱정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나는 부끄러웠다. 


    한국으로 와서 대기업이 된 교회를 떠올리며 놀랍게도 내 머릿속에서는 건강하게 성장을 이뤄낸 아름다운 몸이 아닌 독식하여 비대해진 암세포 덩어리의 이미지가 겹쳐졌다. 균형이 아닌 불균형, 조화가 아닌 부조화, 창조가 아닌 파괴, 부흥이 아닌 쇠락의 이미지가 겹쳐졌다. 아마도 이런 인상을 받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자 당혹스러웠다. 내가 어릴 적부터 바라던, 혹은 모든 교인들이 바라던 교회의 부흥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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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의JaeHong Park


    암세포는 자신의 안위만을 고려하다가 몸 전체의 종말을 가져와 공멸을 초래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기업이 된 대형교회는 어떠할까? 과연 한국교회, 아니 한국사회 전체의 종말을 초래하는 수류탄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까? 이 질문 앞에서 절대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는 내가 서글프다. 이미 수차례 앞장서서 부와 명예, 기업과 정치와 결탁하여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는 모습을 온 국민 앞에서 명징하게 보여주었고, 이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넘어서 온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도한다. 부디 암세포의 종말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기를, 부디 나치를 배출했던 독일이 참회하고 거듭난 모습을 보여주었듯이 한국교회도 역사 앞에서 과거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회개하여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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