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 칼럼
비이성의 유혹 앞에 선 다음 세대,
어떤 ‘창조’를 가르칠 것인가
글ㅣ최승주
과학과신학의대화 이사
고려대학교 문화창의학부 초빙교수
삶을 위한 죽음교육연구소 폴레그 대표
논쟁: 진화와 원죄 사이에서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둘째 아이가 친구들과 점심을 먹다 말고 과학 논쟁을 벌였다. “유신진화론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선언에 “현대과학과 창조 신앙이 왜 공존할 수 없느냐”는 반박이 맞섰다. 아담의 역사성과 원죄를 거론하며 구원론의 토대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과학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농담 섞인 회피도, “편평지구를 믿는 사람도 있다는데 과학이 뭐 대수냐”는 냉소도 오갔다.
이 장면은 대화의 주인공들이 기독대안학교에 재학 중이기에 가능하다. 일반 학교에서 ‘판구조론’과 ‘진화’는 시험의 정답이지만, 이 아이들에게 그것은 신앙의 기초를 건드리는 질문이 된다. 과학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신학적 의미를 동반한 문제로 다가온다.

사진: Unsplash의愚木混株 Yumu
왜 과학은 기독 청소년에게 ‘문제’가 되었는가
대다수 청소년에게 과학은 사실의 영역이다. 그러나 기독 청소년에게 과학은 종종 선택과 갈등의 영역이 된다.
그 배경에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이분법적 교육 관성이 있다. 과학과 신학을 ‘모 아니면 도’로 가르치는 방식, 성경을 과학 교과서처럼 읽도록 훈련하는 태도는 우주의 장구한 역사나 생물의 진화를 곧 신앙의 붕괴로 오인하게 만든다. 과학적 설명을 수용하면 아담이 사라지고, 아담이 사라지면 구원론이 무너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지성의 문을 닫게 한다.
이 간극은 두 가지 극단을 낳는다. 하나는 과학을 불신하며 비이성의 영역으로 숨어드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을 비과학적 설화로 간주하며 떠나는 길이다. 어느 쪽이든 다음 세대의 지성과 신앙을 동시에 위축시킨다.
30년 전, 어느 여고생의 멈춰버린 꿈
아이들의 논쟁을 들으며 30여 년 전의 한 여고생을 떠올렸다. 보수적 교회에서 성장한 그녀는 목회자인 아버지에게서 한국창조과학회가 발간한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그 책은 단순한 교양서가 아니라 소명 선언문처럼 읽혔다. 하나님의 창조를 과학으로 증명하겠다는 열망 속에 그녀는 생물학자의 꿈을 품었다.
대학에서의 배움은 치열했다. 생물 교사를 꿈꾸며 상위 10%만이 허락받는 교직 이수 과정에 도전하여 생물 정교사 자격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전공 서적을 깊이 파고들수록 마음속에서는 삐거덕거리는 파열음이 들려왔다. 어린 시절, 진화론은 나쁜 것이라 믿어 만화 ‘피카츄’조차 멀리했던 신앙의 결벽이 학문적 진실과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부하면 할수록 학문과 신앙은 서로를 밀어냈고, 내적 갈등은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 차마 신앙을 버릴 용기가 없었던 그녀는 결국 과학의 길을 접었다.
그 여고생이 바로 나였다. 졸업 직후 한 미션스쿨에서 과학교사 제안을 받았을 때도, 나는 선뜻 응할 수 없었다. 내 안의 질문이 정리되지 않은 채 아이들 앞에 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나는 자연과학에서 멀어져 인문학의 길을 걸었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질문이 남아 있다. 만약 그때 누군가가 과학적 사실과 신앙의 고백이 적이 아니라고, 과학은 하나님의 일반은총이며 인간 이성은 창조 질서를 읽어내는 도구라고 말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신앙과 학문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몰지 않는 길을 알았다면, 나는 여전히 현미경 앞에서 창조의 신비를 탐구하고 있지 않았을까.

사진: Unsplash의Einar Storsul
과학 교육의 갈림길
기독 청소년들의 대화는 30년 전 나의 고민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여전히 어떤 아이는 아담의 원죄와 진화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어떤 아이는 차라리 과학이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며 고개를 젓는다.
오늘날 많은 기독대안학교는 공교육의 성취기준을 따르면서 기독교 세계관을 통합하려고 시도한다. 과학 지식은 표준 교육과정에 근거해 가르치되, ‘창조–타락–구속’이라는 틀 속에서 의미를 해석한다. 생명과학을 다루며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하고, 우주론을 배우며 창조 신앙을 사유한다.
문제는 특정 창조 해석을 과학 내용과 동일 선상에 놓을 때 발생한다. 젊은지구창조론과 같이 주류 과학계의 합의와 충돌하는 주장을 교과 내용의 대안으로 제시할 경우, 학생들은 대학과 학문 공동체에서 또 다른 충돌을 겪게 된다. 신앙의 정체성은 강화될 수 있으나, 과학적 소양은 위축될 위험이 있다.
과신(過信)과 비이성의 과학교육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비이성’이라는 방패를 쥐여줄 수 없다. 동시에 과학을 절대화하는 ‘과신(過信)’ 역시 경계해야 한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성을 포기하거나, 이성을 따르기 위해 신앙을 버리는 구조는 건강하지 않다.
실제로 내가 발론티어로 출강하는 한 대안학교에서 과학 전공을 선택하는 졸업생은 10%에 미치지 못한다. 과학을 적대하거나 두려워하는 정서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이는 단순한 진로 통계의 문제가 아니라, 지성의 위축이라는 신학적 과제이기도 하다.
과신대 청소년 캠프: 대화의 장을 열다
과신대가 준비한 청소년 캠프 “신과 함께”(2026년 2월 28일 예정)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네트워크(Network)”다. 이번 캠프는 과신대 아카데미와 서울대 블랙홀 연구실이 공동 주관하여, 과학 현장(대학교 강의실 및 연구실)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제공한다. 학생 50명뿐만 아니라 인솔자, 목회자, 기독교 교육 관계자를 참관인으로 초대하여, 캠프 이후에도 개별 교회 청소년부에서 토론과 활동이 이어질 수 있는 네트워크의 거점을 마련하고자 한다.
둘째, “콘텐츠(Contents)”다. 캠프는 과신대 청소년 교육팀이 개발한 교재를 바탕으로, ‘두 권의 책’이라는 관점에서 우주론과 진화론, 천체 관측 등 현대 과학의 핵심 쟁점을 다룬다. 아울러 부모와 교사를 위한 강의도 마련해 세대 간 인식의 간극을 좁힌다.
셋째, “지성적 환대(Intellectual Hospitality)”다. 캠프는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갈등이 아닌 대화로 이해하도록 돕고, 두려움 없이 질문할 수 있는 태도와 언어를 갖추게 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사진: Unsplash의Unseen Studio
맺으며: 이제는 답을 건넬 차례
점심시간에 벌어진 아이들의 논쟁이 헛된 소모전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질문들을 시작으로 창조주의 세계를 더 넓게 바라보게 되기를 소망한다.
30년 전의 나는 질문 앞에서 길을 돌렸다. 이제는 그 길 위에 선 아이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과학은 신앙의 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두려움 없이 탐구하도록 격려하는 일이라고.
다음 세대가 더 이상 비이성의 유혹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도록, 우리는 어떤 ‘창조’를 가르칠 것인지 과신대는 이제 그 답을 준비해야 한다.
과신 칼럼
비이성의 유혹 앞에 선 다음 세대,
어떤 ‘창조’를 가르칠 것인가
글ㅣ최승주
과학과신학의대화 이사
고려대학교 문화창의학부 초빙교수
삶을 위한 죽음교육연구소 폴레그 대표
논쟁: 진화와 원죄 사이에서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둘째 아이가 친구들과 점심을 먹다 말고 과학 논쟁을 벌였다. “유신진화론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선언에 “현대과학과 창조 신앙이 왜 공존할 수 없느냐”는 반박이 맞섰다. 아담의 역사성과 원죄를 거론하며 구원론의 토대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과학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농담 섞인 회피도, “편평지구를 믿는 사람도 있다는데 과학이 뭐 대수냐”는 냉소도 오갔다.
이 장면은 대화의 주인공들이 기독대안학교에 재학 중이기에 가능하다. 일반 학교에서 ‘판구조론’과 ‘진화’는 시험의 정답이지만, 이 아이들에게 그것은 신앙의 기초를 건드리는 질문이 된다. 과학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신학적 의미를 동반한 문제로 다가온다.
사진: Unsplash의愚木混株 Yumu
왜 과학은 기독 청소년에게 ‘문제’가 되었는가
대다수 청소년에게 과학은 사실의 영역이다. 그러나 기독 청소년에게 과학은 종종 선택과 갈등의 영역이 된다.
그 배경에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이분법적 교육 관성이 있다. 과학과 신학을 ‘모 아니면 도’로 가르치는 방식, 성경을 과학 교과서처럼 읽도록 훈련하는 태도는 우주의 장구한 역사나 생물의 진화를 곧 신앙의 붕괴로 오인하게 만든다. 과학적 설명을 수용하면 아담이 사라지고, 아담이 사라지면 구원론이 무너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지성의 문을 닫게 한다.
이 간극은 두 가지 극단을 낳는다. 하나는 과학을 불신하며 비이성의 영역으로 숨어드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을 비과학적 설화로 간주하며 떠나는 길이다. 어느 쪽이든 다음 세대의 지성과 신앙을 동시에 위축시킨다.
30년 전, 어느 여고생의 멈춰버린 꿈
아이들의 논쟁을 들으며 30여 년 전의 한 여고생을 떠올렸다. 보수적 교회에서 성장한 그녀는 목회자인 아버지에게서 한국창조과학회가 발간한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그 책은 단순한 교양서가 아니라 소명 선언문처럼 읽혔다. 하나님의 창조를 과학으로 증명하겠다는 열망 속에 그녀는 생물학자의 꿈을 품었다.
대학에서의 배움은 치열했다. 생물 교사를 꿈꾸며 상위 10%만이 허락받는 교직 이수 과정에 도전하여 생물 정교사 자격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전공 서적을 깊이 파고들수록 마음속에서는 삐거덕거리는 파열음이 들려왔다. 어린 시절, 진화론은 나쁜 것이라 믿어 만화 ‘피카츄’조차 멀리했던 신앙의 결벽이 학문적 진실과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부하면 할수록 학문과 신앙은 서로를 밀어냈고, 내적 갈등은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 차마 신앙을 버릴 용기가 없었던 그녀는 결국 과학의 길을 접었다.
그 여고생이 바로 나였다. 졸업 직후 한 미션스쿨에서 과학교사 제안을 받았을 때도, 나는 선뜻 응할 수 없었다. 내 안의 질문이 정리되지 않은 채 아이들 앞에 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나는 자연과학에서 멀어져 인문학의 길을 걸었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질문이 남아 있다. 만약 그때 누군가가 과학적 사실과 신앙의 고백이 적이 아니라고, 과학은 하나님의 일반은총이며 인간 이성은 창조 질서를 읽어내는 도구라고 말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신앙과 학문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몰지 않는 길을 알았다면, 나는 여전히 현미경 앞에서 창조의 신비를 탐구하고 있지 않았을까.
사진: Unsplash의Einar Storsul
과학 교육의 갈림길
기독 청소년들의 대화는 30년 전 나의 고민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여전히 어떤 아이는 아담의 원죄와 진화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어떤 아이는 차라리 과학이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며 고개를 젓는다.
오늘날 많은 기독대안학교는 공교육의 성취기준을 따르면서 기독교 세계관을 통합하려고 시도한다. 과학 지식은 표준 교육과정에 근거해 가르치되, ‘창조–타락–구속’이라는 틀 속에서 의미를 해석한다. 생명과학을 다루며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하고, 우주론을 배우며 창조 신앙을 사유한다.
문제는 특정 창조 해석을 과학 내용과 동일 선상에 놓을 때 발생한다. 젊은지구창조론과 같이 주류 과학계의 합의와 충돌하는 주장을 교과 내용의 대안으로 제시할 경우, 학생들은 대학과 학문 공동체에서 또 다른 충돌을 겪게 된다. 신앙의 정체성은 강화될 수 있으나, 과학적 소양은 위축될 위험이 있다.
과신(過信)과 비이성의 과학교육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비이성’이라는 방패를 쥐여줄 수 없다. 동시에 과학을 절대화하는 ‘과신(過信)’ 역시 경계해야 한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성을 포기하거나, 이성을 따르기 위해 신앙을 버리는 구조는 건강하지 않다.
실제로 내가 발론티어로 출강하는 한 대안학교에서 과학 전공을 선택하는 졸업생은 10%에 미치지 못한다. 과학을 적대하거나 두려워하는 정서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이는 단순한 진로 통계의 문제가 아니라, 지성의 위축이라는 신학적 과제이기도 하다.
과신대 청소년 캠프: 대화의 장을 열다
과신대가 준비한 청소년 캠프 “신과 함께”(2026년 2월 28일 예정)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네트워크(Network)”다. 이번 캠프는 과신대 아카데미와 서울대 블랙홀 연구실이 공동 주관하여, 과학 현장(대학교 강의실 및 연구실)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제공한다. 학생 50명뿐만 아니라 인솔자, 목회자, 기독교 교육 관계자를 참관인으로 초대하여, 캠프 이후에도 개별 교회 청소년부에서 토론과 활동이 이어질 수 있는 네트워크의 거점을 마련하고자 한다.
둘째, “콘텐츠(Contents)”다. 캠프는 과신대 청소년 교육팀이 개발한 교재를 바탕으로, ‘두 권의 책’이라는 관점에서 우주론과 진화론, 천체 관측 등 현대 과학의 핵심 쟁점을 다룬다. 아울러 부모와 교사를 위한 강의도 마련해 세대 간 인식의 간극을 좁힌다.
셋째, “지성적 환대(Intellectual Hospitality)”다. 캠프는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갈등이 아닌 대화로 이해하도록 돕고, 두려움 없이 질문할 수 있는 태도와 언어를 갖추게 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사진: Unsplash의Unseen Studio
맺으며: 이제는 답을 건넬 차례
점심시간에 벌어진 아이들의 논쟁이 헛된 소모전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질문들을 시작으로 창조주의 세계를 더 넓게 바라보게 되기를 소망한다.
30년 전의 나는 질문 앞에서 길을 돌렸다. 이제는 그 길 위에 선 아이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과학은 신앙의 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두려움 없이 탐구하도록 격려하는 일이라고.
다음 세대가 더 이상 비이성의 유혹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도록, 우리는 어떤 ‘창조’를 가르칠 것인지 과신대는 이제 그 답을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