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를 통해 배우는 영적 묵상 (4)
세포의 사멸, 믿음과 지혜의 전수
글 | 김영웅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 선임연구원
과신대 정회원, 후원이사
분화한다는 건 세포 세상에서 피라미드의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으로의 흐름이라고 했다. 불멸성과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불멸의 반대말은 필멸이고, 필멸의 최종단계는 사멸이다. 피라미드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하지만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며, 우리 몸에서 가장 전문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최종분화된 세포는 사멸을 앞둔 세포다. 곧 죽어 없어질 세포라는 말이다. 이번 호에서는 분화를 세포 사멸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면서 신앙적인 성찰과 통찰을 얻도록 하자.
4. 사멸
(1) 분화의 기원
분화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사멸을 논하기 이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분화의 시작 혹은 분화의 기원에 대해서다.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는 건 모든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궁극의 줄기세포인 수정란은 모든 세포의 어머니이자 세포 세상에서는 신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만능분화능)도 불멸성과 마찬가지로 수정란이 스스로 획득한 게 아니다. 불멸성과 함께 처음부터 주어진 능력이다. 그래서 나는 불멸성의 기원과 마찬가지로 분화의 기원 역시 창조주의 손에서 찾는다. 과학은 어떻게 수정란이 불멸하고 어떻게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지 그 기작을 밝혀줄 뿐 그것의 기원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어디 그뿐인가. 지구의 기원, 우주의 기원, 그리고 생명의 기원 등 모든 기원 문제는 과학의 영역을 훌쩍 벗어난다. 특히 그것이 무에서 유로의 생성을 의미한다면 말이다. 지구나 우주의 기원은 보통 빅뱅 같은 이론으로 설명하지만 그것조차 무에서 유로의 생성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빅뱅 이론은 우주가 초기 상태 이후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대한, 즉 초기 팽창에 대한 이론이며, 고온과 고밀도의 초기 상태가 전제되어야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빅뱅 이론이란 무엇인가가 갖춰진 상태에서 시작하는 이론이다.
사진: Unsplash의 Fernando Venzano
생명의 기원 문제도 비슷하다.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의 기원조차 과학은 설명하지 못한다. 세포뿐인가. 그것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유기물과 무기물의 생성도 과학은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가 흔히 진화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해 준다고 착각하기도 하는데, 이는 창조와 진화를 양극에 놓고 불필요한 대립각을 세우는 반지성적인 이들에 의해 생겨난 어이없는 오해일 뿐이다. 생물 진화의 기본은 DNA의 변이다. 즉 생물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DNA가 먼저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과학은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가장 기본적인 무기물과 유기물의 생성조차 설명하지 못한다. 하물며 DNA이겠는가.
요컨대 빅뱅이론이나 진화이론 모두 우주나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것은 과학의 한계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의 본질과 정체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과학은 철학이나 신학이 묻고 설명하는 문제들에는 관심도 없을뿐더러 해결할 능력도 없다. 다만,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가정이 주어지면 그것이 어떻게 변화하고 변화할 것인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주로 관찰과 실험)를 바탕으로 해서 원리를 파악해 내려고 부단히 애쓰며 그 원리를 바탕으로 예측하고 설명한다. 과학은 어떤 현상에 대한 최선의 합리적인 설명일 뿐이다. 진리가 아니다. 그래서 언제든 틀린 것으로 증명될 수 있다. 과학의 영역 안에서는 자정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과학의 진정한 아름다움이자 과학을 신뢰할 수 있는 핵심적인 이유일지 모른다. 어쨌거나 여기에서는 이것만은 꼭 기억하자. 과학의 시작은 무가 아닌 유라는 것.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무엇인가가 처음부터 주어진 상태에서 과학은 비로소 일하기 시작한다는 것.
(2) 자랑이 아닌 감사가 시작
이런 맥락에서 보면, 줄기세포의 불멸성과 만능분화능이 처음부터 주어졌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저 하나의 난자와 하나의 정자가 만나 핵융합이 일어났을 뿐인데 불멸성이 주어지고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이 동시에 주어졌다는 건 생물학자의 눈에도 그저 놀라운 사건일 뿐이다. 그 어떤 생물학자도 미리 예측할 수 없고 디자인할 수 없는 신비에 속한다. 생물학자는 수정란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이 두 능력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고 어떻게 쓰이는지 밝혀냈을 따름이다. 이미 주어진 '유'에서 시작하여 연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불멸성과 만능분화능이 처음부터 주어졌다는 사실로부터 나는 신앙적인 성찰을 한 가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감사'에 대해서다. 스스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가 나는 '감사'라고 생각한다. 자랑이 아닌 감사. 신적인 능력을 소유하게 된 존재가 자신의 그 능력을 자랑하지 않고 그 능력에 대해, 그 능력을 주셨다고 믿는 존재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자랑이 아닌 감사가 시작이라면 그 능력을 사용하는 자세나 태도뿐 아니라 목적과 방향까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와 내가 속한 단체만을 생각하는 이기성이 아닌 이웃과 이웃을 포함한 모든 세상을 위한 이타성이 발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창조주가 만드신 창조세계를 돌보라고 첫 인간 아담을 만드신 배경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자랑이 아닌 감사로 창조세계를 위해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아담이 우리들 인간 아닌가.
그러나 많은 인간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타고난 능력을 감사하기는커녕 자랑하기에 급급하다. 어떻게든 남들보다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자기에게 주어졌다면 그것을 자기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데 여념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라서 그런 걸까. 그 특별함은 개인의 자본을 늘리는 목적으로 써야만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학습 없이도 작동한다. 오로지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타고난 자질과 능력이 모두 사용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창조주의 존재를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런 부류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현실을 목도하며 또 한 번 수치심과 우울함을 느낀다. 타고난 부, 타고난 미모, 타고난 천재성 등 타고난 여러 자질들과 능력들을 대할 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스도인으로서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과연 그것들을 주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라면 그것들을 왜 주셨는지 진지하게 묻고 생각해 봐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윤리 문제로 사유를 확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Unsplash의 Lina Trochez
같은 능력을 가지고 어떤 이는 자랑하고 어떤 이는 감사한다. 이 두 사람의 행보와 열매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마찬가지 원리가 흐른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방인들, 그리고 여러 다양한 소수자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마찬가지 원리가 흐른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백성,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오로지 은혜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우리의 능력으로 획득한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선물해 주신 은혜라는 것을. 타고난 모든 것에 대한 바른 자세는 감사여야 하고, 그 정체성을 지닌 이는 모든 일을 감사로 시작하고 감사로 진행하며 감사로 끝마쳐야 한다는 것을. 감사야말로 인간의 죄성을 이겨내는 선하고 강력한 무기일 수 있다는 것을. 존재의 모든 시작도, 그리스도인의 모든 시작도 마찬가지로 감사여야 한다는 것을 우린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분화의 마지막인 사멸을 논하기 전에 분화의 기원을 언급해야만 했던 이유다. 자신의 기원을 잊은 존재의 끝은 사적이고 본능적인 욕망, 즉 죄성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시작은 은혜와 감사다. 잊지 말자.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출애굽기 22장 21절)
(3) 최종분화된 세포
일반적으로 지혜자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유년층이나 아직 독립된 가정을 가지지 않은 청년층이 아닌 나이가 지긋이 든 노년층에서 찾게 된다. 누구든 자기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상의하고 싶은 사람을 고르라고 하면 지식은 물론 경험이 많이 축적된 어른들 가운데 고르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들은 수명의 관점에서 보면 죽음에 가장 가까운 부류에 속한다. 비로소 지혜자의 반열에 서게 되었는데 곧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숙명에 처해지는 것이다. 마치 사멸을 앞둔 최종분화된 세포들처럼.
최종분화된 세포는 각 기관과 조직에 존재하는 성체줄기세포가 수차례의 세포분열과 분화를 거듭하여 생성된 마지막 단계의 세포다. 줄기세포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면 그에 대한 대답으로 “최종분화된 세포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실 이 세포들이 바로 전문적인 생물학 지식 없이 상식적으로 들어서 알고 있는 세포들의 정체이기도 하다. ‘간세포’라고 하면 생물학자에게는 간줄기세포를 포함하여 여러 분화단계의 세포들과 다양한 종류의 최종분화된 세포들을 총칭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만 (간세포는 한 종류가 아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단순하게 간의 기능을 담당하는 세포 정도로 인식된다. ‘뇌세포’도 마찬가지다. 뉴런이라는 용어를 들어서 알고 있는 사람은 있어도 뉴런 이외의 뇌세포 종류가 뇌를 이루는 세포 중 더 많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뇌세포도 여러 종류다). 간이나 뇌뿐만이 아니다. 모든 조직과 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까지 잘 알려진 세포들의 이름은 주로 ‘최종분화된 세포’들로부터 비롯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들의 수가 가장 많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이들이 각 기관과 조직을 대표하는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우리 몸을 이루는 총 세포 개수는 약 37조 개라고 했다. 이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세포는 혈액세포(혈구)인데, 전체의 약 80퍼센트 정도다. 그러니까 약 30조 개 정도의 수를 자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혈액세포 중 최종분화된 세포들은 어떤 종류가 있을까? 우리가 잘 아는 혈액세포들의 이름을 떠올려보자.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정도일 것이다. 맞다. 이렇게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 가지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백혈구의 경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감염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세균 같은 적과 싸우는 최전방 보초병인 중성구 (백혈구 중 약 50-70퍼센트), 항체를 만들거나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 등을 그들의 일부 조각을 분석한 뒤 정밀하게 인식하여 공격하는 림프구 (백혈구 중 약 20-40퍼센트, 림프구도 크게 세 가지로 다시 나뉜다: B세포, T세포, NK세포), 혈액 중에 있다가 조직 안으로 이동하면 대식세포가 되며 세포자멸사를 거친 세포의 조각난 시체나 여러 이물질들을 먹어 치우며 림프구에게 적의 정보를 전달하는 단핵구 (백혈구 중 약 2-8퍼센트), 알레르기 반응 때 급격히 수가 늘어나며 기생충과 같은 적을 공격할 때 독성 물질을 분비하여 염증 반응을 조절하는 호산구 (백혈구 중 약 1-4퍼센트), 그리고 역시 알레르기 반응 때 히스타민을 분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혈관을 확장시키기도 하는 호염구 (백혈구 중 약 0.5-1퍼센트), 이렇게 5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종류가 많을 뿐이지 백혈구는 혈소판보다도, 적혈구보다도 훨씬 적은 수를 차지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최종분화된 세 종류의 세포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세포는 적혈구다. 피가 빨갛지 않은가. 실제로 피 한 방울을 떨어뜨려 납작하게 커버 글라스를 덮고 현미경 아래에서 보면 거의 대부분의 세포가 적혈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적혈구 다음으로 혈소판 수가 많고, 백혈구 수는 가장 적다.

백혈구의 종류
출처: https://www.snuh.org/upload/health/nMedInfo/20190218_1603_251.jpg
그렇다면 줄기세포는 혈액세포 중에서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0.0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은 병리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주로 골수 안에 숨어 있다. 그러면서 어떤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그것을 인식한 즉시 다시 정상적인 혈액세포의 종류와 수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즉 줄기세포는 평소에는 항상성을 유지하는 일 이외에는 일을 거의 하지 않다가 응급한 일이 생기거나 문제가 발생할 때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이들의 목적은 다시 정상 수준의 혈액세포의 종류와 수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했다시피 정상적인 상태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세포가 최종분화된 세포이기 때문에 이들을 다시 그만큼 만들어내는 것이 줄기세포가 위기 상황에서 하는 일의 요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4) 세포 사멸
이렇게 최선을 다하여 다시 정상 수준의 세포 수와 비율을 회복하게 되면 줄기세포는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줄기세포들의 대부분은 다시 잠이 든다고 할 수 있다. 평온한 상황에서 각 기관과 조직에 극소수로 존재하는 성체줄기세포의 대부분 (약 80-95퍼센트)은 실제로 잠을 자고 있는 상태다. 세포분열을 하기 위해서는 세포주기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들은 세포주기로부터 빠져나와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생명만 유지한 채 자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자고 있는 줄기세포의 비율은 노화가 일어날수록 줄어든다는 점이다. 그래서 노년에 이르면, 줄기세포가 잠에서 깨어나 활발하게 복구해야 하는 응급 상황이 발생해도 동원되는 줄기세포 수가 적어 정상 수준으로의 회복이 더디거나 불가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상시에 잠자고 있는 줄기세포들을 우린 뭐라고 탓하면 안 된다. 그들의 존재를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 더 많은 성체줄기세포들이 자고 있어야 더 젊다고도 할 수 있겠다.
반면, 이렇게 줄기세포들이 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최종분화된 세포는 더 이상 세포분열을 하지 못하며 더 이상 분화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처해진다. 분열도 분화도 못한다는 말은 세포 세상에서 사멸을 앞두고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위치한 줄기세포와 정반대 위치에 존재하는 이들의 운명은 죽음인 것이다. 이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전문적인 기능을 담당하다가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한다.
세포 사멸에 대해 들여다볼 차례다. 세포의 죽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세포자멸사, 영어로는 Apoptosis, 혹은 Programmed cell death(계획된 세포 죽음), 다른 하나는 괴사(Necrosis)이다. 괴사는 갑작스러운 외부 자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벌어지는 죽음을 말한다. 피부가 화상을 입을 때 피부세포는 괴사 된다. 독소에 노출될 때 노출된 세포는 괴사 된다. 혈액이 공급되지 않을 때 심장의 근육세포들이 괴사 된다. 괴사는 전혀 계획되지 않은 세포의 죽음으로써 불필요한 혹은 과도한 염증 반응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통증도 유발한다. 이를 복구할 만큼의 줄기세포 수는 거의 항상 모자라기 때문에 영원히 흉터로 남거나 원래의 정상적인 기능을 담당하지 못하는 기관이나 조직으로 남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분화의 마지막 단계에 위치한 최종분화된 세포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은 괴사가 아닌 세포자멸사다. 이는 계획된 과정이기 때문에 염증 반응이나 통증 같은 현상은 벌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때가 되었을 때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다른 말로 자살을 선택한다.
자살이라는 단어 때문에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할까 봐 미리 말해둔다. 이 자살은 철저하게 계획된 과정이라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아니, 자살을 미리 계획한다고? 더 끔찍한데?” 아쉽게도 그런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곤란하다. 세포 세상에서의 자살은 가장 아름다운 희생으로 해석해야 한다.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문제가 아니라 세포가 태어나고 죽는 일련의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사람의 자살과는 달리 순리에 따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세포자살이 순리를 따르는 것일까? 최종분화된 세포가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즉 불멸할 수 있다면, 굳이 줄기세포가 새로운 세포를 만들기 위해 분열하고 분화하는 데 에너지를 사용할 필요도 없을 텐데 말이다. 이런 질문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은 한 가지를 간과했다. 세포 역시 노화된다는 것. 그렇다. 세포도 늙는다. 아무리 최종분화된 세포가 각 기관과 조직에서 가장 전문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하더라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말이다. 그들의 기능은 점점 줄어들다가 상실되게 된다. 세포의 기능 상실은 곧 그 세포가 속한 기관이나 조직의 기능 상실을 의미하고, 그 기관과 조직의 기능 상실은 우리 몸의 기능 상실을 뜻하기 때문에 최종분화된 세포는 기능이 상실되기 이전에 스스로를 죽이기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끝까지 묵묵히 제 할 일을 다하다가 조용히 사라지고 새로운 세포가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포자멸사라고 불리는 세포 자살은 계획된 세포 죽음이며 우리 몸이 항상 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과정이다.

AI 생성 이미지
실제로 세포자멸사 과정이 원활히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 몸은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죽을 때가 되어 기능을 제대로 담당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좀비처럼 계속 살아있는 상태를 생물학자들은 세포 노화(senescence) 상태라고 부른다. 이들은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염증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고, 인접한 세포들에게 영향을 끼쳐 노화 상태를 전염시킨다고도 알려져 있다. 수명이 다 된 세포는 자신이 가야 할 때를 알고 낙엽이 되어야 아름다운 것이다. 제대로 된 기능도 하지 못한 채 끝까지 버티며 그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지 않는 존재는 추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순리를 거스르며 몸 전체의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 된다.
한편, 최종분화된 세포만이 아니라 이들을 만드는 전구세포들 역시 세포분열을 하다가 DNA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우리 몸은 그 세포를 세포자멸사 방법으로 죽이기로 결정한다 (이는 p53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2월호에서 잠시 다룬 적이 있다). 그런데 이들이 죽지 않고 버티게 되면 암세포로 전환될 확률이 커진다. 고장 난 세포는 스스로 죽어야 한다. 이게 세포 세상에서의 순리다. 죽으면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것이다. 물론 멀쩡한 세포들이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세포자멸사로 많이 죽게 되면 퇴행성 질환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와 같이 우리 몸은 고장이 나거나 수명이 다하면 그 세포를 죽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세포를 다시 만들어낸다. 이 방법이 세포 세상에서는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이다. 노파심에서 한 번 더 언급하지만, 사람 세상과는 다른 원리이니 절대 오해 없길 바란다. 어떤 사람이 필요 없다고 죽이기로 결정하면 곤란할 테니까.
(5) 지혜와 믿음의 전수
최종분화된 세포가 세포자멸사로 사멸하는 과정에서 나는 어떤 숭고함을 느낀다. 자신의 할 일을 다 마치고 깨끗하게 자기 자리를 다음 세대에게 내어준 뒤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의 뒷모습에서 나는 아름답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현실의 인간 사회에서는 이런 광경을 좀처럼 보지 못하기 때문일까. 이런 모습을 보길 원하는 어떤 본능적인 소망이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인간 사회에서 지혜자라 불리는 숙련된 베테랑은 부와 권력을 독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때가 되었을 때 조용히 물러나기보다는 자기의 자리를 고수하고자 노력한다. 마치 사멸을 거부하고 멀뚱히 자리를 지키는 유해한 노화 세포처럼 말이다. 그들 중에는 불법과 불의를 동원해서라도 어떻게든 바꿀 수만 있다면 법이라도 바꾸어 자신만의 왕국을 고수하려고 하는 부류도 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대통령 중 이런 경우가 존재하지 않았는가). 그게 안 된다면 자기의 직계 자녀들에게 세습을 일삼는 경우도 허다하다. 놀라운 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로교단의 대형교회에서도 이런 장면들이 연출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 20세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명성교회의 세습 사건은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드러난 역사 말고 드러나지 않은 역사가 더 섬뜩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업과도 같은 대형교회의 세습이 언론에 많이 보도된 탓에 묻혀서 드러나지 않은 채로 자행된 세습 사건들이 관습처럼 우후죽순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습뿐인가. 은퇴의 시기를 돈으로 채색하여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추하게 만들며 그동안 숱한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존경심을 단번에 물거품이 되게 만들어 버리는 상황도 우린 직접적으로 목도했었다. 지혜자인 줄 알았는데 결국 자본주의의 노예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마음속엔 배신감 비슷한 감정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떠돌게 된다. 허망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예수를 머리로 하고 있는 교회에서 이렇게 세상의 자본주의 논리가 그대로 흐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완벽하게 성취되고 있는 광경을 목도하며 나는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왜 나는 세포 세상보다 못한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깊은 수치를 느끼게 되는 걸까. 왜 인간은 최종분화된 세포처럼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며 떠나지 못하는 걸까. 뭐가 그렇게 미련이 남아서 마지막 뒷모습까지 추하게 만드는 걸까. 돈과 권력의 맛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감히 공감할 수 없는 영역이라서 그런 걸까.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비록 소수이지만 최종분화된 세포처럼 후대를 위해 헌신하며 아름답게 자리를 비우는 분들도 계신다. 본인이 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모든 게 하나님이 하시고 주신 거라는 고백을 남기시면서 말이다. 수년 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라는 문구를 커다랗게 걸고 실제로는 목회자의 자격 문제와 무리한 건축 문제로 큰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교회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목회자들이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이름도 빛도 없이 존재하고 계시다는 사실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다행이라는 말도 모자랄 정도로 귀한 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교회에서 믿음이 성장하고 신앙을 배운 성도들이 얼마나 복된 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유명한 문장이 등장하는 이형기의 시 '낙화'에서의 저 뒷모습은 실제 떨어지는 꽃이나 이별하는 사람들만을 나타내지는 않을 것이다. 낙화는 최종분화된 세포의 마지막 모습과도 같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이게 순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있다고 해서 순리를 거스를 수 있는 건 아니다. 노화 세포가 되거나 암세포로 변질되지 말고 조용히 세포자멸사로 스스로 사멸을 택하는 최종분화된 세포가 되어 주시길 모든 은퇴하시는 분들에게 간절히 기원한다. 그 뒷모습은 당신의 마지막 모습으로 각인될 테니.
세포를 통해 배우는 영적 묵상 (4)
세포의 사멸, 믿음과 지혜의 전수
글 | 김영웅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 선임연구원
과신대 정회원, 후원이사
분화한다는 건 세포 세상에서 피라미드의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으로의 흐름이라고 했다. 불멸성과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불멸의 반대말은 필멸이고, 필멸의 최종단계는 사멸이다. 피라미드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하지만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며, 우리 몸에서 가장 전문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최종분화된 세포는 사멸을 앞둔 세포다. 곧 죽어 없어질 세포라는 말이다. 이번 호에서는 분화를 세포 사멸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면서 신앙적인 성찰과 통찰을 얻도록 하자.
4. 사멸
(1) 분화의 기원
분화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사멸을 논하기 이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분화의 시작 혹은 분화의 기원에 대해서다.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는 건 모든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궁극의 줄기세포인 수정란은 모든 세포의 어머니이자 세포 세상에서는 신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만능분화능)도 불멸성과 마찬가지로 수정란이 스스로 획득한 게 아니다. 불멸성과 함께 처음부터 주어진 능력이다. 그래서 나는 불멸성의 기원과 마찬가지로 분화의 기원 역시 창조주의 손에서 찾는다. 과학은 어떻게 수정란이 불멸하고 어떻게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지 그 기작을 밝혀줄 뿐 그것의 기원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어디 그뿐인가. 지구의 기원, 우주의 기원, 그리고 생명의 기원 등 모든 기원 문제는 과학의 영역을 훌쩍 벗어난다. 특히 그것이 무에서 유로의 생성을 의미한다면 말이다. 지구나 우주의 기원은 보통 빅뱅 같은 이론으로 설명하지만 그것조차 무에서 유로의 생성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빅뱅 이론은 우주가 초기 상태 이후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대한, 즉 초기 팽창에 대한 이론이며, 고온과 고밀도의 초기 상태가 전제되어야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빅뱅 이론이란 무엇인가가 갖춰진 상태에서 시작하는 이론이다.
생명의 기원 문제도 비슷하다.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의 기원조차 과학은 설명하지 못한다. 세포뿐인가. 그것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유기물과 무기물의 생성도 과학은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가 흔히 진화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해 준다고 착각하기도 하는데, 이는 창조와 진화를 양극에 놓고 불필요한 대립각을 세우는 반지성적인 이들에 의해 생겨난 어이없는 오해일 뿐이다. 생물 진화의 기본은 DNA의 변이다. 즉 생물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DNA가 먼저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과학은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가장 기본적인 무기물과 유기물의 생성조차 설명하지 못한다. 하물며 DNA이겠는가.
요컨대 빅뱅이론이나 진화이론 모두 우주나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것은 과학의 한계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의 본질과 정체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과학은 철학이나 신학이 묻고 설명하는 문제들에는 관심도 없을뿐더러 해결할 능력도 없다. 다만,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가정이 주어지면 그것이 어떻게 변화하고 변화할 것인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주로 관찰과 실험)를 바탕으로 해서 원리를 파악해 내려고 부단히 애쓰며 그 원리를 바탕으로 예측하고 설명한다. 과학은 어떤 현상에 대한 최선의 합리적인 설명일 뿐이다. 진리가 아니다. 그래서 언제든 틀린 것으로 증명될 수 있다. 과학의 영역 안에서는 자정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과학의 진정한 아름다움이자 과학을 신뢰할 수 있는 핵심적인 이유일지 모른다. 어쨌거나 여기에서는 이것만은 꼭 기억하자. 과학의 시작은 무가 아닌 유라는 것.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무엇인가가 처음부터 주어진 상태에서 과학은 비로소 일하기 시작한다는 것.
(2) 자랑이 아닌 감사가 시작
이런 맥락에서 보면, 줄기세포의 불멸성과 만능분화능이 처음부터 주어졌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저 하나의 난자와 하나의 정자가 만나 핵융합이 일어났을 뿐인데 불멸성이 주어지고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이 동시에 주어졌다는 건 생물학자의 눈에도 그저 놀라운 사건일 뿐이다. 그 어떤 생물학자도 미리 예측할 수 없고 디자인할 수 없는 신비에 속한다. 생물학자는 수정란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이 두 능력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고 어떻게 쓰이는지 밝혀냈을 따름이다. 이미 주어진 '유'에서 시작하여 연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불멸성과 만능분화능이 처음부터 주어졌다는 사실로부터 나는 신앙적인 성찰을 한 가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감사'에 대해서다. 스스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가 나는 '감사'라고 생각한다. 자랑이 아닌 감사. 신적인 능력을 소유하게 된 존재가 자신의 그 능력을 자랑하지 않고 그 능력에 대해, 그 능력을 주셨다고 믿는 존재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자랑이 아닌 감사가 시작이라면 그 능력을 사용하는 자세나 태도뿐 아니라 목적과 방향까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와 내가 속한 단체만을 생각하는 이기성이 아닌 이웃과 이웃을 포함한 모든 세상을 위한 이타성이 발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창조주가 만드신 창조세계를 돌보라고 첫 인간 아담을 만드신 배경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자랑이 아닌 감사로 창조세계를 위해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아담이 우리들 인간 아닌가.
그러나 많은 인간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타고난 능력을 감사하기는커녕 자랑하기에 급급하다. 어떻게든 남들보다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자기에게 주어졌다면 그것을 자기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데 여념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라서 그런 걸까. 그 특별함은 개인의 자본을 늘리는 목적으로 써야만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학습 없이도 작동한다. 오로지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타고난 자질과 능력이 모두 사용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창조주의 존재를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런 부류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현실을 목도하며 또 한 번 수치심과 우울함을 느낀다. 타고난 부, 타고난 미모, 타고난 천재성 등 타고난 여러 자질들과 능력들을 대할 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스도인으로서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과연 그것들을 주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라면 그것들을 왜 주셨는지 진지하게 묻고 생각해 봐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윤리 문제로 사유를 확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능력을 가지고 어떤 이는 자랑하고 어떤 이는 감사한다. 이 두 사람의 행보와 열매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마찬가지 원리가 흐른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방인들, 그리고 여러 다양한 소수자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마찬가지 원리가 흐른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백성,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오로지 은혜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우리의 능력으로 획득한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선물해 주신 은혜라는 것을. 타고난 모든 것에 대한 바른 자세는 감사여야 하고, 그 정체성을 지닌 이는 모든 일을 감사로 시작하고 감사로 진행하며 감사로 끝마쳐야 한다는 것을. 감사야말로 인간의 죄성을 이겨내는 선하고 강력한 무기일 수 있다는 것을. 존재의 모든 시작도, 그리스도인의 모든 시작도 마찬가지로 감사여야 한다는 것을 우린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분화의 마지막인 사멸을 논하기 전에 분화의 기원을 언급해야만 했던 이유다. 자신의 기원을 잊은 존재의 끝은 사적이고 본능적인 욕망, 즉 죄성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시작은 은혜와 감사다. 잊지 말자.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출애굽기 22장 21절)
(3) 최종분화된 세포
일반적으로 지혜자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유년층이나 아직 독립된 가정을 가지지 않은 청년층이 아닌 나이가 지긋이 든 노년층에서 찾게 된다. 누구든 자기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상의하고 싶은 사람을 고르라고 하면 지식은 물론 경험이 많이 축적된 어른들 가운데 고르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들은 수명의 관점에서 보면 죽음에 가장 가까운 부류에 속한다. 비로소 지혜자의 반열에 서게 되었는데 곧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숙명에 처해지는 것이다. 마치 사멸을 앞둔 최종분화된 세포들처럼.
최종분화된 세포는 각 기관과 조직에 존재하는 성체줄기세포가 수차례의 세포분열과 분화를 거듭하여 생성된 마지막 단계의 세포다. 줄기세포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면 그에 대한 대답으로 “최종분화된 세포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실 이 세포들이 바로 전문적인 생물학 지식 없이 상식적으로 들어서 알고 있는 세포들의 정체이기도 하다. ‘간세포’라고 하면 생물학자에게는 간줄기세포를 포함하여 여러 분화단계의 세포들과 다양한 종류의 최종분화된 세포들을 총칭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만 (간세포는 한 종류가 아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단순하게 간의 기능을 담당하는 세포 정도로 인식된다. ‘뇌세포’도 마찬가지다. 뉴런이라는 용어를 들어서 알고 있는 사람은 있어도 뉴런 이외의 뇌세포 종류가 뇌를 이루는 세포 중 더 많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뇌세포도 여러 종류다). 간이나 뇌뿐만이 아니다. 모든 조직과 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까지 잘 알려진 세포들의 이름은 주로 ‘최종분화된 세포’들로부터 비롯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들의 수가 가장 많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이들이 각 기관과 조직을 대표하는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우리 몸을 이루는 총 세포 개수는 약 37조 개라고 했다. 이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세포는 혈액세포(혈구)인데, 전체의 약 80퍼센트 정도다. 그러니까 약 30조 개 정도의 수를 자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혈액세포 중 최종분화된 세포들은 어떤 종류가 있을까? 우리가 잘 아는 혈액세포들의 이름을 떠올려보자.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정도일 것이다. 맞다. 이렇게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 가지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백혈구의 경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감염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세균 같은 적과 싸우는 최전방 보초병인 중성구 (백혈구 중 약 50-70퍼센트), 항체를 만들거나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 등을 그들의 일부 조각을 분석한 뒤 정밀하게 인식하여 공격하는 림프구 (백혈구 중 약 20-40퍼센트, 림프구도 크게 세 가지로 다시 나뉜다: B세포, T세포, NK세포), 혈액 중에 있다가 조직 안으로 이동하면 대식세포가 되며 세포자멸사를 거친 세포의 조각난 시체나 여러 이물질들을 먹어 치우며 림프구에게 적의 정보를 전달하는 단핵구 (백혈구 중 약 2-8퍼센트), 알레르기 반응 때 급격히 수가 늘어나며 기생충과 같은 적을 공격할 때 독성 물질을 분비하여 염증 반응을 조절하는 호산구 (백혈구 중 약 1-4퍼센트), 그리고 역시 알레르기 반응 때 히스타민을 분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혈관을 확장시키기도 하는 호염구 (백혈구 중 약 0.5-1퍼센트), 이렇게 5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종류가 많을 뿐이지 백혈구는 혈소판보다도, 적혈구보다도 훨씬 적은 수를 차지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최종분화된 세 종류의 세포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세포는 적혈구다. 피가 빨갛지 않은가. 실제로 피 한 방울을 떨어뜨려 납작하게 커버 글라스를 덮고 현미경 아래에서 보면 거의 대부분의 세포가 적혈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적혈구 다음으로 혈소판 수가 많고, 백혈구 수는 가장 적다.
백혈구의 종류
출처: https://www.snuh.org/upload/health/nMedInfo/20190218_1603_251.jpg
그렇다면 줄기세포는 혈액세포 중에서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0.0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은 병리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주로 골수 안에 숨어 있다. 그러면서 어떤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그것을 인식한 즉시 다시 정상적인 혈액세포의 종류와 수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즉 줄기세포는 평소에는 항상성을 유지하는 일 이외에는 일을 거의 하지 않다가 응급한 일이 생기거나 문제가 발생할 때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이들의 목적은 다시 정상 수준의 혈액세포의 종류와 수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했다시피 정상적인 상태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세포가 최종분화된 세포이기 때문에 이들을 다시 그만큼 만들어내는 것이 줄기세포가 위기 상황에서 하는 일의 요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4) 세포 사멸
이렇게 최선을 다하여 다시 정상 수준의 세포 수와 비율을 회복하게 되면 줄기세포는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줄기세포들의 대부분은 다시 잠이 든다고 할 수 있다. 평온한 상황에서 각 기관과 조직에 극소수로 존재하는 성체줄기세포의 대부분 (약 80-95퍼센트)은 실제로 잠을 자고 있는 상태다. 세포분열을 하기 위해서는 세포주기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들은 세포주기로부터 빠져나와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생명만 유지한 채 자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자고 있는 줄기세포의 비율은 노화가 일어날수록 줄어든다는 점이다. 그래서 노년에 이르면, 줄기세포가 잠에서 깨어나 활발하게 복구해야 하는 응급 상황이 발생해도 동원되는 줄기세포 수가 적어 정상 수준으로의 회복이 더디거나 불가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상시에 잠자고 있는 줄기세포들을 우린 뭐라고 탓하면 안 된다. 그들의 존재를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 더 많은 성체줄기세포들이 자고 있어야 더 젊다고도 할 수 있겠다.
반면, 이렇게 줄기세포들이 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최종분화된 세포는 더 이상 세포분열을 하지 못하며 더 이상 분화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처해진다. 분열도 분화도 못한다는 말은 세포 세상에서 사멸을 앞두고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위치한 줄기세포와 정반대 위치에 존재하는 이들의 운명은 죽음인 것이다. 이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전문적인 기능을 담당하다가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한다.
세포 사멸에 대해 들여다볼 차례다. 세포의 죽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세포자멸사, 영어로는 Apoptosis, 혹은 Programmed cell death(계획된 세포 죽음), 다른 하나는 괴사(Necrosis)이다. 괴사는 갑작스러운 외부 자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벌어지는 죽음을 말한다. 피부가 화상을 입을 때 피부세포는 괴사 된다. 독소에 노출될 때 노출된 세포는 괴사 된다. 혈액이 공급되지 않을 때 심장의 근육세포들이 괴사 된다. 괴사는 전혀 계획되지 않은 세포의 죽음으로써 불필요한 혹은 과도한 염증 반응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통증도 유발한다. 이를 복구할 만큼의 줄기세포 수는 거의 항상 모자라기 때문에 영원히 흉터로 남거나 원래의 정상적인 기능을 담당하지 못하는 기관이나 조직으로 남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분화의 마지막 단계에 위치한 최종분화된 세포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은 괴사가 아닌 세포자멸사다. 이는 계획된 과정이기 때문에 염증 반응이나 통증 같은 현상은 벌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때가 되었을 때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다른 말로 자살을 선택한다.
자살이라는 단어 때문에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할까 봐 미리 말해둔다. 이 자살은 철저하게 계획된 과정이라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아니, 자살을 미리 계획한다고? 더 끔찍한데?” 아쉽게도 그런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곤란하다. 세포 세상에서의 자살은 가장 아름다운 희생으로 해석해야 한다.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문제가 아니라 세포가 태어나고 죽는 일련의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사람의 자살과는 달리 순리에 따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세포자살이 순리를 따르는 것일까? 최종분화된 세포가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즉 불멸할 수 있다면, 굳이 줄기세포가 새로운 세포를 만들기 위해 분열하고 분화하는 데 에너지를 사용할 필요도 없을 텐데 말이다. 이런 질문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은 한 가지를 간과했다. 세포 역시 노화된다는 것. 그렇다. 세포도 늙는다. 아무리 최종분화된 세포가 각 기관과 조직에서 가장 전문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하더라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말이다. 그들의 기능은 점점 줄어들다가 상실되게 된다. 세포의 기능 상실은 곧 그 세포가 속한 기관이나 조직의 기능 상실을 의미하고, 그 기관과 조직의 기능 상실은 우리 몸의 기능 상실을 뜻하기 때문에 최종분화된 세포는 기능이 상실되기 이전에 스스로를 죽이기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끝까지 묵묵히 제 할 일을 다하다가 조용히 사라지고 새로운 세포가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포자멸사라고 불리는 세포 자살은 계획된 세포 죽음이며 우리 몸이 항상 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과정이다.
AI 생성 이미지
실제로 세포자멸사 과정이 원활히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 몸은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죽을 때가 되어 기능을 제대로 담당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좀비처럼 계속 살아있는 상태를 생물학자들은 세포 노화(senescence) 상태라고 부른다. 이들은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염증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고, 인접한 세포들에게 영향을 끼쳐 노화 상태를 전염시킨다고도 알려져 있다. 수명이 다 된 세포는 자신이 가야 할 때를 알고 낙엽이 되어야 아름다운 것이다. 제대로 된 기능도 하지 못한 채 끝까지 버티며 그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지 않는 존재는 추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순리를 거스르며 몸 전체의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 된다.
한편, 최종분화된 세포만이 아니라 이들을 만드는 전구세포들 역시 세포분열을 하다가 DNA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우리 몸은 그 세포를 세포자멸사 방법으로 죽이기로 결정한다 (이는 p53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2월호에서 잠시 다룬 적이 있다). 그런데 이들이 죽지 않고 버티게 되면 암세포로 전환될 확률이 커진다. 고장 난 세포는 스스로 죽어야 한다. 이게 세포 세상에서의 순리다. 죽으면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것이다. 물론 멀쩡한 세포들이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세포자멸사로 많이 죽게 되면 퇴행성 질환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와 같이 우리 몸은 고장이 나거나 수명이 다하면 그 세포를 죽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세포를 다시 만들어낸다. 이 방법이 세포 세상에서는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이다. 노파심에서 한 번 더 언급하지만, 사람 세상과는 다른 원리이니 절대 오해 없길 바란다. 어떤 사람이 필요 없다고 죽이기로 결정하면 곤란할 테니까.
(5) 지혜와 믿음의 전수
최종분화된 세포가 세포자멸사로 사멸하는 과정에서 나는 어떤 숭고함을 느낀다. 자신의 할 일을 다 마치고 깨끗하게 자기 자리를 다음 세대에게 내어준 뒤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의 뒷모습에서 나는 아름답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현실의 인간 사회에서는 이런 광경을 좀처럼 보지 못하기 때문일까. 이런 모습을 보길 원하는 어떤 본능적인 소망이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인간 사회에서 지혜자라 불리는 숙련된 베테랑은 부와 권력을 독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때가 되었을 때 조용히 물러나기보다는 자기의 자리를 고수하고자 노력한다. 마치 사멸을 거부하고 멀뚱히 자리를 지키는 유해한 노화 세포처럼 말이다. 그들 중에는 불법과 불의를 동원해서라도 어떻게든 바꿀 수만 있다면 법이라도 바꾸어 자신만의 왕국을 고수하려고 하는 부류도 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대통령 중 이런 경우가 존재하지 않았는가). 그게 안 된다면 자기의 직계 자녀들에게 세습을 일삼는 경우도 허다하다. 놀라운 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로교단의 대형교회에서도 이런 장면들이 연출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 20세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명성교회의 세습 사건은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드러난 역사 말고 드러나지 않은 역사가 더 섬뜩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업과도 같은 대형교회의 세습이 언론에 많이 보도된 탓에 묻혀서 드러나지 않은 채로 자행된 세습 사건들이 관습처럼 우후죽순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습뿐인가. 은퇴의 시기를 돈으로 채색하여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추하게 만들며 그동안 숱한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존경심을 단번에 물거품이 되게 만들어 버리는 상황도 우린 직접적으로 목도했었다. 지혜자인 줄 알았는데 결국 자본주의의 노예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마음속엔 배신감 비슷한 감정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떠돌게 된다. 허망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예수를 머리로 하고 있는 교회에서 이렇게 세상의 자본주의 논리가 그대로 흐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완벽하게 성취되고 있는 광경을 목도하며 나는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왜 나는 세포 세상보다 못한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깊은 수치를 느끼게 되는 걸까. 왜 인간은 최종분화된 세포처럼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며 떠나지 못하는 걸까. 뭐가 그렇게 미련이 남아서 마지막 뒷모습까지 추하게 만드는 걸까. 돈과 권력의 맛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감히 공감할 수 없는 영역이라서 그런 걸까.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비록 소수이지만 최종분화된 세포처럼 후대를 위해 헌신하며 아름답게 자리를 비우는 분들도 계신다. 본인이 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모든 게 하나님이 하시고 주신 거라는 고백을 남기시면서 말이다. 수년 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라는 문구를 커다랗게 걸고 실제로는 목회자의 자격 문제와 무리한 건축 문제로 큰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교회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목회자들이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이름도 빛도 없이 존재하고 계시다는 사실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다행이라는 말도 모자랄 정도로 귀한 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교회에서 믿음이 성장하고 신앙을 배운 성도들이 얼마나 복된 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유명한 문장이 등장하는 이형기의 시 '낙화'에서의 저 뒷모습은 실제 떨어지는 꽃이나 이별하는 사람들만을 나타내지는 않을 것이다. 낙화는 최종분화된 세포의 마지막 모습과도 같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이게 순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있다고 해서 순리를 거스를 수 있는 건 아니다. 노화 세포가 되거나 암세포로 변질되지 말고 조용히 세포자멸사로 스스로 사멸을 택하는 최종분화된 세포가 되어 주시길 모든 은퇴하시는 분들에게 간절히 기원한다. 그 뒷모습은 당신의 마지막 모습으로 각인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