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 칼럼
인간은 무엇으로 평가되는가
- 왜곡된 인간관과 기독교적 교육의 회복
글 | 정승화
기독교 대안학교 교사
교육은 '어떤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일관성을 갖춘 교육이라면, 교육의 방법이나 내용을 논하기에 앞서 이미 자신들이 지향하는 인간상을 전제하고 있다.
문제는 많은 교육 현장에서 인간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교육과정과 방법, 평가를 먼저 설계한다는 데 있다. 무엇을 가르칠지, 어떻게 가르칠지, 어떻게 평가할지는 분주하게 결정하지만, 정작 그 모든 선택이 어떤 인간을 길러내기 위한 것인지는 깊이 묻지 않는다. 그 결과 교육은 방향을 잃은 채 기능적으로만 작동하게 된다.

@사진: Unsplash의 Nguyen Dang Hoang Nhu
이렇게 출발한 교육은 결국 의도하지 않은 열매를 맺는다. 점수로 평가하면 점수에 민감한 인간이 길러지고, 경쟁을 강조하면 타인을 이겨야만 존재를 증명하는 인간이 만들어진다. 순종만을 강조하면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인간이 자라난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세운 인간상이 없더라도, 교육은 언제나 어떤 인간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교육의 결과를 돌아보면, 그 안에는 우리가 원했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선택해 온 방식이 빚어낸 인간상이 드러난다. 결국 문제는 교육의 기술이 아니라, 그 교육이 전제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비전의 부재다.
오늘날 학교에서 학생은 성적과 수행 능력, 그리고 결과를 중심으로 평가된다. 점수는 곧 능력이 되고, 능력은 곧 그 학생의 고유한 가치로 이어진다. 이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그릇된 관점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인간은 점점 '결과로 환원된 존재'가 된다. 다양한 가능성과 고유성은 뒤로 밀려나고, 특정한 성취가 그 사람 전체를 설명하는 기준이 된다. 학생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그 결과에 따라 만족하거나 좌절한다. 교육은 성장의 과정이라기보다 서열을 확인하는 구조로 작동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성장했는가'가 아니라 '어디에 위치하는가'가 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다. 인간은 무엇을 이루었기 때문에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존귀한 존재다. 동시에 인간은 죄로 인해 한계를 가진 불완전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실패는 배제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되어야 할 현실이 된다. 더 나아가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는 존재이며, 현재의 모습으로 고정되지 않고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 이 관점에서 인간은 결과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계속 형성되어 가는 존재다.

@사진: Unsplash의 note thanun
이러한 인간 이해는 교육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교육은 더 이상 특정 기준에 맞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을 온전히 바라보고 기다리는 과정이 된다. 성취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이 존재의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학생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부르심을 가진 존재로 이해된다. 따라서 교육은 동일한 기준으로 줄 세우는 일이 아니라, 각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라도록 돕는 일이 된다.
만약 이러한 인간관에 근거하여 교육 내용과 과정, 평가를 성찰하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에 이미 자리 잡은 왜곡된 교육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게 된다. 그 결과, 의도하지 않은 인간상이 교육을 통해 그대로 길러진다.
결국 교육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인간에 대한 관점이다. 인간을 결과로 보는가, 존재로 보는가에 따라 교육은 전혀 다른 과정과 결과를 거친다. 인간을 성취로 판단한다면 교육은 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해한다면, 교육은 회복의 과정이 된다. 그 지점에 설 때야말로 비로소 교육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 된다.
과신 칼럼
인간은 무엇으로 평가되는가
- 왜곡된 인간관과 기독교적 교육의 회복
글 | 정승화
기독교 대안학교 교사
교육은 '어떤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일관성을 갖춘 교육이라면, 교육의 방법이나 내용을 논하기에 앞서 이미 자신들이 지향하는 인간상을 전제하고 있다.
문제는 많은 교육 현장에서 인간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교육과정과 방법, 평가를 먼저 설계한다는 데 있다. 무엇을 가르칠지, 어떻게 가르칠지, 어떻게 평가할지는 분주하게 결정하지만, 정작 그 모든 선택이 어떤 인간을 길러내기 위한 것인지는 깊이 묻지 않는다. 그 결과 교육은 방향을 잃은 채 기능적으로만 작동하게 된다.
@사진: Unsplash의 Nguyen Dang Hoang Nhu
이렇게 출발한 교육은 결국 의도하지 않은 열매를 맺는다. 점수로 평가하면 점수에 민감한 인간이 길러지고, 경쟁을 강조하면 타인을 이겨야만 존재를 증명하는 인간이 만들어진다. 순종만을 강조하면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인간이 자라난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세운 인간상이 없더라도, 교육은 언제나 어떤 인간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교육의 결과를 돌아보면, 그 안에는 우리가 원했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선택해 온 방식이 빚어낸 인간상이 드러난다. 결국 문제는 교육의 기술이 아니라, 그 교육이 전제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비전의 부재다.
오늘날 학교에서 학생은 성적과 수행 능력, 그리고 결과를 중심으로 평가된다. 점수는 곧 능력이 되고, 능력은 곧 그 학생의 고유한 가치로 이어진다. 이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그릇된 관점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인간은 점점 '결과로 환원된 존재'가 된다. 다양한 가능성과 고유성은 뒤로 밀려나고, 특정한 성취가 그 사람 전체를 설명하는 기준이 된다. 학생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그 결과에 따라 만족하거나 좌절한다. 교육은 성장의 과정이라기보다 서열을 확인하는 구조로 작동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성장했는가'가 아니라 '어디에 위치하는가'가 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다. 인간은 무엇을 이루었기 때문에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존귀한 존재다. 동시에 인간은 죄로 인해 한계를 가진 불완전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실패는 배제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되어야 할 현실이 된다. 더 나아가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는 존재이며, 현재의 모습으로 고정되지 않고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 이 관점에서 인간은 결과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계속 형성되어 가는 존재다.
@사진: Unsplash의 note thanun
이러한 인간 이해는 교육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교육은 더 이상 특정 기준에 맞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을 온전히 바라보고 기다리는 과정이 된다. 성취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이 존재의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학생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부르심을 가진 존재로 이해된다. 따라서 교육은 동일한 기준으로 줄 세우는 일이 아니라, 각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라도록 돕는 일이 된다.
만약 이러한 인간관에 근거하여 교육 내용과 과정, 평가를 성찰하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에 이미 자리 잡은 왜곡된 교육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게 된다. 그 결과, 의도하지 않은 인간상이 교육을 통해 그대로 길러진다.
결국 교육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인간에 대한 관점이다. 인간을 결과로 보는가, 존재로 보는가에 따라 교육은 전혀 다른 과정과 결과를 거친다. 인간을 성취로 판단한다면 교육은 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해한다면, 교육은 회복의 과정이 된다. 그 지점에 설 때야말로 비로소 교육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