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 칼럼
한 과학자의 사순절 묵상
글 | 윤세진
과학과신학의대화 편집이사
숙명여자대학교 강사
들어가며…
나는 생물교육을 전공했고 가르치고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믿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신앙인이다. 그래서 내 속에는 과학과 신앙이 함께 존재하고 있으며, 이 둘은 내 생각과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과신뷰의 여러 내용들은 과학에 대한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 글에서는 과학에 대한 내용을 떠나서 내 신앙의 삶을 조그맣게 나마 나누고 싶다.
올해 사순절과 부활절은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지나갔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사순절은 내게 큰 의미가 없었다. 부활절 직전의 종려주일과 고난주간,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절.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부활절의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목사님이 소개한 “톰 라이트의 사순절과 부활절”이라는 책의 도움을 받아, 사순절부터 시작해서 부활절까지 이르는 기간을 제대로 지내보자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해서 부활절에 이르는 동안, 매일을 말씀과 그에 대한 묵상, 생각해볼 거리 들을 제시해 주었다. 나는 매일 해당 부분을 읽으면서 말씀에 대한 묵상과 톰 라이트의 생각을 읽고 나서, 그에 대한 내 생각들을 정리하곤 했었다. 아래 내용은 그것들을 읽으면서 눈에 띄는 몇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내년 사순절에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린다.
사순절과 부활절 - 3일째
▶27쪽 -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통해 그분의 영으로 일하신다면, 그 사람의 삶은 온갖 시험을 거치면서 점점 더 그분의 영으로 빚어질 것이다. 예수님이 광야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면, 이후 그분의 사역은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 28쪽 -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지위는 예수님을 화려한 명성의 길이 아니라 겸손과 섬김, 그리고 마침내 죽음이라는 낯선 길로 이끈다.
▶ 28쪽 - 그리스도인의 소명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은 매력적인 거짓말로 속삭이는 음성을 알아채고,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과 구분하며, 성경이 주는 단순하지만 직접적인 무기를 사용해 그 거짓을 진리로 반박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광야에서 예수가 당한 유혹 또는 시험은 지금 나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들이다. 육신의 필요, 명예나 교만에 대한 유혹, 내가 손을 뻗기만 한다면 얻을 수 있는 여러가지 것들. 어쩌면 그런 것들에서 하나님의 뜻과 음성을 분별하는 것은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내 욕망을 굴복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다. 내 속의 수많은 욕망들이 수시로 비집고 나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내 뜻대로 살라고 아우성치기 때문이며,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양 교묘함을 지니고 나오기 때문이며, 때로 나 자신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 그 달콤함을 맛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의 광야 시험과 승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내 욕망을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아래 복종시킬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시기에.. 예수는 겸손과 섬김,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결코 잊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시험에서 이겼다.
사순절과 부활절 - 6일째
▶ 48쪽 - 용서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다. 그러나 그 값이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차선책에 안주하길 좋아한다. 예수님은 이미 그 값을 온전히 치르기 위한 길을 걷고 계셨고, 그보다 값싼 용서는 어떤 것도 제시하지 않으셨다.
보통 어려운 일에 닥치게 되면 최선책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기보다 쉽게,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막상 그 방법으로 일이 해결되고 나면 후회를 약간 남기면서도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잘 된거지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예수는 자신이 치러야 하는 대가를 온전히 치르기 위해 가야 할 길을 걸어가셨다. 그 결과로 모든 사람들을 위한 대속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만일 더 쉬운 길을 찾아 갔더라면, 그 결과는... 값을 온전히 치르는 것, 그것을 통해 온전한 해결책을 만드는 것. 그것이 예수를 제대로 따라 걷는 방법이 아닐까..
사순절과 부활절 - 7일째
▶ 53쪽 - 누가가 오늘날 우리에게 거듭 전하려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우리가 어떤 문제나 고통을 겪고 있든, 세상의 문제 속으로 그분의 손을 더럽히며 들어오시는 예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필요하며, 복음이 바로 우리에게 그것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누가가 전개하는 이야기에 깊이 들어갈수록,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 우리 곁으로 가만히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보게 된다. 그분은 우리가 떨리는 손으로 그분을 만지는 것을 반기시며, 성경의 핵심 명령을 들려주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저 예수님을 바라보거나 생각에 동의하는 것 정도로 그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삶 "속으로" 들어오시도록 예수님을 초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영역으로 예수님을 초대할 것인가?'를 계속 질문하고 답하고, 들어오신 그분에게 기꺼이 순종하는 것이 요구된다.
사순절과 부활절 -8일째
▶ 60쪽 - 만약 당신이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의 연민에 동참하며, 그분을 섬기는 데 사용될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진 것을 드리라는 부르심을 느낀다면, 예수님 역시 이 부르심에 응답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진: Unsplash의 Jametlene Reskp
예수님의 부르심은 자신의 희생을 기본으로 한다. 나에게 예수님이 어떤 것을 원하신다는 부르심이 느껴진다면, 예수님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이미 자신을 희생하셨음을 기억하고, 나 역시 그 부르심에 따르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반드시 나의 것을 희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 신앙 생활의 여정을 되돌아볼 때, 기꺼이 희생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럴때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기 보다는 나 이외의 것에서 원인을 찾곤 했었고, 그 결과는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 되어 사는 모습으로 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보다는, 내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드릴 수 있는 작은 희생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희생을 기꺼이 치르도록 하자.
사순절과 부활절 10일째
▶ 70-71쪽 - 예수님을 향해 외쳐라. 예수님이 당신을 부르시면 모든 것을 버려두고 그분께 나아가라. 예수님이 무엇을 해 주길 원하느냐고 물으시면, 솔직하게 말하라. 피해자 역할이 주는 작고 이기적인 안락함을 돌아보지 말라. 자유를 구하라. 구원을 구하라. 그리고 그것을 얻었으면,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 그 분을 따를 준비를 하라.
피해자 역할이 주는 작고 이기적인 안락함을 돌아보지 말라. - 이 말이 가슴팍에 꽂힌다. 내 속에 나의 이기적인 안락함을 추구했던 모습이 보인다. 이 글 다음에 다음 글을 붙이고 싶다. "그리고 따라 나가라!!"
사순절과 부활절 - 17일 째
▶ 124쪽 - 그때나 지금이나 그 모든 것의 열쇠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를 태동시키신다. 그러나 그것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작정 휩쓸고 가지 않는다. 새로운 세계의 열쇠는 믿음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 그분이 하나님의 메시아이심을, 곧 세상 속으로, 우리의 세상 속으 로, 우리의 아픔과 슬픔과 죽음 속으로 들어오시는 분임을 믿는 것이다.

사진: Unsplash의 Edward Cisneros
얼마 전까지 내가 배우고 실천하려고 한 신앙은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 즉, 나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고 나는 그만 따라가면 된다는 매우 피동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내가 선택할 것은 둘 중의 하나였다. 세상 아니면 교회. 중간의 회색 지대는 없었다. 그 속에서 내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는 듯이 보였다. 교회에 속해 있을 때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었지만, 세상에 속해 있을 때는 절망과 죄책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반대로 교회에서는 세상에 대한 염려가 여전히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고, 세상에서 즐기는 기쁨도 있었다. '도대체 신앙은 무엇일까?'에 대해 더 깊이 나아가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나는 회색지대로 나아가는 느낌이 든다. 신앙은 무 자르듯 싹둑 잘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다양해 질 수 있는 것임을 새삼 느낀다. 그 속에서 느끼는 갈등과 고민 속에서 내 모습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흑백세계에서는 갈등도 없어 편안하지만, 회색지대는 늘 갈등이 동행하게 된다. "무작정 휩쓸고 가지 않는다"는 이 말은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졌음을 의미하고, 그에 대한 책임 또한 나에게 묻는 것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선택하며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사순절과 부활절 - 21, 22일 째
요한복음 15:9-17, 누가복음 6:27-36
서로 사랑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하나님이 그런 하신 분이기시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고사하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내가 믿는 예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어제, 오늘 두 인용 성경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서로 사랑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며, 자기를 죽이려는 원수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예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렇지 못하고, 그래서 내 삶에서 예수의 사랑이나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다시 고백하는 말.. "주여!~ 저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
나가면서…
일반 사람들은 물론이고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반응 중 하나가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말을 할때는 바로 수정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반응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나도 상처를 받기도 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과신 칼럼
한 과학자의 사순절 묵상
글 | 윤세진
과학과신학의대화 편집이사
숙명여자대학교 강사
들어가며…
나는 생물교육을 전공했고 가르치고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믿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신앙인이다. 그래서 내 속에는 과학과 신앙이 함께 존재하고 있으며, 이 둘은 내 생각과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과신뷰의 여러 내용들은 과학에 대한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 글에서는 과학에 대한 내용을 떠나서 내 신앙의 삶을 조그맣게 나마 나누고 싶다.
올해 사순절과 부활절은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지나갔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사순절은 내게 큰 의미가 없었다. 부활절 직전의 종려주일과 고난주간,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절.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부활절의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목사님이 소개한 “톰 라이트의 사순절과 부활절”이라는 책의 도움을 받아, 사순절부터 시작해서 부활절까지 이르는 기간을 제대로 지내보자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해서 부활절에 이르는 동안, 매일을 말씀과 그에 대한 묵상, 생각해볼 거리 들을 제시해 주었다. 나는 매일 해당 부분을 읽으면서 말씀에 대한 묵상과 톰 라이트의 생각을 읽고 나서, 그에 대한 내 생각들을 정리하곤 했었다. 아래 내용은 그것들을 읽으면서 눈에 띄는 몇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내년 사순절에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린다.
사순절과 부활절 - 3일째
▶27쪽 -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통해 그분의 영으로 일하신다면, 그 사람의 삶은 온갖 시험을 거치면서 점점 더 그분의 영으로 빚어질 것이다. 예수님이 광야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면, 이후 그분의 사역은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 28쪽 -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지위는 예수님을 화려한 명성의 길이 아니라 겸손과 섬김, 그리고 마침내 죽음이라는 낯선 길로 이끈다.
▶ 28쪽 - 그리스도인의 소명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은 매력적인 거짓말로 속삭이는 음성을 알아채고,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과 구분하며, 성경이 주는 단순하지만 직접적인 무기를 사용해 그 거짓을 진리로 반박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광야에서 예수가 당한 유혹 또는 시험은 지금 나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들이다. 육신의 필요, 명예나 교만에 대한 유혹, 내가 손을 뻗기만 한다면 얻을 수 있는 여러가지 것들. 어쩌면 그런 것들에서 하나님의 뜻과 음성을 분별하는 것은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내 욕망을 굴복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다. 내 속의 수많은 욕망들이 수시로 비집고 나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내 뜻대로 살라고 아우성치기 때문이며,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양 교묘함을 지니고 나오기 때문이며, 때로 나 자신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 그 달콤함을 맛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의 광야 시험과 승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내 욕망을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아래 복종시킬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시기에.. 예수는 겸손과 섬김,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결코 잊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시험에서 이겼다.
사순절과 부활절 - 6일째
▶ 48쪽 - 용서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다. 그러나 그 값이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차선책에 안주하길 좋아한다. 예수님은 이미 그 값을 온전히 치르기 위한 길을 걷고 계셨고, 그보다 값싼 용서는 어떤 것도 제시하지 않으셨다.
보통 어려운 일에 닥치게 되면 최선책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기보다 쉽게,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막상 그 방법으로 일이 해결되고 나면 후회를 약간 남기면서도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잘 된거지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예수는 자신이 치러야 하는 대가를 온전히 치르기 위해 가야 할 길을 걸어가셨다. 그 결과로 모든 사람들을 위한 대속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만일 더 쉬운 길을 찾아 갔더라면, 그 결과는... 값을 온전히 치르는 것, 그것을 통해 온전한 해결책을 만드는 것. 그것이 예수를 제대로 따라 걷는 방법이 아닐까..
사순절과 부활절 - 7일째
▶ 53쪽 - 누가가 오늘날 우리에게 거듭 전하려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우리가 어떤 문제나 고통을 겪고 있든, 세상의 문제 속으로 그분의 손을 더럽히며 들어오시는 예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필요하며, 복음이 바로 우리에게 그것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누가가 전개하는 이야기에 깊이 들어갈수록,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 우리 곁으로 가만히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보게 된다. 그분은 우리가 떨리는 손으로 그분을 만지는 것을 반기시며, 성경의 핵심 명령을 들려주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저 예수님을 바라보거나 생각에 동의하는 것 정도로 그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삶 "속으로" 들어오시도록 예수님을 초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영역으로 예수님을 초대할 것인가?'를 계속 질문하고 답하고, 들어오신 그분에게 기꺼이 순종하는 것이 요구된다.
사순절과 부활절 -8일째
▶ 60쪽 - 만약 당신이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의 연민에 동참하며, 그분을 섬기는 데 사용될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진 것을 드리라는 부르심을 느낀다면, 예수님 역시 이 부르심에 응답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진: Unsplash의 Jametlene Reskp
예수님의 부르심은 자신의 희생을 기본으로 한다. 나에게 예수님이 어떤 것을 원하신다는 부르심이 느껴진다면, 예수님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이미 자신을 희생하셨음을 기억하고, 나 역시 그 부르심에 따르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반드시 나의 것을 희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 신앙 생활의 여정을 되돌아볼 때, 기꺼이 희생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럴때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기 보다는 나 이외의 것에서 원인을 찾곤 했었고, 그 결과는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 되어 사는 모습으로 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보다는, 내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드릴 수 있는 작은 희생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희생을 기꺼이 치르도록 하자.
사순절과 부활절 10일째
▶ 70-71쪽 - 예수님을 향해 외쳐라. 예수님이 당신을 부르시면 모든 것을 버려두고 그분께 나아가라. 예수님이 무엇을 해 주길 원하느냐고 물으시면, 솔직하게 말하라. 피해자 역할이 주는 작고 이기적인 안락함을 돌아보지 말라. 자유를 구하라. 구원을 구하라. 그리고 그것을 얻었으면,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 그 분을 따를 준비를 하라.
피해자 역할이 주는 작고 이기적인 안락함을 돌아보지 말라. - 이 말이 가슴팍에 꽂힌다. 내 속에 나의 이기적인 안락함을 추구했던 모습이 보인다. 이 글 다음에 다음 글을 붙이고 싶다. "그리고 따라 나가라!!"
사순절과 부활절 - 17일 째
▶ 124쪽 - 그때나 지금이나 그 모든 것의 열쇠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를 태동시키신다. 그러나 그것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작정 휩쓸고 가지 않는다. 새로운 세계의 열쇠는 믿음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 그분이 하나님의 메시아이심을, 곧 세상 속으로, 우리의 세상 속으 로, 우리의 아픔과 슬픔과 죽음 속으로 들어오시는 분임을 믿는 것이다.
사진: Unsplash의 Edward Cisneros
얼마 전까지 내가 배우고 실천하려고 한 신앙은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 즉, 나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고 나는 그만 따라가면 된다는 매우 피동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내가 선택할 것은 둘 중의 하나였다. 세상 아니면 교회. 중간의 회색 지대는 없었다. 그 속에서 내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는 듯이 보였다. 교회에 속해 있을 때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었지만, 세상에 속해 있을 때는 절망과 죄책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반대로 교회에서는 세상에 대한 염려가 여전히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고, 세상에서 즐기는 기쁨도 있었다. '도대체 신앙은 무엇일까?'에 대해 더 깊이 나아가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나는 회색지대로 나아가는 느낌이 든다. 신앙은 무 자르듯 싹둑 잘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다양해 질 수 있는 것임을 새삼 느낀다. 그 속에서 느끼는 갈등과 고민 속에서 내 모습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흑백세계에서는 갈등도 없어 편안하지만, 회색지대는 늘 갈등이 동행하게 된다. "무작정 휩쓸고 가지 않는다"는 이 말은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졌음을 의미하고, 그에 대한 책임 또한 나에게 묻는 것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선택하며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사순절과 부활절 - 21, 22일 째
요한복음 15:9-17, 누가복음 6:27-36
서로 사랑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하나님이 그런 하신 분이기시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고사하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내가 믿는 예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어제, 오늘 두 인용 성경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서로 사랑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며, 자기를 죽이려는 원수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예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렇지 못하고, 그래서 내 삶에서 예수의 사랑이나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다시 고백하는 말.. "주여!~ 저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
나가면서…
일반 사람들은 물론이고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반응 중 하나가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말을 할때는 바로 수정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반응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나도 상처를 받기도 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