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위험을 증언하는 교회:
위번시 지하수 오염 사건과 트리니티 성공회 교회
글 | 김재상
이서교회 목사
대전대학교 겸임교수
1. 시빌 액션(A Civil Action)
1998년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시빌 액션(A Civil Action)〉은 법정 스릴러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그 안에는 훨씬 더 묵직한 질문들이 가라앉아 있다. 존 트라볼타가 연기하는 변호사 얀 슐리히트만은 거대 기업을 상대로 싸우다 모든 것을 잃어가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진짜 주인공은 변호사가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싸움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다. 소아백혈병으로 자녀를 잃은 워번(Woburn)의 어머니들이었고, 악취 나는 수돗물을 참으며 살던 이웃들이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지역 교회였다.
워번 지하수 오염 사건은 단순한 환경소송이 아니었다. 그것은 과학이 무엇이고,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시민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살아 있는 실험이었다. 그리고 그 실험의 한가운데에 교회가 있었다. 오늘날 인공지능이 일상을 재편하고, 기후위기가 창조세계를 위협하며, 과불화화합물(PFAS)과 같은 독성물질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갉아먹는 시대에, 워번 사건은 우리에게 묻는다.
“과학기술 시대에 교회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어디에 서야 하는가?”

영화 시빌액션 스틸컷
2. 위험을 먼저 감지하는 몸
1964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북쪽으로 약 16킬로미터에 자리한 워번시에 시영 급수 우물 두 개가 새로 개설되었다. G정과 H정으로 불린 이들 우물로 인구 3만 5천의 이 도시에 추가 용수를 공급하였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쳐 거대 기업들이 흘려보낸 독성 화학물질이 지하 대수층을 조용히 오염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1954년부터 1978년까지 그레이스앤컴퍼니(Grace & Company)는 워번에서 크라이오백(Cryovac) 공장을 운영하며 금속 세척과 탈지에 쓰이는 트리클로로에틸렌(TCE)과 퍼클로로에틸렌(PCE)을 토양에 무단 투기했다. 베아트리스 식품(Beatrice Foods)이 운영하는 존 라일리(John Riley) 피혁소도 마찬가지였다. 애버조나 강과 그 주변 습지를 따라 독성물질이 스며들었고, G정과 H정은 오염된 지하수를 끌어올려 워번 시민의 부엌과 욕실로 보냈다.
먼저 아이들이 쓰러졌다. 1964년이다. 노동자 계층이 주로 거주하는 낙후된 지역인 동부 워번에서 아이들이 하나둘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1964년부터 1986년 사이, 이 작은 도시에서 무려 28명의 아동이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포함한 각종 백혈병에 걸렸는데, 이는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치였다. 처음에는 아무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행정 당국은 신중했고, 기업은 책임을 부인했다.
위험을 먼저 감지한 곳은 연구소도 대학도 아니었다. 백혈병으로 아들을 잃어가던 어머니 앤 앤더슨(Anne Anderson)의 몸이었다. 그녀는 아들 지미의 병원 대기실에서, 같은 지역에 사는 다른 아이들도 같은 병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것은 느낌이 아니었다. 과학적 ‘감지’였다. 그러나 당시 누구도 그것을 과학이라고 불러주지 않았다.
영국 보건사회학자 브라운(Phil Brown)은 이런 현상을 ‘대중역학(Popular Epidemiology)’이라고 했다. 비록 전문 훈련을 받지 않았지만, 일반인은 자신의 경험과 집단 관찰을 통해 스스로 통계자료를 만들고 여러 정보를 수집하여 질병의 역학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질병을 밝혀내기 위해 전문가 자원을 어떻게 이용할지 결정할 수 있다. 앤 앤더슨의 감지는 나중에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의 마빈 젤렌(Marvin Zelen)과 스티븐 라가코스(Stephen Lagakos) 교수에 의해 통계적으로 입증되었다. 오염된 G정과 H정 급수를 더 많이 받은 가구일수록 백혈병 위험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3. 공론장이 되는 교회
앤 앤더슨의 감지가 집단 지식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했다. 브루스 영(Bruce Young)이 담임목사로 있는 트리니티 성공회 교회(Trinity Episcopal Church)가 공간을 제공했다. 처음에 앤더슨의 남편이 영 목사를 찾아와서 “아내를 좀 진정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영 목사는 앤더슨과 대화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그는 주민들을 교회로 불러 모았다. 1979년 10월 4일 저녁, 40여명의 주민들이 교회에 모였다. 영 목사는 간단한 질문이 담긴 설문지를 배포했다. 누가 백혈병에 걸렸는가. 어디에 살았는가. 어느 우물에서 오는 수돗물을 마셨는가?

위키백과 : 보스턴 트리니티 교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설문지가 돌아왔을 때, 15년에 걸쳐 12건의 백혈병 사례가 확인되었고, 대부분이 G정과 H정의 급수 구역인 동부 워번에 집중되어 있었다. 저녁 모임에서 주민들과 트리니티교회는 워번 동부 주민 대상 설문 조사를 펼쳤다. 이윽고 교회로 전화가 쇄도하였다. 영 목사는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렸는데, 백혈병 환자들뿐만이 아니었다.”라고 회상하며, “심장 질환, 간 질환 환자도 많고, 학습 장애가 있는 어린이도 많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주민들은 지도를 펴놓고 병든 어린이의 집과 급수 지역을 함께 표시했다. 그 순간 트리니티교회와 주민들은 시민 지식이 탄생하는 공론장(public sphere)을 형성했다.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에 따르면, 공론장의 핵심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공간에서 시민들이 이성적 대화를 통해 공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워번 트리니티교회는 정확히 그 역할을 수행했다. 피해 가족 모임, 주민 회의, 정보 공유, 질병 사례 정리, 그리고 행정과 언론을 향한 호소 — 이 모든 것이 교회라는 공간 안에서, 교회라는 신뢰의 자원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오염 피해자 가족과 교회가 펼친 조사와 후속 연구 결과는 매우 심각했다. 애틀랜타에 있는 연방질병통제센터는 피해가 극심한 지역을 백혈병 집단 발생 지역으로 지정했다.
영 목사는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다. “목사 칼라를 하고 전화하면 사람들이 반응했다.” 이 문장은 종교 권위가 어떻게 사회적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교회는 사회적 자본이 되어, 행정 기관과 언론 그리고 전문가에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교회는 단순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아니다. 약자의 목소리가 제도권 언어로 번역될 수 있는 플랫폼이다.
트리니티교회를 중심으로 결성된 주민 단체 FACE(For A Cleaner Environment)는 1979년 5월 애버조나강 인근에서 불법 투기된 화학물질 드럼통을 발견했으며, G정과 H정의 TCE 오염을 공식적으로 확인받았다. 이후 EPA(미국 환경보호청)가 조사를 시작했고, 1982년 여덟 가족이 그레이스앤컴퍼니와 베아트리스 식품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직접 계기가 되어, 1980년 슈퍼펀드법(CERCLA)이 제정되었다. 한 지역 교회가 제공한 저녁 모임이 미국 환경법의 역사를 바꾸어 나갔다.
4. 지식의 정치학
법정에서 피고 기업 측 전문가와 원고 주민 측 전문가는 동일한 데이터를 놓고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기업 측은 TCE가 당시 알려진 백혈병 유발물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과학적 증거는 법정에서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협상과 설득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지식이 공적 사실로 인정되는가는 순수한 과학 과정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문화적, 정치적, 제도적 과정을 거쳐 구성된다. 기업의 재력, 전문가 네트워크, 법적 절차, 언론의 관심, 시민사회의 압력 — 이 모든 것이 “무엇이 사실인가”를 결정하는 데 작용한다. 이른바 ‘시민 인식론(civic epistemology)’ 개념이다.
트리니티 성공회 교회는 바로 이런 시민 인식론이 형성되는 공간이었다. 주민의 개별 경험은 교회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집단 증언이 되었고, 이 증언은 과학적 조사를 촉발하는 공적 지식으로 변환되었다. 개인의 슬픔이 공동체 증언이 되었고, 공동체 증언은 정치적 문제 제기로, 다시 법적 소송으로, 마침내 입법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은 ‘구조적 죄(structural sin)’라는 개념을 새롭게 조명한다. 워번 사건에서 문제는 몇몇 악인이 저지른 도덕적 실패가 아니었다. 성장과 이윤을 최우선으로 삼는 산업 시스템, 기업의 이익을 묵인하거나 감추는 규제 허점, 피해자의 목소리보다 전문가의 언어를 신뢰하는 제도적 편향 — 이것이 워번 아이들을 죽인 죄의 구조였다.
웅장한 대리석 법정에서 진행된 재판 결과 역시 구조적 불평등을 그대로 반영했다. 법원은 그레이스앤컴퍼니의 오염 책임은 인정했지만, 베아트리스 식품사는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결국 그레이스앤컴퍼니는 피해 가족들과 약 800만 달러에 합의했다. 그러나 두 기업 모두 독성 오염이 백혈병을 유발했다는 인과관계를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과학이 개연성을 말할 때 법은 확실성을 요구했고, 그 간극 속에서 정의는 지연되었다. 거대 기업이 지닌 무한한 법적 자원 앞에서 유족 변호사의 사무실은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이것이 워번 지하수 오염 사건이 드러낸 또 다른 진실이다. 과학기술 위험 앞에서 개인과 공동체는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사진: Unsplash의 Sasun Bughdaryan
이 점에서 워번시 지하수 오염 사건은 환경정의(environmental justice)에 대해 질문한다. 왜 오염은 항상 가난한 자, 약한 자, 목소리 없는 자에게 먼저 발생하는가? 왜 피해자가 먼저 몸으로 오염 증거를 드러내야 위험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가? 왜 기업이 아니라 피해자가 입증 부담을 져야 하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교회의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불의에 대한 인정이다.
5. 창조세계 돌봄과 과학기술시민성
2023년 미국 EPA는 TCE의 완전 사용 금지를 제안했다. TCE는 선천성 결함과 생식 문제 그리고 소아백혈병 등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1969년부터 1986년 사이 워번에서 진단된 21건의 소아백혈병과 TCE 사이 역학 관계가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수십 년이 걸렸다. 아이들이 먼저 죽었고, 어머니들이 먼저 알았으며, 교회가 먼저 모였고, 법정에서 싸웠으며, 마침내 규제가 따라왔다. 역사의 시계는 언제나 피해자의 뒤를 따라간다.
이 긴 여정이 오늘날 교회를 비롯한 기독교 단체들에게 제기하는 바가 있다. 과학기술시민성 관점에서 스스로를 재정의해야 한다는 도전이다. 과학기술시민성이란 단순히 과학 지식을 소비하는 수동적 시민성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기술의 방향을 공적으로 질문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함께 묻고, 약자의 경험을 지식의 자원으로 인정하며, 생명 공동체의 이름으로 과학기술 정치에 참여하는 능동적 시민성이다.
워번시 트리니티 성공회 교회와 브루스 영 목사는 정확히 이 과학기술시민성의 신학적 실천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전문가를 무시하는 반과학주의도 아니었고, 기술 혁신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기술주의도 아니었다. 고통 받는 이웃이 몸으로 전하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공동체 경험을 공적 지식으로 조직하며, 제도권 과학과 대화하면서도 권력에 포획되지 않는 독립적인 시민 행위였다.
이것은, 위르겐 몰트만의 언어로 말하면, ‘창조적 제자직(creative discipleship)’이다. 창조세계를 돌보라는 명령(창 2:15)은 단순히 나무를 심고 쓰레기를 줍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창조세계를 오염시키는 구조적 불의를 고발하고, 보이지 않는 위험을 공적으로 드러내며, 생명을 위협하는 기술 시스템에 맞서는 행위를 포함한다. 어린이들이 죽어가던 병원 침대와 TCE를 흘려보내던 공장 사이 어딘가에 우리 신앙의 책임이 자리한다.
기독교계는 과학 지식을 단순하게 소비하거나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브루스 영 목사는 역학 전문가가 아니었다. 앤 앤더슨은 의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과학기술의 방향을 공적으로 질문했다. 목사는 공동체가 겪는 고통을 사회적 언어로 번역했고, 앤더슨은 어머니로서 임상 데이터를 선행했다. 이것은 신앙의 공공성이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모델이다.
워번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과 지역 주민 단체 FACE는 함께 역학 연구를 설계했다. 교회는 바로 이런 협력의 공간, 전문 지식과 생활 지식이 만나는 접점이 될 수 있다. 지역사회의 여러 기독교 단체와 과학기술 연구자가 함께 지역 환경 문제를 조사하고, 교회가 공론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워번 트리니티 성공회 교회가 보여주고 있다.
6.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워번시 지하수 오염 사건은 1970~80년대의 이야기지만, 그 사건이 던지는 질문은 오늘날 더욱 첨예하게 살아 있다. 한국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있었다. 정부 공식 6,000여명 피해자와 가족이 원인을 의심하기까지 그리고 대기업이 책임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여전히 소송은 계속되고 있다. 구미 불산 누출 사고,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 전국 각지에 스며드는 PFAS 오염 — 이 모든 것이 워번 사건이 제기했던 질문을 우리에게 다시 던진다. 위험은 먼저 몸에서 감지된다. 그리고 그 몸은 대개 가장 약한 자의 몸이다.
인공지능 확산은 또 다른 차원의 질문을 만들어낸다. AI 시스템 편향, 알고리즘이 재생산하는 불평등, 자동화로 인한 노동 소멸, 감시 자본주의 확장 — 이것들은 TCE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독성을 지닌다. 그리고 그 피해는 항상 취약한 공동체에 먼저 집중된다. 기후위기는 말할 것도 없다.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가 아니라, 가장 적게 배출하는 가난한 나라가 먼저 수몰되고 가뭄에 시달린다. 이것은 워번시 사건과 같은 구조다. 오염을 만든 자와 오염으로 죽는 자가 다르다.
이 모든 상황 앞에서 교회는 어디에 서 있는가? 많은 교회들이 과학기술 문제를 전문가의 영역으로 남겨두거나, 반대로 근거 없는 공포와 음모론의 목소리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워번 트리니티 성공회 교회가 보여준 길은 달랐다. 전문성을 존중하되 권력에 포획된 전문성을 비판하고, 시민 각자의 경험을 지식 자원으로 인정하며, 고통 받는 이웃 곁에서 공공선을 함께 추구하는 길이었다.

사진: Unsplash의 Matthew de Livera
워번 사건은 결국 이렇게 말한다. 과학기술 위험사회 시대에 교회는 단순한 종교 기관이 아니라, 생명의 편에 서서 시민 지식을 조직하고 창조세계를 돌보는 과학기술시민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과학기술과 기독교의 진정한 대화는 오염된 우물 앞에서 어떤 지식이 진실로 인정받아야 하는가를 놓고 싸우는 현장에서도, 독성물질에 노출된 어린이의 이름을 지도 위에 함께 표시하는 교회 로비에서도 계속되었다. 지도에 표시했던 작은 점들은 수십 년이 지나 TCE 전면 금지로 이어졌다. 그 점들은 과학기술과 신앙이 함께 만들어낸 지식이었다.
기고
위험을 증언하는 교회:
위번시 지하수 오염 사건과 트리니티 성공회 교회
글 | 김재상
이서교회 목사
대전대학교 겸임교수
1. 시빌 액션(A Civil Action)
1998년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시빌 액션(A Civil Action)〉은 법정 스릴러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그 안에는 훨씬 더 묵직한 질문들이 가라앉아 있다. 존 트라볼타가 연기하는 변호사 얀 슐리히트만은 거대 기업을 상대로 싸우다 모든 것을 잃어가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진짜 주인공은 변호사가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싸움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다. 소아백혈병으로 자녀를 잃은 워번(Woburn)의 어머니들이었고, 악취 나는 수돗물을 참으며 살던 이웃들이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지역 교회였다.
워번 지하수 오염 사건은 단순한 환경소송이 아니었다. 그것은 과학이 무엇이고,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시민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살아 있는 실험이었다. 그리고 그 실험의 한가운데에 교회가 있었다. 오늘날 인공지능이 일상을 재편하고, 기후위기가 창조세계를 위협하며, 과불화화합물(PFAS)과 같은 독성물질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갉아먹는 시대에, 워번 사건은 우리에게 묻는다.
“과학기술 시대에 교회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어디에 서야 하는가?”
영화 시빌액션 스틸컷
2. 위험을 먼저 감지하는 몸
1964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북쪽으로 약 16킬로미터에 자리한 워번시에 시영 급수 우물 두 개가 새로 개설되었다. G정과 H정으로 불린 이들 우물로 인구 3만 5천의 이 도시에 추가 용수를 공급하였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쳐 거대 기업들이 흘려보낸 독성 화학물질이 지하 대수층을 조용히 오염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1954년부터 1978년까지 그레이스앤컴퍼니(Grace & Company)는 워번에서 크라이오백(Cryovac) 공장을 운영하며 금속 세척과 탈지에 쓰이는 트리클로로에틸렌(TCE)과 퍼클로로에틸렌(PCE)을 토양에 무단 투기했다. 베아트리스 식품(Beatrice Foods)이 운영하는 존 라일리(John Riley) 피혁소도 마찬가지였다. 애버조나 강과 그 주변 습지를 따라 독성물질이 스며들었고, G정과 H정은 오염된 지하수를 끌어올려 워번 시민의 부엌과 욕실로 보냈다.
먼저 아이들이 쓰러졌다. 1964년이다. 노동자 계층이 주로 거주하는 낙후된 지역인 동부 워번에서 아이들이 하나둘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1964년부터 1986년 사이, 이 작은 도시에서 무려 28명의 아동이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포함한 각종 백혈병에 걸렸는데, 이는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치였다. 처음에는 아무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행정 당국은 신중했고, 기업은 책임을 부인했다.
위험을 먼저 감지한 곳은 연구소도 대학도 아니었다. 백혈병으로 아들을 잃어가던 어머니 앤 앤더슨(Anne Anderson)의 몸이었다. 그녀는 아들 지미의 병원 대기실에서, 같은 지역에 사는 다른 아이들도 같은 병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것은 느낌이 아니었다. 과학적 ‘감지’였다. 그러나 당시 누구도 그것을 과학이라고 불러주지 않았다.
영국 보건사회학자 브라운(Phil Brown)은 이런 현상을 ‘대중역학(Popular Epidemiology)’이라고 했다. 비록 전문 훈련을 받지 않았지만, 일반인은 자신의 경험과 집단 관찰을 통해 스스로 통계자료를 만들고 여러 정보를 수집하여 질병의 역학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질병을 밝혀내기 위해 전문가 자원을 어떻게 이용할지 결정할 수 있다. 앤 앤더슨의 감지는 나중에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의 마빈 젤렌(Marvin Zelen)과 스티븐 라가코스(Stephen Lagakos) 교수에 의해 통계적으로 입증되었다. 오염된 G정과 H정 급수를 더 많이 받은 가구일수록 백혈병 위험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3. 공론장이 되는 교회
앤 앤더슨의 감지가 집단 지식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했다. 브루스 영(Bruce Young)이 담임목사로 있는 트리니티 성공회 교회(Trinity Episcopal Church)가 공간을 제공했다. 처음에 앤더슨의 남편이 영 목사를 찾아와서 “아내를 좀 진정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영 목사는 앤더슨과 대화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그는 주민들을 교회로 불러 모았다. 1979년 10월 4일 저녁, 40여명의 주민들이 교회에 모였다. 영 목사는 간단한 질문이 담긴 설문지를 배포했다. 누가 백혈병에 걸렸는가. 어디에 살았는가. 어느 우물에서 오는 수돗물을 마셨는가?
위키백과 : 보스턴 트리니티 교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설문지가 돌아왔을 때, 15년에 걸쳐 12건의 백혈병 사례가 확인되었고, 대부분이 G정과 H정의 급수 구역인 동부 워번에 집중되어 있었다. 저녁 모임에서 주민들과 트리니티교회는 워번 동부 주민 대상 설문 조사를 펼쳤다. 이윽고 교회로 전화가 쇄도하였다. 영 목사는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렸는데, 백혈병 환자들뿐만이 아니었다.”라고 회상하며, “심장 질환, 간 질환 환자도 많고, 학습 장애가 있는 어린이도 많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주민들은 지도를 펴놓고 병든 어린이의 집과 급수 지역을 함께 표시했다. 그 순간 트리니티교회와 주민들은 시민 지식이 탄생하는 공론장(public sphere)을 형성했다.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에 따르면, 공론장의 핵심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공간에서 시민들이 이성적 대화를 통해 공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워번 트리니티교회는 정확히 그 역할을 수행했다. 피해 가족 모임, 주민 회의, 정보 공유, 질병 사례 정리, 그리고 행정과 언론을 향한 호소 — 이 모든 것이 교회라는 공간 안에서, 교회라는 신뢰의 자원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오염 피해자 가족과 교회가 펼친 조사와 후속 연구 결과는 매우 심각했다. 애틀랜타에 있는 연방질병통제센터는 피해가 극심한 지역을 백혈병 집단 발생 지역으로 지정했다.
영 목사는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다. “목사 칼라를 하고 전화하면 사람들이 반응했다.” 이 문장은 종교 권위가 어떻게 사회적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교회는 사회적 자본이 되어, 행정 기관과 언론 그리고 전문가에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교회는 단순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아니다. 약자의 목소리가 제도권 언어로 번역될 수 있는 플랫폼이다.
트리니티교회를 중심으로 결성된 주민 단체 FACE(For A Cleaner Environment)는 1979년 5월 애버조나강 인근에서 불법 투기된 화학물질 드럼통을 발견했으며, G정과 H정의 TCE 오염을 공식적으로 확인받았다. 이후 EPA(미국 환경보호청)가 조사를 시작했고, 1982년 여덟 가족이 그레이스앤컴퍼니와 베아트리스 식품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직접 계기가 되어, 1980년 슈퍼펀드법(CERCLA)이 제정되었다. 한 지역 교회가 제공한 저녁 모임이 미국 환경법의 역사를 바꾸어 나갔다.
4. 지식의 정치학
법정에서 피고 기업 측 전문가와 원고 주민 측 전문가는 동일한 데이터를 놓고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기업 측은 TCE가 당시 알려진 백혈병 유발물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과학적 증거는 법정에서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협상과 설득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지식이 공적 사실로 인정되는가는 순수한 과학 과정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문화적, 정치적, 제도적 과정을 거쳐 구성된다. 기업의 재력, 전문가 네트워크, 법적 절차, 언론의 관심, 시민사회의 압력 — 이 모든 것이 “무엇이 사실인가”를 결정하는 데 작용한다. 이른바 ‘시민 인식론(civic epistemology)’ 개념이다.
트리니티 성공회 교회는 바로 이런 시민 인식론이 형성되는 공간이었다. 주민의 개별 경험은 교회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집단 증언이 되었고, 이 증언은 과학적 조사를 촉발하는 공적 지식으로 변환되었다. 개인의 슬픔이 공동체 증언이 되었고, 공동체 증언은 정치적 문제 제기로, 다시 법적 소송으로, 마침내 입법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은 ‘구조적 죄(structural sin)’라는 개념을 새롭게 조명한다. 워번 사건에서 문제는 몇몇 악인이 저지른 도덕적 실패가 아니었다. 성장과 이윤을 최우선으로 삼는 산업 시스템, 기업의 이익을 묵인하거나 감추는 규제 허점, 피해자의 목소리보다 전문가의 언어를 신뢰하는 제도적 편향 — 이것이 워번 아이들을 죽인 죄의 구조였다.
웅장한 대리석 법정에서 진행된 재판 결과 역시 구조적 불평등을 그대로 반영했다. 법원은 그레이스앤컴퍼니의 오염 책임은 인정했지만, 베아트리스 식품사는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결국 그레이스앤컴퍼니는 피해 가족들과 약 800만 달러에 합의했다. 그러나 두 기업 모두 독성 오염이 백혈병을 유발했다는 인과관계를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과학이 개연성을 말할 때 법은 확실성을 요구했고, 그 간극 속에서 정의는 지연되었다. 거대 기업이 지닌 무한한 법적 자원 앞에서 유족 변호사의 사무실은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이것이 워번 지하수 오염 사건이 드러낸 또 다른 진실이다. 과학기술 위험 앞에서 개인과 공동체는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사진: Unsplash의 Sasun Bughdaryan
이 점에서 워번시 지하수 오염 사건은 환경정의(environmental justice)에 대해 질문한다. 왜 오염은 항상 가난한 자, 약한 자, 목소리 없는 자에게 먼저 발생하는가? 왜 피해자가 먼저 몸으로 오염 증거를 드러내야 위험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가? 왜 기업이 아니라 피해자가 입증 부담을 져야 하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교회의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불의에 대한 인정이다.
5. 창조세계 돌봄과 과학기술시민성
2023년 미국 EPA는 TCE의 완전 사용 금지를 제안했다. TCE는 선천성 결함과 생식 문제 그리고 소아백혈병 등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1969년부터 1986년 사이 워번에서 진단된 21건의 소아백혈병과 TCE 사이 역학 관계가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수십 년이 걸렸다. 아이들이 먼저 죽었고, 어머니들이 먼저 알았으며, 교회가 먼저 모였고, 법정에서 싸웠으며, 마침내 규제가 따라왔다. 역사의 시계는 언제나 피해자의 뒤를 따라간다.
이 긴 여정이 오늘날 교회를 비롯한 기독교 단체들에게 제기하는 바가 있다. 과학기술시민성 관점에서 스스로를 재정의해야 한다는 도전이다. 과학기술시민성이란 단순히 과학 지식을 소비하는 수동적 시민성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기술의 방향을 공적으로 질문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함께 묻고, 약자의 경험을 지식의 자원으로 인정하며, 생명 공동체의 이름으로 과학기술 정치에 참여하는 능동적 시민성이다.
워번시 트리니티 성공회 교회와 브루스 영 목사는 정확히 이 과학기술시민성의 신학적 실천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전문가를 무시하는 반과학주의도 아니었고, 기술 혁신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기술주의도 아니었다. 고통 받는 이웃이 몸으로 전하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공동체 경험을 공적 지식으로 조직하며, 제도권 과학과 대화하면서도 권력에 포획되지 않는 독립적인 시민 행위였다.
이것은, 위르겐 몰트만의 언어로 말하면, ‘창조적 제자직(creative discipleship)’이다. 창조세계를 돌보라는 명령(창 2:15)은 단순히 나무를 심고 쓰레기를 줍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창조세계를 오염시키는 구조적 불의를 고발하고, 보이지 않는 위험을 공적으로 드러내며, 생명을 위협하는 기술 시스템에 맞서는 행위를 포함한다. 어린이들이 죽어가던 병원 침대와 TCE를 흘려보내던 공장 사이 어딘가에 우리 신앙의 책임이 자리한다.
기독교계는 과학 지식을 단순하게 소비하거나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브루스 영 목사는 역학 전문가가 아니었다. 앤 앤더슨은 의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과학기술의 방향을 공적으로 질문했다. 목사는 공동체가 겪는 고통을 사회적 언어로 번역했고, 앤더슨은 어머니로서 임상 데이터를 선행했다. 이것은 신앙의 공공성이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모델이다.
워번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과 지역 주민 단체 FACE는 함께 역학 연구를 설계했다. 교회는 바로 이런 협력의 공간, 전문 지식과 생활 지식이 만나는 접점이 될 수 있다. 지역사회의 여러 기독교 단체와 과학기술 연구자가 함께 지역 환경 문제를 조사하고, 교회가 공론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워번 트리니티 성공회 교회가 보여주고 있다.
6.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워번시 지하수 오염 사건은 1970~80년대의 이야기지만, 그 사건이 던지는 질문은 오늘날 더욱 첨예하게 살아 있다. 한국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있었다. 정부 공식 6,000여명 피해자와 가족이 원인을 의심하기까지 그리고 대기업이 책임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여전히 소송은 계속되고 있다. 구미 불산 누출 사고,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 전국 각지에 스며드는 PFAS 오염 — 이 모든 것이 워번 사건이 제기했던 질문을 우리에게 다시 던진다. 위험은 먼저 몸에서 감지된다. 그리고 그 몸은 대개 가장 약한 자의 몸이다.
인공지능 확산은 또 다른 차원의 질문을 만들어낸다. AI 시스템 편향, 알고리즘이 재생산하는 불평등, 자동화로 인한 노동 소멸, 감시 자본주의 확장 — 이것들은 TCE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독성을 지닌다. 그리고 그 피해는 항상 취약한 공동체에 먼저 집중된다. 기후위기는 말할 것도 없다.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가 아니라, 가장 적게 배출하는 가난한 나라가 먼저 수몰되고 가뭄에 시달린다. 이것은 워번시 사건과 같은 구조다. 오염을 만든 자와 오염으로 죽는 자가 다르다.
이 모든 상황 앞에서 교회는 어디에 서 있는가? 많은 교회들이 과학기술 문제를 전문가의 영역으로 남겨두거나, 반대로 근거 없는 공포와 음모론의 목소리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워번 트리니티 성공회 교회가 보여준 길은 달랐다. 전문성을 존중하되 권력에 포획된 전문성을 비판하고, 시민 각자의 경험을 지식 자원으로 인정하며, 고통 받는 이웃 곁에서 공공선을 함께 추구하는 길이었다.
사진: Unsplash의 Matthew de Livera
워번 사건은 결국 이렇게 말한다. 과학기술 위험사회 시대에 교회는 단순한 종교 기관이 아니라, 생명의 편에 서서 시민 지식을 조직하고 창조세계를 돌보는 과학기술시민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과학기술과 기독교의 진정한 대화는 오염된 우물 앞에서 어떤 지식이 진실로 인정받아야 하는가를 놓고 싸우는 현장에서도, 독성물질에 노출된 어린이의 이름을 지도 위에 함께 표시하는 교회 로비에서도 계속되었다. 지도에 표시했던 작은 점들은 수십 년이 지나 TCE 전면 금지로 이어졌다. 그 점들은 과학기술과 신앙이 함께 만들어낸 지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