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 칼럼] 어둠 속에 켜는 한 자루 촛불 (정삼희)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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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 칼럼

어둠 속에 켜는 한 자루 촛불


글 | 정삼희

신도중앙교회 담임목사

과학과 신학의 대화 이사


  저는 얼마 전 서울에 있는 한 대형 교회가 운영하는 수양관에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진행된 목회자 리트릿에 참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이 센터에는 서울 본 교회의 지교회라는 간판도 걸려 있었습니다. 가톨릭에 비해 침묵의 영성에 기반한 안식과 기도의 시간을 보낼만한 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개신교회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이 센터의 존재가 반가웠습니다. 교회의 영적 전통과 영성 형성에 관해 마음을 같이하는 삼십여 분의 목회자들과 보내는 시간은 참으로 의미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서인 성찬 예식을 위해 채플을 방문한 저에게 어떤 목사님들이 물어오셨습니다. “목사님, 저 그림이 맞는 건가요?” 제가 과신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아시는 듯했습니다. 예배당 벽에, 그러니까 예배 공간 안에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고, 거기에는 지구가 주전 4,000년 전에 시작되었다는 연대표가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그 수양관과 교회에 대한 좋은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채플 로비에는 그랜드캐니언 탐사 사진이 걸려 있기도 했습니다. 소위 ‘우리나라 창조 과학의 본산’이라 알려진 그 교회는 수양관에도 창조 과학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과학과 신학의 대화’가 올해 설립 1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 일환으로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10년을 생각하는 포럼을 엽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이사회, 그리고 목회자 모임에서는 ‘그래도 한국교회의 분위기는 변하고 있다’는 희망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가 유신진화론을 이단으로 규정하면서 우리 과신대 가족들의 마음도 무거워졌습니다. 사실 주위 목회자들과 이야기 나눠 보면 여전히 ‘과학과 신학의 대화’라는 주제는 관심 밖이거나 아니면 교회에서 부담스러워 꺼내기 힘든 담론인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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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생성 이미지


  그런데 저는 지금 언급한 교단 차원과 교회 차원의 문제들, 즉 ‘과학과 신학의 문제’야 말로  우리 과신대가 존재해야만 하는, 그리고 움직여 나가야만 하는 이유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고민하고 연구하고 알리다보면 분명 상황은 나아질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빨리 나아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나아지는 듯하다가도 언제든 다시 나빠질 겁니다. 이번 성결교회 사건처럼 말씀입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바로 역사입니다. 작년, 과신대 목회자 모임에서는 니컬러스 스펜서의 『마지스테리아: 과학과 종교, 그 얽히고설킨 2천년 이야기』를 함께 읽었습니다. 이 책은 기독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가 과학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도 설명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이천년의 이야기에서 배웠습니다. “이 땅에서 창조 과학은 사라지지 않겠구나.” 과학과 종교 사이가 얽히고설켜 온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고, 이 문제는 결코 깔끔하게 풀릴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저의 이 결론은 이미 출판사가 이 책을 소개하는 첫 번째 문장에 담겨있었습니다. 


이 책을 소개하는 출판사의 글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과학과 종교의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두 영역이 서로 침범하지 말고 자기 영역에만 집중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지도 오래되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돌아봤을 때 이는 가능한 적도, 가능할 수도 없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창조 과학이 이 땅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 저의 마음을 무겁게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생각은 오히려 저를 편안하게 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이 문제가 깔끔하게 정리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저는 낙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제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누군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완벽한 교회를 만들어보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오히려 완벽한 교회를 만들겠다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그 의욕 때문에 자기 스스로 무너지거나, 자기 자신이 교회의 문제 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기는 완벽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말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결코 완벽한 교회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완벽한 교회를 만들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을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교회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채 완벽한 교회를 만들어 나가는 발걸음을 계속합니다. 


  저는 우리 과신대 운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대신 겸손하게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몫을 감당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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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의 Paolo Nicolello


“어둠을 불평하는 것보다 한 자루의 촛불이라도 켜는 게 낫다.”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성결교단이 유신진화론을 이단으로 결정하고 맞이한 첫 주일 저는 교회 주보에 책 한 권을 소개하며 함께 읽자고 제안했습니다. 자네트 켈로그 레이가 쓴 『노아 방주에 새끼 공룡들을 태웠다고?』입니다. 저는 광고 시간에 성결교단에서 일어난 일의 본질은 교회가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니, 우리는 공부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우리 교회 독서 모임 이번 달 책 역시 이 책으로 정했습니다. 그것이 일단 제가 저의 목회 현장에서 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한 자루의 촛불이었습니다.


저와 같이 또 한 명의 목회자와 과학자가 촛불 하나씩 켜다 보면 어느새 온 세상에 무지의 구름이 걷히고 진리로 밝아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와 같이 촛불 하나 켜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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