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특집] 기독교 생태계와 과신대 10년 (박현철)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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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년 기념 포럼 특집

기독교 생태계와 과신대 10년


글 | 박현철

청어람 ARM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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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포럼 발제 PPT 자료


  과학과신학의대화(이하 과신대)가 10년을 맞았다. 한 단체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어떤 행사가 있었고, 어떤 논쟁을 통과했으며, 어떤 인물과 사건이 그 역사를 이루었는지 내부적 역사를 먼저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단체의 지난 시간의 의미가 충분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단체 내부의 성과를 넘어, 과신대가 더 넓은 한국 기독교 생태계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꼭 필요하다. 특히 과신대의 10년은 한 단체의 내부사를 넘어, ‘한국 기독교 생태계’ 안에서 일어난 변화의 한 장면으로 읽을 때 그 의미가 더 선명해진다.


  기독교를 ‘생태계’로 본다는 것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기독교를 교회, 교단, 조직과 제도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생태계가 개체들의 집합을 넘어 토양, 물, 공기, 기후, 순환, 오염과 회복의 과정을 포함하듯, 기독교 생태계도 교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신학, 신앙운동, 출판,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 소모임, 온라인 담론이 서로 얽혀 신앙의 환경을 만든다. 우리는 모두 이 생태계 안에서 믿고, 배우고, 질문하고, 때로는 상처 입고, 때로는 회복된다. 이 글에서는 이런 생태계적 관점을 바탕으로 한국 기독교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과신대의 역할과 의미를 살펴보려고 한다.


훼손된 지성 생태계와 과신대의 복원 역할

  한국 기독교 생태계 안에서도 과신대는 지성 생태계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생태계는 단순한 개체를 넘어서 각 개체가 살아가는 환경 혹은 기후와 같은 역할들을 한다. 지성 생태계에서도 범위를 좁혀 과학과 신앙의 문제만을 중심으로 보자면 과신대 이전 한국교회의 지성 생태계는 창조과학의 과도한 독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론 창조과학은 한국교회가 과학과 신앙의 문제를 외면하지 못하게 했고, 일부 평신도 과학자들에게 신앙적 참여의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기여도 있다. 하지만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대화보다 전투의 구도로 배치했고, 창조신앙을 반진화론과 동일시하는 경향도 강화했다는 부작용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창조과학은 그 기여에 비해 부작용이 더 컸다. 생태학적 언어로 표현하면, 한국교회의 지성생태계는 창조과학 때문에 갈라파고스 화와 부영양화를 함께 겪었다. 신앙을 지키려는 열망이 질문을 차단하고 지적 다양성을 약화시키며, 일부 성도와 다음 세대를 교회라는 서식지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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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포럼 발제 PPT 자료


  이런 상황에서 창조과학에 대한 비판과 자정의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2016년 과신대의 등장과 이후의 10년은 단순한 논쟁사보다는 생태계 복원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과신대는 “성경이냐 과학이냐”, “창조냐 진화냐”, “신앙이냐 무신론이냐”라는 이분법이 강조되던 지성 생태계에서 신앙과 과학, 교회와 학문, 성경 해석과 현대 지성이 만나는 전이지대(Ecotone)가 되었다. 전이지대는 숲과 습지, 강과 육지처럼 서로 다른 생태계가 만나는 경계 지역이며, 긴장과 함께 새로운 다양성이 생겨나는 자리다.  과신대는 바로 그런 경계의 공간을 만들었다.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도 과학과 대화할 수 있고, 성경을 존중하면서도 현대 과학의 성과를 정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과신대는 담론의 정수장이자 지식 순환의 통로이기도 했다. 건강한 생태계에서는 물이 고이지 않고 순환한다. 고인 물은 썩고, 과도한 영양분이 유입되면 산소가 줄어든다. 지식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담론이 특정한 내부 논리 안에 고이면 질문은 사라지고, 해석은 경직되며, 신앙은 방어적 구호로 축소된다. 과신대의 포럼, 콜로키움, 아카데미, 과신뷰, 번역 콘텐츠는 고인 담론을 다시 흐르게 했다. 현대 과학과 신학의 논의를 교회와 성도들이 접근할 수 있는 언어로 공급했고, 왜곡되거나 과잉대표된 논의를 걸러냈다. 게다가 진화론과 창세기 해석에 머물지 않고 우주론과 뇌과학, 인공지능과 기후위기, 트랜스휴머니즘 같은 과학기술 시대의 질문들도 다루며 새로운 질문을 교회의 언어로 옮기고 응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과신대가 만든 것은 거대한 담론의 장과 순환만이 아니었다. 생태계에서 모든 생명체가 거대한 숲이나 강에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쓰러진 고목, 바위 밑, 습한 가장자리, 나무껍질 사이처럼 미시 서식지(Microhabitat)는 다양한 작은 생물들의 터전이 됨으로써 생태계의 건강성과 다양성을 지탱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한국교회 지성 생태계에도 이런 미시 서식지가 필요했다. 과학과 신앙의 문제로 고민하는 성도들은 종종 교회 안에서 질문할 자리를 찾지 못했다. 진화를 배우면서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지, 문자주의를 거부하면서도 성경의 권위를 존중할 수 있는지, 과학자가 되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자녀가 과학을 배우다 신앙을 잃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은 실제적이지만 교회 안에서 충분히 환대받지 못했다.

  과신대의 북클럽, 지역모임, 목회자 모임, 청소년교육팀은 이런 질문을 가진 사람들에게 안전지대를 확보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참여자들은 일방적으로 정답을 주입받기보다 함께 읽고, 묻고, 토론하고, 해석했다. 이런 소모임은 건강한 담론이 생태계 구석구석으로 확산되도록 돕는 모세혈관이었다. 과신대의 미시 서식지는 지적 고립을 경험하던 성도들에게 “나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감각을 주었고, 질문하는 신앙이 공동체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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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포럼 발제 PPT 자료


핵심종의 가능성과 다음 10년의 과제

  과신대는 지역교회와 신학교 사이에서 한국 교회나 목회자, 성도들이 직접 감당하기 어려운 과학과 신앙의 질문을 연구하고 번역해 온 전문 영역 운동이었다. 예컨대 좋은교사운동이 교육 현장에서, 한국누가회가 의료 현장에서 신앙의 언어를 만들어왔듯, 과신대는 과학기술 영역에서 그 역할을 감당해왔다. 이 점에서 과신대는 한국교회 지성 생태계의 핵심종(Keystone Species) 역할을 하기도 했다. 생태계에서 핵심종은 수가 많지 않아도 전체 구조와 균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종을 가리킨다. 비버가 물길을 바꾸어 습지를 만들고, 그 습지가 다양한 생명체의 서식지가 되는 것처럼, 핵심종은 자신의 규모보다 훨씬 큰 생태계적 효과를 낳는다. 과신대는 아직 거대한 조직이나 대중운동으로 성장했다고 하기는 어렵고, 창조과학이 오랫동안 형성해온 저변과 비교하면 규모도 제한적이다. 하지만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재배치함으로써 교회교육, 청소년 신앙, 목회자의 설교 언어, 부모의 자녀교육, 기독교 출판과 미디어, 공공 담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교회의 지적 생태계가 다시 숨 쉴 수 있도록 물길을 바꾸고 새로운 지형을 만들었다.


과신대의 성취가 분명한 만큼 남은 과제도 많다.

  첫째로, 과신대는 이제 지식순환을 넘어 지식정착으로 나아가야 한다. 포럼과 강의, 콘텐츠로 흐르게 한 지식을 교재, 커리큘럼, 교사 훈련, 청소년 교육 모듈, 목회자 자료로 정착시키고 활발한 재생산이 일어나게 할 과제가 있다. 황폐화된 땅에 씨가 뿌려지면 먼저는 작은 풀이, 그 후는 큰 나무들이 자라며 생태계의 경관이 바뀌는 천이(Succession)과정이 진행된다. 과신대는 그런 천이 과정을 통해 더 크고 단단한 숲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지금 지나치게 논쟁적이고 대결구도로 흐르고 있는 창조과학과 유신진화론 간의 갈등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고, 대화와 소통을 더 활발하게 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신앙과 과학이 만나는 전이지대를 지역교회, 신학교, 전문 단체, 출판, 미디어와 연결된 공생 네트워크로 넓히며 과학과 신학의 활발한 대화를 위한 저변을 만들고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앞으로의 과학과 신앙의 대화는 진화론 논쟁에 머물 수 없다. 인공지능, 기후위기, 생명공학, 뇌과학 등 이미 한국교회가 마주한 의제들을 인간 이해, 창조세계, 몸, 생명, 존엄,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신학적 질문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 과정을 든든히 지지하고 함께할 교회, 성도들을 모세혈관 같은 네트워크로 연결해야 한다. 큰 산은 흙이 쌓인 것만이 아니라 깊고 강한 뿌리들이 흙을 붙잡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과신대의 뿌리가 더 든든해지면 좋겠다. 


  과학과 신앙에 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듯 한국 기독교 생태계는 여러 부분에서 망가지고 오염되었다. 이 생태계를 어떻게 건강하게 가꾸어갈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에, 과신대의 10년이 한국 기독교 생태계 안에서 신앙과 지성이 다시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준 복원 사례가 된 것 같아 감사하다. 과신대는 큰 의미에서 질문이 불신앙의 증거가 아니라 더 깊은 신앙의 입구가 될 수 있고, 과학을 배운다는 것이 신앙을 잃는 길이 아니라 창조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는 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다른 분야에서도 한국 기독교가 올바른 신앙을 회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과신대가 만들어온 회복과 가능성이 한국 기독교 생태계 곳곳에서 더 자라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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