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얽힘의 재구성 06]
과학기술혁신과 마을목회
글 | 김재상
이서교회 목사
대전대학교 겸임교수
1. 미래는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과학기술은 흔히 실험실에서 탄생한다고 여긴다. 대학과 연구소가 새로운 지식을 만들고, 기업연구개발 부서가 이를 기술로 옮기며, 정부는 정책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오랫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과학기술혁신 풍경이다. 이 구조에서 혁신은 전문가의 전유물이었고, 시민은 그 결과를 소비하거나 혜택을 받는 수혜자에 머물렀다. 과학기술과 시민 사이에는 아득한 경계가 존재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전혀 다르다. 기후위기, 저출생과 고령화, 지역소멸, 에너지 전환, 디지털 격차, 인공지능 확산 같은 과제들은 단 하나의 기술만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복합적인 사회문제다. 과학기술이나 정책, 혹은 시장의 힘 어느 하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실제 삶과 지역사회 현실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기술은, 아무리 뛰어나도 온전한 해법이 되기 어렵다.
이러한 변화는 과학기술혁신정책 방향마저 바꾸어 놓았다. 과거 혁신정책이 더 많은 연구개발 투자와 뛰어난 기술 개발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면, 오늘날 정책은 기술 그 자체보다 “이 기술이 사회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더욱 중점적으로 묻는다. 혁신의 목표가 ‘더 빠른 기술’에서 ‘더 나은 사회’로 옮겨갔고, 혁신 주체 역시 정부·기업·대학을 넘어 시민과 지역사회로 넓어지고 있다. 과학기술은 이제 연구실 안에서 완성되어 사회로 전달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새로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이 연재 〈얽힘의 재구성〉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과학기술시민성’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과학기술시민성은 시민이 과학기술을 단순히 이해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시민이 기술 방향을 함께 논의하고, 지역사회 문제를 발굴하며, 과학기술이 공공선을 향하도록 직접 참여하고 책임지는 삶의 방식이다. 다시 말해, 시민은 더 이상 혁신 대상이 아니라 혁신 당사자이자 주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교회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대게는 과학기술을 윤리적으로 평가하거나, 기술 발전을 우려 혹은 환영하는 제3자적 관찰자 자리에 서 있곤 한다. 물론 이러한 역할도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학기술혁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교회는 지역사회 안에서 주민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공동체이며, 오랫동안 돌봄과 교육, 복지와 연대의 경험을 쌓아온 공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사진: Unsplash의 axell dotcom
최근 한국 교계에서 주목받는 ‘마을목회’는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마을목회는 교회의 시선을 교회 울타리에 가두지 않고, 지역사회의 삶과 현장으로 넓힌다. 주민과 함께 지역을 살피고, 돌봄의 빈틈을 메우며, 공동체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단지 종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넘어 지역사회의 든든한 공공 파트너가 된다. 흥미롭게도 이 모습은 오늘날 과학기술혁신정책이 강조하는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이 글은 바로 이 교차점과 만남의 가능성을 다루고자 한다. 과학기술혁신정책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의 참여를 요청하고, 마을목회가 지역사회 회복을 위해 공동체적 참여를 실천한다면, 두 흐름은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 하나의 지점에서 교차한다. 지난 다섯 편의 연재를 통해 우리는 과학기술과 기독교의 관계를 가치, 창조적 제자직, 역사, 위험, 포용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던질 질문은 이것이다: 교회는 과학기술과 손잡고 어떻게 지역사회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
2. 기술을 넘어 사회를 혁신하다
오랫동안 과학기술혁신은 더 뛰어난 과학기술을 만들어내는 일로 여겨졌다. 좋은 기술이 개발되면 새로운 산업이 일어서고, 경제가 발전하며, 국민의 삶도 자연스레 나아지리라는 믿음이 혁신정책의 출발점이었다. 이른바 ‘선형 혁신 모델(linear model of innovation)’이다. 과학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면 기술이 이를 응용하고, 산업이 제품으로 생산해 내며, 사회는 그 혜택을 누린다는 사고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은 혁신을 이끄는 주체라기보다 선의의 수혜자에 가까웠다.
이 모델은 산업화 시대에 분명한 성과를 거두었다. 반도체, 자동차, 정보통신기술(ICT)의 혁신은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렸고 괄목할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복잡다단한 문제들은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풀리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 하나를 더 개발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때로는 그 기술이 또 다른 사회문제를 낳기도 한다. 인공지능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지만 일자리 불안과 차별 문제를 동반하고, 디지털 기술은 일상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새로운 소외 계층을 낳는다. 이제 과학기술은 사회 외부에 존재하며 사회를 일방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아니라, 사회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함께 진화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혁신정책의 지향점도 바꾸었다. 이제 혁신 목적은 단순한 기술 개발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가 직면한 난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최근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Mission-oriented Innovation), 전환적 혁신정책(Transformative Innovation Policy), 책임 있는 연구와 혁신(Responsible Research and Innovation) 등은 모두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혁신은 경제성장만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지속가능성, 포용성, 그리고 공공선을 실현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진: Unsplash의 Vitaly Gariev
이러한 혁신은 정부나 기업의 힘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사회문제는 지역마다, 사람마다, 삶의 현장마다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연구실에서 개발된 기술이 실제 사람들의 일상에서 어떤 의미와 영향력을 갖는지 가장 잘 아는 이들은 바로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이다. 따라서 전문가의 지식과 시민의 생활 경험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할 때 비로소 혁신이 완성된다. 과학기술 전문성과 생활세계 지혜가 결합할 때, 기술은 비로소 ‘사람을 위한 기술’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과학기술시민성은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얻는다. 그동안 과학기술시민성은 시민이 과학기술 정책에 의견을 내거나 과학문화를 누리는 수준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기술시민성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시민은 기술을 평가하는 주체를 넘어, 사회문제를 직접 정의하고 해결책을 함께 설계하는 ‘공동 혁신자(co-innovator)’로 서게 된다. 혁신은 전문가가 완성해 시민에게 전달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시민과 전문가가 손잡고 만들어가는 사회적 과정이다. 그러므로 연구자, 기업,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 지역사회, 시민단체, 그리고 종교공동체 역시 과학기술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행위자다. 결국 혁신은 기술의 문제를 넘어 관계의 문제이자, 참여의 문제이며, 공동체의 문제입니다.
이 연재에서 ‘얽힘의 재구성’이라는 키워드를 지속적으로 다뤄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학기술은 사회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고, 사회 역시 과학기술을 떼어놓고 살아갈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둘 사이의 얽힘을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다시 엮어내는 일이다. 과학기술시민성은 그 새로운 얽힘을 가능하게 하는 시민적 역량이며,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은 그 시민성이 가장 구체적으로 개화하는 실천의 장이다.
3. 마을목회, 지역사회의 혁신 플랫폼이 되다
그렇다면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은 어디에서 시작될 수 있는가? 거대한 국가 연구개발 사업이나 첨단 연구소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오늘날의 혁신정책은 오히려 그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혁신은 사람들의 삶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장, 즉 지역사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문제를 함께 발굴하고,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해결책을 모색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과 제도를 실험하는 공간이 곧 혁신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주목받는 개념이 ‘리빙랩(Living Lab, 생활실험실)’이다. 리빙랩은 기술을 완전히 완성한 뒤 시민에게 보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술의 개발과 실험 초기 단계부터 시민이 참여하는 혁신 모델이다. 주민은 단순한 사용자가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설계자(co-designer)’가 된다. 연구자는 전문지식을 제공하고, 기업은 기술을 구현하며, 지방정부는 제도적 기반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시민은 자신의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 기술이 지역사회에 정말 필요한지,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하는지를 함께 제언한다.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은 연구실이 아닌 ‘마을’에서 완성된다.
이러한 혁신 방식은 마을목회가 지향해 온 가치와 매우 닮아 있다. 마을목회는 교회 울타리 안에서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돕는 데에만 머물지 않는다. 교회가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며 마을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품어 안는다. 돌봄의 공백, 독거노인의 고립, 청소년 교육, 기후위기 대응, 지역 공동체 회복은 모두 마을목회가 깊은 관심을 기울여 온 영역이다. 교회가 단지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시혜 기관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문제를 발견하고 답을 찾아가는 공동체로 기능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을목회는 과학기술혁신정책과 만난다. 오늘날 지역사회가 직면한 과제 중 과학기술과 무관한 영역은 거의 없다. 고령화 사회 돌봄에는 디지털 헬스케어와 인공지능 기술이 요구되고, 에너지 빈곤 문제에는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관리 기술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대응에는 탄소중립 기술과 지역 단위의 에너지 전환이 필수적이며, 디지털 소외를 해소하려면 정보기술 교육과 접근성 보장이 수반되어야 한다. 사회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는 언제나 과학기술이 동반된다.

사진: Unsplash의 Ecliptic Graphic
그러나 기술 단독으로는 이러한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 인공지능 돌봄 서비스를 도입한다고 해서 어르신들의 외로움이 절로 사라지지 않으며, 태양광 설비를 설치한다고 해서 지역공동체가 자동으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사람과 공동체라는 맥락 속에서 운용될 때 비로소 진정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술 그 자체보다, 기술을 지역사회의 삶과 따뜻하게 연결해 줄 공동체다.
교회는 이러한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독특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품고 있다. 한 지역에 오랫동안 뿌리내리며 주민들과 깊은 신뢰 관계를 맺어왔고, 예배당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갖추고 있으며, 자원봉사와 돌봄의 다채로운 경험을 축적해 왔다. 아울러 다양한 세대가 한데 모이는 드문 공동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교회는 사람들 사이에 끈끈한 신뢰를 형성하는 관계망을 지니고 있다. 사회혁신 연구에서는 이러한 신뢰와 관계성을 매우 중요한 사회적 자본으로 평가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공동체의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는 지역사회 안에서 하나의 리빙랩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교회가 직접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기술 연구소가 될 필요는 없다. 그보다 지역 주민, 연구자, 지방정부, 기업을 한자리에 연결하고 함께 문제를 발굴·실험하며 배워가는 ‘공론장’ 역할을 할 수 있다. 독거노인을 위한 AI 돌봄 서비스를 지역사회와 함께 검증하고,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에너지 절약과 탄소중립 실천을 주민들과 함께 실험하는 일 등은 모두 교회가 지역 혁신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이는 단순히 교회의 사회봉사 활동을 조금 늘리는 수준의 변화가 아니다. 교회의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새로이 이해하는 일이다. 교회는 더 이상 과학기술을 멀찍이 서서 윤리적 잣대로만 평가하는 공동체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 안에서 과학기술이 공공선을 향하도록 시민들과 함께 길을 모색하는 실천적 공동체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마을목회는 과학기술혁신정책의 외곽에 위치한 부차적 활동이 아니라, 과학기술시민성이 가장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삶의 현장이다.
4. 다시, 얽힘을 재구성하며
이 연재는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했다. “과학기술과 기독교는 어떠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지금까지 두 영역의 대화는 주로 창조와 진화, 생명윤리, 인공지능 윤리 같은 개별 쟁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이러한 논의 역시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 연재는 조금 다른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과학기술과 기독교는 대립하는 두 영역이라기보다, 이미 하나의 사회 안에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행위자들이다. 따라서 두 영역의 대화는 무엇이 옳은지를 놓고 다투는 논쟁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함께 공공선을 만들어 갈 것인가’를 묻는 건설적인 대화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과학기술의 가치를 성찰했고, 창조적 제자직을 통해 과학기술시민성이 지닌 신학적 의미를 짚어보았으며, 초기 한국 기독교가 과학을 어떻게 수용하고 이해했는지 돌아보았다. 또한 기술 위험 앞에서 시민과 함께 진실을 증언했던 교회의 발자취를 살펴보았고, 과학기술의 미래를 특정 엘리트 집단이 아닌 다양한 시민이 함께 그려가야 함을 다루었다. 각기 다른 주제처럼 보이지만,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단 하나, 바로 과학기술시민성이다. 그리고 마을목회는 이 과학기술시민성이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실천될 수 있는 장이다.
돌이켜보면 〈얽힘의 재구성〉이라는 제목은 과학기술과 기독교를 새롭게 연결하자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둘은 이미 깊게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시 엮어내야 할 것은 관계 그 자체가 아니라 ‘관계 방식’이다. 과학기술이 단지 경제성장의 수단에 머물지 않고 공공선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도록, 교회가 과학기술을 두려워하거나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과 함께 미래를 개척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그 얽힘의 방식을 새로이 구성하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다.
이 과제는 과학기술과 기독교의 대화 틀에도 중요한 전환을 요구한다. 앞으로의 대화는 단편적인 윤리적 쟁점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과학기술과 기독교가 어떻게 연대하여 지역사회의 난제를 해결하고, 시민과 더불어 더욱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지를 묻는 실천적 대화로 확장되어야 한다.
기고
[얽힘의 재구성 06]
과학기술혁신과 마을목회
글 | 김재상
이서교회 목사
대전대학교 겸임교수
1. 미래는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과학기술은 흔히 실험실에서 탄생한다고 여긴다. 대학과 연구소가 새로운 지식을 만들고, 기업연구개발 부서가 이를 기술로 옮기며, 정부는 정책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오랫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과학기술혁신 풍경이다. 이 구조에서 혁신은 전문가의 전유물이었고, 시민은 그 결과를 소비하거나 혜택을 받는 수혜자에 머물렀다. 과학기술과 시민 사이에는 아득한 경계가 존재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전혀 다르다. 기후위기, 저출생과 고령화, 지역소멸, 에너지 전환, 디지털 격차, 인공지능 확산 같은 과제들은 단 하나의 기술만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복합적인 사회문제다. 과학기술이나 정책, 혹은 시장의 힘 어느 하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실제 삶과 지역사회 현실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기술은, 아무리 뛰어나도 온전한 해법이 되기 어렵다.
이러한 변화는 과학기술혁신정책 방향마저 바꾸어 놓았다. 과거 혁신정책이 더 많은 연구개발 투자와 뛰어난 기술 개발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면, 오늘날 정책은 기술 그 자체보다 “이 기술이 사회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더욱 중점적으로 묻는다. 혁신의 목표가 ‘더 빠른 기술’에서 ‘더 나은 사회’로 옮겨갔고, 혁신 주체 역시 정부·기업·대학을 넘어 시민과 지역사회로 넓어지고 있다. 과학기술은 이제 연구실 안에서 완성되어 사회로 전달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새로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이 연재 〈얽힘의 재구성〉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과학기술시민성’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과학기술시민성은 시민이 과학기술을 단순히 이해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시민이 기술 방향을 함께 논의하고, 지역사회 문제를 발굴하며, 과학기술이 공공선을 향하도록 직접 참여하고 책임지는 삶의 방식이다. 다시 말해, 시민은 더 이상 혁신 대상이 아니라 혁신 당사자이자 주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교회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대게는 과학기술을 윤리적으로 평가하거나, 기술 발전을 우려 혹은 환영하는 제3자적 관찰자 자리에 서 있곤 한다. 물론 이러한 역할도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학기술혁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교회는 지역사회 안에서 주민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공동체이며, 오랫동안 돌봄과 교육, 복지와 연대의 경험을 쌓아온 공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사진: Unsplash의 axell dotcom
최근 한국 교계에서 주목받는 ‘마을목회’는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마을목회는 교회의 시선을 교회 울타리에 가두지 않고, 지역사회의 삶과 현장으로 넓힌다. 주민과 함께 지역을 살피고, 돌봄의 빈틈을 메우며, 공동체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단지 종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넘어 지역사회의 든든한 공공 파트너가 된다. 흥미롭게도 이 모습은 오늘날 과학기술혁신정책이 강조하는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이 글은 바로 이 교차점과 만남의 가능성을 다루고자 한다. 과학기술혁신정책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의 참여를 요청하고, 마을목회가 지역사회 회복을 위해 공동체적 참여를 실천한다면, 두 흐름은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 하나의 지점에서 교차한다. 지난 다섯 편의 연재를 통해 우리는 과학기술과 기독교의 관계를 가치, 창조적 제자직, 역사, 위험, 포용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던질 질문은 이것이다: 교회는 과학기술과 손잡고 어떻게 지역사회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
2. 기술을 넘어 사회를 혁신하다
오랫동안 과학기술혁신은 더 뛰어난 과학기술을 만들어내는 일로 여겨졌다. 좋은 기술이 개발되면 새로운 산업이 일어서고, 경제가 발전하며, 국민의 삶도 자연스레 나아지리라는 믿음이 혁신정책의 출발점이었다. 이른바 ‘선형 혁신 모델(linear model of innovation)’이다. 과학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면 기술이 이를 응용하고, 산업이 제품으로 생산해 내며, 사회는 그 혜택을 누린다는 사고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은 혁신을 이끄는 주체라기보다 선의의 수혜자에 가까웠다.
이 모델은 산업화 시대에 분명한 성과를 거두었다. 반도체, 자동차, 정보통신기술(ICT)의 혁신은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렸고 괄목할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복잡다단한 문제들은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풀리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 하나를 더 개발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때로는 그 기술이 또 다른 사회문제를 낳기도 한다. 인공지능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지만 일자리 불안과 차별 문제를 동반하고, 디지털 기술은 일상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새로운 소외 계층을 낳는다. 이제 과학기술은 사회 외부에 존재하며 사회를 일방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아니라, 사회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함께 진화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혁신정책의 지향점도 바꾸었다. 이제 혁신 목적은 단순한 기술 개발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가 직면한 난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최근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Mission-oriented Innovation), 전환적 혁신정책(Transformative Innovation Policy), 책임 있는 연구와 혁신(Responsible Research and Innovation) 등은 모두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혁신은 경제성장만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지속가능성, 포용성, 그리고 공공선을 실현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진: Unsplash의 Vitaly Gariev
이러한 혁신은 정부나 기업의 힘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사회문제는 지역마다, 사람마다, 삶의 현장마다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연구실에서 개발된 기술이 실제 사람들의 일상에서 어떤 의미와 영향력을 갖는지 가장 잘 아는 이들은 바로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이다. 따라서 전문가의 지식과 시민의 생활 경험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할 때 비로소 혁신이 완성된다. 과학기술 전문성과 생활세계 지혜가 결합할 때, 기술은 비로소 ‘사람을 위한 기술’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과학기술시민성은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얻는다. 그동안 과학기술시민성은 시민이 과학기술 정책에 의견을 내거나 과학문화를 누리는 수준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기술시민성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시민은 기술을 평가하는 주체를 넘어, 사회문제를 직접 정의하고 해결책을 함께 설계하는 ‘공동 혁신자(co-innovator)’로 서게 된다. 혁신은 전문가가 완성해 시민에게 전달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시민과 전문가가 손잡고 만들어가는 사회적 과정이다. 그러므로 연구자, 기업,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 지역사회, 시민단체, 그리고 종교공동체 역시 과학기술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행위자다. 결국 혁신은 기술의 문제를 넘어 관계의 문제이자, 참여의 문제이며, 공동체의 문제입니다.
이 연재에서 ‘얽힘의 재구성’이라는 키워드를 지속적으로 다뤄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학기술은 사회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고, 사회 역시 과학기술을 떼어놓고 살아갈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둘 사이의 얽힘을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다시 엮어내는 일이다. 과학기술시민성은 그 새로운 얽힘을 가능하게 하는 시민적 역량이며,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은 그 시민성이 가장 구체적으로 개화하는 실천의 장이다.
3. 마을목회, 지역사회의 혁신 플랫폼이 되다
그렇다면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은 어디에서 시작될 수 있는가? 거대한 국가 연구개발 사업이나 첨단 연구소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오늘날의 혁신정책은 오히려 그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혁신은 사람들의 삶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장, 즉 지역사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문제를 함께 발굴하고,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해결책을 모색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과 제도를 실험하는 공간이 곧 혁신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주목받는 개념이 ‘리빙랩(Living Lab, 생활실험실)’이다. 리빙랩은 기술을 완전히 완성한 뒤 시민에게 보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술의 개발과 실험 초기 단계부터 시민이 참여하는 혁신 모델이다. 주민은 단순한 사용자가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설계자(co-designer)’가 된다. 연구자는 전문지식을 제공하고, 기업은 기술을 구현하며, 지방정부는 제도적 기반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시민은 자신의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 기술이 지역사회에 정말 필요한지,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하는지를 함께 제언한다.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은 연구실이 아닌 ‘마을’에서 완성된다.
이러한 혁신 방식은 마을목회가 지향해 온 가치와 매우 닮아 있다. 마을목회는 교회 울타리 안에서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돕는 데에만 머물지 않는다. 교회가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며 마을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품어 안는다. 돌봄의 공백, 독거노인의 고립, 청소년 교육, 기후위기 대응, 지역 공동체 회복은 모두 마을목회가 깊은 관심을 기울여 온 영역이다. 교회가 단지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시혜 기관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문제를 발견하고 답을 찾아가는 공동체로 기능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을목회는 과학기술혁신정책과 만난다. 오늘날 지역사회가 직면한 과제 중 과학기술과 무관한 영역은 거의 없다. 고령화 사회 돌봄에는 디지털 헬스케어와 인공지능 기술이 요구되고, 에너지 빈곤 문제에는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관리 기술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대응에는 탄소중립 기술과 지역 단위의 에너지 전환이 필수적이며, 디지털 소외를 해소하려면 정보기술 교육과 접근성 보장이 수반되어야 한다. 사회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는 언제나 과학기술이 동반된다.
사진: Unsplash의 Ecliptic Graphic
그러나 기술 단독으로는 이러한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 인공지능 돌봄 서비스를 도입한다고 해서 어르신들의 외로움이 절로 사라지지 않으며, 태양광 설비를 설치한다고 해서 지역공동체가 자동으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사람과 공동체라는 맥락 속에서 운용될 때 비로소 진정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술 그 자체보다, 기술을 지역사회의 삶과 따뜻하게 연결해 줄 공동체다.
교회는 이러한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독특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품고 있다. 한 지역에 오랫동안 뿌리내리며 주민들과 깊은 신뢰 관계를 맺어왔고, 예배당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갖추고 있으며, 자원봉사와 돌봄의 다채로운 경험을 축적해 왔다. 아울러 다양한 세대가 한데 모이는 드문 공동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교회는 사람들 사이에 끈끈한 신뢰를 형성하는 관계망을 지니고 있다. 사회혁신 연구에서는 이러한 신뢰와 관계성을 매우 중요한 사회적 자본으로 평가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공동체의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는 지역사회 안에서 하나의 리빙랩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교회가 직접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기술 연구소가 될 필요는 없다. 그보다 지역 주민, 연구자, 지방정부, 기업을 한자리에 연결하고 함께 문제를 발굴·실험하며 배워가는 ‘공론장’ 역할을 할 수 있다. 독거노인을 위한 AI 돌봄 서비스를 지역사회와 함께 검증하고,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에너지 절약과 탄소중립 실천을 주민들과 함께 실험하는 일 등은 모두 교회가 지역 혁신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이는 단순히 교회의 사회봉사 활동을 조금 늘리는 수준의 변화가 아니다. 교회의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새로이 이해하는 일이다. 교회는 더 이상 과학기술을 멀찍이 서서 윤리적 잣대로만 평가하는 공동체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 안에서 과학기술이 공공선을 향하도록 시민들과 함께 길을 모색하는 실천적 공동체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마을목회는 과학기술혁신정책의 외곽에 위치한 부차적 활동이 아니라, 과학기술시민성이 가장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삶의 현장이다.
4. 다시, 얽힘을 재구성하며
이 연재는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했다. “과학기술과 기독교는 어떠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지금까지 두 영역의 대화는 주로 창조와 진화, 생명윤리, 인공지능 윤리 같은 개별 쟁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이러한 논의 역시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 연재는 조금 다른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과학기술과 기독교는 대립하는 두 영역이라기보다, 이미 하나의 사회 안에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행위자들이다. 따라서 두 영역의 대화는 무엇이 옳은지를 놓고 다투는 논쟁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함께 공공선을 만들어 갈 것인가’를 묻는 건설적인 대화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과학기술의 가치를 성찰했고, 창조적 제자직을 통해 과학기술시민성이 지닌 신학적 의미를 짚어보았으며, 초기 한국 기독교가 과학을 어떻게 수용하고 이해했는지 돌아보았다. 또한 기술 위험 앞에서 시민과 함께 진실을 증언했던 교회의 발자취를 살펴보았고, 과학기술의 미래를 특정 엘리트 집단이 아닌 다양한 시민이 함께 그려가야 함을 다루었다. 각기 다른 주제처럼 보이지만,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단 하나, 바로 과학기술시민성이다. 그리고 마을목회는 이 과학기술시민성이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실천될 수 있는 장이다.
돌이켜보면 〈얽힘의 재구성〉이라는 제목은 과학기술과 기독교를 새롭게 연결하자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둘은 이미 깊게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시 엮어내야 할 것은 관계 그 자체가 아니라 ‘관계 방식’이다. 과학기술이 단지 경제성장의 수단에 머물지 않고 공공선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도록, 교회가 과학기술을 두려워하거나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과 함께 미래를 개척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그 얽힘의 방식을 새로이 구성하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다.
이 과제는 과학기술과 기독교의 대화 틀에도 중요한 전환을 요구한다. 앞으로의 대화는 단편적인 윤리적 쟁점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과학기술과 기독교가 어떻게 연대하여 지역사회의 난제를 해결하고, 시민과 더불어 더욱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지를 묻는 실천적 대화로 확장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