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 칼럼
이성이 잠든 제단에서 깨어난 괴물, 우생학
글 | 오세조
팔복루터교회 담임목사
과신대 자문위원
문학과 과학의 교차점, 그리고 이성적 보완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Émile Zola)에게 작가로서 명성을 확실하게 한 『목로주점』(1877)은 ‘유전과 환경’이라는 주제로 그가 집필한 ‘루공-마카르 총서’의 7번째 책이다. 프랑스의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의 『실험의학서설』(1865)을 접한 졸라는 과학이 실험을 통해 증명하듯, 소설 또한 실험을 통해 쓴다는 명제를 세웠다. 그는 ‘루공(Rougon)’과 ‘마카르(Macquart)’라는 가상의 두 가문을 설정하고, 이들의 혈통이 유전과 환경에 의해 어떻게 굴절되는지를 소설로 그려냈다.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부르주아 계층인 루공 가(家)와는 달리, 마카르 가(家)는 알코올 중독과 빈곤에 시달리는 하층민 계층으로 묘사된다. 『목로주점』의 주인공이자 마카르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르베즈의 비극적인 삶은 인간이 유전과 환경이라는 굴레에서 얼마나 벗어나기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문학적 실험이었다. 이처럼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유전과 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인류의 거대한 관심사이다.

사진: 에밀 졸라 『목로주점』
흥미롭게도 졸라가 영감을 얻은 1865년은 그레고어 멘델(Gregor Mendel)이 식물 잡종에 대한 실험을 학회에 발표한 해이기도 하다. 논문이 이듬해인 1866년에 출간되었으니, 2026년 올해는 멘델의 논문이 세상에 나온 지 1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사람들은 흔히 찰스 다윈 시절, 다음 세대에게 형질이 어떻게 유전되는지 설명하지 못했던 진화학의 치명적인 약점을 멘델의 유전학이 곧 해결해 주었으리라 추측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초기 진화학자들과 유전학자들은 연속적 변이와 불연속적 변이를 두고 격렬한 학문적 논쟁을 벌였다. 이 갈등은 훗날 로널드 피셔(Ronald A. Fisher)를 비롯한 집단유전학자들의 노력으로 이른바 ‘현대적 종합(Modern Synthesis)’이 이루어지면서 비로소 해소되었다. 이처럼 과학계 내부에서는 엄밀한 검증과 논쟁을 통해 이론의 결함을 보완하고 통합하는 이성적 과정이 작동하고 있었다.
왜곡된 과학의 비옥한 토양
그러나 과학의 역사에서 학문 간의 만남이 항상 이처럼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만을 낳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종교가 과학에 대한 무지와 왜곡된 시각으로 가짜 과학을 무 비판적으로 수용했을 때 초래되는 부작용은 가히 파멸적이었다. 그 대표적인 비극이 바로 진화학의 잘못된 이해에서 출발한 우생학과 초기 유전학의 기괴한 만남, 그리고 이를 확산시키는 교두보가 된 20세기 초 미국 교회의 무지성이다.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이 창시한 우생학(Eugenics)은 인간의 유전적 형질을 인위적으로 개량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이 가설이 멘델 유전학의 메커니즘과 결합하면서 ‘과학적 정당성’이라는 날개를 달았다. 20세기 초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빈곤, 범죄, 질병 등 수많은 사회적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던 미국은 이 왜곡된 과학의 가장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 미국의 정치인과 기득권층은 멘델의 식물 유전학 법칙과 인간의 지능검사(IQ Test) 결과를 자의적으로 인용했다.
이들은 에밀 졸라가 소설로 고발한 하층민의 비극은 단순히 유전만이 아닌 환경의 영향도 매우 크다는 경고에도, 범죄성, 정신박약, 부도덕성, 빈곤 등 복잡한 사회적 현상을 단순히 파란 눈처럼 고스란히 유전된다는 유전결정론적 오류에 빠졌다.

사진: 1930년대 우생학 협회의 전시회 (Wiki)
복음으로 포장된 잔인한 면죄부
여기서 더욱 치명적인 문제는 당시 ‘사회 복음(Social Gospel)’과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던 미국 개신교 주류 및 자유주의 교단(감리교, 장로교, 성공회 등)이 이 우생학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당시 토머스 헌트 모건(Thomas Hunt Morgan)을 비롯한 과학자들이 우생학의 학문적 비과학성과 위험성을 경고하며 격렬히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과학적 문해력의 부재와 무지로 인해 우생학의 광풍을 올바르게 분별하지 못했다.
오히려 목회자들은 강단에서 “인종의 유전적 개량은 인류에게 피조물의 통치권을 맡기신 하나님의 명령에 부합한다”라고 설교하며, 우생학을 사회적 죄악을 치유할 기독교적 사명이자, 복음으로 포장했다. 과학에 대한 지독한 무지가 종교적 맹신과 결합하면서,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 착취라는 사회 구조적 모순은 은폐된 채, 기득권층의 특권은 ‘유전적 우월함’이라는 신성한 축복으로 둔갑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짜 과학인 우생학에 면죄부를 주고 사회적 정당성을 부여한 셈이다.
제도화된 폭력과 인류사의 대재앙
종교가 앞장서서 전파한 우생학이라는 가짜 복음은 결국 국가적 제도화라는 거대한 폭력으로 이어졌다. 해리 러플린(Harry Laughlin) 등이 주도한 ‘모델 우생 단종법’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 가난한 노동자, 이민자, 흑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합법적인 ‘강제 불임 시술’을 자행하는 법적 근거가 되었다. 나아가 미국 교회의 축복 속에서 완성된 이 우생학 법률과 이론은 바다를 건너 나치 독일에 그대로 수입되었으며, 훗날 인류의 역사에서 최악의 대재앙인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정당화하는 끔찍한 자양분이 되었다.
이 암울한 역사는 교회가 시대의 과학을 주체적이고 이성적으로 사유하지 못하고, 무지하게 수용했을 때, 그리고 그 왜곡된 사실을 종교적 신념과 결합해 전파했을 때 얼마나 무서운 괴물을 탄생시킬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준다. 과학에 대한 교회의 무지, 맹신은 단순한 교회의 지적 오류에 그치지 않고,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가는 가장 잔인한 흉기가 될 수 있음을 이 비극의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스페인의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는 그의 연작 판화집 《변덕》(Los Caprichos)에서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라고 경고했다. 교회가 과학적 문해력을 상실하고 이성적 성찰을 멈추었을 때, 복음의 자리에 기괴한 우생학의 괴물이 들어앉았던 역사가 바로 그러했다. 성경이 경고하는 파괴의 괴물, 리워야단(Leviathan)이 다시는 세상에 깨어나지 않도록 늘 깨어있는 시대의 지성이 되는 것-그것이 오늘날 교회가 뼈아프게 되새겨야 할 진정한 종교적 사명이다.
사진: 프란시스 데 고야, The Sleep of Reason Produces Monsters, 1799 (wiki)
과신 칼럼
이성이 잠든 제단에서 깨어난 괴물, 우생학
글 | 오세조
팔복루터교회 담임목사
과신대 자문위원
문학과 과학의 교차점, 그리고 이성적 보완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Émile Zola)에게 작가로서 명성을 확실하게 한 『목로주점』(1877)은 ‘유전과 환경’이라는 주제로 그가 집필한 ‘루공-마카르 총서’의 7번째 책이다. 프랑스의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의 『실험의학서설』(1865)을 접한 졸라는 과학이 실험을 통해 증명하듯, 소설 또한 실험을 통해 쓴다는 명제를 세웠다. 그는 ‘루공(Rougon)’과 ‘마카르(Macquart)’라는 가상의 두 가문을 설정하고, 이들의 혈통이 유전과 환경에 의해 어떻게 굴절되는지를 소설로 그려냈다.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부르주아 계층인 루공 가(家)와는 달리, 마카르 가(家)는 알코올 중독과 빈곤에 시달리는 하층민 계층으로 묘사된다. 『목로주점』의 주인공이자 마카르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르베즈의 비극적인 삶은 인간이 유전과 환경이라는 굴레에서 얼마나 벗어나기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문학적 실험이었다. 이처럼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유전과 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인류의 거대한 관심사이다.
사진: 에밀 졸라 『목로주점』
흥미롭게도 졸라가 영감을 얻은 1865년은 그레고어 멘델(Gregor Mendel)이 식물 잡종에 대한 실험을 학회에 발표한 해이기도 하다. 논문이 이듬해인 1866년에 출간되었으니, 2026년 올해는 멘델의 논문이 세상에 나온 지 1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사람들은 흔히 찰스 다윈 시절, 다음 세대에게 형질이 어떻게 유전되는지 설명하지 못했던 진화학의 치명적인 약점을 멘델의 유전학이 곧 해결해 주었으리라 추측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초기 진화학자들과 유전학자들은 연속적 변이와 불연속적 변이를 두고 격렬한 학문적 논쟁을 벌였다. 이 갈등은 훗날 로널드 피셔(Ronald A. Fisher)를 비롯한 집단유전학자들의 노력으로 이른바 ‘현대적 종합(Modern Synthesis)’이 이루어지면서 비로소 해소되었다. 이처럼 과학계 내부에서는 엄밀한 검증과 논쟁을 통해 이론의 결함을 보완하고 통합하는 이성적 과정이 작동하고 있었다.
왜곡된 과학의 비옥한 토양
그러나 과학의 역사에서 학문 간의 만남이 항상 이처럼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만을 낳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종교가 과학에 대한 무지와 왜곡된 시각으로 가짜 과학을 무 비판적으로 수용했을 때 초래되는 부작용은 가히 파멸적이었다. 그 대표적인 비극이 바로 진화학의 잘못된 이해에서 출발한 우생학과 초기 유전학의 기괴한 만남, 그리고 이를 확산시키는 교두보가 된 20세기 초 미국 교회의 무지성이다.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이 창시한 우생학(Eugenics)은 인간의 유전적 형질을 인위적으로 개량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이 가설이 멘델 유전학의 메커니즘과 결합하면서 ‘과학적 정당성’이라는 날개를 달았다. 20세기 초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빈곤, 범죄, 질병 등 수많은 사회적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던 미국은 이 왜곡된 과학의 가장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 미국의 정치인과 기득권층은 멘델의 식물 유전학 법칙과 인간의 지능검사(IQ Test) 결과를 자의적으로 인용했다.
이들은 에밀 졸라가 소설로 고발한 하층민의 비극은 단순히 유전만이 아닌 환경의 영향도 매우 크다는 경고에도, 범죄성, 정신박약, 부도덕성, 빈곤 등 복잡한 사회적 현상을 단순히 파란 눈처럼 고스란히 유전된다는 유전결정론적 오류에 빠졌다.
사진: 1930년대 우생학 협회의 전시회 (Wiki)
복음으로 포장된 잔인한 면죄부
여기서 더욱 치명적인 문제는 당시 ‘사회 복음(Social Gospel)’과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던 미국 개신교 주류 및 자유주의 교단(감리교, 장로교, 성공회 등)이 이 우생학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당시 토머스 헌트 모건(Thomas Hunt Morgan)을 비롯한 과학자들이 우생학의 학문적 비과학성과 위험성을 경고하며 격렬히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과학적 문해력의 부재와 무지로 인해 우생학의 광풍을 올바르게 분별하지 못했다.
오히려 목회자들은 강단에서 “인종의 유전적 개량은 인류에게 피조물의 통치권을 맡기신 하나님의 명령에 부합한다”라고 설교하며, 우생학을 사회적 죄악을 치유할 기독교적 사명이자, 복음으로 포장했다. 과학에 대한 지독한 무지가 종교적 맹신과 결합하면서,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 착취라는 사회 구조적 모순은 은폐된 채, 기득권층의 특권은 ‘유전적 우월함’이라는 신성한 축복으로 둔갑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짜 과학인 우생학에 면죄부를 주고 사회적 정당성을 부여한 셈이다.
제도화된 폭력과 인류사의 대재앙
종교가 앞장서서 전파한 우생학이라는 가짜 복음은 결국 국가적 제도화라는 거대한 폭력으로 이어졌다. 해리 러플린(Harry Laughlin) 등이 주도한 ‘모델 우생 단종법’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 가난한 노동자, 이민자, 흑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합법적인 ‘강제 불임 시술’을 자행하는 법적 근거가 되었다. 나아가 미국 교회의 축복 속에서 완성된 이 우생학 법률과 이론은 바다를 건너 나치 독일에 그대로 수입되었으며, 훗날 인류의 역사에서 최악의 대재앙인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정당화하는 끔찍한 자양분이 되었다.
이 암울한 역사는 교회가 시대의 과학을 주체적이고 이성적으로 사유하지 못하고, 무지하게 수용했을 때, 그리고 그 왜곡된 사실을 종교적 신념과 결합해 전파했을 때 얼마나 무서운 괴물을 탄생시킬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준다. 과학에 대한 교회의 무지, 맹신은 단순한 교회의 지적 오류에 그치지 않고,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가는 가장 잔인한 흉기가 될 수 있음을 이 비극의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스페인의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는 그의 연작 판화집 《변덕》(Los Caprichos)에서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라고 경고했다. 교회가 과학적 문해력을 상실하고 이성적 성찰을 멈추었을 때, 복음의 자리에 기괴한 우생학의 괴물이 들어앉았던 역사가 바로 그러했다. 성경이 경고하는 파괴의 괴물, 리워야단(Leviathan)이 다시는 세상에 깨어나지 않도록 늘 깨어있는 시대의 지성이 되는 것-그것이 오늘날 교회가 뼈아프게 되새겨야 할 진정한 종교적 사명이다.
사진: 프란시스 데 고야, The Sleep of Reason Produces Monsters, 1799 (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