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 칼럼]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것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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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 칼럼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것


글 | 최희진

과학과 신학의 대화 이사



불확실한 시대, 삶을 탐구하고 함께 살아가는 일

  요즘 나의 하루에는 여러 모습의 내가 함께 산다. 공부하고, 일하고, 아이를 키운다. 누군가의 가족이고 동료이며, 신앙인이고,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아이와 웃고 떠들다가 인간은 어떻게 한 사람으로 자라나는지 궁금해지고, 일을 하면서는 사람이 자기다운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예전에는 이런 삶의 조각들을 좀 더 깔끔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분명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은 이 여러 모습이 모두 나라는 것이 좋다. 그 모든 모습으로 내가 나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나는 교육학을 공부하며 사람의 진로와 학습, 산업인력개발에 관심을 두고 있다. 도널드 슈퍼(Donald Super)는 진로를 직업 하나가 아니라 생애에 걸쳐 여러 역할을 살아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그래서 나는 이 관점을 좋아한다. 아이와 보낸 오후도, 공부하느라 보낸 밤도, 누군가를 돌본 시간도 내 삶의 주변부가 아니다. 모두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지를 만드는 삶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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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의 Raimond Klavins


미래를 맞히는 일보다 

  요즘 진로를 이야기할 때면 AI를 빼놓기 어렵다. 어떤 직업이 사라질지, 무엇을 배워야 할지,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불안해진다. 나 역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사용해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가끔 묻게 된다. 우리는 왜 이렇게 끊임없이 ‘미래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할까.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우리는 그것을 정확히 예측해 안전한 길을 찾고 싶어진다. 하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마크 사비카스(Mark Savickas)의 진로구성이론은 진로를 이미 존재하는 하나의 정답을 발견하는 일로만 보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진로를 구성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미래를 정확히 맞히는 능력보다 변화 속에서도 질문하고 배우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지만, 신앙인으로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한다. 나는 이 이야기의 유일한 저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시고 사랑하신다는 믿음 때문이다. 내가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거나 무언가를 잘 해내기 때문에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다. AI가 나보다 잘하는 일이 많아진다고 해서 내가 덜 소중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성장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내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이 있을 때 실패하고 다시 배우며 더 자유롭게 자신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다. 성장해서 소중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소중하기 때문에 마음껏 성장할 수 있는 것.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파도가 없는 바다를 약속받는 일이라기보다 파도가 와도 그 위를 타볼 수 있다는 안정감을 얻는 일에 가깝다.



정직하게 탐구한다는 것

  이런 생각은 과학과 신앙을 대하는 태도에도 이어진다. 과신대를 만나고 나는 궁금한 것을 찾아보는 일이 더 좋아졌다. 과학에서는 어떻게 설명하는지 찾아보고, 심리학과 교육학에서는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읽는다. 진로 분야의 설명도 보고, 신학에서는 이 질문을 어떻게 다루어왔는지 찾아본다. 요즘은 AI에게도 참 많은 것을 묻는다.


  나는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믿음이 세상을 덜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마음껏 궁금해할 수 있게 만드는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새로운 사실 앞에서 기존의 설명을 다시 검토한다. 때로는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생각도 더 나은 증거 앞에서 수정한다. 나는 그 정직함이 신앙과 나 자신을 탐구하는 데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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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의 Sunny Tank


  정직하게 탐구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일인 동시에, 더 이상 참이라고 믿기 어려운 것을 놓아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교회에서 오래 들어온 하나의 설명이 하나님이나 복음 그 자체인 것은 아니다. 과학적 발견 앞에서 신앙의 설명이 흔들릴 때, 흔들리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나의 이해일 수 있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 길로 가야 해’라고 오래 믿었던 이야기를 다시 살펴볼 수 있다.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면 나에 대한 설명도 고쳐도 된다. 나는 신앙의 단단함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신앙의 단단함이다.


  그러니 “그 질문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덮어두기보다 “정말? 왜 그렇지?” 하며 조금 더 들여다봐도 괜찮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라면 알아가는 일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진로에서 우리의 일로

  그렇다고 자기 탐구가 나에게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진로와 함께 내가 공부하는 또 하나의 영역은 산업인력개발(workforce development)이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가진 능력과 시간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무언가를 한다. 가르치고, 만들고, 연구하고, 치료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아이를 키우고 누군가를 돌보는 것처럼 직업이라는 이름 밖에 있는 노동도 다른 사람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진로에 관한 질문 뒤에 하나를 더 붙이고 싶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가?” 그리고 “그것으로 나는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일은 그 사람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각자가 가진 것으로 세상의 필요에 응답할 때 우리의 일은 서로의 삶을 지탱한다. 진로를 펼쳐간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내가 오늘 배운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내가 돌본 한 사람이 다시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일하고 돌보고 창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나라에 참여하는 일상적인 방식이라고 믿는다.


  과학과 신학도 혼자 만들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질문하고, 틀리고, 고치고, 자신이 알아낸 것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며 여기까지 왔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다른 사람이 살아낸 하루 위에 나의 오늘이 놓이고, 나의 오늘 위에 누군가의 내일이 놓인다. 그래서 나는 내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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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의 Hannah Busing


나를 사랑하고, 오늘을 누리는 일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을 많이 사랑했으면 좋겠다. 물론 나를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좋은 모습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연약함도 있고, 나조차 외면하고 싶은 욕심과 죄도 있다. 그럴 때 나는 나보다 먼저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려 한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도 사랑하셨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죄까지 대신 지셨다는 것을 기억하면 나 자신을 조금 더 정직하게 바라볼 용기가 생긴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잘못은 돌이키면서도 나라는 사람 전체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나를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내 옆의 사람도 귀하게 여기는 것. 나답게 살아가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그리 멀리 떨어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잘 모르겠다. 이럴 때면 나는 종종 전도서를 떠올린다. 인간의 수고와 성취만으로 모든 것을 붙들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전도서는 먹고 마시고 자신의 수고 가운데 기쁨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로 돌아간다.


  어쩌면 신앙은 삶의 모든 것을 예측하고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을 기쁘게 받아 살아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공부할 때 공부하고, 일할 때 일하고, 아이와 웃을 때 웃고, 맛있는 것을 먹고, 궁금한 것은 찾아보고, 사랑할 사람이 있으면 사랑하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나를 사랑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들과 연결되고, 하나님이 지으신 이 넓고 신기한 세계를 마음껏 궁금해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파도가 또 오더라도 괜찮다. 파도가 오지 않는 미래를 찾아 헤매기보다 그때 또 질문하고 배우면 된다. 나보다 먼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을 놓지 않고, 내가 나인 채로 그 파도를 한번 즐겁게 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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