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원
글ㅣ오세조
팔복루터교회 담임목사
과신대 자문위원, 과신뷰 편집위원
현재 지구상에 사는 인간은 모두 하나의 종, 즉 ‘호모 사피엔스’에 속합니다. 그러면 이 ‘호모 사피엔스’로 명명되는 최초의 인간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으며 언제 나타났을까요? 19세기 중반만 해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은 하나였습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류인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흙으로 직접 창조하셨다.” 사실 이러한 생각에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질학의 발달로 지구의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으며,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고, 고인류의 화석들(1856년 네안데르탈인, 1891년 자바원인)이 점차 발견되면서, 사람들은 기존의 이 유일한 답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왼), 네안데르탈인(오) @Wikimedia Commons, Dr MikeBaxter 제공
직립보행: 인간다움의 첫 번째 단추1)
찰스 다윈은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1871년)에서 인류의 대표적인 특징을 1) 큰 두뇌, 2) 작은 치아, 3) 직립 보행, 4) 도구 사용 이렇게 네 가지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윈이 말한 네 가지 인류의 특징 중 과연 어느 특징이 먼저 나타났을까요?
고인류학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고인류 화석을 선정한다면, 아마도 1974년 도널드 조핸슨(Donald Johanson)이 동아프리카에서 발견한 ‘루시’(Lucy, AL288-1)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루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로 분류되는 화석으로 연대 측정 결과 300만~350만 년 전에 살았던 고인류로 ‘루시’의 두뇌는 침팬지 정도 크기이며, 치아도 크고, 더욱이 도구의 사용 흔적은 찾을 수 없습니다. 반면 루시의 골격에서 두 발로 걸었다는 특징은 매우 분명합니다. 이로써 두 발로 걷는 인간의 특징, 즉 ‘직립보행’이 큰 두뇌보다 인간다움의 첫 번째였습니다. 이후 래톨리 유적에서 두 발로 걸은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기도 하여 자연스럽게 최초의 인류를 찾는 탐사는 주로 직립보행을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이런 직립보행을 한 흔적이 있는 고인류 화석으로는 앞서 언급한 ‘루시’ 외에도 600만~70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Sahelanthropus tchadensis, TM 266-01-060-1)와 44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Ardipithecus ramidus)등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 화석종 중, 라미두스는 직립보행 외에도 나무를 탔던 흔적이 엄지발가락에 남아 있어, 앞서 제시한 “최초의 인류는 직립보행을 했다”라는 가설에 큰 도전을 주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최초의 인류화석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화석경쟁은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인류는 왜 직립보행을 선택했을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왜 최초의 인류는 나무에서 내려와 두 발로 걸어야 했을까요? 이 질문에 관한 답에 대해 지금까지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학자들은 그 당시 아프리카 대륙에서 지각변동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라이오세 때 지각변동으로 인한 큰 기후변화로 아프리카 전역에 넓은 초원지대가 형성되자, 나무가 많은 밀림에서 생활하던 유인원의 생활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밀림이 줄어들자, 일부 유인원은 어쩔 수 없이 초원으로 내려와 생활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초원으로 내려온 유인원들은 밀림에서 구하던 풍부한 나무 열매와 같은 먹이를 더 이상 구할 수 없고, 초원에서 먹이를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밀림과는 달리 넓게 트인 초원에서는 오히려 적에게 노출될 위험이 커졌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환경에서 유인원은 직립보행을 하게 되었으며, 이후 두 손이 자유로워지자, 도구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육식이 가능해지고, 이런 생활 습관은 뇌의 발달을 크게 촉진하게 되었습니다.
현생 인류의 기원: 아프리카 기원설과 다지역 기원설2)
현재 인간이 영장류 가지에서 분리되어 나온 시점은 600만~700만 년 전이며 호모 속이 등장한 시기는 약 250만 년 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 지구상에 사는 유일한 종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20만 년에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20만 년 전에 나타난 현생 인류의 기원은 어떻게 된 걸까요? 사실 현생 인류가 어디서 나타났는가 하는 문제는 고인류학의 최대 난제이기도 합니다. 현재 현생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지역 기원설’과 ‘아프리카 기원설’이 서로 팽팽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 다지역 기원설: 다지역 기원설에 따르면, 수십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 아시아 등으로 이동했으며, 이후 이미 이 지역에 살고 있던 고인류와 교류하면서 변화해 왔다고 합니다. 즉 현재 인류가 지닌 특징은 오랫동안 진화의 과정을 거쳐 유전자 교환 등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 아프리카 기원설: 아프리카 기원설은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단일 지역에서 발생한 집단이 여러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각 지역에 먼저 살고 있던 기존의 고인류와 섞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생존했다는 주장입니다. 다지역 기원설에 비해 ‘단일 지역 기원설’이라고도 합니다. 1987년 앨런 윌슨, 레베카 칸, 마크 스톤 킹 등이 수행한 mtDNA의 유전자 연구로 인해 더욱 강력해진 가설로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 진화했고, 15~1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다지역 기원설보다는 아프리카 기원설이 지지를 더 받는 편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매우 논쟁 중입니다.
수정되어야 할 기존의 인류 진화 모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 호모 사피엔스 등 여러 고인류 조상을 거쳐서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로 계단식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고인류학의 결과를 종합해 보면, 인류의 진화는 기존의 생각처럼 계단식이 아닌, 이제는 나뭇가지 같은 매우 복잡한 계통도를 형성합니다. 그럼에도 인류의 진화에 관한 책이나 과학박물관에는 여전히 계단식의 그림과 모형이 전시가 되어있는 편인데, 이는 인류의 진화에 대해 잘못된 고정관념을 줄 수 있으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앞으로 수정되어야 합니다.
By 에른스트 헤켈 - Escaneado por L. Fdez. 2005 @wikimedia
아담의 역사성 논쟁3)
지금까지는 고인류학에서의 인류의 기원과 현생 인류의 기원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런 인류의 기원에 왜 관심이 있는 걸까요? 또한 고인류의 화석과 아담의 연결성에 관해 우리는 왜 고민할까요?
그것은 바울이 아담과 그의 죄를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 죽음과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즉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어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훼손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원죄 교리를 대속 교리의 필요조건을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었는가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현재 계속되며, 이 글에서는 아담의 역사성 논쟁에 제시되는 네 가지 견해를 간략하게 요약합니다.
- 역사적 아담은 없다(진화적 창조론): 하나님은 우주를 ‘진화’라는 자연 과정을 통해 창조하셨으며, 인간의 존재 역시 진화를 통해 이루어진 결과이다. 따라서 아담은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성서가 무오한 영적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했던 도구의 한 예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은 역사적인 인물이다.
- 역사적 아담은 있다(원형적 창조론): 아담은 역사적인 인물이지만, 성서가 강조하는 것은 아담의 역사성이 아니다. 창세기 저자의 관심은 아담과 하와가 생물학적 존재로서 물질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할에 있다. 아담과 하와가 역사적 인물이지만, 그들이 지구에 존재했던 첫 번째 인물이거나 모든 인류의 조상은 아닐 수 있다.
- 역사적 아담은 있다(오래된 지구론): 하나님께서는 성경대로 아담과 하와를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류의 근원인 아담과 하와는 세상 속으로 죄를 들여왔다. 아담과 하와가 이후에 등장하는 모든 인간의 시초이기는 하지만, 태초에 있었던 유일한 인간 부부는 아닐 수 있다.
- 역사적 아담은 있다(젊은 지구론): 성경의 기록에 따라 아담은 역사적 인물이자, 인류의 기원이 되는 최초의 인간이다. 아담은 초자연적으로 창조하신 최초의 인간이며 모든 인류의 조상이다. 아담의 역사성이 거짓이면 아담의 죄와 그로 인해 그의 후손에게 발생한 결과를 해결하기 위해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보면서, 우리는 혹시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훼손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신학자들은 원죄 교리가 대속 교리의 필요조건은 아니라고 합니다. 즉 아담의 역사적 실존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에 필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에 대해 신학자들의 논의는 계속될 것입니다.
현재 고인류학은 인류의 기원에 대해 모두는 아닐지라도 많은 지혜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하지만 교회는 고인류학의 발견을 미끄러운 비탈길에 발을 들어놓은 행동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 일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교회를 지켜야 한다고까지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를 보호하며, 우리가 교회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우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과 교회는 이미 무너졌을 것입니다. 분명한 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스스로 지키며 오히려 우리를 보호하고 지금까지 아니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신학은 항상 당대의 지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며, 오히려 당대의 지식 특히 과학과의 대화를 통해서 발전되었습니다. 신학은 언제나 새로운 시대 상황과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워져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고인류학의 발견을 교회는 거부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고인류학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원래 의미에 가까워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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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희, 『인류의 기원』 (서울: 사이언스북스, 2015), 51-60.
2) 김유미·박소영, 『빅 히스토리 19: 최초의 인간은 누구일까?』 (서울: 와이스쿨, 2016), 126-134.
3) 데니스 라무뤼 외 지음, 『아담의 역사성 논쟁』, 김광남 옮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5).
필자 소개. 오세조 목사
인하대 생물학과와 동대학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아주대 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House Research Institute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마치고 귀국하여 루터대 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와 평택대 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에서 박사학위(구약학)을 받았다. 현재 용인에 위치한 루터대학교 내 팔복루터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인류의 기원
글ㅣ오세조
팔복루터교회 담임목사
과신대 자문위원, 과신뷰 편집위원
현재 지구상에 사는 인간은 모두 하나의 종, 즉 ‘호모 사피엔스’에 속합니다. 그러면 이 ‘호모 사피엔스’로 명명되는 최초의 인간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으며 언제 나타났을까요? 19세기 중반만 해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은 하나였습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류인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흙으로 직접 창조하셨다.” 사실 이러한 생각에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질학의 발달로 지구의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으며,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고, 고인류의 화석들(1856년 네안데르탈인, 1891년 자바원인)이 점차 발견되면서, 사람들은 기존의 이 유일한 답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왼), 네안데르탈인(오) @Wikimedia Commons, Dr MikeBaxter 제공
직립보행: 인간다움의 첫 번째 단추1)
찰스 다윈은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1871년)에서 인류의 대표적인 특징을 1) 큰 두뇌, 2) 작은 치아, 3) 직립 보행, 4) 도구 사용 이렇게 네 가지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윈이 말한 네 가지 인류의 특징 중 과연 어느 특징이 먼저 나타났을까요?
고인류학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고인류 화석을 선정한다면, 아마도 1974년 도널드 조핸슨(Donald Johanson)이 동아프리카에서 발견한 ‘루시’(Lucy, AL288-1)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루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로 분류되는 화석으로 연대 측정 결과 300만~350만 년 전에 살았던 고인류로 ‘루시’의 두뇌는 침팬지 정도 크기이며, 치아도 크고, 더욱이 도구의 사용 흔적은 찾을 수 없습니다. 반면 루시의 골격에서 두 발로 걸었다는 특징은 매우 분명합니다. 이로써 두 발로 걷는 인간의 특징, 즉 ‘직립보행’이 큰 두뇌보다 인간다움의 첫 번째였습니다. 이후 래톨리 유적에서 두 발로 걸은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기도 하여 자연스럽게 최초의 인류를 찾는 탐사는 주로 직립보행을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이런 직립보행을 한 흔적이 있는 고인류 화석으로는 앞서 언급한 ‘루시’ 외에도 600만~70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Sahelanthropus tchadensis, TM 266-01-060-1)와 44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Ardipithecus ramidus)등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 화석종 중, 라미두스는 직립보행 외에도 나무를 탔던 흔적이 엄지발가락에 남아 있어, 앞서 제시한 “최초의 인류는 직립보행을 했다”라는 가설에 큰 도전을 주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최초의 인류화석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화석경쟁은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인류는 왜 직립보행을 선택했을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왜 최초의 인류는 나무에서 내려와 두 발로 걸어야 했을까요? 이 질문에 관한 답에 대해 지금까지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학자들은 그 당시 아프리카 대륙에서 지각변동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라이오세 때 지각변동으로 인한 큰 기후변화로 아프리카 전역에 넓은 초원지대가 형성되자, 나무가 많은 밀림에서 생활하던 유인원의 생활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밀림이 줄어들자, 일부 유인원은 어쩔 수 없이 초원으로 내려와 생활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초원으로 내려온 유인원들은 밀림에서 구하던 풍부한 나무 열매와 같은 먹이를 더 이상 구할 수 없고, 초원에서 먹이를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밀림과는 달리 넓게 트인 초원에서는 오히려 적에게 노출될 위험이 커졌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환경에서 유인원은 직립보행을 하게 되었으며, 이후 두 손이 자유로워지자, 도구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육식이 가능해지고, 이런 생활 습관은 뇌의 발달을 크게 촉진하게 되었습니다.
현생 인류의 기원: 아프리카 기원설과 다지역 기원설2)
현재 인간이 영장류 가지에서 분리되어 나온 시점은 600만~700만 년 전이며 호모 속이 등장한 시기는 약 250만 년 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 지구상에 사는 유일한 종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20만 년에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20만 년 전에 나타난 현생 인류의 기원은 어떻게 된 걸까요? 사실 현생 인류가 어디서 나타났는가 하는 문제는 고인류학의 최대 난제이기도 합니다. 현재 현생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지역 기원설’과 ‘아프리카 기원설’이 서로 팽팽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수정되어야 할 기존의 인류 진화 모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 호모 사피엔스 등 여러 고인류 조상을 거쳐서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로 계단식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고인류학의 결과를 종합해 보면, 인류의 진화는 기존의 생각처럼 계단식이 아닌, 이제는 나뭇가지 같은 매우 복잡한 계통도를 형성합니다. 그럼에도 인류의 진화에 관한 책이나 과학박물관에는 여전히 계단식의 그림과 모형이 전시가 되어있는 편인데, 이는 인류의 진화에 대해 잘못된 고정관념을 줄 수 있으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앞으로 수정되어야 합니다.
By 에른스트 헤켈 - Escaneado por L. Fdez. 2005 @wikimedia
아담의 역사성 논쟁3)
지금까지는 고인류학에서의 인류의 기원과 현생 인류의 기원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런 인류의 기원에 왜 관심이 있는 걸까요? 또한 고인류의 화석과 아담의 연결성에 관해 우리는 왜 고민할까요?
그것은 바울이 아담과 그의 죄를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 죽음과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즉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어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훼손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원죄 교리를 대속 교리의 필요조건을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었는가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현재 계속되며, 이 글에서는 아담의 역사성 논쟁에 제시되는 네 가지 견해를 간략하게 요약합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보면서, 우리는 혹시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훼손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신학자들은 원죄 교리가 대속 교리의 필요조건은 아니라고 합니다. 즉 아담의 역사적 실존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에 필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에 대해 신학자들의 논의는 계속될 것입니다.
현재 고인류학은 인류의 기원에 대해 모두는 아닐지라도 많은 지혜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하지만 교회는 고인류학의 발견을 미끄러운 비탈길에 발을 들어놓은 행동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 일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교회를 지켜야 한다고까지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를 보호하며, 우리가 교회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우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과 교회는 이미 무너졌을 것입니다. 분명한 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스스로 지키며 오히려 우리를 보호하고 지금까지 아니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신학은 항상 당대의 지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며, 오히려 당대의 지식 특히 과학과의 대화를 통해서 발전되었습니다. 신학은 언제나 새로운 시대 상황과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워져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고인류학의 발견을 교회는 거부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고인류학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원래 의미에 가까워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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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희, 『인류의 기원』 (서울: 사이언스북스, 2015), 51-60.
2) 김유미·박소영, 『빅 히스토리 19: 최초의 인간은 누구일까?』 (서울: 와이스쿨, 2016), 126-134.
3) 데니스 라무뤼 외 지음, 『아담의 역사성 논쟁』, 김광남 옮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5).
필자 소개. 오세조 목사
인하대 생물학과와 동대학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아주대 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House Research Institute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마치고 귀국하여 루터대 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와 평택대 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에서 박사학위(구약학)을 받았다. 현재 용인에 위치한 루터대학교 내 팔복루터교회를 담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