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성도이자 시민으로 살아갈 것인가 (박성은)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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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과정 수강 후기

어떻게 성도이자 시민으로 살아갈 것인가


글ㅣ박성은
회사원 / 중고등부 교사


우선 저는 10년 차 생산직 직장인이고, 중고등부 교사로 섬기고 있는 박성은이라고 합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수강하게 된 계기는 3월달에 있었던 우종학 대표님의 광주 신안교회 <과학시대의 신앙> 특강 덕분이었습니다.

청년부 강의로 진행되었는데 1) 과학의 도전, 2) 무신론의 도전, 3) 근본주의/문자주의 극복 등의 순서로 진행됐었고, 기억에 남는 문구들은 ‘과학은 창조세계를 여는 창문이다’, ‘과학은 자연의 실재에 대한 영원한 근사’ ‘창세기는 과학백과사전이 아니다’ ‘성경은 not to us, but for us’, ‘자연현상이 과학으로 설명되면 무신론이 되는가?’(자율적으로 움직이는 현상은 신을 배제하는가)라는 질문, ‘진화, 진화과학, 진화(론)주의 범주 구분’, ‘오븐과 제빵사의 비유’,‘ 창조는 진리지만(who) 창조의 그림은 다양하다(how)’라는 외침이 기억에 남습니다. 1시간 30분가량의 유튜브 영상이 공개되어 있는데 한번 살펴 보기를 추천합니다.


@Nik, Unsplash

심화과정은 기초과정을 듣고 더 알고 싶다는 마음과 김근주 교수님, 전성민 교수님, 이정모 관장님의 네임밸류에 힘입어 수강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과신대 강의를 듣는다고 하니, 주변에서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밥벌이나 전공, 미래와 관련이 없는데, 학위 과정도 아닌데, 목회자도 아닌데 굳이 이런 강의를 듣나요?"라는 말이었습니다. 궁색한 답변을 하자면 제가 요즘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어떻게 성도이자 시민으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보통 목사님들의 관심은 🤔 말씀과 기도의 습관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은 사람이 되어 교회 봉사, 모임(교제), 공예배의 참여, 정직하고 신실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일하는 것, 그리고 구제와 전도, 선교를 염두에 두는 것 같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윤리적 회색 지대에서 순간순간 답이 없는 선택에 직면하는 상황이라 생각됩니다.


이때 필요한 지식/공부는 1) 시대의 교양이 된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 2)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 노동/돌봄에 대한 고찰 (다른 말로 한다면 도시에서 연결되어 생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3) 관계와 설득에 있어 통속적이고 위계적이며, 당위의 언어가 아닌 문학적(포용과 비유의 언어)/시적(본절적)인 언어가 필요하다고 느껴서 이런저런 배움에 힘쓰고 있습니다.


좋은 강의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봅니다. 많은 양/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는 것, 잊고 있었거나 몰랐던 내용들을 알게 되는 순간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아마도 마음을 고무(inspiration) 시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며 질문하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의존적이어서 권력/권위에 쉽게 순응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고 싶지 않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억에 남았던 강의를 돌아본다면, 신학에서는 김근주 교수님의 [창세기와 창조 기사 해석]은 창세기가 Vehicle, 즉 전달 수단으로서 문자적 수용이 아닌 문맥과 장르, 그 당시 세계관/우주관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창조신앙은 무엇과 연관되는 것인지 질문합니다. 창조신앙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력과 연결됩니다. 구약에 나타난 창조 이야기는 실패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회복과 변화된 삶을 약속하며 그 근거로 온 땅을 창조하시고 지탱하시며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제국으로 표현되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의 거대한 벽에 낙심하지 않고 그 어떤 강력한 세력도 결코 영원할 수 없음을 기억하며 꿈꾸고 기대하는 바를 세심하고 단단하게 뜻있는 사람들과 그려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과학기술 시대의 윤리' 박일준 교수, 과신대 핵심과정 


과학에서는 박일준 교수님의 [생명정치와 생명윤리] 강의가 인상 깊었는데 뇌사(brain death)의 의미를 설명하며 장기기증에 이용하기 위해 생명에 관한 새로운 개념을 정의하고 합의한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소개합니다. 보통 사람이 죽으면 3일장을 치르는데 산소 공급이 끊긴 뇌가 가장 먼저 기능을 상실하고 그 외의 장기들이 서서히 죽어 가는데 죽음을 뇌사로 정의함으로써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명과학의 빠른 성장은 자본과 결합하여 거대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코로나19 시기에 백신 제조회사의 주식이 급등하고 초기 물량의 확보는 백신의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부자 나라들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불임 산업, 난자 채취, 장기매매, 치과용 임플란트를 위한 뼛가루 공급 산업 등 기술의 발달에 따른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다.


또한 Failing better(성공보다 나은 실패)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진단하고 특히 기후자본시대 우울과 무능에 대해 다룹니다. 기후비상사태, 민주주의의 붕괴, 기호자본주의 체제 아래 벌어지는 프리카리아트(불안정노동자)의 삶을 북돋는데 전통적인 신학의 도식(schema)이 실패한 것은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의 실패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변해야 함을 역설하고 새로운 성육신(incarnation)으로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자연과 세계(under commons)를 돌봄과 생명의 복잡한 얽힘(entanglement)을 인식하며 공생을 위한 정치적 행동주의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한 강의에 2시간여 정도이고 논지와 개념을 따라가는 일이 머리 무겁지만 시간을 들인다면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강사님들의 뛰어난 강의도 리뷰하고 싶지만 지면이 부족해서 줄입니다(실은 요약하는 게 힘듭니다) 특히 과학 분야의 교수님들은 누구나 지식을 통제, 최적화, 이익의 수단으로 보는 게 아니라 경이로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가 전달하는 내용보다 빛났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분투하며 생활하시는 과신대 회원분들과 대표님, 간사님을 응원하며, 신학과 과학에 대해 바지런히 공부할 수 있는 과신대 핵심과정으로 초대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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