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조용한 변화: 툰드라 벌판에서 온 현장 보고
글ㅣ이유경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거의 매년 북극 현장에 나가 툰드라를 밟다 보니 이곳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것은 북극이 따뜻해졌다는 것이다. 흙이나 식물을 채집하기 때문에 눈이 없는 여름에 북극에 간다. 그렇다. 극지에도 여름이 있다. 여름이면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계속된다. 하루종일 햇빛을 받아서 그런지 북극 다산과학기지는 우리나라의 온화한 겨울 날씨와 비슷하다. 극지는 일년내내 엄청 추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자 편견이다. 2003년 여름, 스발바르에 있는 다산과학기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온도계는 영상 5도를 가리켰고, 실제 밖에 나가면 북극의 찬 바람이 체감 온도는 영하까지 낮아졌다. 그런데 요즘은 10도는 기본이고 15도에서 18도를 오르내린다.
@2020년 7월 최고기온
2020년 여름,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다산과학기지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스발바르의 다른 지역에서 현장연구를 했다. 비가 심하게 오면 현장에서 연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매일 저녁 일기예보를 보았다. 노르웨이 일기예보는 상당히 정확해서 우리나라 날씨도 우리 기상청보다 잘 맞춘다는 소문이 있다. 그런데 다음날 기온이 20도라고 떴다. 북위 79도의 북극에서 20도라니! 그 예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20도는 아니지. 기상청 직원이 여름 휴가 간 사이 대신 일하는 아르바이트 직원이 실수한 걸 거야.”라며 내 경험을 고집했다. 하지만 다음날 스발바르는 21.7도였고 사람들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녔다.
과학자들은 데이터로 말한다. 매일 온도를 측정한 덕분에 북극의 기온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게 된 사람들은 “북극은 전 지구 평균의 두 배나 빠른 속도로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북극이 기온 상승 속도가 세 배는 빠르다.” “아니야, 여긴 다섯 배”라고 한다. 스발바르의 일부 지역에서는 겨울철 평균 기온이 지난 30년 만에 무려 5°C나 상승했다.
따뜻한 날씨는 얼음을 녹였다. 북극다산과학기지 앞에는 콩스피오르덴(Kongsfjorden)이라는 피오르가 있다. 여기엔 블롬스트란드할뵈야(Blomstrandhalvøya)라는 독특한 이름의 섬이 있다. 이 섬의 이름 뒷부분인 halvøya는 노르웨이어로 "반도"라는 뜻이다. 한반도 할 때 그 반도, 즉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육지라는 의미다. 섬인데 반도라니? 원래 이 섬은 블롬스트란드브레엔(Blomstrandbreen) 빙하로 본토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때 이름이 블롬스트란드 반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인해 얼음 다리가 녹아 사라지면서 반도는 섬으로 변해버렸다.
@블롬스트란드섬
따뜻함은 겨울에 낯선 일들을 불러왔다. 한겨울에 내리는 비, 잠시 온화한 날 내린 비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얼어붙는다. 눈은 겨울 담요처럼 차가운 바람으로부터 눈 아래 세상을 지켜준다. 눈 밑에서 식물은 봄을 준비하고, 순록은 눈을 파헤치며 그 식물을 찾아 먹으며 겨울을 버틴다. 그런데 눈 위에 얼음이 얼고, 눈이 단단한 얼음으로 변하면서 한겨울을 간신히 버티던 툰드라 식물은 얼어 죽고, 순록은 먹이를 잃는다. 실제로 스발바르에서 200여마리의 순록이 죽음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과학자들이 이들 순록을 조사해 보니 병에 걸리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아니었고, 충분히 먹지 못해 굶주림으로 죽은 것이었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그해 겨울에 내린 비가 그 원인이었다.

@북상하는 침엽수
식물도 북극의 격변을 말없이 알려주는 조용한 증인이다. 생태학자들이 동일한 방법으로 북극의 백여 개의 지역에서 지난 20년 동안 식물을 관찰했다. 수많은 데이터를 한데 모아보니 한때 이끼와 작은 풀이 우점하던 곳이 키 작은 자작나무와 버드나무 덤불로 뒤바뀌었다.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극에서 침엽수는 점점 북쪽으로 서식지를 이동하고 있다. 북극 툰드라를 어렵게 지켜온 식물들은 이제 남쪽에서 몰려오는 나무들과 경쟁해야 한다. 경쟁에서 밀리면 더 갈 곳도 없다. 북극해 바다에 빠지는 수밖에! 게다가 이러한 식생의 변화는 툰드라 생태계에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더 키가 큰 관목은 더 많은 눈을 가둘 수 있다. 눈은 더 늦게 녹고 단열 효과는 더 노래 지속된다. 봄이 되어 눈이 녹을 때 더 많은 물이 동토로 스며들고 이로 인해 영구동토층은 더 많이 녹는다. 더 많이 녹은 동토층은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습지로 변하기도 한다. 동토가 가라앉으면서 아북극권의 울창한 숲에서 나무들이 기울어지며 '술취한 숲'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북극에서 여름을 지내는 철새는 둥지 짓는 자리를 바꾸게 되고 초식 동물은 먹이 얻는 곳을 새로 찾아야 한다. 북극의 변화는 곤충의 애벌레가 자라는 시기를 바꾸고 이것을 먹이로 하는 철새들이 번식지에 도착하는 시기와 먹이가 가장 많은 시기가 일치하지 않게 되면서 철새들은 몇 년 동안 어리둥절하게 된다.

@키 작은 자작나무
영구동토층 속의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권 도시는 지반침하를 겪고 있다. 이로 인해 도로나 건물, 공항의 활주로, 송유관 같은 인프라가 균열이나 붕괴에 이르기도 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영구동토층에 저장된 온실기체인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온실기체 배출은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고 더 많은 영구동토층이 녹게 된다.
얼음은 육지뿐 아니라 북극해 바다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1979년 위성 측정이 시작된 이후로 북극해의 얼음 면적은 10년마다 약 13%씩 줄어들었다. 면적만 줄어든 게 아니라 두께도 얇아져서 약 4분의 1로 북극해 얼음의 두께가 감소했다. 이러한 손실은 바다에 잇대어 사는 야생 동물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북극해 얼음을 오가며 물범을 사냥하던 북극곰은 사냥에만 기댈 수 없게 되었다. 얼음이 더 늦게 형성되고 봄에 더 일찍 녹으면서, 북극곰은 사냥할 시간이 줄어들고 더 긴 기간을 먹이 없이 견뎌야 한다. 이는 체력 감소, 새끼 생존율 저하, 개체수 감소로 이어진다. 아예 식단을 바꿔서 새 둥지를 칩입해 알을 깨먹거나 평소에 큰 관심이 없던 순록을 사냥하기도 한다. 한편 눈과 얼음에 완벽하게 적응했던 북극여우는 이제 따뜻해진 영토로 북상하는 붉은여우와 경쟁해야 한다.
@로벤빙하
다산과학기지에 갈 때마다 연구지인 로벤빙하가 저만치 물러나 있는 걸 본다. 얼음이 사라지면 그 밑에 갇혀있던 지면이 드러난다. 바위와 바위가 쪼개져 날카롭게 각이 진 돌멩이들과 군데군데 모래더미가 따스한 햇빛을 받고 신선한 공기와 만난다. 여기에 새로운 생물들이 자리잡기까지 수십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곳에서 꽃이 피기까지는 수백년이 지나야 할지도 모른다. 자연은 어떻게든 바뀐 환경에 적응할 것이다. 우리가 잃어가는 것은 어쩌면 북극의 얼음과 혹한의 환경에 적응해 살아온 생물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인지도 모른다.
북극의 조용한 변화: 툰드라 벌판에서 온 현장 보고
글ㅣ이유경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거의 매년 북극 현장에 나가 툰드라를 밟다 보니 이곳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것은 북극이 따뜻해졌다는 것이다. 흙이나 식물을 채집하기 때문에 눈이 없는 여름에 북극에 간다. 그렇다. 극지에도 여름이 있다. 여름이면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계속된다. 하루종일 햇빛을 받아서 그런지 북극 다산과학기지는 우리나라의 온화한 겨울 날씨와 비슷하다. 극지는 일년내내 엄청 추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자 편견이다. 2003년 여름, 스발바르에 있는 다산과학기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온도계는 영상 5도를 가리켰고, 실제 밖에 나가면 북극의 찬 바람이 체감 온도는 영하까지 낮아졌다. 그런데 요즘은 10도는 기본이고 15도에서 18도를 오르내린다.
2020년 여름,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다산과학기지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스발바르의 다른 지역에서 현장연구를 했다. 비가 심하게 오면 현장에서 연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매일 저녁 일기예보를 보았다. 노르웨이 일기예보는 상당히 정확해서 우리나라 날씨도 우리 기상청보다 잘 맞춘다는 소문이 있다. 그런데 다음날 기온이 20도라고 떴다. 북위 79도의 북극에서 20도라니! 그 예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20도는 아니지. 기상청 직원이 여름 휴가 간 사이 대신 일하는 아르바이트 직원이 실수한 걸 거야.”라며 내 경험을 고집했다. 하지만 다음날 스발바르는 21.7도였고 사람들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녔다.
과학자들은 데이터로 말한다. 매일 온도를 측정한 덕분에 북극의 기온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게 된 사람들은 “북극은 전 지구 평균의 두 배나 빠른 속도로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북극이 기온 상승 속도가 세 배는 빠르다.” “아니야, 여긴 다섯 배”라고 한다. 스발바르의 일부 지역에서는 겨울철 평균 기온이 지난 30년 만에 무려 5°C나 상승했다.
따뜻한 날씨는 얼음을 녹였다. 북극다산과학기지 앞에는 콩스피오르덴(Kongsfjorden)이라는 피오르가 있다. 여기엔 블롬스트란드할뵈야(Blomstrandhalvøya)라는 독특한 이름의 섬이 있다. 이 섬의 이름 뒷부분인 halvøya는 노르웨이어로 "반도"라는 뜻이다. 한반도 할 때 그 반도, 즉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육지라는 의미다. 섬인데 반도라니? 원래 이 섬은 블롬스트란드브레엔(Blomstrandbreen) 빙하로 본토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때 이름이 블롬스트란드 반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인해 얼음 다리가 녹아 사라지면서 반도는 섬으로 변해버렸다.
따뜻함은 겨울에 낯선 일들을 불러왔다. 한겨울에 내리는 비, 잠시 온화한 날 내린 비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얼어붙는다. 눈은 겨울 담요처럼 차가운 바람으로부터 눈 아래 세상을 지켜준다. 눈 밑에서 식물은 봄을 준비하고, 순록은 눈을 파헤치며 그 식물을 찾아 먹으며 겨울을 버틴다. 그런데 눈 위에 얼음이 얼고, 눈이 단단한 얼음으로 변하면서 한겨울을 간신히 버티던 툰드라 식물은 얼어 죽고, 순록은 먹이를 잃는다. 실제로 스발바르에서 200여마리의 순록이 죽음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과학자들이 이들 순록을 조사해 보니 병에 걸리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아니었고, 충분히 먹지 못해 굶주림으로 죽은 것이었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그해 겨울에 내린 비가 그 원인이었다.
@북상하는 침엽수
식물도 북극의 격변을 말없이 알려주는 조용한 증인이다. 생태학자들이 동일한 방법으로 북극의 백여 개의 지역에서 지난 20년 동안 식물을 관찰했다. 수많은 데이터를 한데 모아보니 한때 이끼와 작은 풀이 우점하던 곳이 키 작은 자작나무와 버드나무 덤불로 뒤바뀌었다.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극에서 침엽수는 점점 북쪽으로 서식지를 이동하고 있다. 북극 툰드라를 어렵게 지켜온 식물들은 이제 남쪽에서 몰려오는 나무들과 경쟁해야 한다. 경쟁에서 밀리면 더 갈 곳도 없다. 북극해 바다에 빠지는 수밖에! 게다가 이러한 식생의 변화는 툰드라 생태계에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더 키가 큰 관목은 더 많은 눈을 가둘 수 있다. 눈은 더 늦게 녹고 단열 효과는 더 노래 지속된다. 봄이 되어 눈이 녹을 때 더 많은 물이 동토로 스며들고 이로 인해 영구동토층은 더 많이 녹는다. 더 많이 녹은 동토층은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습지로 변하기도 한다. 동토가 가라앉으면서 아북극권의 울창한 숲에서 나무들이 기울어지며 '술취한 숲'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북극에서 여름을 지내는 철새는 둥지 짓는 자리를 바꾸게 되고 초식 동물은 먹이 얻는 곳을 새로 찾아야 한다. 북극의 변화는 곤충의 애벌레가 자라는 시기를 바꾸고 이것을 먹이로 하는 철새들이 번식지에 도착하는 시기와 먹이가 가장 많은 시기가 일치하지 않게 되면서 철새들은 몇 년 동안 어리둥절하게 된다.
@키 작은 자작나무
영구동토층 속의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권 도시는 지반침하를 겪고 있다. 이로 인해 도로나 건물, 공항의 활주로, 송유관 같은 인프라가 균열이나 붕괴에 이르기도 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영구동토층에 저장된 온실기체인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온실기체 배출은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고 더 많은 영구동토층이 녹게 된다.
얼음은 육지뿐 아니라 북극해 바다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1979년 위성 측정이 시작된 이후로 북극해의 얼음 면적은 10년마다 약 13%씩 줄어들었다. 면적만 줄어든 게 아니라 두께도 얇아져서 약 4분의 1로 북극해 얼음의 두께가 감소했다. 이러한 손실은 바다에 잇대어 사는 야생 동물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북극해 얼음을 오가며 물범을 사냥하던 북극곰은 사냥에만 기댈 수 없게 되었다. 얼음이 더 늦게 형성되고 봄에 더 일찍 녹으면서, 북극곰은 사냥할 시간이 줄어들고 더 긴 기간을 먹이 없이 견뎌야 한다. 이는 체력 감소, 새끼 생존율 저하, 개체수 감소로 이어진다. 아예 식단을 바꿔서 새 둥지를 칩입해 알을 깨먹거나 평소에 큰 관심이 없던 순록을 사냥하기도 한다. 한편 눈과 얼음에 완벽하게 적응했던 북극여우는 이제 따뜻해진 영토로 북상하는 붉은여우와 경쟁해야 한다.
다산과학기지에 갈 때마다 연구지인 로벤빙하가 저만치 물러나 있는 걸 본다. 얼음이 사라지면 그 밑에 갇혀있던 지면이 드러난다. 바위와 바위가 쪼개져 날카롭게 각이 진 돌멩이들과 군데군데 모래더미가 따스한 햇빛을 받고 신선한 공기와 만난다. 여기에 새로운 생물들이 자리잡기까지 수십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곳에서 꽃이 피기까지는 수백년이 지나야 할지도 모른다. 자연은 어떻게든 바뀐 환경에 적응할 것이다. 우리가 잃어가는 것은 어쩌면 북극의 얼음과 혹한의 환경에 적응해 살아온 생물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