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스테리아] 6. 계몽주의의 도전 (전경훈)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5-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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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의 도전

- 마지스테리아 8・9장 -


글ㅣ전경훈
《마지스테리아》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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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말에서 18세기 말에 이르는 약 100년 동안은 계몽주의Lumières의 시대였다. 계몽주의는 말 그대로 이성의 ‘빛’으로 옛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고 새 세상을 열어젖힌 사조라고들 한다. 넓고 길게 보자면 영국의 경험론을 시작으로 프랑스의 ‘필로조프philosophe’들에 의해 꽃피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계몽주의는 근대성의 핵심인 이성, 과학, 인본주의, 진보 등의 개념을 낳았다. 그러나 계몽주의는 단일한 사조가 아니라 오랜 시간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인물을 통해 전개된 사조들이었다. 계몽주의는 보통 반反종교적이었다는 게 통설이지만, 계몽주의와 종교의 관계가 그렇게 일률적이지는 않다.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과학자로서 고전 물리학을 정초한 아이작 뉴턴조차 열렬히 종교적이었다. 그는 세상 만물이 공통된 자연법칙을 따라 운동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이를 수식으로 정립했을 뿐 아니라, 그것이 곧 그러한 우아한 체계를 만들어낸 지성과 권능을 갖춘 우주 설계자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화학이라는 분과학문을 정립한 로버트 보일은 자연의 신비를 밝혀내는 과학이야말로 창조주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라 여겼으며, 더 나아가 과학자야말로 관찰과 실험이라는 의식을 통해 창조를 재현하고 신을 숭배하는 새로운 사제라고까지 선언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연을 관찰하고 추론함으로써 창조주 하느님에 대해 이해하고자 했으며, 그러한 맥락에서 17세기에도 신학은 과학을 배양했다. 17세기에 이루어진 과학혁명이란 그보다 훨씬 이전에 등장한 자연철학의 형이상학적 쌍둥이로 등장한다. 종교개혁 이후 그리스도교의 분열이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계시(성경)보다 더 보편적이고 덜 논쟁적인 것에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정초하고자 했다. 망원경에 이어 현미경이 발명되자 인간의 감각은 전례 없이 확장되었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난해하며 경이로운 곳이 되었으며, 그 세계를 직접 보고 알게 되기를 원하는 지적 욕망도 폭발적으로 커졌다. 그러면서 등장한 것이 바로 자연세계로부터 신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이른바 ‘물리신학physico-theology’이다. 


물리신학(들)은 단순히 자연을 통해 신의 존재 증명을 시도한 것만이 아니라 신의 속성을 알고자 했다. 17세기 과학자들이 자연에서 찾아낸 중요한 특징은 일률성이었고 이 일률성을 보장하는 존재가 신일 뿐 아니라 신 또한 그렇게 일률적으로 세계를 창조하고 항구적으로 세계에 관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를테면 뉴턴의 운동 법칙이야말로 그러한 생각에서 비롯했고, 그러한 생각을 뒷받침했다. 이 시대 물리신학자들에게 세상은 아름답고 질서정연하고 유익하고 생산적인 것으로 인식되었고, 세상을 만들고 떠받드는 창조주 하나님 또한 그러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이제 어떤 사람들은 미학과 도덕의 법칙조차 자연법칙으로부터 알아낼 수 있다는 믿음에 이르기 시작했다. 


하늘의 천체들만이 아니라 세상 온갖 만물이 보편적이고 항구적인 법칙을 따라 운동한다고 하니, 과학자들은 지상의 온갖 것들을 세세하게 연구하기 시작했고 거기에서 그 일률성을 확인하려 했다. 개별 연구 대상마다 개별 물리신학(들)이 성립했으며 이것이 과학의 개별 분과를 형성하는 기초가 되었다. 이전에는 학문의 대상이 될 수도 없었던 곤충,  풀 등이  실험과 관찰의 대상이 되면서 이미 이 시대에 그런 것은 연구해서 무엇하는가 하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으나, 이 모두가 창조주의 존재와 속성을 파악하는 일로 여겨지면서 중단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니 종교가 과학의 분화 발전에 타당성을 제공했던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과학이 더 발전할수록 종교와 긴장을 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생물 분류학이 발전해 나가자 이 모든 생물을 노아의 방주에 태우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는 자연스러운 결론이 도출되었다. 지층과 화석을 연구하는 층서학 연구가 진전되자 노아의 홍수 신화를 뒷받침하는 듯했으나 지구의 역사가 성경에 제시된 것보다 길고 과거에는 다른 생물들이 살고 있었으리라는 추정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생각은 과학과 종교 사이에 틈을 벌이기 시작했다. 물리신학은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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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문제가 된 것은 ‘인간’이었다. 세상 만물을 ‘일률성’의 틀로 볼 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지위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18세기 전반에 이미 프랑스의 라 메트리나 영국의 하틀리 같은 의사들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인간의 정신이 신체 곧 물질에서 비롯한다는 생각을 제시했다. 하틀리는 인간의 고유하고 우월적인 정신 활동을 인정하되 그것이 모두 물질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라 메트리는 인간이 동물과 다를 바 없이 감각과 충동에 의해서 움직이는 자동기계와 같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결론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철학 모두에서 영혼과 육체라는 이원론으로 바라보던 전통적 인간관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만은 동일했다. 사실 근대 철학의 기초를 놓았다는 데카르트까지도 영혼과 육체라는 이원론을 통해 인간을 설명했고, 이 둘을 연결하기 위해 송과선이라는 해부학적 장치를 상정했으나, 이미 17세기 말에 해부학이 분과학문으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육체에는 다른 동물에게 없는 그러한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나 명확하게 밝혀졌다. 이제 과학에서는 인간의 정신 활동을 이야기할 때 영혼이 아닌 ‘뇌’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동물에 관한 연구는 동물 육체의 해부학적 일률성과 완전성만이 아니라 동물의 ‘정신’에 관한 연구도 이어졌고, 결론은 동물 또한 인간과 유사한 감각과 기억과 감정이 있을 뿐 아니라, 어떤 동물들은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고 소통할 수 있다는 주장들이 나왔다. 사실 이러한 결론은 인간 정신을 감각에서 시작되는 경험에 정초했던 경험론 철학에 이미 배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인간 또한 생물 분류 체계에 속하게 되고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흐려졌을 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 또한 육체 곧 물질에서 비롯한 것이란 추측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동물이 본래는 인간과 같고 인간과 어우러진다는 생각은 창세기에서 묘사되는 아담과 다른 동물에 관한 묘사나 이사야서나 바울 서신의 회복된 창조 세계에 대한 묘사를 통해 뒷받침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교회는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창조 세계 안에서 인간이 갖는 고유하고 특별한 지위를 부정하는 과학자들의 생각을 용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의 잠재성을 가진 발견이 이어졌다. 프랑스의 트랑블레가 현미경을 통해 히드라를 발견했고, 이 히드라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도 각 조각이 완전한 개체로 재생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 것이다. 트랑블레의 발견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와 우위만이 아니라 생물의 분류 체계 자체를 모호하게 하는 한편, 생물의 변이가 가능하리라는 암시를 던져 주었다. 더구나 히드라의 무한한 자기 재생 능력은 더 나아가 자기 창조 능력을 보여주는 듯도 했다. 여기에 지층과 화석에 관한 지식이 축적됨에 따라 점차 생물에 대한 유물론적이고 진화론적인 사고를 낳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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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이 계몽의 시대에 관찰과 실험을 바탕으로 과학은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고 여러 분과학문을 거느리게 되었다. 하늘의 천체만이 아니라 세상 만물이 항구한 보편적 법칙을 따라 운동한다는 뉴턴의 물리학이 바탕이 되어 이러한 전환이 이루어졌지만, 세계의 일률성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입증하고 이해하려는 종교가 과학 발전에 타당성을 제공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일률성에 기초한 과학적 세계관은 기존의 이원론적 인간관과 세계관에 타격을 주기 시작했고, 인간과 동물은 물론 정신과 물질의 경계를 허물며 차츰 진화론과 유물론으로 흐르는 양상을 이미 이 시기에 보여주었다. 아직 저자 스펜서가 명확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과학과 종교가 대결하는 지점, 곧 ‘인간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말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문제가 전면에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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