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 칼럼
피지컬 인공지능 시대,
종교적 인공지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글 | 정대경
과학과신학의대화 연구소장
연세대학교 교수
작년과 올해 열린 CES 2025와 CES 2026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술 흐름 가운데 하나는 단연 피지컬 인공지능(Physical AI)이었다. 인공지능은 더 이상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문자나 음성으로만 소통하는 기술이 아니다. 점차 물리적 형태를 갖추고 현실 세계 안으로 들어와 인간과 함께 상호작용하는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적 발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물리적 몸을 가진 인공지능은 인간과 물리적인 상호작용뿐 아니라 정서적 교류까지 수행할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이 흐름은 기존의 소셜 로봇(social robots) 연구와 결합하면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한층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최근 학계와 종교계 모두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영역이 바로 종교 로봇(religious robots)이다. 이미 일본이나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설교를 수행하거나 기도를 인도하는 로봇이 등장한 바 있고, 종교 공동체 안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려는 시도 역시 점차 늘어나고 있다. 범용적인 소셜 로봇 기술이 더욱 발전한다면 이러한 종교적 활용 역시 자연스럽게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우리는 피지컬 인공지능의 “종교적 행위자성(religious agency)”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진: Unsplash의Maximalfocus
행위자성(agency)이라는 문제
어떤 존재를 행위자(agent)로 인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행동을 한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존재를 특정한 상황 속에서 어떤 존재로 간주하고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 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예를 들어 두 살짜리 아이를 생각해보자. 아이 역시 행동을 하고 선택을 하지만 철학적 의미에서 완전한 행위자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전통적인 행위자성 이론에 따르면 행위자는 의도성(intentionality)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자신의 행위 결과에 대해 책임(responsibility)을 질 수 있어야 한다(Schlosser 2019; Swanepoel 2021). 아이는 믿음과 욕구에 따라 행동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행위자성은 제한적으로만 인정되고, 그 행위 역시 보호자의 감독 아래 귀속된다.
인공지능의 행위자성을 논의하는 문제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단순한 철학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실제적인 문제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뒤따른다.
"종교적 인공지능은 어느 정도까지 종교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 및 활용해야 하는가?"
"종교 공동체는 이러한 기술을 어떤 기준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인공지능이 종교적 활동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인공지능은 행위자인가?
인공지능의 행위자성을 둘러싼 논쟁은 크게 두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첫 번째는 표준적 견해(the standard view)라고 불리는 입장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의 행위자성은 의도성을 전제로 하며,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숙고와 반성, 시간 속에서의 자기 인식, 환경에 대한 비판적 이해, 자유로운 선택과 같은 요소들이 그것이다. (Swanepoel 2021) 이 기준을 적용할 경우 현재의 인공지능은 인간과 같은 의미의 행위자가 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많은 철학자들이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인공지능이 현상적 의식(phenomenal consciousness)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철학자 루치아노 플로리디(Luciano Floridi)는 이러한 접근이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인공지능을 인간과 동일한 방식의 행위자로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도구로 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플로리디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지능 없는 행위자성(agency without intelligence)”을 지닌 존재로 이해되어야 한다. 어떤 시스템이 상호작용성, 자율성, 적응성과 같은 특성을 갖추고 있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행위자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인간과 동일한 종류의 행위자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인간과는 다른 종류의 행위자성을 가진 존재로 이해돼야 한다는 주장에 가깝다. (Floridi 2025)
다른 연구들도 이러한 논의를 한 걸음 더 확장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드 덩(Leonard Dung)은 행위자성을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차원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목표 지향성, 자율성, 효능성(efficacy), 계획 능력, 의도성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요소들이 모든 존재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정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와 같은 단순한 생명체에서도 목표 지향성이나 자율성은 발견되지만, 계획 능력이나 의도성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Dung 2025) 반면 동물의 경우에는 다섯 요소가 모두 발견되지만 그 수준은 인간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접근은 인공지능을 단순히 “행위자인가 아닌가”라는 이분법으로 판단하기보다 다양한 수준의 행위자성을 가진 존재들 가운데 하나로 이해하도록 이끈다.

사진: Unsplash의Igor Omilaev
종교적 인공지능은 단순한 도구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논의는 종교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종교적 인공지능을 둘러싼 많은 논의는 대체로 두 가지 극단 사이에서 전개되는 경향이 있다. 하나는 그것을 단순한 기술적 도구로 이해하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과 유사한 종교적 주체로 간주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피지컬 인공지능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 두 입장은 모두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피지컬 인공지능은 인간과 동일한 의미의 종교적 주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인간처럼 의식과 책임을 지닌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단순히 수동적인 도구로만 이해하기에도 문제가 있다. 오늘날의 인공지능 시스템은 단순히 인간의 명령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장치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피지컬 인공지능은 물리적 환경 속에서 인간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작동한다. 센서와 알고리즘을 통해 환경의 변화를 인식하고, 상황에 따라 반응을 조정하며,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행동 패턴을 수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공지능의 작동 방식은 단순한 기계적 반복이라기보다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일종의 행위 패턴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그 결과 인공지능은 인간의 행동과 경험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며, 때로는 인간의 의사결정이나 정서적 반응에도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하게 된다.
종교적 맥락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앙 상담을 보조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이나 기도와 묵상을 돕는 로봇, 종교 교육을 지원하는 인공지능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수행한다. 인간의 질문에 반응하고 대화를 이어가며 신앙적 실천을 돕는 과정 속에서 인공지능은 신앙 활동의 경험 구조 자체에 일정한 방식으로 개입하게 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피지컬 인공지능을 이해하는 데에는 기존의 “도구”라는 범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고 인간과 동일한 행위자로 격상시키는 것도 적절한 접근은 아니다. 오히려 인공지능은 인간과는 다른 방식의 행위자성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의 활동을 보조하고 확장하는 특정한 형태의 협력적 관계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피지컬 인공지능을 “도구적 파트너(instrumental partner)”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 표현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의도를 대신하는 주체는 아니지만, 동시에 단순히 수동적인 도구에 머무르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제안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종교적 인공지능은 인간의 종교적 활동을 보조하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행위하는 기술적 행위자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앞으로 종교 공동체 안에서 인공지능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보다 현실적으로 평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인공지능을 단순한 도구로만 간주할 경우 그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게 될 수 있고, 반대로 인간과 유사한 주체로 이해할 경우 불필요한 오해와 기대, 관계 왜곡 등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지컬 인공지능을 “도구적 파트너”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접근은 이 두 극단을 피하면서 종교적 인공지능의 역할과 책임을 보다 균형 있게 논의할 수 있는 하나의 출발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참고문헌
- David Swanepoel, “Does Artificial Intelligence Have Agency?” Robert W. Clowes, Klaus Gartner, and Ines Hipolito eds., The Mind-Technology Problem: Investigating Minds, Selves, and 21st Century Artefacts (Berlin: Springer, 2021), 83-104.
- Markus Schlosser, “Agency,”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s://plato.stanford.edu/entries/agency/ (2026년 2월 25일 접속).
- Luciano Floridi, "AI as Agency Without Intelligence: On Artificial Intelligence as a New Form of Artificial Agency and the Mulitiple Realisability of Agency Thesis," Philosophy and Technology 38.30(2025), 1-27.
- Leonard Dung, “Understanding Artificial Agency,” the Philosophical Quarterly 75.2(2025), 450-472.
과신 칼럼
피지컬 인공지능 시대,
종교적 인공지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글 | 정대경
과학과신학의대화 연구소장
연세대학교 교수
작년과 올해 열린 CES 2025와 CES 2026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술 흐름 가운데 하나는 단연 피지컬 인공지능(Physical AI)이었다. 인공지능은 더 이상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문자나 음성으로만 소통하는 기술이 아니다. 점차 물리적 형태를 갖추고 현실 세계 안으로 들어와 인간과 함께 상호작용하는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적 발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물리적 몸을 가진 인공지능은 인간과 물리적인 상호작용뿐 아니라 정서적 교류까지 수행할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이 흐름은 기존의 소셜 로봇(social robots) 연구와 결합하면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한층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최근 학계와 종교계 모두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영역이 바로 종교 로봇(religious robots)이다. 이미 일본이나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설교를 수행하거나 기도를 인도하는 로봇이 등장한 바 있고, 종교 공동체 안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려는 시도 역시 점차 늘어나고 있다. 범용적인 소셜 로봇 기술이 더욱 발전한다면 이러한 종교적 활용 역시 자연스럽게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우리는 피지컬 인공지능의 “종교적 행위자성(religious agency)”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진: Unsplash의Maximalfocus
행위자성(agency)이라는 문제
어떤 존재를 행위자(agent)로 인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행동을 한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존재를 특정한 상황 속에서 어떤 존재로 간주하고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 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예를 들어 두 살짜리 아이를 생각해보자. 아이 역시 행동을 하고 선택을 하지만 철학적 의미에서 완전한 행위자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전통적인 행위자성 이론에 따르면 행위자는 의도성(intentionality)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자신의 행위 결과에 대해 책임(responsibility)을 질 수 있어야 한다(Schlosser 2019; Swanepoel 2021). 아이는 믿음과 욕구에 따라 행동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행위자성은 제한적으로만 인정되고, 그 행위 역시 보호자의 감독 아래 귀속된다.
인공지능의 행위자성을 논의하는 문제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단순한 철학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실제적인 문제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뒤따른다.
"종교적 인공지능은 어느 정도까지 종교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 및 활용해야 하는가?"
"종교 공동체는 이러한 기술을 어떤 기준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인공지능이 종교적 활동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인공지능은 행위자인가?
인공지능의 행위자성을 둘러싼 논쟁은 크게 두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첫 번째는 표준적 견해(the standard view)라고 불리는 입장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의 행위자성은 의도성을 전제로 하며,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숙고와 반성, 시간 속에서의 자기 인식, 환경에 대한 비판적 이해, 자유로운 선택과 같은 요소들이 그것이다. (Swanepoel 2021) 이 기준을 적용할 경우 현재의 인공지능은 인간과 같은 의미의 행위자가 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많은 철학자들이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인공지능이 현상적 의식(phenomenal consciousness)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철학자 루치아노 플로리디(Luciano Floridi)는 이러한 접근이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인공지능을 인간과 동일한 방식의 행위자로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도구로 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플로리디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지능 없는 행위자성(agency without intelligence)”을 지닌 존재로 이해되어야 한다. 어떤 시스템이 상호작용성, 자율성, 적응성과 같은 특성을 갖추고 있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행위자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인간과 동일한 종류의 행위자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인간과는 다른 종류의 행위자성을 가진 존재로 이해돼야 한다는 주장에 가깝다. (Floridi 2025)
다른 연구들도 이러한 논의를 한 걸음 더 확장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드 덩(Leonard Dung)은 행위자성을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차원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목표 지향성, 자율성, 효능성(efficacy), 계획 능력, 의도성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요소들이 모든 존재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정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와 같은 단순한 생명체에서도 목표 지향성이나 자율성은 발견되지만, 계획 능력이나 의도성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Dung 2025) 반면 동물의 경우에는 다섯 요소가 모두 발견되지만 그 수준은 인간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접근은 인공지능을 단순히 “행위자인가 아닌가”라는 이분법으로 판단하기보다 다양한 수준의 행위자성을 가진 존재들 가운데 하나로 이해하도록 이끈다.
사진: Unsplash의Igor Omilaev
종교적 인공지능은 단순한 도구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논의는 종교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종교적 인공지능을 둘러싼 많은 논의는 대체로 두 가지 극단 사이에서 전개되는 경향이 있다. 하나는 그것을 단순한 기술적 도구로 이해하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과 유사한 종교적 주체로 간주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피지컬 인공지능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 두 입장은 모두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피지컬 인공지능은 인간과 동일한 의미의 종교적 주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인간처럼 의식과 책임을 지닌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단순히 수동적인 도구로만 이해하기에도 문제가 있다. 오늘날의 인공지능 시스템은 단순히 인간의 명령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장치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피지컬 인공지능은 물리적 환경 속에서 인간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작동한다. 센서와 알고리즘을 통해 환경의 변화를 인식하고, 상황에 따라 반응을 조정하며,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행동 패턴을 수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공지능의 작동 방식은 단순한 기계적 반복이라기보다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일종의 행위 패턴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그 결과 인공지능은 인간의 행동과 경험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며, 때로는 인간의 의사결정이나 정서적 반응에도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하게 된다.
종교적 맥락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앙 상담을 보조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이나 기도와 묵상을 돕는 로봇, 종교 교육을 지원하는 인공지능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수행한다. 인간의 질문에 반응하고 대화를 이어가며 신앙적 실천을 돕는 과정 속에서 인공지능은 신앙 활동의 경험 구조 자체에 일정한 방식으로 개입하게 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피지컬 인공지능을 이해하는 데에는 기존의 “도구”라는 범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고 인간과 동일한 행위자로 격상시키는 것도 적절한 접근은 아니다. 오히려 인공지능은 인간과는 다른 방식의 행위자성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의 활동을 보조하고 확장하는 특정한 형태의 협력적 관계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피지컬 인공지능을 “도구적 파트너(instrumental partner)”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 표현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의도를 대신하는 주체는 아니지만, 동시에 단순히 수동적인 도구에 머무르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제안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종교적 인공지능은 인간의 종교적 활동을 보조하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행위하는 기술적 행위자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앞으로 종교 공동체 안에서 인공지능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보다 현실적으로 평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인공지능을 단순한 도구로만 간주할 경우 그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게 될 수 있고, 반대로 인간과 유사한 주체로 이해할 경우 불필요한 오해와 기대, 관계 왜곡 등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지컬 인공지능을 “도구적 파트너”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접근은 이 두 극단을 피하면서 종교적 인공지능의 역할과 책임을 보다 균형 있게 논의할 수 있는 하나의 출발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