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특집] 창조론 논쟁 속 과학신학의 의미 (김정형)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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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10주년 기념 포럼 특집

창조론 논쟁 속 과학신학의 의미


글 | 김정형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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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포럼 발제 PPT 자료


  지난 20세기 중반 이후 영미권을 중심으로 종교와 과학, 신학과 과학의 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구원 중심에서 창조 중심으로의 성서신학 패러다임의 전환, 창조론에 대한 조직신학자들의 점증하는 관심, 환경 위기로 촉발된 생태신학의 태동과 궤를 같이하는 새로운 신학 운동이었습니다. 사실 과학과 신학의 만남은 철학과 신학의 만남만큼이나 오랜 역사가 있지만, 지난 세기 종교와 과학의 대화는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수준의 상호 작용을 선보여 주었습니다. 


  이 발표의 제목에서 ‘과학신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사실 이것은 신학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표현이 아닙니다. 통상 이 분야를 가리키는 표현으로는 ‘과학과 종교’(International Society for Science and Religion), ‘종교와 과학’(Zygon Center for Religion and Science), ‘신학과 과학’(Center for Theology and the Natural Sciences), ‘과학 시대의 종교’(Institute of Religion in an Age of Science), ‘과학과 신학’(과신대) 등이 있습니다. ‘과학적 신학’, ‘신학적 과학’, ‘신학 연계 과학’, ‘신학의 과학’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다양한 표현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두 개의 축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신학/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입니다.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둘 중 뭐가 상수이고, 뭐가 변수일까요? 제가 공부한 바로는, 20세기 이후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서 주로 과학이 상수로 있고, 신학이 변수로 자기 갱신을 도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혹자는 이것을 보고서 신학의 퇴행이라고 비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사상사 전체를 돌아보면, 신학은 언제나 당대의 과학을 적극적으로 (물론 또한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따라서 현대 신학이 현대 과학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모습은 신학의 퇴행이 아니라, 신학의 유구한 전통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 지난 이천 년간 과학의 모습이 한결같지 않았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만 길게 내다보면 과학은 상수처럼 불변하는 진리를 대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전했습니다. 계속해서 발전하는 과학의 변수에 대하여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상수로 두고서 끊임없이 복음을 새롭게 선포해 왔습니다. 짧은 기간만 보면 과학이 상수이고 신학이 변수인 것처럼 보이지만, 길게 보면 신학이 상수이고 과학이 변수였습니다. 혹은, 신학과 과학이 상호 간에 건설적이면서 비판적인 대화를 지속하면서 각자 나름의 발전을 지속해 왔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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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포럼 발제 PPT 자료


  앞서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학신학’)가 상당히 오랜 역사가 있지만 최근 대화는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수준의 상호 작용을 보여준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것을 입증하는 근거 중 하나는 20세기 중반부터 전문 과학자이면서 전문 신학자인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이러한 학자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만, 이안 바버, 아서 피콕, 존 폴킹혼, 로버트 러셀 등과 같은 과학자-신학자들(scientist-theologians)이 과학과 신학의 두 분야 모두에 전문성을 갖고서 두 분야를 연결하는 작업에 천착했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과학자-신학자들이 학계에 미친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는 이들 중 상당수가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 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업적에 응답하여 소위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위르겐 몰트만, 필립 헤프터, 테드 피터스 등 그리스도교 조직신학자들이 과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창조 신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과학신학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매우 튼튼한 제도적 뒷받침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과학신학 분야에는 학문적 수월성을 자랑하는 많은 학술연구기관이 있습니다. 이미 1954년 시카고에서 설립된 자이곤 종교과학센터, 1980년부터 시작된 버클리 신학과 자연과학연구소, 폴킹혼 교수가 템플턴상 기금으로 설립한 국제과학종교학회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연구기관들이 과학신학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활동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Zygon: Journal of Religion and Science, Theology and Science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A&HCI/SSCI 등재 학술지에서는 과학신학 분야의 탁월한 연구논문들이 게재되어 이 분야의 계속적 발전을 추동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대규모의 종교학회인 미국종교학회(American Academy of Religion)에서는 <과학, 기술, 종교>이라는 이름의 연구모임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매년 종교와 과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 세계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Hospitality Event)도 가집니다. 이와 같은 제도적 뒷받침을 고려할 때, 과학신학은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21세기 과학신학의 최근 동향을 잠시 말씀드리자면, 가장 먼저 그리스도교 신학 중심이 아니라 불교와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향으로 종교와 과학 대화의 지평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또한 과학신학 내에서 순수과학에 대한 집중에서 벗어나 생명공학이나 인공지능 등 최근 기술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면서, 더불어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의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페미니즘, 비판이론, 포스트휴머니즘 등의 새로운 철학적/인문학적 관점들이 유입되면서 오늘의 과학신학은 과거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풍요롭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국내 과학신학 이야기를 조금만 덧붙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볼 때, 국내 과학신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2002년입니다. 그 해에 국내 5개 신학교에서 종교와 과학 관련 수업이 처음 개설되었습니다. 이 수업은 템플턴 재단의 지원을 받은 CTNS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 수업 관련 <과학과 종교: 새로운 공명>이란 책이 번역되었는데, 이 책의 저자와 번역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21세기 초반 과학신학의 대표적인 학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후 국내에서는 주로 조직신학자들을 중심으로 과학신학 논의가 활성화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 참여한 과학신학 모임만 해도, 과신대 외에 기포드 강연 공동연구, 이수포럼, 한연성 심포지엄, 인간기술공생네트워크, NCCK 종교와 과학 심포지엄, 한국종교와 과학네트워크 등 매우 다양합니다. 


  지금은 과학신학 전공으로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연구자들도 상당히 많아졌고, 국내에서 이 분야의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한 연구자들의 수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대학교와 대학원의 정규 교육과정 가운데 과학신학 수업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융합연구를 강조하면서, 과학신학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는 모습도 보입니다. 아쉬운 점은 이 논의에 참여하는 많은 연구자가 주로 남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아직 과학자이면서 신학자인 분들이 상대적으로 여전히 적다는 점도 아쉬움이 있습니다. 반면에 반가운 소식은 과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과신대 연구소를 중심으로 신학자만큼이나 과학자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고, 그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은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과신대 연구모임의 핵심과정이 처음 시작할 때는 주로 신학자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신학 분야 강의와 과학 분야 강의가 별도로 개설되어 균형을 맞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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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포럼 발제 PPT 자료


  이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바라기는 과신대 10주년을 맞아 과학신학 논의가 더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과학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고 과학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포용하면서 이제는 다음 단계의 논의로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말하자면, 과학 연계 신학과 같이 국내 과학신학이 조금 더 생산적이고 조금 더 건설적인 논의를 전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신학적, 과학적 논의가 인간 구원 중심에서 창조 세계의 지평으로 더 넓어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지구 행성의 문제, 생태계 문제가 앞으로 과학신학의 중요한 화두가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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