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특집] 교회는 과학을 '위협'이 아닌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김영웅)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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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10주년 기념 포럼 특집

교회는 과학을 '위협'이 아닌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글 | 김영웅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 선임연구원

과신대 후원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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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포럼 발제 PPT 자료


들어가며

  제가 맡은 발제는 ‘교회는 과학을 위협이 아닌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입니다. 저는 이를 ‘과학은 위협이 아니라는 것’과 ‘과학은 선물이라는 것’으로 나눠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어서 과학에 대한 교회의 자세와 활용법에 대한 저의 의견도 살짝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과학은 신앙을 깨뜨리는 위협일까요? 과학과 신앙은 반드시 적대적이어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시거나 그렇게 생각하도록 강요받으시는 분들이 교회 안에 은근히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기류가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시는 모습일까요? 그동안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가셨던 분들도 오늘 이 시간만큼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괜찮다 하더라도 혼란에 빠져 신앙을 잃을 수 있는 누군가를 돕는 구원의 손길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막연한 두려움

  현대 과학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했다는 것은 지구 평평설을 믿든, 지구 6천 년설을 믿든, 심지어는 지금도 천동설을 믿는 사람들 조차도 모두 인정하는 바입니다. 몇 년 전부터 등장하여 이제는 익숙해진 AI는 인간의 고유성과 영혼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다시 하게 만듭니다. 유전자 가위는 생명 주권의 경계에 대한 고민, 즉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간주하곤 합니다. 그 외의 생명공학적인 기술, 이를테면 백신 개발이나 여러 진단 기술들도 하나님의 창조의 완전성에 마치 흠이라도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으로 오인되기도 합니다. 목사님들을 비롯한 많은 그리스도인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지요. 

  혹시 여러분은 두려움과 공포의 차이를 아시나요? 공포는 대상이 확실한 반면, 두려움은 불확실한 대상에 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반응입니다. 과학이라는 특정 대상이 정해졌다면 우리가 느껴야 하는 건 공포이지 두려움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학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말은 사실 모순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우리의 현재 좌표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이 공포가 아닌 두려움의 대상인 이유는 과학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다음 작업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두려운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을 것인가요? 아니면 과학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걸까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두려움이나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예로 들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전성설

  지금으로부터 삼사백 년 전, 그러니까 17-18세기만 해도 사람들은 전성설을 사실로 믿었답니다. 전성설은 영어 Preformationism을 번역한 말인데요. ‘이미 형태가 갖춰졌다는 가설’ 정도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주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형태가 갖춰졌다는 말일까요? 놀랍게도 주어는 사람입니다. 이 당시에는 사람이 모든 형태를 갖춘 채 미니어처로 정자 속에 들어 있다고 믿었답니다. 무슨 공상과학 이야기 같죠? 그 미니어처를 ‘호문쿨루스’라고 불렀습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이 전성설이 터무니없는 상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현미경의 발달이 전성설의 허구를 밝혀내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습니다. 과학의 힘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습니다. 

  인간은 미니어처로 존재하다가 크기만 커지는 게 아니라 정교한 발생과정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제가 알기론 지구평평론자, 지구 6천 년설을 믿는 자, 천동설을 믿는 자 할 것 없이 모두 거부하지 않고 인간의 발생만큼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은 엄마의 난자와 아빠의 정자가 합쳐져서 수정란이 생기고, 그 하나의 세포로부터 만들어지는 생명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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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포럼 발제 PPT 자료


전성설에 대한 교회의 반응

  제가 왜 갑자기 전성설을 말씀드리는 걸까요? 놀랍게도 이 전성설을 교회에서 적극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검증되지도 않은, 결코 과학이라 할 수 없는 유사과학을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반교리화시켰던 것이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세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히브리서 7장 9-10절 말씀입니다.

“또한 십 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 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레위의 아버지는 야곱, 야곱의 아버지는 이삭, 이삭의 아버지는 아브라함입니다. 10절에서 ‘자기 조상’이라 함은 아브라함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문자적으로는 레위가 증조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의 허리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죠. 그러나 삼사백 년 전 전성설이 등장했을 때 교회는 이 구절을 마침내 ‘과학적으로’ 해석할 기회를 찾았다고 여겼습니다. 레위가 미니어처로 아브라함의 허리 (당시엔 정자나 정자의 생성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없었고 허리와 허벅지 근처에서 생명이 싹튼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안에 들어 있었다고 믿게 된 것이죠.  

  성인 남성 몸에서 하루에 정자가 몇 개나 만들어질까요? 1억 개 이상입니다. 또 그만큼의 수가 죽어나가고요. 이것은 일 초에 약 1,500개가 새롭게 창조되고 파괴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현대 생물학적인 상식으로는 아버지의 정자가 아들의 몸에 있을 리는 만무하죠. 


  둘째, 창세기 2장 1절 말씀입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천지 창조의 완전성으로 해석되는 구절입니다. 완전하다는 것을 이후의 어떠한 추가나 수정이 없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었고요. 전성설로 인해 천지 창조 시기에 이후에 태어날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들이 전부 다 존재해야 한다고 해석되었던 것입니다. 레위가 아브라함 허리에 존재했듯이, 아브라함 역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아담의 허리에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가 전성설 덕분에 성립되는 것이죠. 그러나 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분화하고 있습니다. 엄마 배 속에서만이 아니라 성인이 되고 노화가 되어 죽기 직전까지 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지요. 


  셋째, 로마서 5장 12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원죄론의 배경이 되는 구절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한 사람은 선악과를 하와와 함께 먹었던 아담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전성설 덕분에 원죄가 대대로 이어진다고 믿는 교리가 기가 막히게 뒷받침된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다는 건 아담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시 말해 아담 허리에 들어 있는, 앞으로 태어날 모든 인류가 한꺼번에 죄를 짓게 되었다는 뜻이므로 모든 인간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전성설이 설명해 준 것입니다. 

    

진정한 위협은?

  전성설을 교회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건 전성설이 사실이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설명하기 힘들었던 인간의 기원, 하나님의 창조, 그리고 원죄론을 기가 막히게 설명해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성설의 최후를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 구절을 잘 설명해 준다고 해도, 결국 허구에 불과한 거였죠. 이로부터 우린 작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과학 이론을 교리화하는 것은 그 이론이 틀렸을 때 신앙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은 현미경의 발명과 발생생물학의 등장, 즉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과연 기독교 신앙에 위협을 가했느냐는 것입니다. 과학이 위협이었나요? 아니면 과학에 어떤 프레임을 씌우고 교리화시킨 행위가 위협이었나요? 현미경을 발명한 사람이나 발생생물학자들은 모두 기독교 신앙을 반대하거나 없애려고 했을까요? 아닐 겁니다. 과학은 유신론 무신론 상관없이 중립적으로 지속해서 발전하는 속성을 가집니다.

  과학 이론은 변하지만, 하나님의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특정 과학 이론에 신앙을 종속시킬 때 진정한 '위협'이 시작됩니다. 이 말을 달리하면, 계속 발전하는 과학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더욱 발전된 과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전 과학에 종속시킨 신앙이 안전해지지도 않습니다. 덜 발전된 과학에 대한 맹신과 더 발전된 과학에 대한 배격이 진정한 위협입니다. 과학 자체가 위협이 아니라, 특정 과학 이론을 교리화하고 진리화하여 그것을 믿게 만든 세력들이 위협의 시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과학이라는 선물

  두 번째 메시지로 과학은 선물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은 발생과정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정자와 난자가 핵융합을 하여 생겨난 단 하나의 세포 수정란이 수많은 세포분열과 분화과정을 거치면서 엄마 배 속에서 열 달 동안 점진적으로 만들어집니다. 막 태어난 태아의 전체 세포 수는 2조 개 안팎으로 알려졌습니다. 성인의 경우는 약 37조 개로 알려졌고요. 즉 인간은 엄마 배 속에서만이 아니라 평생 발생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 몸 안에서는 매일 3천억 개 정도의 세포가 죽어나가고 또 새로 생겨납니다. 세포도 하나의 생명이고, 우리 인간의 몸 안에서는 매일 파괴와 창조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창조는 지금 이 시간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대학원생 때 발생생물학을 통해 사람의 발생을 배웠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성경 구절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발생생물학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저는 사람의 발생과정을 자세히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창조의 손길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신비로움 앞에서 경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확한 시간과 정확한 장소에 정확한 세포가 분열하고 분화하여 열 달 뒤에 세상으로 태어난다는 사실은 결코 하나님의 창조 하심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는 창조주의 손길을 더욱 경이로움과 함께 찬양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책을 주셨습니다. 일반 은총에 해당되는 자연의 원리는 과학이죠. 특별 은총에 해당되는 신앙은 성경이 근거가 됩니다. 과학이 “어떻게?”에 대해 답을 하는 방법이라면, 신앙은 “왜”에 대한 답을 하는 것으로 서로 다른 영역을 설명하지만, 저자가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서로 모순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연 과학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으로도 하나님의 창조를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과학으로 인해 더욱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과학은 이웃사랑을 위한 훌륭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과학을 혐오하고 프레임을 씌우는 사람들조차도 사용하고 있기도 하지요. 불임치료, 여러 질병의 치료 등은 이웃사랑을 실제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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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포럼 발제 PPT 자료


교회의 역할과 과제

  저는 여러분에 한 걸음 더 나아가길 원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역할에 대해서입니다. 과학에 대한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과학은 결코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믿는 신앙을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사실 과학은 그럴 의도조차 없답니다. 저를 포함한 수많은 과학자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 같은 과학자가 과학과 신앙이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기원, 진화, 창조 등의 논란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고도 저는 생각합니다. 발전된 과학을, 그리고 앞으로 계속 발전해 나갈 과학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방법에 대한 성경적이고 건설적인 토의가 필요합니다. 윤리적 나침반의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과학 시대에 혼란에 빠질 많은 사람이 찾아올 수 있고 답을 얻을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순수한 신앙을 버리고 세상과 타협을 하자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숙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가며

   전성설의 교훈으로부터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해 보셨나요? 과학이 위협이 아니라 선물일 수 있다는 말에 동의가 되나요? 동의가 된다면 은혜로 주어진 이 과학이라는 선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잘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과학적 발견은 결코 신앙을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좁은 이해를 넓혀주는 선물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더욱더 찬양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수단이 됩니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아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시고 그것을 어떻게 잘 사용할지를 생각합시다. 과학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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