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지만 두꺼운 책 - 과학으로 신학하기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12-10
조회수 1629


 

존 폴킹혼의 “과학으로 신학하기”(영어 제목 Theology in the context of science)는 과학과 신학과의 대화를 직접적으로 다룬 책이어서 언젠가 한번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읽게 되었습니다. 영문판(SPCK 출판사판)은 112쪽밖에 안되는 책이어서 일주일이면 될 줄 알았는데, 행간이 매우 깊고 넓어서 한 문장 한 문장, 한 단어 한 단어를 깊게 생각하며 읽느라 2달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읽은 내용이 소화가 안 된 상태라 과연 제가 서평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하게 제가 공감하게 된 구절 중심으로 짧게 서평을 써 보았습니다. 한글판은 모시는사람들 출판사의 신익상 교수 번역서입니다.

 


1. 개방성(openness)

존 폴킹혼이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쓴 단어가 “열려있는(open)”이라고 생각합니다.(정확히 세어 보지는 않았습니다) 신학이 과학과 대화하려면 반드시 열린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 신학이 과학과 대화를 하여야 하는가에 대해 존 폴킹혼은 양자역학에 의해서 발견된 실재의 불확실성에 대해 과학이 답할 수 없기 때문에 메타과학인 신학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양자론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혼돈이론의 자기 조직화 현상을 근거로 신학은 미래에 대해 열려있어야 한다고 하며, 과학의 맥락에서 신학을 하려면 “열린 신학(open theology)”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2. 맥락신학(Contextual theology)

맥락신학은 1장의 제목입니다. 존 폴킹혼은 “모든 신학은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다(All theology is done in a context)”라고 1장의 첫 문장을 시작합니다. 신학의 문외한인 제 입장에서 “맥락신학”이라는 개념어가 존재하는지, 아니면 저자가 만들어낸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해방신학, 여성신학 흑인신학 등등을 기존의 맥락신학의 예로 들고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은 신학이 과학과 대화를 하고 싶다면 과학의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고 과학의 맥락 속에서 신학을 하라는 것입니다.

 

3. 메타과학적 관점(metascientific perspective)

물리학자 출신으로서 신학자가 된 저자는 물리학이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거쳐 닐스 보어,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의 양자론에 이르러 마침내 과학 자신이 답할 수 없는 문제들에 과학적으로 직면하게 되었다고 밝히면서 바로 그 지점이 메타과학적 관점, 즉 신학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4. 인격적 지식(personal knowledge)

저자는 마이클 폴라니의 “인격적 지식(Personal Knowledge)”에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과학이 아무리 절대적인 객관적 지식을 탐구한다고 하지만, 실험과 관찰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객관적 지식은 불가능하며, 과학자들의 모든 지식은 결국 “인격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은 양자론을 십분 반영한 것 같습니다.

 

5. 근거 있는 믿음(motivated belief)

저자는 수십 년간 물리학을 연구한 물리학자이므로, 과학자로서의 철저한 증거주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개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매우 주관적인 신앙에 대해서 객관성과 보편성을 요구하는 “증거”라는 개념을 철저히 요구한다는 것은 굉장한 지적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학과 신학이 대화하기 위해서는 신학이 증거를 중요하게 여기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합니다. 저자는 기독교 신앙의 근거를 과학적으로 드러난 과학의 인식론적 한계와 초기 기독교 교인들의 경험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초기 교인들의 경험 중에는 거룩한 초인격적 존재와의 만남을 들고 있고, 더 나아가 4장에서는 17세기 블레즈 파스칼의 체험을 예로 들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프랜시스 콜린스가 “신의 언어”에서 밝힌 것처럼, 존 폴킹혼도 거룩한 존재와 어떤 만남을 가졌었는가를 이야기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 책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감명 깊었던 세 가지 문장을 나누고 싶습니다.

 

보편적 인식론이 없는 것처럼 합리성이 취해야만 하는 보편적인 형식 또한 없다.(22쪽)

 

신에 대한 지식을 추구하는 일은 가장 심오하고 포괄적인 형태의 이해를 요하는 일이며, 진리를 찾으려는 모든 시도로부터 나오는 공헌들은 다 환영받고 또 꼭 필요한 작업이다(42쪽)

 

진정한 새로움은 우연과 필연이라는 이 두 요소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출현한다.(173쪽)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 최성일 (ultracharm@naver.com)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과신대 기자단으로 활동하면서 "과알못의 과학여행기"를 연재했으며, 과학 고전을 통해 과학적 방법론과 세계관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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