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여성 신드롬에서 벗어나기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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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고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마리아 미즈 지음|최재인 옮김|갈무리 펴냄|496쪽



     중산층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았던 적이 있다. 한 때 인기 드라마였던 '스카이 캐슬'을 보면서 성적과 학력 우상 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도 사실적으로 와 닿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삶의 모습에 많은 사람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어머니와 나를 비롯해 대다수 여성들은 그들의 삶을 욕망한다는 것이었다. 르네 지라르는 욕망은 제삼자를 매개로 하여 작동한다고 했다. 대다수의 여성들은 주인공들의 소품을 눈여겨보면서 그들이 사용한 것을 갖고자 했지만, 그 이면에는 그들의 경제적 위치에 오르고 싶어 한다. 화장품 광고를 비롯해 매체에서는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기면서 소비주의를 조장하고 있고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소비의 주체가  되어서 충실하게 사회의 요구에 따르고 있다. 중산층 여성은 21세기의 평범한 일상성을 살아가는 세인( Das Mann)들이다. 그러나 마리아 미즈는 이것을 하나의 악이라고 지적한다. 무사유가 악이 되듯이 평범한 일상성에 빠져있음 또한 악이며 재앙이 된다.


    중산층의 여성들은 현실에 대한 감수성을 생활의 안락함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잃어버리고 있으며 어찌 보면 가족 이기주의를 조장하거나 혹은 본인을 고립된 섬으로 모나드화시키는 이들이라 생각된다. 그들은 도피하거나 망각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중산층 여성은 그들의 일상성 안에 다른 의미도 안고 있다. 그들의 일상성은 평준화 혹은 평균화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것은 책임 없음의 다른 표현으로 읽힌다. 사회 현상에 대해 그들은 흐르는 물에 함께 흘러가면 그뿐, 이유도 목적도 없으며 그에 관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어쩌면 존재의 대 사슬에서 새롭게 급부상하는 계층으로 영혼 직전에 중산층 여성이 놓여야 하지 않을까? 

 


   
  마리아 미즈가 중산층 가정주부에 관해 언급하는 내용을 들어가 보면 중산층 페미니스트들은 특권층이며 생존과 직결된 여성 차별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아 왔다. 그러나 중산층 여성들도 얼마든지 폭력에 노출될 수 있고, 오히려 성적 금기가 강한 농민층에서보다 중산층에서 성폭력이 쉽게 이루어진다고 보기도 한다.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가정주부들은 가정에 고립되어 있어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며 사회적 네트워크 역시 가지지 못하며, 풍족하기 때문에 친구나 이웃에게서 무언가를 빌릴 일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주부는 노동자/농촌 여성들보다 훨씬 더 가부장적 억압에 노출되어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여학생들에게 이루어지는 교육은 여성이 곧 가정주부라는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며 자신감과 독립적으로 행동할 용기를 잃게 한다. 저자는 위의 내용을 지적하면서 여성이 중산층의 가정주부가 되는 것은 특권층이 아니라 재앙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어서  대부분의 저개발 국가 여성들은 중산층 여성을 진보의 상징으로 인식하며 선망하는 현실을 말한다. 정치인이나 기업 공동체, 보수적 여성단체들이 주로 그러한 이미지를 확산시키고 있으며, 좌파 조직과 사회주의 국가들도 여성을 가정주부로만 인식하고 정책들을 만들어 왔다. 중산층 여성은 가정주부로서 남편이 번 돈을 소비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도시의 여성들은 생산품들의 가장 큰 시장을 제공한다. 서구뿐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등의 여성들도 일반적으로 쇼핑을 통해 자신의 좌절을 보상하려 한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마케팅 전략에 적극적으로 가정주부이자 어머니인 중산층 여성을 이용한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풍요는 여성 억압을 해결하지 못하며 자본주의적 소비모델은 욕망과 필요를 부추긴다.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자들이 계속해서 물건을 사게 하면서 계속 정신적 빈궁함과 황폐화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분노와 질투로 인해 왜곡되어가게 만든다. 결국, 왜곡된 관점과 삶의 태도는 마침내 인간적인 삶과 행복, 우리를 둘러싼 자연환경 등 모든 연쇄를 파괴한다. 중산층 여성들은 자신들을 잘못된 진보의 상징으로 삼는 사회적 가치관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뼈에 와 닿는다. 고대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자연과 우리는 하나였고  우리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의 보살핌을 얻고 누리면서 자연이 내어주는 것을 감사함으로 받았다. 자연이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생명으로 연결된 자궁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자연에서의 노동은 자연과의 놀이였다. 그러한 삶은 소박하고 안온하고 행복했다. 우리는 삶의 속도를 멈추고 생활의 부피를 줄이고 느리고  간소하고 단순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

 


내게 들려지는 저자의 목소리는 중산층 여성의 신드롬에서 깨어날 것과 지나친 소비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말하고 있었다. 환상이면서 재앙인 중산층의 가정주부로부터 벗어날 것과 지혜로운 소비와 자급하는 경제를 통해 자본주의의 손아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기를 제안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왔다. 또한, 노동이 놀이가 될 수 있도록 삶의 태도를 바꾸고, 자연이 언제까지나 무궁무진한 자원을 갖고 있지 않고 유한하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은 모두 자연의 일부임을 자각할 수 있기를 마리아 미즈는 말하고 있었다.



글 | 노은서 편집위원

과학과 신학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공부하고 서평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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