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6)
만유인력
글ㅣ김재상
이서교회 목사
과신대 정회원, 목회자모임 멤버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데카르트의 물질운동 이론을 비판하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냈다.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의 플라톤주의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뉴턴은 '신이 자연 세계를 직접 다스린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물체의 운동을 연구했고, 마침내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그때까지 따로 설명되던 지상계의 운동과 천상계의 운동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었다. 이렇게 뉴턴은 15세기부터 진행되어 온 유럽의 천문학 혁명과 역학 혁명을 완성시켰다.
1. 능동원리와 만유인력
우주에서 행성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했던 데카르트의 소용돌이 이론을 비판한 뉴턴은 새로운 설명을 내놓아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데카르트까지 많은 학자들은 우주 공간이 '에테르'라는 물질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뉴턴은 이를 거부하고 우주를 진공 상태로 보았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긴다. 우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행성의 운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행성 사이의 힘을 전달하던 에테르가 없는 진공 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두 행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뉴턴의 스승인 아이작 배로우(Isaac Barrow)는 에테르가 없는 우주를 상상하면서, 물질이 아닌 방법으로 신이 물체의 운동에 관여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것을 '능동 원리(active principle)'라고 불렀다. 뉴턴은 이 생각을 이어받았다. 그는 이 능동원리가 지상계와 천상계 모두에서 일어나는 물질 운동에 대한 신의 섭리를 보여준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물질 운동에 대한 능동원리가 달 바깥 세계인 천상계에서만 작동된다고 여기지 않았다. 지구를 포함한 달 안쪽 세계인 지상계에서도 가능하다. 이러한 주장 뒤에는 그의 책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Mathe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 이하 ‘프린키피아’)』의 <일반주해>에 나오는 '신의 편재성'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신은 지상계와 천상계 모든 곳에 있으며 그 모든 곳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상과 천상에 있는 모든 물체는 신 안에서 움직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능동원리가 멀리 떨어진 행성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작용할까? 뉴턴에게 해답의 실마리를 준 것은 연금술과 점성술에 영향을 준 '헤르메스 전통'이었다. 이 전통은 자연을 직접 관찰하고 실험하여 자연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원리를 찾아내려 했는데, 뉴턴은 신의 능동원리가 바로 그 비밀스러운 원리라고 생각했다. 헤르메스 전통에 따르면, 물체들 사이에는 '동감(sympathy)'이라는 것이 있어서 우주의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들에게 보이지 않게 영향을 준다. 『자연 마술(Magiae Naturalis)』(1558)을 쓴 포르타(Giovanni B. D. Porta)는 물체들 사이의 동감을 인력(attraction)과 척력(repulsion)으로 설명했다. 뉴턴은 여기서 '인력'이라는 개념에 주목했고, 이것이 능동원리가 멀리서 작용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핵심 열쇠라고 생각했다.

사진: Unsplash의 Milad Fakurian
인력에 대한 뉴턴의 강조는 원운동을 해석하는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네덜란드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나 영국의 로버트 훅(Robert Hooke) 같은 학자들은 원심력 관점에서 원운동을 설명했다. 하지만 뉴턴은 '구심력' 관점으로 접근했다. 원운동 궤도의 중심을 향하는 인력인 구심력은 궤도를 만드는 실제 원인이지만, 원심력은 실제로 존재하는 힘이 아니라 관성의 결과일 뿐이라고 본 것이다.
정리하면, 뉴턴은 신이 능동원리를 통해 세계의 운동에 개입한다고 보았다. 신의 능동원리는 '인력'이라는 방식으로 지상계와 천상계의 모든 운동에 작용한다. 능동원리가 작용하는 방식인 인력은 모든 물질의 운동과 관련되기 때문에 보편적이다. 그래서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이 인력을 '만유인력(Universal Gravitation)', 즉 '모든 것에 작용하는 인력'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뉴턴은 만유인력을 하나의 명확한 정의로 제시하기보다는, 여러 개념과 수학 공식을 통해 설명했다. 예를 들어, '질량에 비례하는 인력' 같은 식으로 말이다.
2.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만유인력
뉴턴은 『프린키피아』나 그 이전 논문인 《궤도상의 물체 운동에 관하여(De motu corporum in gyrum)》에서도 만유인력이 왜 생기는지 그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프린키피아』의 일반주해에 이렇게 적었을 뿐이다. "틀림없이 그 힘은 어떤 원인으로부터 생기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 힘은 그 작용이 태양과 행성 중심에까지 조금도 감소됨이 없이 침투입하는 어떤 원인으로부터 오는 것이 확실하다." 대신 뉴턴은 만유인력에 대한 수학 모형을 제시했다. 두 물체 사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공식, 즉 'F ∝ 1/r²'이다.
그런데 뉴턴이 이 '역제곱 법칙'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데카르트를 따르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이 법칙의 단서를 제공했다. 데카르트는 줄에 묶여 회전하던 물체가 줄에서 벗어나면 원운동을 계속하지 않고 접선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을 '원심적 경향'이라고 했다. 하위헌스는 『시계의 진동』이라는 책에서 이 원심적 경향을 '원심력'이라고 새롭게 부르며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원심력은 물질의 양과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고 원의 반지름에 반비례하는 힘이다. '거리에 반비례하는 힘'이라는 개념은 거리의 제곱, 거리의 세제곱 등으로 변형되어 많은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힘을 연구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하위헌스의 책은 출판되자마자 영국 런던 왕립학회 회원들에게 널리 읽혔다. 로버트 훅,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는 하위헌스의 원심력 개념을 가지고 행성의 운동, 특히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운동을 설명할 새로운 가설을 논의했다. 그들은 케플러의 제3법칙(조화의 법칙)과 하위헌스의 원심력을 결합해서, 태양과 행성 사이의 힘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1629-1695) @wikipedia
하지만 역제곱의 힘이 작용할 때 행성의 궤도가 타원이 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 역사적인 증명을 뉴턴이 해냈다. 에드먼드 핼리에게 보낸 편지인 《궤도상의 물체 운동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뉴턴은 자신이 개발한 미적분학을 바탕으로 하위헌스의 공식과 케플러 법칙 그리고 물리적 직관을 통합하여 역제곱 법칙으로부터 타원 궤도를 수학적으로 이끌어냈다. 그리고 『프린키피아』에서 만유인력의 역제곱 법칙과 여러 뉴턴 법칙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이를 통해 지상계와 천상계의 모든 운동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이렇게 15~17세기 유럽의 천문학 혁명과 역학 혁명은 통합되어 완성되었다.
멀리 떨어진 물체들 사이의 작용에 대한 뉴턴의 과학적 인식과 만유인력이라는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에서도 신학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뉴턴은 배로우의 능동원리와 헤르메스 전통의 원거리 작용에서 얻은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아이디어를 자신의 연구에 접목시켜 만유인력의 역제곱 법칙에 대한 과학적 사고로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신은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신의 편재성 개념은 만유인력의 보편성을 위한 토대가 되었다.
3. 뉴턴이 이어간 신학과 과학의 대화
뉴턴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에서 6회에 걸쳐 소개했다. 『프린키피아』의 일반주해를 중심으로 뉴턴의 주요 과학 개념인 절대공간과 만유인력 역제곱 법칙이 형성되는 과정에 신학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았다. 일반주해에 나오는 신학적 내용과 과학적 내용들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주의 통치자에 대한 뉴턴의 신 이해는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 학자들과의 만남과 학문적 교류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 신학적 사고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에 대한 비판과 헤르메스 전통의 연금술 작업을 거치면서 철학적 사고로 확장되었으며 과학적 사고로 전환되었다. 우주와 물질 운동에 대한 신의 통치와 개입, 세계 모든 공간에서의 신의 편재성, 그리고 신의 영원불변성에 대한 신학적 사고는 '신의 연장으로서의 절대공간', '능동원리를 통한 물체 사이의 원거리 작용'으로 이어지며 철학적 사고를 형성했다. 그리고 이는 절대공간과 만유인력 역제곱 법칙 등에 대한 과학적 개념으로 전환되었다. 이처럼 뉴턴의 신 이해는 그의 과학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 뉴턴 과학에 분명히 신학이 영향을 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뉴턴 과학이 늘 신학에게서 영향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뉴턴은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고, 성서를 연구할 때 과학적 방법을 도입하여 연구 규칙을 세웠다. 뉴턴에게 과학과 신학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였다. '신학 속의 과학, 과학 속의 신학'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뉴턴에게 신학적 요소와 과학적 요소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따로 남아 있지 않았다. 뉴턴의 신학적 요소들은 인식의 요소로 전환되어 과학 실천 속에서 여러 인식 요소들과 융합되었다. 신학은 뉴턴 과학의 밑거름이 되어 데카르트의 운동 이론을 거부하게 하는 등 과학적 합리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完)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6)
만유인력
글ㅣ김재상
이서교회 목사
과신대 정회원, 목회자모임 멤버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데카르트의 물질운동 이론을 비판하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냈다.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의 플라톤주의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뉴턴은 '신이 자연 세계를 직접 다스린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물체의 운동을 연구했고, 마침내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그때까지 따로 설명되던 지상계의 운동과 천상계의 운동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었다. 이렇게 뉴턴은 15세기부터 진행되어 온 유럽의 천문학 혁명과 역학 혁명을 완성시켰다.
1. 능동원리와 만유인력
우주에서 행성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했던 데카르트의 소용돌이 이론을 비판한 뉴턴은 새로운 설명을 내놓아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데카르트까지 많은 학자들은 우주 공간이 '에테르'라는 물질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뉴턴은 이를 거부하고 우주를 진공 상태로 보았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긴다. 우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행성의 운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행성 사이의 힘을 전달하던 에테르가 없는 진공 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두 행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뉴턴의 스승인 아이작 배로우(Isaac Barrow)는 에테르가 없는 우주를 상상하면서, 물질이 아닌 방법으로 신이 물체의 운동에 관여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것을 '능동 원리(active principle)'라고 불렀다. 뉴턴은 이 생각을 이어받았다. 그는 이 능동원리가 지상계와 천상계 모두에서 일어나는 물질 운동에 대한 신의 섭리를 보여준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물질 운동에 대한 능동원리가 달 바깥 세계인 천상계에서만 작동된다고 여기지 않았다. 지구를 포함한 달 안쪽 세계인 지상계에서도 가능하다. 이러한 주장 뒤에는 그의 책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Mathe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 이하 ‘프린키피아’)』의 <일반주해>에 나오는 '신의 편재성'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신은 지상계와 천상계 모든 곳에 있으며 그 모든 곳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상과 천상에 있는 모든 물체는 신 안에서 움직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능동원리가 멀리 떨어진 행성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작용할까? 뉴턴에게 해답의 실마리를 준 것은 연금술과 점성술에 영향을 준 '헤르메스 전통'이었다. 이 전통은 자연을 직접 관찰하고 실험하여 자연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원리를 찾아내려 했는데, 뉴턴은 신의 능동원리가 바로 그 비밀스러운 원리라고 생각했다. 헤르메스 전통에 따르면, 물체들 사이에는 '동감(sympathy)'이라는 것이 있어서 우주의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들에게 보이지 않게 영향을 준다. 『자연 마술(Magiae Naturalis)』(1558)을 쓴 포르타(Giovanni B. D. Porta)는 물체들 사이의 동감을 인력(attraction)과 척력(repulsion)으로 설명했다. 뉴턴은 여기서 '인력'이라는 개념에 주목했고, 이것이 능동원리가 멀리서 작용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핵심 열쇠라고 생각했다.
사진: Unsplash의 Milad Fakurian
인력에 대한 뉴턴의 강조는 원운동을 해석하는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네덜란드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나 영국의 로버트 훅(Robert Hooke) 같은 학자들은 원심력 관점에서 원운동을 설명했다. 하지만 뉴턴은 '구심력' 관점으로 접근했다. 원운동 궤도의 중심을 향하는 인력인 구심력은 궤도를 만드는 실제 원인이지만, 원심력은 실제로 존재하는 힘이 아니라 관성의 결과일 뿐이라고 본 것이다.
정리하면, 뉴턴은 신이 능동원리를 통해 세계의 운동에 개입한다고 보았다. 신의 능동원리는 '인력'이라는 방식으로 지상계와 천상계의 모든 운동에 작용한다. 능동원리가 작용하는 방식인 인력은 모든 물질의 운동과 관련되기 때문에 보편적이다. 그래서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이 인력을 '만유인력(Universal Gravitation)', 즉 '모든 것에 작용하는 인력'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뉴턴은 만유인력을 하나의 명확한 정의로 제시하기보다는, 여러 개념과 수학 공식을 통해 설명했다. 예를 들어, '질량에 비례하는 인력' 같은 식으로 말이다.
2.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만유인력
뉴턴은 『프린키피아』나 그 이전 논문인 《궤도상의 물체 운동에 관하여(De motu corporum in gyrum)》에서도 만유인력이 왜 생기는지 그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프린키피아』의 일반주해에 이렇게 적었을 뿐이다. "틀림없이 그 힘은 어떤 원인으로부터 생기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 힘은 그 작용이 태양과 행성 중심에까지 조금도 감소됨이 없이 침투입하는 어떤 원인으로부터 오는 것이 확실하다." 대신 뉴턴은 만유인력에 대한 수학 모형을 제시했다. 두 물체 사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공식, 즉 'F ∝ 1/r²'이다.
그런데 뉴턴이 이 '역제곱 법칙'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데카르트를 따르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이 법칙의 단서를 제공했다. 데카르트는 줄에 묶여 회전하던 물체가 줄에서 벗어나면 원운동을 계속하지 않고 접선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을 '원심적 경향'이라고 했다. 하위헌스는 『시계의 진동』이라는 책에서 이 원심적 경향을 '원심력'이라고 새롭게 부르며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원심력은 물질의 양과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고 원의 반지름에 반비례하는 힘이다. '거리에 반비례하는 힘'이라는 개념은 거리의 제곱, 거리의 세제곱 등으로 변형되어 많은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힘을 연구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하위헌스의 책은 출판되자마자 영국 런던 왕립학회 회원들에게 널리 읽혔다. 로버트 훅,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는 하위헌스의 원심력 개념을 가지고 행성의 운동, 특히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운동을 설명할 새로운 가설을 논의했다. 그들은 케플러의 제3법칙(조화의 법칙)과 하위헌스의 원심력을 결합해서, 태양과 행성 사이의 힘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1629-1695) @wikipedia
하지만 역제곱의 힘이 작용할 때 행성의 궤도가 타원이 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 역사적인 증명을 뉴턴이 해냈다. 에드먼드 핼리에게 보낸 편지인 《궤도상의 물체 운동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뉴턴은 자신이 개발한 미적분학을 바탕으로 하위헌스의 공식과 케플러 법칙 그리고 물리적 직관을 통합하여 역제곱 법칙으로부터 타원 궤도를 수학적으로 이끌어냈다. 그리고 『프린키피아』에서 만유인력의 역제곱 법칙과 여러 뉴턴 법칙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이를 통해 지상계와 천상계의 모든 운동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이렇게 15~17세기 유럽의 천문학 혁명과 역학 혁명은 통합되어 완성되었다.
멀리 떨어진 물체들 사이의 작용에 대한 뉴턴의 과학적 인식과 만유인력이라는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에서도 신학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뉴턴은 배로우의 능동원리와 헤르메스 전통의 원거리 작용에서 얻은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아이디어를 자신의 연구에 접목시켜 만유인력의 역제곱 법칙에 대한 과학적 사고로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신은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신의 편재성 개념은 만유인력의 보편성을 위한 토대가 되었다.
3. 뉴턴이 이어간 신학과 과학의 대화
뉴턴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에서 6회에 걸쳐 소개했다. 『프린키피아』의 일반주해를 중심으로 뉴턴의 주요 과학 개념인 절대공간과 만유인력 역제곱 법칙이 형성되는 과정에 신학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았다. 일반주해에 나오는 신학적 내용과 과학적 내용들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주의 통치자에 대한 뉴턴의 신 이해는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 학자들과의 만남과 학문적 교류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 신학적 사고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에 대한 비판과 헤르메스 전통의 연금술 작업을 거치면서 철학적 사고로 확장되었으며 과학적 사고로 전환되었다. 우주와 물질 운동에 대한 신의 통치와 개입, 세계 모든 공간에서의 신의 편재성, 그리고 신의 영원불변성에 대한 신학적 사고는 '신의 연장으로서의 절대공간', '능동원리를 통한 물체 사이의 원거리 작용'으로 이어지며 철학적 사고를 형성했다. 그리고 이는 절대공간과 만유인력 역제곱 법칙 등에 대한 과학적 개념으로 전환되었다. 이처럼 뉴턴의 신 이해는 그의 과학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 뉴턴 과학에 분명히 신학이 영향을 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뉴턴 과학이 늘 신학에게서 영향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뉴턴은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고, 성서를 연구할 때 과학적 방법을 도입하여 연구 규칙을 세웠다. 뉴턴에게 과학과 신학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였다. '신학 속의 과학, 과학 속의 신학'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뉴턴에게 신학적 요소와 과학적 요소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따로 남아 있지 않았다. 뉴턴의 신학적 요소들은 인식의 요소로 전환되어 과학 실천 속에서 여러 인식 요소들과 융합되었다. 신학은 뉴턴 과학의 밑거름이 되어 데카르트의 운동 이론을 거부하게 하는 등 과학적 합리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