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칼럼
기후위기 앞에 선 신학과 교회
글ㅣ송진순 박사
이화여자대학교
기후위기가 파국을 향해 가고 있다. 산업화와 근대 문명은 성장 신화를 기반으로 하나님 없는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의 탐욕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류 생존을 위협하면서도 그칠 줄 모르는 경주를 하고 있다. “피조 세계가 멸망하고 있는데 인간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 세계교회협의회의 선교 문서인 <함께 생명을 향하여>(Together Toward Life, 23. 2013)에서는 전 지구적 생태 위기 앞에서 엄중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가 멈추고 기후변화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당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음에도, 기후위기는 그리스도인에게 신앙과는 다른 문제이고 교회와 신학에서도 적극적 관심의 대상은 아니다. 이는 기후위기가 몰고 오는 거대한 위협보다는 지금의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서는 생명을 살펴야 하는 것이 법이다. 불평등하고 불의한 체제에서 소리내지 못하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 고통 속에 신음하는 피조 세계에 하나님의 구원이 먼저 임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후위기를 포함하여 생태계 위기 앞에서 그동안 신학과 교회는 어떠한 응답을 해왔는가? 여기서는 환경과 생태 문제에 관한 신학과 세계교회의 노정을 확인하고 나아가서 창조 세계의 보전을 위한 한국교회의 지난 발자취와 현재 활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교회가 주장해온 청지기론이라는 오래된 구호를 넘어, 기후위기의 원인인 이분법적 세계관과 탄소 기반의 경제와 정치가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자 한다.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으로 창조 세계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하나님의 정의와 생명을 향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신학적 응답
기독교에서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공론화된 것은, 1961년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열린 ‘교회연합일치’ 연설이었다. 강연자였던 조셉 시틀러(Joseph Sittler, 루터교 신학자)는 환경문제에 주목하면서 하나님, 인간, 생태계의 관계성에 근거한 생태신학적 관점을 제안하였다. 그는 골로새서 1장의 우주론적 기독론을 통해 창조 세계를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서 읽어내고자 했다. 이는 당시 급변하는 세계에 대한 ‘책임사회론’과 ‘사회발전’ 개념에 응답하는 것으로, 일찍이 1952년 독일 빌링겐 세계선교대회 의제인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생태신학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은 1967년 린 화이트(Lynn White Jr.)가 발표한 소논문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 Crisis”이었다. 그는 서구 기독교가 세계에서 가장 인간 중심적인 종교라고 지적하면서, 기독교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이원론을 기반으로 인간의 목적을 위해 자연을 이용하면서 이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생태위기의 큰 책임이 기독교에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1960년대는 두 차례의 세계 전쟁 이후 경제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대기오염과 수질 오염 등 환경오염 문제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살충제 사용의 폐해(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1962)) 및 강대국의 핵 원료와 화학 폐기물 문제가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었다. 60년대 후반 미국의 우주 진출은 ‘하나의 별 지구’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1970년 ‘지구의 날’ 제정과 1972년 UN의 ‘인간환경선언’은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학계에서는 린 화이트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청지기론을 제안하였다. 이들은 창세기에 근거한 인간의 자연 착취와 지배가 지나친 해석이라며 성서에 근거하여 환경보호 모델로 청지기론을 발전시켰다. 이들에 따르면 인간이 창조의 정점으로 묘사되었지만, 성서 본문의 강조점은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함께하는 지구 환경에 있다고 보았다. 오히려 인간의 왕적 통치는 인간 모두의 안녕과 번영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자연 위에 군림하거나 주인 행세하는 인간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본문을 인간의 자연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왜곡되어 사용한 방식인 것이다. 신학자들은 생태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된 기독교를 변론하면서 동시에 생태신학적 관점에서 성서를 해석하고 인간-하나님-피조세계 사이의 신학적 재구성 작업을 진행하고자 했다.
다른 한편 사회정치적 관점에서 생태문제를 접근하기도 했다. 브라질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는 <생태신학>(1993)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생태학은 부자들의 사치도 아니고, 환경주의자나 녹생당만의 관심사도 아니다. 생태문제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 인식, 즉 지구와 사람 그리고 사회와 자연 존재 전체의 공동선, 모든 피조물을 짓누르는 묵시록의 위기와 관련 있다.”1) 그는 세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세계화가 불러온 가난에 주목하면서 사회적 정의와 창조 세계의 균형에 대한 사회 영성을 주장했다. 생태신학에서 또 다른 주요한 연구로는 생태여성신학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지구, 땅, 여성이 지금까지 서구 남성 중심의 관점에서 억압되고 무시되어온 역사에 주목하면서 건전한 세계관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대표적으로 샐리 맥페이그(Sallie McFague)는 인간의 빈곤과 자연의 황폐화를 같이 다루면서 분배정의와 생태정의의 회복을 강조하는 생태경제학을 주창했다. 그녀는 인간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 세계 가운데 성육해 계시는 하나님, 관계적이고 생태적인 교회, 그리고 타자와 함께하는 인간 존재라는 새로운 신학적 이해를 대안으로 제시하였다.2)
이러한 신학적 흐름 가운데 생태적 관점에서 어떻게 성서를 읽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들이 이어졌다. 노먼 하벨(Norman C. Habel)을 중심으로 호주에서는 The Earth Bible Project(1996)가 결성되어 다섯 권의 성서 주석서가 출간되었다. 성서 신학자들은 지금까지 인간 중심적으로 해석되고 인용된 성서 본문들을 ‘의심의 해석학’이라는 비평적 해석틀을 통해 지구를 해석의 주체자로 세우고 지구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지구와 생명의 회복을 지향하는 성서해석을 주도하였다.3) 이러한 작업에 영향을 받은 미국 성서학계(The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에서는 ‘생태 해석학’ 분과를 편성하고 호주팀과 공동으로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전 프로젝트가 가진 한계를 수정 보완하고, 생태비평을 위한 여섯 개의 해석 원칙과 ‘의심, 동실시, 회복’의 세 가지 해석 틀을 제안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4)
유럽에서도 영국의 데이빗 호렐(David G. Horrell)을 주축으로 엑시터 대학(Univ. of Exeter)에서는 ‘환경윤리에서 성서의 사용(The Use of the Bible in Environmental Ethics)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5) 이렇듯 생태계 위기에 대해 신학계는 한편으로는 기독교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성서 본문과 신학적 인식을 새롭게 구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불러온 불평등하고 불의한 구조에 대한 비판과 회복을 위한 논의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세계교회의 대응
환경과 생태문제에 대한 신학적 응답과 더불어 세계교회(World Council of Churches)도 에큐메니컬 관점에서 대응하였다. 1952년 제기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선교의 주체이자 목적이 ‘하나님’이라는 전제하에 선교 대상이 인간과 창조 세계 전체를 통해 나타난다는 고백이다. 당시 ‘창조 세계의 보존’이라는 개념은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에 도전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창조 세계는 여전히 구원 역사의 배경 정도로 인식되었다. 이후 60~70년대 세계가 경제 성장과 개발에 중점을 두면서 불평등과 환경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세계교회협의회는 1975년 제5차 나이로비 총회에서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Just, Participatory and Sustainable Society) 프로그램을 채택하고, 생태 문제를 주요한 교회 과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특히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개념이 ‘성장과 발전’에 대한 문제 제기인 만큼 사회경제적, 정치적 차원에서 현실을 비판하고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억압과 수탈, 빈곤과 미개발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부의 편재와 독재에 대한 정의와 평화, 민족 자주의 주제는 주요 현안으로 연구되었다.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변화와 신학적 문제의식은 1983년 제6차 밴쿠버 총회에서 “정의, 평화, 창조 질서의 보전”(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런데 논의 과정에서 ‘정의와 평화’와 ‘창조 세계의 보존’ 사이의 우선 순위가 쟁점이 되었다. 80년대 제3세계가 주류를 이룬 남반구는 식민주의, 독재정권의 탄압, 사회적 불의와 인종차별, 계급착취, 자원 탈취, 외채 등의 구조적 불의와 폭력이 시급한 과제였다. 따라서 1세계 중심의 북반부가 주장하는 창조 세계의 보존은 요원한 의제이자 정치적 구호로 여겨졌다. 생태 문제는 북반구와 남반구 교회 사이에 갈등의 계기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에 난항을 겪기도 했다.
정의, 평화, 창조 세계의 보존이라는 주제는 1998년 히라레 총회에서 보다 구체화되었다. 신자유주의 경제 세계화 속에서 인간과 생태계 파괴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신학적으로 응답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왜곡된 경제개념을 수정하면서 ‘인간과 생태계를 경제의 중심에 두는 대안적 지구화를 모색하는 아가페 부름’(AGAPE, 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 and the Earth)을 제안하였다. AGAPE 문서는 ‘생명의 경제’(Economy of Life)의 경제적 수혜는 모든 생명체에게 지속해서 제공되어야 하고, 그 과정은 정의롭고, 참여적이며,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온 생명을 포함하는 지구 공동체를 영역으로 하는 ‘생명의 경제’는 가난한 자들을 우선으로 하는 ‘하나님의 정의’에 주목하여 창조신학에 근거한 생태정의와 사회정의가 다른 것이 아님을 이야기한 것이다.6)
생명과 생태에 관한 세계교회의 노정은 사회문제와 조우하면서 자본주의 체제가 빚어낸 불평등과 부정의에 대해 예언자적으로 응답하고자 했다. 내적으로는 신학 작업을 토대로 개교회에게 생태 인식의 전환과 삶의 방식의 변화를 촉구하였고, 외적으로는 UN 환경기구를 포함하여 국제 사회와 호흡하면서 세계문제에 긴밀하게 응답하고자 했다.
생명과 생태문제에 대한 한국교회의 여정
한국교회가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산업 발전의 부작용을 직시하면서부터다. 1960년대 한국 정부는 ‘선개발, 후환경보전’을 추구하며 빈곤 극복과 경제개발에 주력하였다. 환경오염은 산업 발전의 부산물이라는 당연한 인식을 깨고, 점차 심각해지는 환경 오염과 이로 인해 고통받는 공장 노동자와 지역 주민에 대해 교회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1980년 환경청을 설립하고 환경 관련 법안이 마련되는 시기에, 노동 운동과 인권 운동에 몸담고 있던 개신교 목회자들과 가톨릭 성직자들이 독일교회의 재정지원을 통해 1982년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설립하였다. 목회자들과 전문가들이 함께 각 지역의 공해 피해 실태조사를 실시하면서 국내 최초로 공해 문제를 공론화하였다.7) 공해문제연구소는 종교인, 학자, 시민이 연대한 최초의 민간 환경단체로 고통받는 이들의 소리에 응답하면서 시작하였다.
이후 연구소는 국내 산림 보호 운동, 반(反)공해 선언을 통해 환경운동의 기반을 다지는 한편,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협력하여 ‘환경주일’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창조 세계의 보존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였다(84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86년)와 영광과 울진 핵발전소 피폭자 문제(87년)를 다루면서 반핵운동을 전개하면서 한반도 평화 운동을 이끌어가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연구소는 “한국반핵반공해평화연구소”(89년)에서 “한국교회환경연구소”(92년)를 거쳐 지금의 “기독교환경운동연대”(97년)로 개명하면서 기독교 환경운동의 정체성을 형성하였다.8)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교파와 종교를 초월하여 생태 문제에 관한 인식을 변화와 실천의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교회 내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생명 밥상 만들기, 새만금 갯벌 살리기 등 사회 주요 현안에 응답하고 몽골 은총의 숲 캠페인과 각종 성명서 작업 등을 지속해 왔다. 2006년부터는 생태 운동을 실천하는 교회를 발굴하고 연대하는 ‘녹색교회’ 운동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의 130여 교회가 녹색교회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생태적 인식 전환을 위한 교육 사업으로 ‘생태정의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인한 충격과 날로 심각해지는 이상기후를 맞이하면서 2021년부터 매년 5월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였다. 교단별로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가 기후위기 특별위원회를 조직하고(2021년) ‘기후위기 대응지침’을 제작하는 한편, ‘생명문명, 생명목회 순례 10년’ 자료집을 교회들과 공유하고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생태목회연구소”를 창립하고(2022년) 생태계 전반에 대한 신학적 해석 작업과 목회자와 선교사를 위한 녹색교회, 생태목회, 환경선교 메뉴얼을 보급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생태공동체운동본부’에서는 교단 총회에서 ‘창조 세계 회복을 위한 탄소중립 기장 선언문’을 채택하고,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함께 목회자와 평신도를 위한 생태정의 아카데미를 진행 중에 있다.
이렇듯 일부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생명 살림의 삶을 요청하고 있지만, 실상 한국교회 내 반응은 냉랭하다. 최근 기후위기로 인한 폐해가 세계적이고,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급속하게 확산하면서 기독교인들의 인식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해마다 열리는 각 교단 총회에서 기후위기와 대응책이 의제로 다뤄진 적도 없고, 교단과 교회 홈페이지, 예배 설교, 주보에서조차 생태와 환경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다수 한국교회는 기후와 생태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할 정도로 무관심하다. 이것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신앙과 구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영혼 구원과 개인의 안위와 평안을 위한 신앙을 넘어 이웃과 함께, 생명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소명이 그리스도인에게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고통받는 존재들―흙과 나무, 동식물과 인간을 포함하여 지구 공동체의 신음에 귀 기울이는 것, 바로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생명의 약속을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드러낸 자본주의의 폭력적인 구조를 대면하면서 이를 성찰하고 회심하는 교회의 신앙 풍토를 마련하지 못한 것, 이것은 기후위기 이상으로 심각한 교회의 위기이다.
창조 세계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인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우선적 인식은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모든 피조물의 생명과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인간 역시 이 땅의 모든 생명의 그물망에 연결되어 있다. 이 점에서 구원은 생태 정의와 분리될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생명의 소리를 경청하는 겸허함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성서는 기후위기라는 종말의 상황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모든 생명에 대한 존엄을 인정하고 깊은 생태적 회심을 통해 창조 세계 전체와 함께 구원을 이루어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은 존재이자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책임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만물과 조화롭게 관계맺고 공생하는 정의로운 삶에 대한 비전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기반으로 세계와 교회가 지향하는 탄소중립이라는 정의로운 전환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가져 온 부의 양극화, 지역 불균형, 부정의한 지배구조를 극복하는 것이고, 기존의 성장 신화에 대한 기대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에 대한 존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소비를 줄이며, 더 많이 걷고 더 움직이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고,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내지 않는 생활 방식을 고민하며,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협력하고, 모든 생명의 소리를 듣기 위한 겸허한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이렇듯 세계를 돌보고 세계와 더불어 사는 삶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삶이다.
우리는 기후위기의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폭력적 착취자이며 가해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폭력과 죽음을 야기하는 모든 일에서 전적으로 돌이켜서 새로운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담긴 조화로운 관계성, 그리고 다른 세상에 대한 예수의 실천적 상상력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의로운 전환은 지구 자연과 인간을 억압하는 불의한 경제와 정치 구조를 비판하는 예언자 정신과 예수가 보여준 사랑의 저항 속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재앙을 넘어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가기 위해, 얼마남지 않은 지구의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생명에 대한 새로운 관계맺기와 정의로운 삶의 지향에 대해 묻고 지금과 다른 세계로의 전환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생명을 향해 희망을 길어 올리는 그리스도인의 응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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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오나르도 보프, 『생태신학』, 김항섭 옮김 (서울: 가톨릭, 1996).
2) 샐리 맥훼이그, 『기후변화와 신학의 재구성』, 김준우 옮김 (고양: 한국기독교연구소, 2008).
3) N. C. Habel, Readings from the Perspective of Earth, Earth Bible 1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2000), 31-37.
4) https://www.sbl-site.org/publications/article.aspx?ArticleId=291. *생태 정의를 위한 여섯 가지 원칙 : 1. 내재적 가치의 원칙(the principle of intrinsic worth): 우주, 지구, 모든 만물의 구성원은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다. 2. 상호 연결의 원칙(the principle of interconnectedness): 지구는 서로 연결된 공동체이며, 모든 생명체는 자기 삶과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체에 상호의존하며 산다. 3. 표현의 원칙(the principle of voice): 지구는 정의를 위해 축하하거나 불의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는 주체이다. 4. 목적의 원칙(the principle of purpose): 우주, 지구, 그것의 모든 구성원은 최종의 목적에 이르는 과정에서 역동적인 우주 섭리를 실현하는 한 부분이다. 5. 상호 관리직의 원칙(the principle of mutual custodianship): 지구는 조화롭고 다양한 공동체로, 모든 구성원은 지배자가 아닌 동반자로서 책임있는 관리인들의 역할을 담당한다. 6. 저항의 원칙(the principle of resistance): 지구와 그 구성원들은 인간이 저지른 불의로 고통당하지만 불의에 적극 저항한다.
5) David G. Horrell, Ecological Hermeneutics: Biblical, Historical and Theological Perspectives (London: T & T Clark, 2010), Introduction.
6) 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 and Earth: A Background Document, 2005, 4.
7) “국내 첫 환경단체 설립 주도,” 국민일보, 2021.4.28.,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89112&code=23111111&cp=nv.
8)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홈페이지, http://www.greenchrist.org/
저자 소개
송진순은 이화대학과 동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고, 현재 이화여대에서 강의하고, 동대학교 대학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섬기고 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성서를 중심으로 생태, 여성, 사회 현상들을 해석하고 교회를 넘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기독교적 가치와 윤리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관련 연구로는 『혐오와 여성신학』, 『하나님의 형상, 우리 여성』, 『지구생명체의 위기와 기독교 복음』, 『기후위기 한국교회에 묻는다』, 『한국기독교의 보수화, 어느 지점에 있나』, 『코로나 펜데믹과 기후위기 시대, 생물다양성에 주목하다』 등 다수의 공저와 논문이 있다.
메인칼럼
기후위기 앞에 선 신학과 교회
글ㅣ송진순 박사
이화여자대학교
기후위기가 파국을 향해 가고 있다. 산업화와 근대 문명은 성장 신화를 기반으로 하나님 없는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의 탐욕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류 생존을 위협하면서도 그칠 줄 모르는 경주를 하고 있다. “피조 세계가 멸망하고 있는데 인간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 세계교회협의회의 선교 문서인 <함께 생명을 향하여>(Together Toward Life, 23. 2013)에서는 전 지구적 생태 위기 앞에서 엄중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가 멈추고 기후변화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당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음에도, 기후위기는 그리스도인에게 신앙과는 다른 문제이고 교회와 신학에서도 적극적 관심의 대상은 아니다. 이는 기후위기가 몰고 오는 거대한 위협보다는 지금의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서는 생명을 살펴야 하는 것이 법이다. 불평등하고 불의한 체제에서 소리내지 못하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 고통 속에 신음하는 피조 세계에 하나님의 구원이 먼저 임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후위기를 포함하여 생태계 위기 앞에서 그동안 신학과 교회는 어떠한 응답을 해왔는가? 여기서는 환경과 생태 문제에 관한 신학과 세계교회의 노정을 확인하고 나아가서 창조 세계의 보전을 위한 한국교회의 지난 발자취와 현재 활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교회가 주장해온 청지기론이라는 오래된 구호를 넘어, 기후위기의 원인인 이분법적 세계관과 탄소 기반의 경제와 정치가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자 한다.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으로 창조 세계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하나님의 정의와 생명을 향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신학적 응답
기독교에서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공론화된 것은, 1961년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열린 ‘교회연합일치’ 연설이었다. 강연자였던 조셉 시틀러(Joseph Sittler, 루터교 신학자)는 환경문제에 주목하면서 하나님, 인간, 생태계의 관계성에 근거한 생태신학적 관점을 제안하였다. 그는 골로새서 1장의 우주론적 기독론을 통해 창조 세계를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서 읽어내고자 했다. 이는 당시 급변하는 세계에 대한 ‘책임사회론’과 ‘사회발전’ 개념에 응답하는 것으로, 일찍이 1952년 독일 빌링겐 세계선교대회 의제인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생태신학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은 1967년 린 화이트(Lynn White Jr.)가 발표한 소논문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 Crisis”이었다. 그는 서구 기독교가 세계에서 가장 인간 중심적인 종교라고 지적하면서, 기독교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이원론을 기반으로 인간의 목적을 위해 자연을 이용하면서 이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생태위기의 큰 책임이 기독교에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1960년대는 두 차례의 세계 전쟁 이후 경제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대기오염과 수질 오염 등 환경오염 문제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살충제 사용의 폐해(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1962)) 및 강대국의 핵 원료와 화학 폐기물 문제가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었다. 60년대 후반 미국의 우주 진출은 ‘하나의 별 지구’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1970년 ‘지구의 날’ 제정과 1972년 UN의 ‘인간환경선언’은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학계에서는 린 화이트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청지기론을 제안하였다. 이들은 창세기에 근거한 인간의 자연 착취와 지배가 지나친 해석이라며 성서에 근거하여 환경보호 모델로 청지기론을 발전시켰다. 이들에 따르면 인간이 창조의 정점으로 묘사되었지만, 성서 본문의 강조점은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함께하는 지구 환경에 있다고 보았다. 오히려 인간의 왕적 통치는 인간 모두의 안녕과 번영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자연 위에 군림하거나 주인 행세하는 인간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본문을 인간의 자연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왜곡되어 사용한 방식인 것이다. 신학자들은 생태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된 기독교를 변론하면서 동시에 생태신학적 관점에서 성서를 해석하고 인간-하나님-피조세계 사이의 신학적 재구성 작업을 진행하고자 했다.
다른 한편 사회정치적 관점에서 생태문제를 접근하기도 했다. 브라질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는 <생태신학>(1993)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생태학은 부자들의 사치도 아니고, 환경주의자나 녹생당만의 관심사도 아니다. 생태문제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 인식, 즉 지구와 사람 그리고 사회와 자연 존재 전체의 공동선, 모든 피조물을 짓누르는 묵시록의 위기와 관련 있다.”1) 그는 세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세계화가 불러온 가난에 주목하면서 사회적 정의와 창조 세계의 균형에 대한 사회 영성을 주장했다. 생태신학에서 또 다른 주요한 연구로는 생태여성신학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지구, 땅, 여성이 지금까지 서구 남성 중심의 관점에서 억압되고 무시되어온 역사에 주목하면서 건전한 세계관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대표적으로 샐리 맥페이그(Sallie McFague)는 인간의 빈곤과 자연의 황폐화를 같이 다루면서 분배정의와 생태정의의 회복을 강조하는 생태경제학을 주창했다. 그녀는 인간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 세계 가운데 성육해 계시는 하나님, 관계적이고 생태적인 교회, 그리고 타자와 함께하는 인간 존재라는 새로운 신학적 이해를 대안으로 제시하였다.2)
이러한 신학적 흐름 가운데 생태적 관점에서 어떻게 성서를 읽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들이 이어졌다. 노먼 하벨(Norman C. Habel)을 중심으로 호주에서는 The Earth Bible Project(1996)가 결성되어 다섯 권의 성서 주석서가 출간되었다. 성서 신학자들은 지금까지 인간 중심적으로 해석되고 인용된 성서 본문들을 ‘의심의 해석학’이라는 비평적 해석틀을 통해 지구를 해석의 주체자로 세우고 지구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지구와 생명의 회복을 지향하는 성서해석을 주도하였다.3) 이러한 작업에 영향을 받은 미국 성서학계(The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에서는 ‘생태 해석학’ 분과를 편성하고 호주팀과 공동으로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전 프로젝트가 가진 한계를 수정 보완하고, 생태비평을 위한 여섯 개의 해석 원칙과 ‘의심, 동실시, 회복’의 세 가지 해석 틀을 제안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4)
유럽에서도 영국의 데이빗 호렐(David G. Horrell)을 주축으로 엑시터 대학(Univ. of Exeter)에서는 ‘환경윤리에서 성서의 사용(The Use of the Bible in Environmental Ethics)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5) 이렇듯 생태계 위기에 대해 신학계는 한편으로는 기독교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성서 본문과 신학적 인식을 새롭게 구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불러온 불평등하고 불의한 구조에 대한 비판과 회복을 위한 논의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세계교회의 대응
환경과 생태문제에 대한 신학적 응답과 더불어 세계교회(World Council of Churches)도 에큐메니컬 관점에서 대응하였다. 1952년 제기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선교의 주체이자 목적이 ‘하나님’이라는 전제하에 선교 대상이 인간과 창조 세계 전체를 통해 나타난다는 고백이다. 당시 ‘창조 세계의 보존’이라는 개념은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에 도전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창조 세계는 여전히 구원 역사의 배경 정도로 인식되었다. 이후 60~70년대 세계가 경제 성장과 개발에 중점을 두면서 불평등과 환경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세계교회협의회는 1975년 제5차 나이로비 총회에서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Just, Participatory and Sustainable Society) 프로그램을 채택하고, 생태 문제를 주요한 교회 과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특히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개념이 ‘성장과 발전’에 대한 문제 제기인 만큼 사회경제적, 정치적 차원에서 현실을 비판하고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억압과 수탈, 빈곤과 미개발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부의 편재와 독재에 대한 정의와 평화, 민족 자주의 주제는 주요 현안으로 연구되었다.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변화와 신학적 문제의식은 1983년 제6차 밴쿠버 총회에서 “정의, 평화, 창조 질서의 보전”(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런데 논의 과정에서 ‘정의와 평화’와 ‘창조 세계의 보존’ 사이의 우선 순위가 쟁점이 되었다. 80년대 제3세계가 주류를 이룬 남반구는 식민주의, 독재정권의 탄압, 사회적 불의와 인종차별, 계급착취, 자원 탈취, 외채 등의 구조적 불의와 폭력이 시급한 과제였다. 따라서 1세계 중심의 북반부가 주장하는 창조 세계의 보존은 요원한 의제이자 정치적 구호로 여겨졌다. 생태 문제는 북반구와 남반구 교회 사이에 갈등의 계기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에 난항을 겪기도 했다.
정의, 평화, 창조 세계의 보존이라는 주제는 1998년 히라레 총회에서 보다 구체화되었다. 신자유주의 경제 세계화 속에서 인간과 생태계 파괴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신학적으로 응답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왜곡된 경제개념을 수정하면서 ‘인간과 생태계를 경제의 중심에 두는 대안적 지구화를 모색하는 아가페 부름’(AGAPE, 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 and the Earth)을 제안하였다. AGAPE 문서는 ‘생명의 경제’(Economy of Life)의 경제적 수혜는 모든 생명체에게 지속해서 제공되어야 하고, 그 과정은 정의롭고, 참여적이며,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온 생명을 포함하는 지구 공동체를 영역으로 하는 ‘생명의 경제’는 가난한 자들을 우선으로 하는 ‘하나님의 정의’에 주목하여 창조신학에 근거한 생태정의와 사회정의가 다른 것이 아님을 이야기한 것이다.6)
생명과 생태에 관한 세계교회의 노정은 사회문제와 조우하면서 자본주의 체제가 빚어낸 불평등과 부정의에 대해 예언자적으로 응답하고자 했다. 내적으로는 신학 작업을 토대로 개교회에게 생태 인식의 전환과 삶의 방식의 변화를 촉구하였고, 외적으로는 UN 환경기구를 포함하여 국제 사회와 호흡하면서 세계문제에 긴밀하게 응답하고자 했다.
생명과 생태문제에 대한 한국교회의 여정
한국교회가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산업 발전의 부작용을 직시하면서부터다. 1960년대 한국 정부는 ‘선개발, 후환경보전’을 추구하며 빈곤 극복과 경제개발에 주력하였다. 환경오염은 산업 발전의 부산물이라는 당연한 인식을 깨고, 점차 심각해지는 환경 오염과 이로 인해 고통받는 공장 노동자와 지역 주민에 대해 교회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1980년 환경청을 설립하고 환경 관련 법안이 마련되는 시기에, 노동 운동과 인권 운동에 몸담고 있던 개신교 목회자들과 가톨릭 성직자들이 독일교회의 재정지원을 통해 1982년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설립하였다. 목회자들과 전문가들이 함께 각 지역의 공해 피해 실태조사를 실시하면서 국내 최초로 공해 문제를 공론화하였다.7) 공해문제연구소는 종교인, 학자, 시민이 연대한 최초의 민간 환경단체로 고통받는 이들의 소리에 응답하면서 시작하였다.
이후 연구소는 국내 산림 보호 운동, 반(反)공해 선언을 통해 환경운동의 기반을 다지는 한편,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협력하여 ‘환경주일’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창조 세계의 보존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였다(84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86년)와 영광과 울진 핵발전소 피폭자 문제(87년)를 다루면서 반핵운동을 전개하면서 한반도 평화 운동을 이끌어가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연구소는 “한국반핵반공해평화연구소”(89년)에서 “한국교회환경연구소”(92년)를 거쳐 지금의 “기독교환경운동연대”(97년)로 개명하면서 기독교 환경운동의 정체성을 형성하였다.8)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교파와 종교를 초월하여 생태 문제에 관한 인식을 변화와 실천의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교회 내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생명 밥상 만들기, 새만금 갯벌 살리기 등 사회 주요 현안에 응답하고 몽골 은총의 숲 캠페인과 각종 성명서 작업 등을 지속해 왔다. 2006년부터는 생태 운동을 실천하는 교회를 발굴하고 연대하는 ‘녹색교회’ 운동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의 130여 교회가 녹색교회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생태적 인식 전환을 위한 교육 사업으로 ‘생태정의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인한 충격과 날로 심각해지는 이상기후를 맞이하면서 2021년부터 매년 5월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였다. 교단별로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가 기후위기 특별위원회를 조직하고(2021년) ‘기후위기 대응지침’을 제작하는 한편, ‘생명문명, 생명목회 순례 10년’ 자료집을 교회들과 공유하고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생태목회연구소”를 창립하고(2022년) 생태계 전반에 대한 신학적 해석 작업과 목회자와 선교사를 위한 녹색교회, 생태목회, 환경선교 메뉴얼을 보급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생태공동체운동본부’에서는 교단 총회에서 ‘창조 세계 회복을 위한 탄소중립 기장 선언문’을 채택하고,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함께 목회자와 평신도를 위한 생태정의 아카데미를 진행 중에 있다.
이렇듯 일부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생명 살림의 삶을 요청하고 있지만, 실상 한국교회 내 반응은 냉랭하다. 최근 기후위기로 인한 폐해가 세계적이고,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급속하게 확산하면서 기독교인들의 인식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해마다 열리는 각 교단 총회에서 기후위기와 대응책이 의제로 다뤄진 적도 없고, 교단과 교회 홈페이지, 예배 설교, 주보에서조차 생태와 환경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다수 한국교회는 기후와 생태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할 정도로 무관심하다. 이것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신앙과 구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영혼 구원과 개인의 안위와 평안을 위한 신앙을 넘어 이웃과 함께, 생명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소명이 그리스도인에게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고통받는 존재들―흙과 나무, 동식물과 인간을 포함하여 지구 공동체의 신음에 귀 기울이는 것, 바로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생명의 약속을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드러낸 자본주의의 폭력적인 구조를 대면하면서 이를 성찰하고 회심하는 교회의 신앙 풍토를 마련하지 못한 것, 이것은 기후위기 이상으로 심각한 교회의 위기이다.
창조 세계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인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우선적 인식은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모든 피조물의 생명과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인간 역시 이 땅의 모든 생명의 그물망에 연결되어 있다. 이 점에서 구원은 생태 정의와 분리될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생명의 소리를 경청하는 겸허함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성서는 기후위기라는 종말의 상황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모든 생명에 대한 존엄을 인정하고 깊은 생태적 회심을 통해 창조 세계 전체와 함께 구원을 이루어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은 존재이자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책임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만물과 조화롭게 관계맺고 공생하는 정의로운 삶에 대한 비전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기반으로 세계와 교회가 지향하는 탄소중립이라는 정의로운 전환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가져 온 부의 양극화, 지역 불균형, 부정의한 지배구조를 극복하는 것이고, 기존의 성장 신화에 대한 기대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에 대한 존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소비를 줄이며, 더 많이 걷고 더 움직이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고,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내지 않는 생활 방식을 고민하며,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협력하고, 모든 생명의 소리를 듣기 위한 겸허한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이렇듯 세계를 돌보고 세계와 더불어 사는 삶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삶이다.
우리는 기후위기의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폭력적 착취자이며 가해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폭력과 죽음을 야기하는 모든 일에서 전적으로 돌이켜서 새로운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담긴 조화로운 관계성, 그리고 다른 세상에 대한 예수의 실천적 상상력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의로운 전환은 지구 자연과 인간을 억압하는 불의한 경제와 정치 구조를 비판하는 예언자 정신과 예수가 보여준 사랑의 저항 속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재앙을 넘어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가기 위해, 얼마남지 않은 지구의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생명에 대한 새로운 관계맺기와 정의로운 삶의 지향에 대해 묻고 지금과 다른 세계로의 전환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생명을 향해 희망을 길어 올리는 그리스도인의 응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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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오나르도 보프, 『생태신학』, 김항섭 옮김 (서울: 가톨릭, 1996).
2) 샐리 맥훼이그, 『기후변화와 신학의 재구성』, 김준우 옮김 (고양: 한국기독교연구소, 2008).
3) N. C. Habel, Readings from the Perspective of Earth, Earth Bible 1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2000), 31-37.
4) https://www.sbl-site.org/publications/article.aspx?ArticleId=291. *생태 정의를 위한 여섯 가지 원칙 : 1. 내재적 가치의 원칙(the principle of intrinsic worth): 우주, 지구, 모든 만물의 구성원은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다. 2. 상호 연결의 원칙(the principle of interconnectedness): 지구는 서로 연결된 공동체이며, 모든 생명체는 자기 삶과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체에 상호의존하며 산다. 3. 표현의 원칙(the principle of voice): 지구는 정의를 위해 축하하거나 불의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는 주체이다. 4. 목적의 원칙(the principle of purpose): 우주, 지구, 그것의 모든 구성원은 최종의 목적에 이르는 과정에서 역동적인 우주 섭리를 실현하는 한 부분이다. 5. 상호 관리직의 원칙(the principle of mutual custodianship): 지구는 조화롭고 다양한 공동체로, 모든 구성원은 지배자가 아닌 동반자로서 책임있는 관리인들의 역할을 담당한다. 6. 저항의 원칙(the principle of resistance): 지구와 그 구성원들은 인간이 저지른 불의로 고통당하지만 불의에 적극 저항한다.
5) David G. Horrell, Ecological Hermeneutics: Biblical, Historical and Theological Perspectives (London: T & T Clark, 2010), Introduction.
6) 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 and Earth: A Background Document, 2005, 4.
7) “국내 첫 환경단체 설립 주도,” 국민일보, 2021.4.28.,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89112&code=23111111&cp=nv.
8)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홈페이지, http://www.greenchrist.org/
저자 소개
송진순은 이화대학과 동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고, 현재 이화여대에서 강의하고, 동대학교 대학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섬기고 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성서를 중심으로 생태, 여성, 사회 현상들을 해석하고 교회를 넘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기독교적 가치와 윤리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관련 연구로는 『혐오와 여성신학』, 『하나님의 형상, 우리 여성』, 『지구생명체의 위기와 기독교 복음』, 『기후위기 한국교회에 묻는다』, 『한국기독교의 보수화, 어느 지점에 있나』, 『코로나 펜데믹과 기후위기 시대, 생물다양성에 주목하다』 등 다수의 공저와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