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기원에 대한 한 목회자의 고찰 (김양현)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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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기원에 대한 한 목회자의 고찰


글ㅣ김양현
더불어행복한 교회 목사
과신뷰 편집장


  인류는 오랜 세월동안 기원에 관해 궁금해 왔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라고 고민한 화가 고갱처럼 인류는 기원에 대한 궁금증을 늘 가지고 있었다. 고대 사람들은 신들이 존재했었고 그 신들에 의해 우주가 시작되었다고 여겼다. 기원전 18세기로 추정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신화 에누마 엘리시는 태초의 기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높은 곳에서 하늘이 정해지지 않았을 때, 대지에도 아직 이름이 없었을 때, 모두를 창조한 태고의 아버지인 아프수와 어머니 혼돈의 티아마트가 있었는데, 그들이 물을 섞어 내고 있었다.1) 

에누마 엘리시 Enuma Elish - The Babylonian Epic of Creation @wiki 


 고대 사람들이 생각한 우주의 기원은 신이다. 우주는 신의 창조로 시작되었다. 에누마 엘리시는 태고의 아버지 신 아프수와 어머니 신 티아마트에 의해 물이 창조되고, 이어 하급신들이 만들어지고, 하급신들의 불평을 잠재우기 위해 티끌을 날려 인간을 창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근거인 성경 창세기 1장 1절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 


  성경은 만물의 시작을 신의 창조로 선언한다. 태초에 신이 계셨고 신의 의지에 따라 만물이 조성되었다. 창세기의 창조 선언은 고대의 다른 신화들과 유사한 점이 있다. 만물의 신적 창조를 선언한다. 이처럼 고대의 사람들은 만물의 기원은 신에게서 비롯된다고 여겼다. 


  시간이 흘러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신의 창조 개념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만물의 궁극적인 원인이 있어야 할 것이라 철학적으로 사유하였고, 만물의 궁극적 원인(The First Cause)으로서의 ‘로고스’를 상정했다. 로고스는 보편이성으로 만물의 원인이라 여겼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부동의 원동자’(Unmoved Mover)라는 개념으로 만물의 시작을 설명했다. 즉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만물을 움직이는 것에 의해 세상이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만물에 대한 섭리도 포함되었다. 


  1세기 경 이러한 그리스 철학의 흐름에서 성경 저자들(신약)은 그들이 말하는 만물의 궁극적 근원으로서의 ‘로고스’가 바로 ‘신이 인간이 되신 자’, 예수라고 변증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저자는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있었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라고 선언한다.2)  이어 말씀은 곧 육신으로 나타난 예수라고 설명한다. 달리 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시작되었다고 증언한다. 


  사도 바울은 더 나아가, 이 말씀이 만물보다 먼저 있었고,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창조되었다고 선언함으로써 만물의 기원을 설명한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로새서 1;15-17)


  이처럼 고대와 동 시대의 성경 저자들은 만물의 시작을 하나님(신)의 창조로 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든다. 만물의 시작이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인가? 또한 ‘태초’라는 개념은 무엇인가? 태초라는 순간은 언제이며 태초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이러한 고민에 대한 답을 추구한 사람은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였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개념에 대하여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 자체도 피조 세계를 구성하는 한 요소이며, “창조 행위가 시간 속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일어났다.”고 말했다. 즉 시간 자체도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다. 창조가 시간 속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창조되었다고 보았다. “우리가 피조물들의 관계를 이야기 할 때는 ‘이전’과 ‘이후’를 말하지만,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서는 만물이 동시성을 가진다.”3)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은 시간 속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무시간이며(timelessness) 시간의 초월이다.”고 설명했다. 하나님은 곧 영원하신 분이신데 영원은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초월이다. 따라서 ‘창조 이전에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에 대한 질문 자체가 모순이라고 보았다. 창조 이전에는 시간 자체가 없었기에 ‘창조 이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틀렸다고 보았다. 하나님은 시간 안에 계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 
Sanctus 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 354-430 
@wiki

 


  이러한 사상과 생각이 중세를 지배하였다. 그러다 십자군 전쟁 이후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새로운 사조가 유입되었다. 곧 천문학과 과학적 사고다. 이런 사고가 유럽 전체를 지배하고 얼마 후 기독교의 가르침 자체가 흔들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곧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등에 의해 알려진 지동설이다. 천동설이 지배하던 중세에 지동설의 발견은 엄청난 생각의 전환이자, 교회가 주장해 온 성경의 창조 교리를 뒤흔들었다. 다시 말하면 과학적 발견, 이성의 작용, 증명된 진리가 참이며 증명되지 못하는 생각은 진리라 할 수 없게 되었다.4) 


  이러한 과학의 도전 앞에서 성경을 과학으로 설명하고자 한 시도가 있었으니 곧 윌리엄 페일리의 대작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이다.5) 윌리엄 페일리는 도전하는 과학적 사고에 대하여 성경적 답을 내놓고자 힘썼다. 그가 내놓은 방식은 그 유명한 ‘시계공 은유’다. “들판에서 우리가 풀이나 나무를 발견했다면 놀라지 않겠지만, 만약 시계를 발견했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 시계를 만들었을 누군가 즉 창조주를 연상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세계는 어떤 설계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윌리엄 페일리의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위기에 빠진다. 


  1859년 찰스 다원에 의해 발표된 [종의 기원] 때문이다. 다윈은 자신의 책에서 만물은 불변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여 변화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생물체는 다양한 변이를 가진 자손을 낳고 그 자손들 중에서 환경에 적합한 특징을 가진 자손이 선택되어 그 특징을 가진 자손의 수가 늘어나서 결국은 새로운 종을 만들게 된다는 자연선택 진화이론을 내놓았다.  다윈의 집요한 관찰과 증거에 의해 페일리의 고정 불변적 세계는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신적 창조는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6)


  다윈의 진화론과 함께 20세기 초반 벨기에의 신부이자 과학자인 조르주 르메트르에 의해 우주는 고정적이지 않고 변화하며 서서히 팽창해 간다는 이론이 등장했다. 당시 아인쉬타인 같은 학자도 이 이론을 거부했으나, 1924년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자신이 발명한 망원경으로 관찰한 결과를 내 놓아 르메트르의 생각이 옳음을 알렸다. 허블의 관찰에 의하면 별과 별 사이는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고, 이것은 곧 우주 자체가 서서히 팽창해 간다는 사실이었다. 허블의 관찰 결과는 고려한 일련의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해 간다면 거꾸로 시작점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고, 허블상수를 역 추적하여 우주는 약 139억 년 전에 알 수 없는 대폭발로 시작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른 바 빅뱅 이론이다.


  다윈의 진화론과 이후 등장한 빅뱅 이론을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신에 의한 창조를 신화처럼 여기게 되었다. 더 이상 기독교가 말하는 신의 창조, 신에 의한 만물의 창조, 신적 기원은 설 자리를 잃게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에 근거한 것이었다. 소위 제임스 어셔 주교의 지구 6천년설7)과 윌리엄 페일리의 시계공과 같은 설계자 이론에 대한 거부였음을 알 필요가 있다. 어셔 주교의 지구 6천년설이나 페일리의 고정된 설계 개념은 현대 과학에 의해 거부당할 수 밖에 없었다. 새로 발견된 사실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의 주장이 기독교 세계에서 주류로 받아들여졌기에 마치 기독교 세계의 주류 주장으로 여겨져 거부되었다. 















찰스 로버트 다윈 
Charles Robert Darwin,1809-1882 
@wiki


  하지만 19세기에 활동한 찰스 킹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실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지혜로우신 분임을 오래전부터 알았다. 그러나 유념하라 하나님은 그보다 훨씬 더 지혜로우셔서 만물이 스스로 그 자신을 만들게 하실 수 있는 분이다.”8) 


킹슬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우주 내에 어떠한 물리 법칙을 주셔서 스스로 진화해 나갈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일찍이 말한 ‘씨앗 같은 원리들’과 궤를 같이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일찍이 창세기를 주석하면서, 하나님은 창조 시 씨앗 같은 원리들을 창조 세계 안에 내재하게 하셨다고 말했다. 씨앗이 시간이 흘러 싹이 나고 자라 나무가 되듯이, 하나님의 창조도 특정한 시간이 되면 창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근대에 와서 17세기의 개혁파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세 단계로 구분했다. 원 창조(Creatio Originalis), 계속되는 창조(Creatio Continua) 그리고 새 창조(Creatio Nova)다. 하나님의 원 창조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씨앗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씨앗들이 자라 열매를 맺듯이, 창조의 세계가 스스로 창발 해 가도록 섭리하신다. 하나님의 창조는 태초에 완결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은 자연과 인간을 매개로 삼아 창발하는 우주를 창조해 나가고 계신다. 


  옥스퍼드의 신학자이자 과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자신의 책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에서 하나님의 계속되는 창조, 그리고 창조 이전의 상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21세기 천문학에서 발견한 우주의 정교한 조율에 의하면 우주 상수 어느 하나라도 오차가 있다면 현재의 우주는 유지될 수 없고, 마치 우주가 오늘날 인류가 발생하고 살아가기 위해 조율된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중력이나 전자기력, 핵력 어느 하나 조금의 오차라도 있었다면 수소는 생성되지 않았을 것이고, 별 또한 생성되지 않았으며, 생명체에 필요한 원소인 수소, 질소, 탄소 등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주는 정말 정교하게 조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신론 과학자들은 이런 조율을 우연이라 말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한다. 물론 둘 다 증명될 수는 없다. 기원을 실험실에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하기에 둘 다 믿음이다. 도킨스 같은 무신론 과학자는 정교한 조율을 우연이라 믿고, 맥그래스 같은 기독교 과학자는 섭리라 믿는다. “유전자를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듯이, 진화가 목적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9) 맥그라스는 도킨스 같은 무신론 과학자들은 신이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신이나 어떤 인격체를 포함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결국 믿음 차이다. 무신론자도 우연이라고 믿고 유신론자는 섭리로 믿는다. 


  그런데 사실 과학적 증명이라 할 수 없는 이 ‘믿음’은 중요하다. 무신론적, 무목적론적 우주의 발생과 진화를 믿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 우주가 목적도 없고, 인간도 목적이 없다는 과학적 환원주의는 인류를 그리고 세계사를 목적 없는 것으로 파악하므로, 경이나 존중이 사라진다. 반면 유신론적 창조, 신이 창조한 우주, 그리고 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목적을 가지며 존귀함을 가진다. 이것이 결정적  차이다. 세계를 차가운 대상으로 볼 것인가? 따뜻한 존재로 볼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기원은 결국 과학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추론할 수 있고, 현대의 자연신학은 과학이 밝혀낸 사실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그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과학이 밝혀낸 사실(빅뱅)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빅뱅을 일으켰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빅뱅이든지 이후 어떤 이론이든지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다. 그 분이 지으신 세상은 당신의 영광을 반영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따뜻한 세상이다. 정교하게 조율되어 있는 우주, 그 우주에서 핵심인 인간, 나는 그런 우주론, 그런 기원을 믿는다. 


  “주전자에 물이 끓는 이유는 내가 커피를 마시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 존 폴킹혼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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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누마 엘리시, 1848년 이라크 니네베 지역에서 발굴된 토판으로 주전 18세기 정도의 것으로 추정된다. ‘에누마 엘리시’는 토판의 처음 문장으로 ‘그 때 높은 곳에서’라는 뜻이다.

2)  요한복음 1:1-3 

3)  Augustine, De Genesi ad litteram 4.33.56 , 알리스터 맥그래스,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재인용

4) 중세의 카톨릭 교회가 성경의 권위와 과학적 발견을 혼동함으로써 생겨난 결과이다. 카톨릭 교회가 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주장한 것 때문에, 이후 지동설은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 전체, 교리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5) 윌리엄 페일리, 자연신학, 1802년 

6) 페일리는 창세기 1장의 ‘각 종류대로’를 완결형태로 보았다. 즉 처음 창조 시점에 모든 종류의 동, 식물이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이런 관점이 찰스 다윈에 의해 부적격으로 발견됨으로, 페일리의 다른 모든 주장도 거부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7) 제임스 어셔는 아일랜드의 주교로 지구의 연대를 기원전 4004년 10월 22일로 잡았다. 그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나이를 역으로 계산해서 이 이론을 내놓았다. 그에  의하면 우주의 기원은 약 6천년전이다. 

8) 찰스 킹슬리, 미래의 자연신학, 1874

9) 알리스터 맥그래스,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414p 도킨스는 유전자를 이기적이라고 표현함으로 마치 유전자가 인격적인 것인 듯 스스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반대로 진화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목적을 향해 가고 있다고 믿는 것도 단순한 과학적 사실을 넘어 믿음의 영역으로 향한다. 

10) 존 폴킹혼, 쿼크, 카오스, 그리스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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