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오세한)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4-02-14
조회수 598

@사진: Unsplash의Gregory Hayes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글ㅣ오세한
막 믿음생활을 시작한 20대 청년
기초과정 수강생


‘과학과 신학의 대화’라는 단체가 있다는 걸 아주 최근에야 우연히 알았다. 나는 그간 종교 없이 전투적 무신론에 가까운 태도를 가져왔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게 된 지는 1년이 안 되었다. 종교에 대해 냉소하던 때에는 막연하게 신앙이 현대의 학문과 충돌한다는 근거가 부족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과신대를 접하게 되었고, 신학과 과학의 통합이나 분리가 아닌 건설적 대화를 진지하게 도모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줌 OT에 접속해 보니 정말 ‘기초적인’ 과정이 필요한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나는 과학과 신학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데, 이미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역량을 쌓으신 분들이 더 깊은 고민을 해보기 위해 오셨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에 살짝 긴장하고 있었지만, 워낙 친절하게 준비된 구글 클래스룸과 교재, 강의 커리큘럼 덕분에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금방 알게 되었다. 약 보름간 20~30분 정도의 영상 8개를 시청하고 간단한 학습활동을 제출하면 되는 것이어서, 공부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운 분들께 추천할 만하겠다고 느꼈다.

 

신앙에 입문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문제는 역시나 성경의 문자적-역사적 사실성이었다. 만약 누군가 대홍수는 일어난 적이 없고, 성경이 증언하는 수많은 사건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따져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나는 믿나이다’ 하고 답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해 잠정적으로나마 내린 결론은 성경은 문자적-역사적 사실(fact)이 아닌 구원의 진리(truth)를 가르치기 위해 쓰인 책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는 그분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을 통해 삶의 가장 아름답고 참된 길이 계시되기 때문이라는 것 정도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진화생물학을 포함한 자연과학의 발견들이 전통적 교리를 무너뜨릴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우려해온 것 역시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과 성경이라는 두 권의 책을 각각의 의도에 맞게 읽어내야 한다는 우종학 교수님의 말씀이 무척 명쾌하게 다가왔다. 하나님의 계시는 마치 어른의 어린아이 말투와 같은 것으로, 인간의 역량에 맞게 조정하여 주시는 것이라는 이야기 역시 어렴풋이 가지던 생각을 더욱 분명히 다져주었다. 빅뱅 우주론이 처음 나올 당시에는 기독교적인 함의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지지 받지 못했던 것처럼, 과학적 데이터가 그 자체로 무신론이나 창조신앙으로 기운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확실하게 배울 수 있어서 유익했다. 무엇보다 적은 인원이 참석한 Q&A 시간에 우종학 교수님이 열정적으로 질문에 답변해 주신 일, 내가 미처 질문하지 못했던 걸 기억하신 이슬기 간사님이 이메일로 재차 질문을 받아주신 일은 신자로서도 참 은혜롭고 감사한 경험이었다.

 

기초과정을 마치니, 신앙의 과제는 유신진화론과의 투쟁이 아니라 과학의 질문에 응답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지, 진화의 소산인 인간이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인지 완벽히 이해할 수도, 탐구를 포기할 수도 없다. 다만 거울로나마 더 선명하게 보고자 닦고 또 닦을 따름이다. 공각기동대 극장판에서 자기가 과연 인간이 맞는지 고민하는 사이보그가 읊조리는 고린도전서 말씀처럼 말이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공각기동대 극장판 Ghost in the shell,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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