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칼럼
기후위기, 과학으로 바라보는 희망의 시선
글ㅣ김백민 박사
부경대학교
기후위기는 이제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매년 반복되는 폭염과 한파, 예측 불가능한 기상이변들이 그 증거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위기'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짧은 지면이지만 나는 20년 이상 기후과학을 연구해 온 과학자로서 이 글을 통해 복잡한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를 바로잡고, 과학의 시선으로 본 희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우리는 심각한 기후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음은 분명하나, 동시에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비관론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이 역설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후변화의 근본 원인인 온실기체, 그중에서도 이산화탄소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농도. 얼핏 들으면 비슷해 보이는 이 두 개념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이를 이해하는 것은 기후위기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기후위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출량'과 '농도'라는 두 가지 핵심 개념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는 이 두 용어는 사실 기후변화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배출량은 인류가 매년 대기 중으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의미하는 한편, 농도는 대기 중에 누적된 온실가스의 양을 나타낸다. 이 두 개념의 관계는 욕조에 물을 채우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배출량의 개념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의 양에 빗 댈 수 있다. 매년 우리가 대기 중으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이 바로 이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과 같은 것이다. 우리 인류는 하루에 무려 1.5억톤이 넘는 온실기체를 지구 대기중으로 배출하고 있다. 수도꼭지에 비유하자면 레버를 완전히 오른쪽으로 돌려 물이 콸콸 쏟아져나오고 있는 상황에 빗댈 수 있다. 욕조에 물이 빠른 속도로 차오른다. 즉,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쌓여가는 것은 욕조의 수위가 점점 올라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배출량과 농도의 차이점에 대한 이해 [출처: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 김백민 저]
이 간단한 욕조 모델에 빗대 지구 대기 중 온실가스 증가를 설명할 때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욕조에는 항상 배수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욕조 모델 한편에 물이 빠져나갈 배수구가 존재하듯, 실제 지구에도 대기 중의 온실가스가 빨려 들어가 사라지는 ‘배수구’ 역할을 하는 것들이 있다. 바다와 숲이 대표적이다. 다만, 수도꼭지로부터 콸콸 쏟아져 나오는 물의 양이 워낙 많기에 지구라는 거대 욕조의 배수구는 너무나 작다. 물의 수위가 빠른 속도로 올라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에 비해 자연이 흡수할 수 있는 양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우리가 배출량을 급격하게 줄인다고 해서 당장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즉각적으로 낮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설령 우리가 지금 당장 모든 온실가스 배출을 중단한다 해도, 이미 대기 중에 누적된 온실가스에 의해 데워진 바닷물의 온도는 관성에 의해 한동안 계속 상승할 것이므로 지구 온도는 수십년 이상 더 상승을 이어가다 온도가 서서히 떨어지는 추세로 접어들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기후변화는 결코 피해갈 수 없을 것이 현실임을 깨달아야 한다. 논리적으로 보면, 탄소 감축만 인류가 성공하게 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것은 일종의 망상에 가깝다. 막연한 환상을 버리고 탄소 감축 노력과 더불어, 변화하고 있는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도 게을리하면 안된다.
또한, 이 욕조 모델은 우리가 왜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욕조의 수위가 넘치기 전에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이 중요하듯이,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해 욕조를 흘러 넘쳐 모든 것을 망치기 전에 우리의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결국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은 배출량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이미 높아진 농도로 인한 영향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정부와 기업, 그리고 사회 전반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앞서 욕조 모델에서 다룬 내용을 현실 상황에 비추어 보자. 현재 인류는 매년 약 500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이 중 우리나라의 배출량은 약 6억 톤. 전체의 1%도 되지 않는 양이지만, 증가 속도가 빨라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나라 배출량의 70% 이상이 한국전력과 20대 대기업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산업계의 변화가 필수적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수치이다.
이산화탄소 농도와 지구의 온도 [출처: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 김백민 저]
그렇다면 농도는 어떨까? 산업혁명 이전 280ppm이었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현재 420ppm까지 치솟았다. 이는 지구 평균기온을 1.2도 상승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문제는 이 농도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설령 우리가 당장 모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중단한다 해도, 농도가 산업화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데는 10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측한다.
어떤가, 실제적인 수치로 접근해보니 앞서 욕조 모델에서 시사한 바가 더 잘 와닿지 않는가? 이미 치솟아버린 420ppm이라는 이산화탄소 농도와 되돌리는 데 걸리는 약 100년이라는 시간은 우리에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탄소 감축 노력의 필요성과 돌이키기 어려운 기후변화의 적응이라는 과제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학자들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이를 예측하고 있다.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것이고,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현재의 배출 추세를 넘어서 화석연료를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현실은 아마도 그 중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발표에 따르면, 인류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조만간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이 나왔다. 이는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 발전의 급격한 발전 덕분이다. 지난 10년간 태양광 발전 효율은 10배나 향상되었고, 이미 많은 지역에서 화석연료보다 저렴한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사회 경제학자들이 제작한 시나리오들 [출처: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 김백민 저]
이러한 추세를 감안한 배출량 시나리오를 적용해보면 2100년경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혁명 이후 약 2.7도 정도의 상승이 예상된다. 물론 이는 현재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잦아질 것이며, 지구 생태계에 다가올 큰 변화에 따라 인류 생활 양식도 크게 변화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수준의 온난화는 인류 문명의 존속을 위협할 정도의 파국적 상황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과학자들이 이야기하는 파국적인 시나리오는 지금보다 화석연료를 세 배 이상 사용하여 인류가 6도 이상의 온도 상승을 경험하게 되는 미래이다. 이 시나리오가 실현이 된다면 3km나 되는 남극 해빙이 완전히 붕괴되고 녹아내리면서 50m에 달하는 해수면 상승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쯤이면 인류 멸망을 논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는 과학이 이야기하는 확률 높은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우리가 현실에 안주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2.7도의 기온상승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겨우 1.5도 지구 온도가 상승한 지금 우리는 전례 없는 극단적인 기상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과학자들은 2.7도 정도의 기온상승만으로도 현재보다 5배 이상 더 빈번한 폭염이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더구나 이는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수치이므로 지역에 따라서는 훨씬 더 극단적인 변화를 겪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명확하다. 하나는 기온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불가피한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전자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특히 재생에너지로의 신속한 전환이 필수적이다. 후자를 위해서는 기후변화에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고, 재난 대응 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인류 문명은 '더 많은 에너지 소비 = 더 큰 경제적 풍요'라는 등식 아래 발전해 왔다. 그리고 그 에너지의 주된 원천은 화석연료였다. 하지만 이제 그 공식이 깨지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눈부신 효율 향상은 우리가 탄소 배출 없이도 풍부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만들었다. 재생에너지 시대의 도래는 경제 성장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해 주는 지구 환경의 보호가 양립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나라의 현주소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변화의 흐름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세계가 이미 에너지 전환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구시대적 에너지 정책에 머물러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장기적 안목과 과감한 결단이다. 당장의 비용 증가를 두려워하지 말고, 미래를 위한 투자로 재생에너지 확대에 나서야 한다. 이는 단순히 환경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미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과제다. 에너지 안보, 신산업 육성,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재생에너지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사회 시스템 구축에도 힘써야 한다. 폭염, 한파, 홍수 등 극단적 기상 현상에 대비한 도시 설계, 취약계층 보호 대책, 농업과 수산업의 적응 전략 등 준비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는 정부만의 몫이 아니다. 기업, 시민사회, 개인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분명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우리 문명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문명을 넘어, 자연과 공존하는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환점인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망도, 안일함도 아닌 균형 잡힌 시각과 꾸준한 실천이다. 과학이 보여주는 위기의 실체를 직시하되, 동시에 그 속에서 희망의 가능성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어떤 세상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이 곧 인류의 미래가 될 것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 그 기회를 현실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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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과학으로 바라보는 희망의 시선
글ㅣ김백민 박사
부경대학교
기후위기는 이제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매년 반복되는 폭염과 한파, 예측 불가능한 기상이변들이 그 증거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위기'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짧은 지면이지만 나는 20년 이상 기후과학을 연구해 온 과학자로서 이 글을 통해 복잡한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를 바로잡고, 과학의 시선으로 본 희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우리는 심각한 기후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음은 분명하나, 동시에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비관론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이 역설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후변화의 근본 원인인 온실기체, 그중에서도 이산화탄소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농도. 얼핏 들으면 비슷해 보이는 이 두 개념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이를 이해하는 것은 기후위기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기후위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출량'과 '농도'라는 두 가지 핵심 개념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는 이 두 용어는 사실 기후변화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배출량은 인류가 매년 대기 중으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의미하는 한편, 농도는 대기 중에 누적된 온실가스의 양을 나타낸다. 이 두 개념의 관계는 욕조에 물을 채우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배출량의 개념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의 양에 빗 댈 수 있다. 매년 우리가 대기 중으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이 바로 이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과 같은 것이다. 우리 인류는 하루에 무려 1.5억톤이 넘는 온실기체를 지구 대기중으로 배출하고 있다. 수도꼭지에 비유하자면 레버를 완전히 오른쪽으로 돌려 물이 콸콸 쏟아져나오고 있는 상황에 빗댈 수 있다. 욕조에 물이 빠른 속도로 차오른다. 즉,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쌓여가는 것은 욕조의 수위가 점점 올라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배출량과 농도의 차이점에 대한 이해 [출처: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 김백민 저]
이 간단한 욕조 모델에 빗대 지구 대기 중 온실가스 증가를 설명할 때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욕조에는 항상 배수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욕조 모델 한편에 물이 빠져나갈 배수구가 존재하듯, 실제 지구에도 대기 중의 온실가스가 빨려 들어가 사라지는 ‘배수구’ 역할을 하는 것들이 있다. 바다와 숲이 대표적이다. 다만, 수도꼭지로부터 콸콸 쏟아져 나오는 물의 양이 워낙 많기에 지구라는 거대 욕조의 배수구는 너무나 작다. 물의 수위가 빠른 속도로 올라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에 비해 자연이 흡수할 수 있는 양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우리가 배출량을 급격하게 줄인다고 해서 당장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즉각적으로 낮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설령 우리가 지금 당장 모든 온실가스 배출을 중단한다 해도, 이미 대기 중에 누적된 온실가스에 의해 데워진 바닷물의 온도는 관성에 의해 한동안 계속 상승할 것이므로 지구 온도는 수십년 이상 더 상승을 이어가다 온도가 서서히 떨어지는 추세로 접어들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기후변화는 결코 피해갈 수 없을 것이 현실임을 깨달아야 한다. 논리적으로 보면, 탄소 감축만 인류가 성공하게 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것은 일종의 망상에 가깝다. 막연한 환상을 버리고 탄소 감축 노력과 더불어, 변화하고 있는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도 게을리하면 안된다.
또한, 이 욕조 모델은 우리가 왜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욕조의 수위가 넘치기 전에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이 중요하듯이,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해 욕조를 흘러 넘쳐 모든 것을 망치기 전에 우리의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결국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은 배출량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이미 높아진 농도로 인한 영향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정부와 기업, 그리고 사회 전반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앞서 욕조 모델에서 다룬 내용을 현실 상황에 비추어 보자. 현재 인류는 매년 약 500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이 중 우리나라의 배출량은 약 6억 톤. 전체의 1%도 되지 않는 양이지만, 증가 속도가 빨라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나라 배출량의 70% 이상이 한국전력과 20대 대기업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산업계의 변화가 필수적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수치이다.
이산화탄소 농도와 지구의 온도 [출처: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 김백민 저]
그렇다면 농도는 어떨까? 산업혁명 이전 280ppm이었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현재 420ppm까지 치솟았다. 이는 지구 평균기온을 1.2도 상승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문제는 이 농도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설령 우리가 당장 모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중단한다 해도, 농도가 산업화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데는 10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측한다.
어떤가, 실제적인 수치로 접근해보니 앞서 욕조 모델에서 시사한 바가 더 잘 와닿지 않는가? 이미 치솟아버린 420ppm이라는 이산화탄소 농도와 되돌리는 데 걸리는 약 100년이라는 시간은 우리에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탄소 감축 노력의 필요성과 돌이키기 어려운 기후변화의 적응이라는 과제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학자들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이를 예측하고 있다.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것이고,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현재의 배출 추세를 넘어서 화석연료를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현실은 아마도 그 중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발표에 따르면, 인류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조만간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이 나왔다. 이는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 발전의 급격한 발전 덕분이다. 지난 10년간 태양광 발전 효율은 10배나 향상되었고, 이미 많은 지역에서 화석연료보다 저렴한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사회 경제학자들이 제작한 시나리오들 [출처: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 김백민 저]
이러한 추세를 감안한 배출량 시나리오를 적용해보면 2100년경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혁명 이후 약 2.7도 정도의 상승이 예상된다. 물론 이는 현재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잦아질 것이며, 지구 생태계에 다가올 큰 변화에 따라 인류 생활 양식도 크게 변화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수준의 온난화는 인류 문명의 존속을 위협할 정도의 파국적 상황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과학자들이 이야기하는 파국적인 시나리오는 지금보다 화석연료를 세 배 이상 사용하여 인류가 6도 이상의 온도 상승을 경험하게 되는 미래이다. 이 시나리오가 실현이 된다면 3km나 되는 남극 해빙이 완전히 붕괴되고 녹아내리면서 50m에 달하는 해수면 상승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쯤이면 인류 멸망을 논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는 과학이 이야기하는 확률 높은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우리가 현실에 안주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2.7도의 기온상승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겨우 1.5도 지구 온도가 상승한 지금 우리는 전례 없는 극단적인 기상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과학자들은 2.7도 정도의 기온상승만으로도 현재보다 5배 이상 더 빈번한 폭염이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더구나 이는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수치이므로 지역에 따라서는 훨씬 더 극단적인 변화를 겪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명확하다. 하나는 기온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불가피한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전자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특히 재생에너지로의 신속한 전환이 필수적이다. 후자를 위해서는 기후변화에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고, 재난 대응 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인류 문명은 '더 많은 에너지 소비 = 더 큰 경제적 풍요'라는 등식 아래 발전해 왔다. 그리고 그 에너지의 주된 원천은 화석연료였다. 하지만 이제 그 공식이 깨지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눈부신 효율 향상은 우리가 탄소 배출 없이도 풍부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만들었다. 재생에너지 시대의 도래는 경제 성장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해 주는 지구 환경의 보호가 양립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나라의 현주소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변화의 흐름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세계가 이미 에너지 전환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구시대적 에너지 정책에 머물러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장기적 안목과 과감한 결단이다. 당장의 비용 증가를 두려워하지 말고, 미래를 위한 투자로 재생에너지 확대에 나서야 한다. 이는 단순히 환경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미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과제다. 에너지 안보, 신산업 육성,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재생에너지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사회 시스템 구축에도 힘써야 한다. 폭염, 한파, 홍수 등 극단적 기상 현상에 대비한 도시 설계, 취약계층 보호 대책, 농업과 수산업의 적응 전략 등 준비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는 정부만의 몫이 아니다. 기업, 시민사회, 개인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분명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우리 문명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문명을 넘어, 자연과 공존하는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환점인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망도, 안일함도 아닌 균형 잡힌 시각과 꾸준한 실천이다. 과학이 보여주는 위기의 실체를 직시하되, 동시에 그 속에서 희망의 가능성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어떤 세상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이 곧 인류의 미래가 될 것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 그 기회를 현실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