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칼럼🖋] 우주의 운명과 그리스도교의 소망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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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주의 운명에 관한 현대 우주론의 예측


우주의 운명에 관한 과학적 탐구는 영원하고 정적인 우주에 관한 고대 그리스의 우주론이 붕괴된 최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19세기 중반 열역학 제2법칙이 발견되고 우주 전체를 대상으로 그 법칙을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우주의 운명에 관한 최초의 과학적 예견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때 우주의 운명은 우주의 모든 지점이 열평형상태에 도달하는 소위 “열 죽음(heat death)”의 형태로 논의되었다. 20세기 들어 빅뱅 우주론의 놀라운 발전은 우주의 종국에 대한 논의를 현대 과학적 우주론의 한 분야로 만들었다. 빅뱅 우주론은 지금 팽창하고 있는 우주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팽창하거나 혹은 다시 수축할 것이라고 내다보았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우주의 운명이 “얼어 죽거나 불타 죽게(freeze or fry)”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한편, 우주의 구성 물질에 대한 가장 최근의 과학적 발견과 연구는 우주가 계속해서 팽창할 것이라는 견해에 더 무게를 실어주고 있으며, 이 경우 우주의 먼 미래는 “끝없는 부패의 과정”이 될 것으로 과학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우주는 종말에 관한 여러 모델들 1. 빅 크런치 2.빅 칠 3. 빅 립 모델, 가장 유력한 것은 끊임없이 퍼지는 빅립 모델이다. 이미지=ESO




2. 우주적 희망에 대한 신학적 도전


 우주의 종국적 상태에 대한 이 암울한 그림은 비록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하나님의 창조 프로젝트의 최종적 완성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소망을 위협하고 있다. 과학으로부터 제기되는 도전은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분석해 볼 수 있다.


 첫째, 우주의 종국적 파멸에 대한 과학적 예견은 우주적 과정 전체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말하자면, 우주가 종국적으로 파멸을 피할 수 없다면 생명의 출현은 근본적으로 무의미한 우주 역사 속에서 잠시 지나가는 에피소드나 “부조리한 역사 흐름 속에 우연히 발생한 행복한 사건,” 혹은 “무의미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의미 있는 섬”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생명 역시 결국에는 무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생명의 의미조차도 단지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전도자가 말하듯이, 결국 모든 것이 헛된 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전 1:2). 그렇다면 우리가 우주 전체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이것은 첫 번째 허무주의의 도전이다.

 둘째, 만약 만물이 무로부터 와서 과학자들이 예측하듯 무로 돌아가게 된다면, 우주적 과정에 어떤 목적도 없어 보인다. 현대 과학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우주의 물리적 격자 속에는 어떠한 목적(telos)도 새겨져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과학적 발견들에만 호소하면서 우주의 위대한 설계자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여하한 철학적 혹은 유사-신학적 시도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주 전체가 최종적 파멸에 이르게 되는 암울한 미래상 앞에서 최근 많이 논의되고 있는 우주의 “미세조정”조차도 우주의 궁극적 목적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창조의 최종 목적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두 번째 도전, 무목적성의 도전이다.


 셋째, 우주의 파국이 내포하는 허무주의와 무목적성은 우주의 설계자나 창조자가 없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설령 우주의 창조자가 있다고 가정한다손 치더라도, 그 창조자는 창조 세계를 자신이 계획한 목적대로 완성시킬 선한 의지와 충분한 능력이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하나님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우주의 최종적 파멸에 관한 과학적 예측은 선한 의지와 주권적 능력이 있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신앙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프로젝트의 최종적 완성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소망에 큰 위협이 된다. 이것은 무신론의 도전이다.


 요컨대, 우주의 운명에 관한 암울한 예측은 과학 이론에만 기초한 진화론적 낙관주의를 설득력 있게 논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몇몇 저명한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우주의 역사가 궁극적으로 부조리하며 우주의 의미나 목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유추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우주의 파국에 대한 과학적 예측과 그것이 내포하는 허무주의적, 무목적론적, 나아가 무신론적 함의는 창조의 미래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소망의 관점에서 신학적 응답을 요청한다.




3. 우주적 희망은 신학적 문제다


 한편, 우주의 운명에 관한 과학의 예측이 그리스도교에 도전이 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주의 미래에 관한 우주적 희망이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포기할 수 없는 영역임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주적 희망이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주적 희망은 간단히 말해서 창조의 미래를 향한 소망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창조”란 이중적 의미가 있다. 창조는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을 가리키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결과 생겨난 창조 세계를 가리킨다. 창조의 이 같은 이중적 의미를 염두에 둘 때, 우주적 희망은 단순히 창조 세계의 미래를 향한 소망만을 가리키지 않고, 거기에 더하여 혹은 그보다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미래를 향한 소망을 가리킨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주적 희망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으로서 신학 자체의 가장 중요한 이슈들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우주적 희망은 세계를 창조하시고 그 세계를 궁극적으로 완성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소망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주적 희망은 단지 세계의 미래 상태에만 관계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기로 결정하신 이후로 줄곧 의도해 오셨던 하나님의 창조 목적의 궁극적 성취를 향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진정한 의미의 “신학적” 이슈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창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성과 더불어 스스로 시작한 일을 완성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지와 능력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창조 세계의 완성이 없다면, 창조 세계와 관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완성으로서 새 창조가 없다면, 창조 세계의 미래를 향한 소망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프로젝트의 실패를 의미할 것이요 따라서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신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그리스도교적 신념에 의문을 품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교적 우주적 희망을 재구성하고자 시도하는 사람에게 있어 일차적인 과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를 염두에 두고서 우주적 희망의 토대를 새롭게 정초하는 것이다.




4. 우주의 파국 예측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응답


그렇다면 우주의 파국에 대한 과학의 예측은 하나님의 창조 프로젝트의 실패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근본 확신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한다고 볼 수 있다. 과연 현대 과학의 예측에서 비롯하는 이 도전 앞에서 창조 세계의 완성을 향한 소망을 고수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우주의 종국에 대한 끔찍한 과학적 미래상이 처음 일반 대중에게 소개된 이래 많은 위대한 지성들이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도전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응답하려고 시도해 왔다.

 

  • 찰스 다윈(Charles Darwin)과 같이 역사의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있던 많은 근대 사상가는 세상의 종국에 대한 과학의 암울한 예측에 당혹스러워했다. 또한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이나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와 같이 우주 전체가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음을 인정하는 무신론적 사상가들도 등장했다.


  • 한편, 떼이야르 드 샤르댕(Teilhard de Chardin)은 인간의 의식이 결국에는 엔트로피의 무제약적 증가를 극복하고 우주적 과정의 최종적 완성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었고, 그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프리만 다이슨(Freeman Dyson)과 프랑크 티플러(Frank Tipler) 등은 먼 우주 미래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정보처리 과정으로서 “생명”은 여전히 지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영국의 윌리엄 잉거(William Inge)와 에드먼드 휘테커(Edmund Whittaker)는 우주의 파국에 대한 과학적 예측이 당시 년차 신앙과 경쟁 관계 속에 있던 근대 이데올로기들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과학적 예측을 환영하는 한편, 과학자들이 예견하는 우주의 미래 너머를 바라보는 그리스도교적 소망과는 충돌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복음주의 계열의 몇몇 신학자들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우주의 파국에 대한 과학적 예측이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는다는 성서적 증언을 확증한다고 주장했다.


  • 반대로 헨리 모리스(Henri Morris)와 같이 성서의 문자주의적 해석을 고수하는 이들은 현대 과학의 우주론을 맹목적으로 거부하고 요한계시록에 근거한 대안적인 유사-과학적 우주론을 발전시키려고 시도했다.


  • 또 다른 신학자들은 현재의 과학적 미래상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우주의 미래에 대한 현재의 과학적 예측이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장차 새로운 과학적 예측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한편, 루돌프 불트만과 캐서린 태너(Kathryn Tanner)와 같이 그리스도교적 소망을 실존론적으로나 초월론적으로 해석하는 신학자들은 우주의 미래에 대한 과학적 예측이 신학적 주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보고 우주의 운명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 이안 바버(Ian Barbour)를 필두로 과정 신학자들은 화이트헤드의 과정 사상이라는 기존의 잘 정립된 형이상학의 토대 위에서 우주의 운명에 대한 과학적 예측을 수용하면서도 여전히 우주적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 마지막으로,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과 로버트 존 러셀(Robert John Russell)을 비롯한 다른 신학자들은 우주적 희망의 토대를 과학이나 기존 형이상학에 정초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나 예수의 부활에 관한 성서적 증언에서 새 창조를 향한 그리스도교적 우주적 희망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그럼에도 과학이 새 창조를 향한 우주적 희망의 내용을 이해 가능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5. 우주적 희망의 신학 재건의 과제


 현대신학에서 우주적 희망의 주제가 새롭게 부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우주의 최종적 파국에 대한 과학적 예측이 제기하는 도전에 응답하려는 일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논리에 있어 우주적 희망이 가진 신학적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물론이고 창조의 미래를 향한 우주적 희망의 토대와 성격과 범위와 모델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도 부재한 상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적 우주적 희망의 토대를 탐구하고 공고히 할 뿐 아니라 과학적 우주론이 제기하는 도전에 직면하여 그리스도교적 우주적 희망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글 | 김정형

연세대학교 종교철학과에 있으며 과신대 자문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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