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제국의 프로테스탄트] 16.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안다, 고기후 연구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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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미래의 기후변화를 예측했는데, 이번엔 과거의 기후변화를 소개합니다. 과거 기후를 고(古)기후라고 하는데, 우리는 고기후 연구를 통해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기후변화가 자연변동성의 일부인지, 아니면 인간 활동에 의한 결과인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기후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확장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기후 예측에 도움을 받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기후 연구에 어떤 방법들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빙하코어 시추물 연구

첫 연재에서 과거 80만 년의 이산화탄소 농도 기록을 보여드린 바 있습니다. 남극의 빙하는 해마다 내리는 눈이 겹겹이 쌓이면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남극대륙 위에 쌓여 있는 빙하의 평균 두께는 2km가 넘는다고 합니다. 아래에 쌓여있는 오래된 빙하를 조사하기 위해, 빙하에 구멍을 뚫어 기다란 원통 모양의 빙하를 캐낸 것이 빙하코어입니다.(사진1) 시추한 빙하코어를 화학적으로 분석하면 과거의 온도 및 가스의 농도, 화산 폭발, 우주 활동까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먼저 온도는 산소 동위원소를 이용해 알 수 있습니다. 동위원소란 원자번호는 같지만 질량수가 다른 원소를 뜻합니다. 같은 원자지만 중성자 수가 달라서 질량이 달라진 것이지요. 보통 산소는 8개의 양성자와 8개의 중성자를 가지고 있지만, 극히 일부가 중성자를 10개 가진 상태의 산소로 존재합니다. 질량이 큰 산소가 있는 겁니다. 지구가 상대적으로 따뜻했던 시기에는 바다로부터 많은 수증기가 증발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추울 때 잘 증발하지 않았던 무거운 산소가 활발하게 증발됩니다. 증발한 수증기가 눈이 되어 남극에 내리니 지구가 따뜻했던 시기에는 빙하코어에 질량이 큰 산소가 많고, 빙하기와 같이 추웠던 시기에는 질량이 작은 산소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입니다. 과거의 온도는 이런 식으로 복원해볼 수 있습니다. 빙하코어를 분석해보니 지구에는 빙하기가 여러 번 있었고, 약 10만 년을 주기로 빙하기와 간빙기(빙하기와 다음 빙하기 사이의 기간이며 상대적으로 따뜻했던 시기)가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구의 자전축 변동 등으로 과학자들이 이러한 빙하기 주기를 설명했는데, 최근에 겪은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와 온도 변화는 80만 년의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속도였습니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인위적인 화석연료 사용의 결과라고 결론을 냈습니다.


사진1. 빙하코어. (출처: NASA's Goddard Space Flight CenterLudovic Brucker)

 

빙하코어에는 공기 방울도 관찰됩니다. 과거의 공기가 눈 사이에 갇혀서 오랫동안 보존된 것입니다. 마치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호박 안의 모기에서 피를 추출하여 공룡을 복원해내듯이, 과학자들은 빙하코어의 공기 방울에서 과거 공기를 추출하여 이산화탄소, 메탄가스와 같은 온실가스 농도를 확인합니다. 빙하기에는 이산화탄소 및 메탄가스 농도가 낮았고, 간빙기에는 그 농도가 높았다는 사실을 통해 빙하기/간빙기 순환이 온실가스 농도와 연관성이 깊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빙하코어를 통해 알아낸 고기후학적 사실입니다. 또한 화산 폭발로 생긴 물질이나 산불에서 나오는 미량기체, 우주에서 만든 물질 등 지구의 다양한 역사가 빙하코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극의 빙하코어로는 전 지구를 대표하는 값을 산출할 수 있으며, 북극의 빙하코어를 통해서는 북대서양과 유럽의 기후변화를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시아의 고기후 연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지구의 역사책: 나이테, 산호, 해저 퇴적층, 종유석

나무의 나이테를 유심히 본 적이 있나요? 색이 옅은 층과 진한 층이 번갈아가며 나타납니다. 여름처럼 온도가 높고 강수량이 충분하여 나무가 성장하기 좋은 시기에는 나무가 빠르게 자라면서 나이테가 하얗고 두껍게 만들어집니다. 반대로 겨울처럼 천천히 성장하는 시기에는 검고 얇은 나이테가 생깁니다.(사진2) 이렇게 계절에 따라 나이테 폭이 달라지지만, 매년 달라지는 기후조건(경년변동성)에 따라서도 나이테 폭은 변합니다. 춥고 건조한 해일수록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해 나이테 폭이 짧고, 따뜻하고 습한 해일수록 나무가 잘 자라 나이테 폭이 길어집니다. 이런 차이는 나이테에 기록이 되어, 그 지역 고기후 연구의 좋은 사료가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나무 나이테 연대기는 약 1만 년입니다. 이는 아일랜드의 참나무류를 이용해 만든 것입니다. 나이테 연대기는 살아있는 나무뿐 아니라 오래된 건축물에 사용된 목재로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약 800년 전까지 기후 복원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사진2. 나무 나이테. 색이 옅은 층과 진한 층이 번갈아가면서 나타난다.

 

바다에서도 고기후를 복원하고 연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산호초의 나이테입니다. 산호의 뼈대는 탄산칼슘층인데, 매년 온도와 밀도가 다르게 층이 형성됩니다. 과학자들은 산호초의 칼슘이 해마다 얼마나 축적되었는지 분석하며 산호초가 만들어질 당시의 기온과 환경조건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엘리뇨, 라니냐와 같은 해양의 기후변동 기록도 산호초를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무 나이테와 산호 나이테 모두 빙하코어에 비해서는 짧은 기간이지만, 연 단위로 변화하는 기후를 복원해낼 수 있어서 고해상도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해상도 자료는 아니지만 더 긴 지구의 역사를 알아낼 방법도 있습니다. 바로 해저 퇴적물을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육지에서 먼 깊은 바다는 해류가 약하고 바닥에 붙어사는 생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유공충이라는 식물성 플랑크톤 사체가 차곡차곡 쌓일 수 있게 됩니다. 이 유공충 사체는 산소 동위원소 비율을 알아내고 과거 5천만 년에서 1억 년 사이의 기후변동을 알아내는 데 활용됩니다.

동굴에서 볼 수 있는 종유석을 통해서도 고기후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종유석은 나이테처럼 1년에 한마디씩 자라는데, 비가 많이 오면 빗물이 동굴로 유입되어 종유석이 빨리 자라고 비가 적게 내리면 천천히 자랍니다. 이 점을 이용해 종유석을 분석하면 그곳의 고기후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퇴적층에서 꽃가루를 채취하는 방법, 화석을 통해 해당 지역에 어떤 생물이 살았는지 조사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기상관측은 1880년대에 들어 시작했지만, 과거의 기록도 고기후 연구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얼지 않는 템스강이 얼어있는 그림을 통해서도 유럽의 소빙하기가 얼마나 추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측우기 관측 기록은 1770년대부터 《승정원일기》1)와 《일성록》2) 등에 자세하게 쓰여있어 이를 통해 과거 강우량 변화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고기후를 통해 알 수 있는 기후위기

고기후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과거의 자연적인 기후변화의 진행 속도나 강도를 추산해냈습니다. 우려스럽게도 현재의 인위적인 기후변화는 과거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빠른 속도와 강도를 보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멀어졌다가 심판을 받고 다시 돌이켰던 성경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듯이, 고기후라는 지구의 역사책을 보면서도 기후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 각주
1) 국보 제 303호, 조선시대에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승정원에서 매일매일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기록한 일기.
2) 국보 제 153호, 1760년(영조 36)부터 1910년(융희 4)까지 약 150년간 조선의 역대 임금의 언동을 날마다 기록한 책.

출처 :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

  


글 | 김진수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 선임연구원, 과신대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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