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의 시작 - 준비되지 않은 갈등
오늘 저의 신앙의 여정을 짧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때 생물학을 전공했던 저는 과학과 신앙 사이 어딘가에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고민을 해왔습니다. 과학과 성경을 해석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내가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꽤 젊은(?) 나이에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라는 책을 통해 창조과학을 접했습니다. 지금도 이 책을 가지고 있는데요, 첫 장을 펼치니 "94. 10. 1. 아빠가"라고 메모가 되어 있습니다. 합동측 목사인 아버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가 과학으로 증명이 된다는 근사한 사실을 고등학생 딸에게 소개해주고 싶었을 겁니다(나라도 그랬겠지요). 바람대로 나는 창조 세계를 들여다보는 과학도가 되고자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습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습니다. 당시 한국교회에 영향을 준 창조과학은 젊은 지구론을 중심으로 한 것이어서 나의 텍스트북과는 충돌이 불가피했습니다. 종속과목강문계를 외우면서도 이건 시험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되뇌이며 동물분류와 식물분류, 유전학, 면역학, 세포학과 같은 전공과목을 공부하는 내내 오류가 있는 내용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 하는 내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창조과학 강의를 열심히 쫓아다니고 관련 책들을 읽었지만 과학과 신앙의 괴리는 커져만 갔습니다. 학교 안에 창조과학회에서 활동 중인 교수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짐을 함께 나눌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초보 생물학도는 설 익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결국 그 업계(?)를 떠나고야 말았습니다.
어쩌다 분리
나의 학문의 여정은 이학사로부터 시작해서 국제보건학을 거쳐 인문학에서 최종 마무리됩니다. 과학자를 꿈꾸며 거친 실험실 생활도 즐거이 했던 나였지만 자연과학으로부터 점점 멀어졌습니다. 한때 화해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국제협력의사로 방글라데시에서 봉사하는 남편과 함께 외국 생활을 하던 중에 국제학교에서 과학 교사로 자원봉사를 하면서 창조과학을 기초로 하는 미국의 과학 교과서를 교재로 활용한 것이지요.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면서 성경이 과학으로 증명된다는 가르침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학생들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모릅니다. 어색한 화해의 시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억지과학’을 강요하는 것이 편치 않았던 것은 당연합니다. 이후 최근까지 자연과학은 나에게 미전도 종족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묻따에서 대화로
과학과 성경의 부조화에 대한 고민은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과신대를 만나면서 갈등의 이유를 찾게 되었으니, 그간 나는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생물학을 전공하고 창조과학회에서 강사교육까지 받았던 믿음 좋은 쌍둥이 동생도, 단지 의사라는 이유로 교회에서 창조과학을 가르쳤던 나의 남편도 모두 나와 같은 아묻따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과신대에 발을 디디자 깊숙이 묻어두었던 질문들을 꺼내면서 낯 뜨겁지 않을 용기도 생겼습니다. 자연과학과 결별한 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우종학 교수, 이상희 교수, 이정모 관장 등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고백하면서도 과학자로 살아가는 분들의 글과 강의를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참 좋았습니다. 우리 쌍동이 자매의 다섯 아이들은 과학에 관심이 많은 십대로 자라 과신대 청소년캠프에 참석한 적도 있습니다.
과신대와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은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과신대는 아묻따 그리스도인들을 환대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 청장년들을 대상으로 나의 과학 여정을 설명하고 과신대를 소개 할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창세기는 과학책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이들의 표정이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잊을 수 없습니다. 지난 겨울 캐나다 여행 중 만난 80대 할아버지 아론처럼 지구의 나이는 6천년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과신대가 젊은 지구론에 경도된 그리스도인들이 낯 뜨거운 질문조차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 자녀 세대가 미전도 종족처럼 내버려진 현대 과학 분야에 마음껏 뛰어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우리 자녀들은 노아의 홍수가 지구를 덮은 궁창 때문이라는 주장에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이들은 오히려 인간의 능력을 크게 앞지르며 발전하는 인공지능, 진화생물학에서의 새로운 발견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과신대가 차세대 교육에 보다 많은 에너지를 쓸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그리스도인들이 대화할 수 있는 그날까지...
| 글 | 최승주 생물학을 전공하고 높은뜻씨앗이되어교회에서 교사이자 권사로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학생들에게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과신대 이사와 감사로 섬기고 있다. |
여정의 시작 - 준비되지 않은 갈등
오늘 저의 신앙의 여정을 짧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때 생물학을 전공했던 저는 과학과 신앙 사이 어딘가에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고민을 해왔습니다. 과학과 성경을 해석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내가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꽤 젊은(?) 나이에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라는 책을 통해 창조과학을 접했습니다. 지금도 이 책을 가지고 있는데요, 첫 장을 펼치니 "94. 10. 1. 아빠가"라고 메모가 되어 있습니다. 합동측 목사인 아버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가 과학으로 증명이 된다는 근사한 사실을 고등학생 딸에게 소개해주고 싶었을 겁니다(나라도 그랬겠지요). 바람대로 나는 창조 세계를 들여다보는 과학도가 되고자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습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습니다. 당시 한국교회에 영향을 준 창조과학은 젊은 지구론을 중심으로 한 것이어서 나의 텍스트북과는 충돌이 불가피했습니다. 종속과목강문계를 외우면서도 이건 시험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되뇌이며 동물분류와 식물분류, 유전학, 면역학, 세포학과 같은 전공과목을 공부하는 내내 오류가 있는 내용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 하는 내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창조과학 강의를 열심히 쫓아다니고 관련 책들을 읽었지만 과학과 신앙의 괴리는 커져만 갔습니다. 학교 안에 창조과학회에서 활동 중인 교수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짐을 함께 나눌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초보 생물학도는 설 익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결국 그 업계(?)를 떠나고야 말았습니다.
어쩌다 분리
나의 학문의 여정은 이학사로부터 시작해서 국제보건학을 거쳐 인문학에서 최종 마무리됩니다. 과학자를 꿈꾸며 거친 실험실 생활도 즐거이 했던 나였지만 자연과학으로부터 점점 멀어졌습니다. 한때 화해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국제협력의사로 방글라데시에서 봉사하는 남편과 함께 외국 생활을 하던 중에 국제학교에서 과학 교사로 자원봉사를 하면서 창조과학을 기초로 하는 미국의 과학 교과서를 교재로 활용한 것이지요.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면서 성경이 과학으로 증명된다는 가르침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학생들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모릅니다. 어색한 화해의 시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억지과학’을 강요하는 것이 편치 않았던 것은 당연합니다. 이후 최근까지 자연과학은 나에게 미전도 종족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묻따에서 대화로
과학과 성경의 부조화에 대한 고민은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과신대를 만나면서 갈등의 이유를 찾게 되었으니, 그간 나는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생물학을 전공하고 창조과학회에서 강사교육까지 받았던 믿음 좋은 쌍둥이 동생도, 단지 의사라는 이유로 교회에서 창조과학을 가르쳤던 나의 남편도 모두 나와 같은 아묻따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과신대에 발을 디디자 깊숙이 묻어두었던 질문들을 꺼내면서 낯 뜨겁지 않을 용기도 생겼습니다. 자연과학과 결별한 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우종학 교수, 이상희 교수, 이정모 관장 등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고백하면서도 과학자로 살아가는 분들의 글과 강의를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참 좋았습니다. 우리 쌍동이 자매의 다섯 아이들은 과학에 관심이 많은 십대로 자라 과신대 청소년캠프에 참석한 적도 있습니다.
과신대와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은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과신대는 아묻따 그리스도인들을 환대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 청장년들을 대상으로 나의 과학 여정을 설명하고 과신대를 소개 할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창세기는 과학책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이들의 표정이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잊을 수 없습니다. 지난 겨울 캐나다 여행 중 만난 80대 할아버지 아론처럼 지구의 나이는 6천년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과신대가 젊은 지구론에 경도된 그리스도인들이 낯 뜨거운 질문조차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 자녀 세대가 미전도 종족처럼 내버려진 현대 과학 분야에 마음껏 뛰어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우리 자녀들은 노아의 홍수가 지구를 덮은 궁창 때문이라는 주장에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이들은 오히려 인간의 능력을 크게 앞지르며 발전하는 인공지능, 진화생물학에서의 새로운 발견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과신대가 차세대 교육에 보다 많은 에너지를 쓸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그리스도인들이 대화할 수 있는 그날까지...
글 | 최승주
생물학을 전공하고 높은뜻씨앗이되어교회에서 교사이자 권사로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학생들에게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과신대 이사와 감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