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의 시작
지난 2023년 2월 3일 과학과 신학의 대화(이하 과신대) 교사팀에서 지질답사를 실시하였다. 답사지의 위치는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한탄강이다. 과거 후삼국시대 태봉국을 세웠던 궁예왕이 왕건의 역성혁명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후 도망치다가 한탄을 한 곳이라고 해서 한탄강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답사는 총 일곱 군데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1) 재인폭포, 2) 아우라지 베개용암, 3) 좌상 바위 근처 한탄강 강가, 4) 전곡 선사 박물관, 5) 차탄천 주상절리, 6) 왕짐교 주상절리, 7) 임진강 주상절리로 다녀왔다. 이번 글에서는 한탄강의 지질환경 중에서 특이한 지질학적 특성이 보이는 두 가지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재인 폭포 - 뒤로 후퇴하는 폭포
폭포가 뒤로 후퇴한다. 무슨 이상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곳이 있다. 바로 한탄강의 재인 폭포이다. 재인폭포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54만 년 전에서 12만 년 사이에 형성된 이 지층은 과거 한탄강 일대에 용암의 분출이 일어난 이후에 형성되었다. 54만 년 전에 북한 평강지역에서 용암이 분출하였다. 규산질 성분이 적어 매우 매끄럽고 잘 흐르는 현무암질 용암이 오늘날 한탄강 일대를 총 3번 휩쓸고 난 후 시간이 지나 식게 되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 풍화와 침식 작용으로 깎이고 깎여 지금의 환경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곳에 한탄강을 향해 흐르는 폭포가 형성되었으니 이것이 재인폭포이다.
<재인폭포 전경(좌) / 재인폭포에서 한탄강으로 흐르는 방향 재인 폭포는 점점 한탄강에서 멀어지고 있다.(우)>
왜 한탄강에 있는 재인폭포는 시간이 지날수록 뒤로 후퇴할까? 그 해답은 바로 재인폭포가 형성된 과정에 있다. 과거에 한탄강을 휩쓴 용암은 시간이 지나 단단하게 굳어져 암석이되었는데 이 굳어진 암석이 시간이 지나 바람, 물 등 기타 요인으로 파괴됨에 따라 폭로를 이루는 전체 암석의 길이가 따라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 덕분에 폭포가 점점 뒤로 후퇴하게 되는 것이다. 한때는 재인폭포의 일부였지만 지금은 파괴된 암석들은 지금도 재인폭포 근처에 존재하고 있다.
재인폭포로 내려갈 수는 없었지만 필자가 가져간 쿨픽스 카메라로 촬영이 가능하였다. 재인폭포인근의암석지대를보면과거용암이흘렀던흔적이지금도남아있다. 암석지대최하단에는침식작용으로만들어진하식동굴이존재한다. 그위에는용암이굳어져서생성되는주상절리와수평절리가존재한다.
<재인폭포의 현무암(왼) /주상전리 전석(오)>
주상절리란용암이급격히식으면형성되는지질구조이다. 용암이식게되면겉부분부터단단해지며열을잃게된다. 시간이지나면서열을잃고 외부에서 내부로 단단하게굳어지는데, 그렇게용암의굳어진내부에는부피의변화및열의이동등의이유로인해서여러방향으로금이생기게된다.
이렇게여러위치에서여러방향으로형성된금은육각형형태로점차일정한형태를 띠게 되는 구조가바로주상절리이다. 즉, 한탄강의주상절리는용암이흐르고식었던흔적을보여주는것이다. 주상절리위에는땅과수평으로놓인수평절리가보이는현무암층이주상절리와경계를두고존재하고있다. 이는주상절리형성이후에용암이한번더흘러서새로운층을형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재인폭포에서 보이는 주상절리>
재인폭포의 주상절리에는 특별한 점이 보인다. 무등산이나 제주도에서 보이는 주상절리는 보통 똑바르게 서 있는 형태를 하고 있는 반면 재인폭포의 주상절리는여러 방향으로 휘어진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용암이 여러 번 흘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상절리가 되는 용암이 완전히 굳기 전에 위에서 새로운 용암이 흐르고 굳어져서 주상절리가 되는 용암을 위에서 누르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용암이 여러 방향으로 휘어지게 된 것이다. 용암이 휘어졌으니 주상절리 역시 휘어진 형태를 하는 것이다.
재인폭포에 이러한 경계가 총 2곳에 있다는 것은 용암이 3번 휩쓸었다는 것을 뜻한다. 맨 하부에는 용암이 기존에 흘렀던 한탄강 물에 닿아서 급격히 식어서 주상절리를 이루었고 그 상태로 그 위를 다른 용암이 두 번 덮쳐서 지금의 구조가 생긴 것이다. 이는 암석과 암석 사이에 경계가 있다는 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언뜻 보기엔 다 같은 현무암층 같지만, 사실 재인폭포에 있는 현무암층에는 경계가 있다. 이 경계를 토대로 재인폭포에 용암이 3번 덮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우라지 베개 용암- 과거에 흐르던 용암의 흔적
재인폭포를 지나 아우라지 베개용암이 있는 곳으로 가던 길에서 돌을 하나 주었다. 주운 돌은 현무암이다. 현무암은 용암, 그중에서 끈적하지 않고 매끄러운 용암이 굳어지면서 만들어진 암석이다. 그런데 그 내부에 무언가 있었다. 광물의 일종인 이것은 감람석이다. 한탄강에서 발견되는 암석을 이루는 대부분의 광물은 대부분 크기가 작기 때문에 맨눈으로는 관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감람석은 크기가 커서 맨눈으로 관측이 가능하다.
<현무암에서 보이는 감람석>
아우라지 베개용암이 있는 곳은 한탄강이 흐르는 지반의 기반이 되는 변성암이 노출되어 있었고 그 위에 베개용암, 그리고 주상절리가 분포하여 있었다. 한탄강의 기반암은 선캄브리아 시대, 그러니까 대략 20억 년 전에서 7억 년 전 사이에 만들어진 지층이다. 그리고 그 위에는 3억 5천만 년 전에 만들어진 미산층이라고 명명된 변성암층이 있다. 베개용암은 바로 그 위에 쌓여 있다. 이렇게 바로 아래 지층과 그 위의 지층의 연대에 차이가 있다면 부정합이라고 한다.
<아우라지 베개용암이 관측되는 곳의 층 순서>
<아우라지 베개용암의 주상절리>
아우라지 베개용암은 말 그대로 베개처럼 생긴 용암이 굳어져서 생긴 암석이다. 암석이 어떻게 베개처럼 생긴 것일까? 베개용암은 물에 닿아 급격하게 식어서 만들어졌다. 과거 한탄강에 용암이 흐르던 시절에 1,000도 이상의 용암이 물에 닿아 급격히 식어서 겉 부분부터 굳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식은 부분은 겉 부분뿐이다. 내부는 아직 뜨거운 용암이 존재하고 있다. 이 뜨거운 내부와 차가운 겉 부분의 온도 차이로 인해서 겉 부분에 조금씩 금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금의 틈새로 용암이 새어 나오게 되었다. 세어 나온 용암은 또 물에 닿아 급격하게 식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두 번째 과정, 그러니까 겉 부분에 금이 가면서 다시 용암이 새어 나오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용암은 점점 둥근 형태로 굳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베개용암이다. 주상절리와 차이점이 있다면 베개용암은 물에 닿아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개용암은 과거 용암이 한탄강을 휩쓸 때 강의 높이를 유추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기도 한다.
<베개용암의 모습(영어로 fillow Lava 라고 불린다)>
<아우라지 베개용암의 절경>
아우라지 베개용암과 강 주변의 주상절리는 한탄강의 한쪽과 강 건너편에 존재하고 있다. 이는 한탄강의 과거 변천사가 어떠하였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과거 수억 년 전 변성암이 기반암을 이루고 있는 곳에 본래 한탄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54만 년 전 즈음에 북한 지역에서 흐르던 용암이 한탄강을 덮치게 되었다. 이 용암은 한탄강을 메우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용암이 굳고 풍화와 침식작용이 일어나게 되면서 파손이 되기 시작하였다. 굳어진 용암이 파손되면서 다시 강이 흐를 수 있는 지형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지형에 오늘날 한탄강이 흐르고 있다. 강 한쪽과 반대쪽의 용암이 굳어져서 만들어진 주상절리 및 베개용암이 바로 그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문원 교수님께서 간단하게 그리신 한탄강의 변천사.
상: 선캄브리아 시대, 고생대, 중생대 시기의 암석 위를 옛날 한탄강이 흐르고 있었다.
중 :용암이 흘러와서 옛날 한탄강을 가득 메웠다.
하 :용암이 굳고 본래 한탄강이 있던 부분이 상당수 깎여 나가면서 다시 현대의 한탄강이 흘렀다. >
우리의 터전, 하나님의 창조세계
한탄강 지질답사는 우리가 항상 눈으로 보면서도 그냥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땅에 숨어있는 비밀을 알아내는 즐거움을 주었다. 이렇게 땅, 그리고 지질환경을 통해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 유추해내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지질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즐거움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욱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글 | 이수빈 화석 연구원, 저술가 현재 과신대 교사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
탐방의 시작
지난 2023년 2월 3일 과학과 신학의 대화(이하 과신대) 교사팀에서 지질답사를 실시하였다. 답사지의 위치는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한탄강이다. 과거 후삼국시대 태봉국을 세웠던 궁예왕이 왕건의 역성혁명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후 도망치다가 한탄을 한 곳이라고 해서 한탄강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답사는 총 일곱 군데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1) 재인폭포, 2) 아우라지 베개용암, 3) 좌상 바위 근처 한탄강 강가, 4) 전곡 선사 박물관, 5) 차탄천 주상절리, 6) 왕짐교 주상절리, 7) 임진강 주상절리로 다녀왔다. 이번 글에서는 한탄강의 지질환경 중에서 특이한 지질학적 특성이 보이는 두 가지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재인 폭포 - 뒤로 후퇴하는 폭포
폭포가 뒤로 후퇴한다. 무슨 이상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곳이 있다. 바로 한탄강의 재인 폭포이다. 재인폭포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54만 년 전에서 12만 년 사이에 형성된 이 지층은 과거 한탄강 일대에 용암의 분출이 일어난 이후에 형성되었다. 54만 년 전에 북한 평강지역에서 용암이 분출하였다. 규산질 성분이 적어 매우 매끄럽고 잘 흐르는 현무암질 용암이 오늘날 한탄강 일대를 총 3번 휩쓸고 난 후 시간이 지나 식게 되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 풍화와 침식 작용으로 깎이고 깎여 지금의 환경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곳에 한탄강을 향해 흐르는 폭포가 형성되었으니 이것이 재인폭포이다.
<재인폭포 전경(좌) / 재인폭포에서 한탄강으로 흐르는 방향 재인 폭포는 점점 한탄강에서 멀어지고 있다.(우)>
왜 한탄강에 있는 재인폭포는 시간이 지날수록 뒤로 후퇴할까? 그 해답은 바로 재인폭포가 형성된 과정에 있다. 과거에 한탄강을 휩쓴 용암은 시간이 지나 단단하게 굳어져 암석이되었는데 이 굳어진 암석이 시간이 지나 바람, 물 등 기타 요인으로 파괴됨에 따라 폭로를 이루는 전체 암석의 길이가 따라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 덕분에 폭포가 점점 뒤로 후퇴하게 되는 것이다. 한때는 재인폭포의 일부였지만 지금은 파괴된 암석들은 지금도 재인폭포 근처에 존재하고 있다.
재인폭포로 내려갈 수는 없었지만 필자가 가져간 쿨픽스 카메라로 촬영이 가능하였다. 재인폭포인근의암석지대를보면과거용암이흘렀던흔적이지금도남아있다. 암석지대최하단에는침식작용으로만들어진하식동굴이존재한다. 그위에는용암이굳어져서생성되는주상절리와수평절리가존재한다.
<재인폭포의 현무암(왼) /주상전리 전석(오)>
주상절리란용암이급격히식으면형성되는지질구조이다. 용암이식게되면겉부분부터단단해지며열을잃게된다. 시간이지나면서열을잃고 외부에서 내부로 단단하게굳어지는데, 그렇게용암의굳어진내부에는부피의변화및열의이동등의이유로인해서여러방향으로금이생기게된다.
이렇게여러위치에서여러방향으로형성된금은육각형형태로점차일정한형태를 띠게 되는 구조가바로주상절리이다. 즉, 한탄강의주상절리는용암이흐르고식었던흔적을보여주는것이다. 주상절리위에는땅과수평으로놓인수평절리가보이는현무암층이주상절리와경계를두고존재하고있다. 이는주상절리형성이후에용암이한번더흘러서새로운층을형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재인폭포에서 보이는 주상절리>
재인폭포의 주상절리에는 특별한 점이 보인다. 무등산이나 제주도에서 보이는 주상절리는 보통 똑바르게 서 있는 형태를 하고 있는 반면 재인폭포의 주상절리는여러 방향으로 휘어진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용암이 여러 번 흘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상절리가 되는 용암이 완전히 굳기 전에 위에서 새로운 용암이 흐르고 굳어져서 주상절리가 되는 용암을 위에서 누르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용암이 여러 방향으로 휘어지게 된 것이다. 용암이 휘어졌으니 주상절리 역시 휘어진 형태를 하는 것이다.
재인폭포에 이러한 경계가 총 2곳에 있다는 것은 용암이 3번 휩쓸었다는 것을 뜻한다. 맨 하부에는 용암이 기존에 흘렀던 한탄강 물에 닿아서 급격히 식어서 주상절리를 이루었고 그 상태로 그 위를 다른 용암이 두 번 덮쳐서 지금의 구조가 생긴 것이다. 이는 암석과 암석 사이에 경계가 있다는 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언뜻 보기엔 다 같은 현무암층 같지만, 사실 재인폭포에 있는 현무암층에는 경계가 있다. 이 경계를 토대로 재인폭포에 용암이 3번 덮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우라지 베개 용암- 과거에 흐르던 용암의 흔적
재인폭포를 지나 아우라지 베개용암이 있는 곳으로 가던 길에서 돌을 하나 주었다. 주운 돌은 현무암이다. 현무암은 용암, 그중에서 끈적하지 않고 매끄러운 용암이 굳어지면서 만들어진 암석이다. 그런데 그 내부에 무언가 있었다. 광물의 일종인 이것은 감람석이다. 한탄강에서 발견되는 암석을 이루는 대부분의 광물은 대부분 크기가 작기 때문에 맨눈으로는 관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감람석은 크기가 커서 맨눈으로 관측이 가능하다.
<현무암에서 보이는 감람석>
아우라지 베개용암이 있는 곳은 한탄강이 흐르는 지반의 기반이 되는 변성암이 노출되어 있었고 그 위에 베개용암, 그리고 주상절리가 분포하여 있었다. 한탄강의 기반암은 선캄브리아 시대, 그러니까 대략 20억 년 전에서 7억 년 전 사이에 만들어진 지층이다. 그리고 그 위에는 3억 5천만 년 전에 만들어진 미산층이라고 명명된 변성암층이 있다. 베개용암은 바로 그 위에 쌓여 있다. 이렇게 바로 아래 지층과 그 위의 지층의 연대에 차이가 있다면 부정합이라고 한다.
<아우라지 베개용암이 관측되는 곳의 층 순서>
<아우라지 베개용암의 주상절리>
아우라지 베개용암은 말 그대로 베개처럼 생긴 용암이 굳어져서 생긴 암석이다. 암석이 어떻게 베개처럼 생긴 것일까? 베개용암은 물에 닿아 급격하게 식어서 만들어졌다. 과거 한탄강에 용암이 흐르던 시절에 1,000도 이상의 용암이 물에 닿아 급격히 식어서 겉 부분부터 굳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식은 부분은 겉 부분뿐이다. 내부는 아직 뜨거운 용암이 존재하고 있다. 이 뜨거운 내부와 차가운 겉 부분의 온도 차이로 인해서 겉 부분에 조금씩 금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금의 틈새로 용암이 새어 나오게 되었다. 세어 나온 용암은 또 물에 닿아 급격하게 식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두 번째 과정, 그러니까 겉 부분에 금이 가면서 다시 용암이 새어 나오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용암은 점점 둥근 형태로 굳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베개용암이다. 주상절리와 차이점이 있다면 베개용암은 물에 닿아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개용암은 과거 용암이 한탄강을 휩쓸 때 강의 높이를 유추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기도 한다.
<베개용암의 모습(영어로 fillow Lava 라고 불린다)>
<아우라지 베개용암의 절경>
아우라지 베개용암과 강 주변의 주상절리는 한탄강의 한쪽과 강 건너편에 존재하고 있다. 이는 한탄강의 과거 변천사가 어떠하였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과거 수억 년 전 변성암이 기반암을 이루고 있는 곳에 본래 한탄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54만 년 전 즈음에 북한 지역에서 흐르던 용암이 한탄강을 덮치게 되었다. 이 용암은 한탄강을 메우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용암이 굳고 풍화와 침식작용이 일어나게 되면서 파손이 되기 시작하였다. 굳어진 용암이 파손되면서 다시 강이 흐를 수 있는 지형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지형에 오늘날 한탄강이 흐르고 있다. 강 한쪽과 반대쪽의 용암이 굳어져서 만들어진 주상절리 및 베개용암이 바로 그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문원 교수님께서 간단하게 그리신 한탄강의 변천사.
상: 선캄브리아 시대, 고생대, 중생대 시기의 암석 위를 옛날 한탄강이 흐르고 있었다.
중 :용암이 흘러와서 옛날 한탄강을 가득 메웠다.
하 :용암이 굳고 본래 한탄강이 있던 부분이 상당수 깎여 나가면서 다시 현대의 한탄강이 흘렀다. >
우리의 터전, 하나님의 창조세계
한탄강 지질답사는 우리가 항상 눈으로 보면서도 그냥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땅에 숨어있는 비밀을 알아내는 즐거움을 주었다. 이렇게 땅, 그리고 지질환경을 통해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 유추해내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지질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즐거움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욱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글 | 이수빈
화석 연구원, 저술가 현재 과신대 교사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