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삶의 방향성과 생각이 이전과 달라짐을 삶의 기쁨으로 안고 살았습니다.
그러한 신앙 생활속에 교회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어느덧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 들과 나눠야 할 것 들이 늘기 시작하고 그것이 믿음 있는 사람, 진정한 신자를 교육받아지고 판단 받아지는 기준에 갇히게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잘 믿는다는 것에서....나는 정말 성경을 잘 읽고 있는가 란 질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주일 일방적인 설교 앞에 좋은 성도로 살아야 한다. 목사는 잘 전달하지 못하더라도 성도가 믿음으로 잘 받으면 되고, 분명 목사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데도 저렇게 과학적 지식을 인문학적 지식을 다 안다는 식으로 얘기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성경은 정말 저러한 많은 권한을 어쩌면 필부에 불과한 한 사람인 목회자에게 다 부여해 준 것인가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안다는 것이 성경이 읽는다는 것이 어디에 갇혀 버린가에 생각에 자연스레 평신도는 신학을 알면 안되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를 찾아 그동안 탐방한 대부분의 교회의 목회자들은 신학을 평신도가 알면 잘못된 해석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과 목회자의 영역을 넘어 있으면 안되다는 뉘앙스의 말들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 600년이 지났지만 마치 중세시대의 사제와 같은 목회자들은 그들의 비전문적인 부분인 과학 이학부분까지 마치 신의 능력으로(?) 지구역사를 5천년으로 우주의 기원마저 줄이고 맞다고 주장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닌 만용을 부려도 "아멘" 이라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얼거리기 조차도 얘기하고 싶어도 지식의 무기가 없어 입으로 제대로 반박할 수 없는 나에게 입을 조금이라도 열어 말을 시작 할 수 있게 도와 준 강의가 이번 강의 일지 모릅니다.
창조설, 진화론, 구속신앙, 창조신앙.... 어쩌면 그런거 몰라도 신앙생활만 잘하면 된다는 교회교육에 물들어 무지성이 된 평신도들이 어쩌면 지금의 가장 전문적이지 않은 집단에서 가장 전문적인 영역으로 거짓을 꽤하는 도전을 방임하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아직 3강이 지나가지만, 이러한 강의가 오히려 잘 정비되 저와 같은 평범한 평신도들에게 전달되고 전 달되서 교회안에서 또는 교회 밖에서 건강한 필터 역할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강의 적극 추천 하고 싶습니다.
원래 무지가 들어올 때는 경계선을 모호하다고 그리고 다 같은 범주 인냥 뭉개고 들어올 때 인 거 같습니다.
은혜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삶의 방향성과 생각이 이전과 달라짐을 삶의 기쁨으로 안고 살았습니다.
그러한 신앙 생활속에 교회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어느덧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 들과 나눠야 할 것 들이 늘기 시작하고 그것이 믿음 있는 사람, 진정한 신자를 교육받아지고 판단 받아지는 기준에 갇히게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잘 믿는다는 것에서....나는 정말 성경을 잘 읽고 있는가 란 질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주일 일방적인 설교 앞에 좋은 성도로 살아야 한다. 목사는 잘 전달하지 못하더라도 성도가 믿음으로 잘 받으면 되고, 분명 목사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데도 저렇게 과학적 지식을 인문학적 지식을 다 안다는 식으로 얘기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성경은 정말 저러한 많은 권한을 어쩌면 필부에 불과한 한 사람인 목회자에게 다 부여해 준 것인가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안다는 것이 성경이 읽는다는 것이 어디에 갇혀 버린가에 생각에 자연스레 평신도는 신학을 알면 안되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를 찾아 그동안 탐방한 대부분의 교회의 목회자들은 신학을 평신도가 알면 잘못된 해석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과 목회자의 영역을 넘어 있으면 안되다는 뉘앙스의 말들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 600년이 지났지만 마치 중세시대의 사제와 같은 목회자들은 그들의 비전문적인 부분인 과학 이학부분까지 마치 신의 능력으로(?) 지구역사를 5천년으로 우주의 기원마저 줄이고 맞다고 주장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닌 만용을 부려도 "아멘" 이라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얼거리기 조차도 얘기하고 싶어도 지식의 무기가 없어 입으로 제대로 반박할 수 없는 나에게 입을 조금이라도 열어 말을 시작 할 수 있게 도와 준 강의가 이번 강의 일지 모릅니다.
창조설, 진화론, 구속신앙, 창조신앙.... 어쩌면 그런거 몰라도 신앙생활만 잘하면 된다는 교회교육에 물들어 무지성이 된 평신도들이 어쩌면 지금의 가장 전문적이지 않은 집단에서 가장 전문적인 영역으로 거짓을 꽤하는 도전을 방임하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아직 3강이 지나가지만, 이러한 강의가 오히려 잘 정비되 저와 같은 평범한 평신도들에게 전달되고 전 달되서 교회안에서 또는 교회 밖에서 건강한 필터 역할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강의 적극 추천 하고 싶습니다.
원래 무지가 들어올 때는 경계선을 모호하다고 그리고 다 같은 범주 인냥 뭉개고 들어올 때 인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