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과정 수강 후기
핵심과정 신학 강의를 들으며
글ㅣ김기원
“안녕하세요, 지난 기초과정 수강 이후에 핵심과정(신학)까지 수강까지 마치고 이렇게 후기를 남길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수준 높고 밀도 있는 강의를 제공해주신 과신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 글이 다소 두서없고 투박하지만, 지난 배움 속에서 느낀 감동과 깨달음을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이번 핵심과정(신학) 강의를 들으며, 창조 신앙이 단순히 세상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이야기(Narrative)”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점은 과학과 신학을 서로 대립하는 적대적인 관계로 보지 않고,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대화를 주고받는 자리를 함께 세워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창세기를 과학 교과서처럼 다루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신앙의 언어로 읽도록 이끌어 준 점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창조설과 창조론을 구분하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일 뿐 아니라 지금도 세상을 돌보시고 새롭게 하시는 분이라는 “계속되는 창조”의 시각을 배우게 된 것도 큰 은혜였다. 또한 동물신학과 생태신학을 통해 창조 신앙이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 생명을 향한 고백과 은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 Unsplash의 Sergey Semukhin
강의 가운데 특별히 깊이 생각하게 된 부분은 창세기 1–2장을 “기능과 소명”의 관점에서 읽는 시도였다. 창세기는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기록이 아니라, 세상과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명을 맡았는지를 선포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로버트 러셀의 “창조적 상호작용(CMI)” 방법론 역시 인상 깊었다. 과학과 신학이 서로를 검증하거나 보조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신학과 과학의 대화가 신앙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지평을 넓혀주고 더욱 풍성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동물신학과 생태신학을 통해 창조 신앙이 인간 중심적 사고를 넘어 모든 피조 생명과 맺는 관계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물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존재하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능동적 주체이며 생태계의 동역자라는 관점은 기존의 이해를 새롭게 흔들었다. 생태는 창조 보존으로서 환경 운동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적 실천임을 깨달아 알게 되었고, 일상의 작은 순간마다 창조 신앙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해 길을 밝혀 주었다. 무엇보다 성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라는 선언을 통해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질서 안에 있음을 증언한다.
이 지점에서 한 과학자의 통찰이 신학적 사유와 맞닿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주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고전이 된 그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동물과 식물이 각각 서로 내뿜는 것을 다시 들이마시는 과정이야말로 놀라운 협력이며, 지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거대한 호흡과 같다고 말한다.1) 그의 말처럼 피조 세계는 거대한 협력의 구조 속에서 서로에게 생명을 주고받는다. 또한 그는 생물학과 역사학의 교훈이 공통적으로 타자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한다고 덧붙였다.2) 이는 신학이 강조해온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 이해와도 통한다. 더 나아가 신화적 상상력을 지녔던 고대인들이 알고 있었듯이 인간은 대지의 자녀이자 하늘의 자녀라는 세이건의 말은 인간이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아 땅과 하늘을 이어 사는 존재라는 성경적 선포와도 겹친다.3)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그의 고백은 “우리의 DNA를 이루는 질소,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의 주요 성분인 철, 애플파이에 들어 있는 탄소 등의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조리 별의 내부에서 합성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들이다(We are made of star stuff)”라는 말이다.4) 이 말처럼 우리 인간은 단순히 땅의 흙으로만 빚어진 존재가 아니라(창 2:7), 우주적 차원에서 별의 자녀이기도 하다(창 1:16). 우리가 우주에서 나왔고, 우주를 변화시키고자 태어난 존재라는 그의 통찰은 “계속되는 창조” 신앙이 지닌 우주적 비전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과학적 성찰과 신학적 사유가 서로를 비추며 만날 때, 창조 신앙은 더 이상 협소한 교리의 틀에 갇히지 않고 인간과 피조 세계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넓은 섭리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사진: Unsplash의 Ravi Pinisetti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질문도 많이 생겼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익숙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성경의 장르와 고대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더 나아가 기후 위기와 생태 재앙이 점점 심화되는 이 시대에 창조 신앙은 어떤 실천적 언어로 증언되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도 생겼다. 단순히 개인의 환경 윤리를 넘어 교회 공동체 전체가 창조 보전을 위한 책임 있는 선택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동물도 구원의 지평 안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면 교회의 책임은 어디까지 확장되어야 하는지, AI 시대에 하나님의 형상 개념을 어떻게 새롭게 표현해야 할지 인간 고유성의 신학적 의미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도 여전히 큰 물음으로 남아 있다.
돌아보면, 그동안 창조 신앙을 과거의 논쟁 속에만 묶어 두었던 탓에 신앙의 힘이 오늘의 삶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 강의는 기후 위기와 기술 윤리, 인간의 존엄, 동물 권리, 생태 정의와 같은 오늘의 문제 앞에서 창조 신앙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내고 증언해야 하는 소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무엇보다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들에 억지로 답을 내놓으려 하기보다, 열린 마음으로 묻고 또 물으며 나아가야 한다는 겸손함을 배우게 되었다.
결국 창조를 믿는다는 것은 과거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일이 아니라, 지금도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태초에만 계셨던 분이 아니라, 지금도 혼돈을 질서로, 단절을 화해로, 파괴를 돌봄으로 바꾸시는 분이시다. 나 또한 이 계속되는 창조의 역사에 작은 협력자로 참여하고 싶다. 나의 공부와 실천, 사역과 섬김이 그 협력의 자리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날 한국 교회 역시 더 깊고 더 넓은 창조 신앙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사진: Unsplash의 Courtney Cook
칼 세이건은 말했다.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나왔고 코스모스를 알고자, 더불어 코스모스를 변화시키고자 태어난 존재”라고.5) 별의 자녀로 부름 받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는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처럼 살아가야 한다. 창조 신앙은 이 우주적 부름 앞에서 우리를 겸손히 세우고, 지금도 숨 쉬는 모든 생명과 더불어 하나님의 계속되는 창조에 동참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신앙적 체험을 넘어, 인류 전체가 함께 걸어가야 할 보편적 소명이다. 우리는 창조 신앙 안에서 더 이상 분열과 대립이 아니라, 화해와 연합의 길을 선택해야 하고, 그 길 위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우리를 향해 손 내미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들며, 온갖 혐오와 욕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상처 입은 우리 모두가 창조 신앙의 본질을 새롭게 깨닫고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혼돈과 분열과 폭력이 아니라, 질서와 조화와 사랑으로 하나 되어 연합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___________
1) 칼 세이건/홍승수 옮김, 『코스모스』 (서울: 사이언스북스, 2006), 87.
2) 앞의 책, 103.
3) 앞의 책, 632.
4) 앞의 책, 458.
5) 피타고라스가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진 코스모스Cosmos라는 말은 ‘혼돈(Chaos)’의 반대말로 ‘질서’를 뜻한다. 고대 사람들은 신화적 상상력을 통하여 우주가 무질서가 아니라 조화와 균형 속에 유지된다고 믿었다. 앞의 책, 61.
핵심과정 수강 후기
핵심과정 신학 강의를 들으며
글ㅣ김기원
“안녕하세요, 지난 기초과정 수강 이후에 핵심과정(신학)까지 수강까지 마치고 이렇게 후기를 남길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수준 높고 밀도 있는 강의를 제공해주신 과신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 글이 다소 두서없고 투박하지만, 지난 배움 속에서 느낀 감동과 깨달음을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이번 핵심과정(신학) 강의를 들으며, 창조 신앙이 단순히 세상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이야기(Narrative)”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점은 과학과 신학을 서로 대립하는 적대적인 관계로 보지 않고,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대화를 주고받는 자리를 함께 세워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창세기를 과학 교과서처럼 다루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신앙의 언어로 읽도록 이끌어 준 점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창조설과 창조론을 구분하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일 뿐 아니라 지금도 세상을 돌보시고 새롭게 하시는 분이라는 “계속되는 창조”의 시각을 배우게 된 것도 큰 은혜였다. 또한 동물신학과 생태신학을 통해 창조 신앙이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 생명을 향한 고백과 은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 Unsplash의 Sergey Semukhin
강의 가운데 특별히 깊이 생각하게 된 부분은 창세기 1–2장을 “기능과 소명”의 관점에서 읽는 시도였다. 창세기는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기록이 아니라, 세상과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명을 맡았는지를 선포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로버트 러셀의 “창조적 상호작용(CMI)” 방법론 역시 인상 깊었다. 과학과 신학이 서로를 검증하거나 보조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신학과 과학의 대화가 신앙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지평을 넓혀주고 더욱 풍성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동물신학과 생태신학을 통해 창조 신앙이 인간 중심적 사고를 넘어 모든 피조 생명과 맺는 관계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물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존재하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능동적 주체이며 생태계의 동역자라는 관점은 기존의 이해를 새롭게 흔들었다. 생태는 창조 보존으로서 환경 운동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적 실천임을 깨달아 알게 되었고, 일상의 작은 순간마다 창조 신앙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해 길을 밝혀 주었다. 무엇보다 성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라는 선언을 통해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질서 안에 있음을 증언한다.
이 지점에서 한 과학자의 통찰이 신학적 사유와 맞닿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주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고전이 된 그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동물과 식물이 각각 서로 내뿜는 것을 다시 들이마시는 과정이야말로 놀라운 협력이며, 지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거대한 호흡과 같다고 말한다.1) 그의 말처럼 피조 세계는 거대한 협력의 구조 속에서 서로에게 생명을 주고받는다. 또한 그는 생물학과 역사학의 교훈이 공통적으로 타자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한다고 덧붙였다.2) 이는 신학이 강조해온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 이해와도 통한다. 더 나아가 신화적 상상력을 지녔던 고대인들이 알고 있었듯이 인간은 대지의 자녀이자 하늘의 자녀라는 세이건의 말은 인간이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아 땅과 하늘을 이어 사는 존재라는 성경적 선포와도 겹친다.3)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그의 고백은 “우리의 DNA를 이루는 질소,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의 주요 성분인 철, 애플파이에 들어 있는 탄소 등의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조리 별의 내부에서 합성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들이다(We are made of star stuff)”라는 말이다.4) 이 말처럼 우리 인간은 단순히 땅의 흙으로만 빚어진 존재가 아니라(창 2:7), 우주적 차원에서 별의 자녀이기도 하다(창 1:16). 우리가 우주에서 나왔고, 우주를 변화시키고자 태어난 존재라는 그의 통찰은 “계속되는 창조” 신앙이 지닌 우주적 비전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과학적 성찰과 신학적 사유가 서로를 비추며 만날 때, 창조 신앙은 더 이상 협소한 교리의 틀에 갇히지 않고 인간과 피조 세계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넓은 섭리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사진: Unsplash의 Ravi Pinisetti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질문도 많이 생겼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익숙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성경의 장르와 고대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더 나아가 기후 위기와 생태 재앙이 점점 심화되는 이 시대에 창조 신앙은 어떤 실천적 언어로 증언되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도 생겼다. 단순히 개인의 환경 윤리를 넘어 교회 공동체 전체가 창조 보전을 위한 책임 있는 선택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동물도 구원의 지평 안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면 교회의 책임은 어디까지 확장되어야 하는지, AI 시대에 하나님의 형상 개념을 어떻게 새롭게 표현해야 할지 인간 고유성의 신학적 의미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도 여전히 큰 물음으로 남아 있다.
돌아보면, 그동안 창조 신앙을 과거의 논쟁 속에만 묶어 두었던 탓에 신앙의 힘이 오늘의 삶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 강의는 기후 위기와 기술 윤리, 인간의 존엄, 동물 권리, 생태 정의와 같은 오늘의 문제 앞에서 창조 신앙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내고 증언해야 하는 소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무엇보다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들에 억지로 답을 내놓으려 하기보다, 열린 마음으로 묻고 또 물으며 나아가야 한다는 겸손함을 배우게 되었다.
결국 창조를 믿는다는 것은 과거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일이 아니라, 지금도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태초에만 계셨던 분이 아니라, 지금도 혼돈을 질서로, 단절을 화해로, 파괴를 돌봄으로 바꾸시는 분이시다. 나 또한 이 계속되는 창조의 역사에 작은 협력자로 참여하고 싶다. 나의 공부와 실천, 사역과 섬김이 그 협력의 자리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날 한국 교회 역시 더 깊고 더 넓은 창조 신앙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사진: Unsplash의 Courtney Cook
칼 세이건은 말했다.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나왔고 코스모스를 알고자, 더불어 코스모스를 변화시키고자 태어난 존재”라고.5) 별의 자녀로 부름 받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는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처럼 살아가야 한다. 창조 신앙은 이 우주적 부름 앞에서 우리를 겸손히 세우고, 지금도 숨 쉬는 모든 생명과 더불어 하나님의 계속되는 창조에 동참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신앙적 체험을 넘어, 인류 전체가 함께 걸어가야 할 보편적 소명이다. 우리는 창조 신앙 안에서 더 이상 분열과 대립이 아니라, 화해와 연합의 길을 선택해야 하고, 그 길 위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우리를 향해 손 내미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들며, 온갖 혐오와 욕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상처 입은 우리 모두가 창조 신앙의 본질을 새롭게 깨닫고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혼돈과 분열과 폭력이 아니라, 질서와 조화와 사랑으로 하나 되어 연합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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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 세이건/홍승수 옮김, 『코스모스』 (서울: 사이언스북스, 2006), 87.
2) 앞의 책, 103.
3) 앞의 책, 632.
4) 앞의 책, 458.
5) 피타고라스가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진 코스모스Cosmos라는 말은 ‘혼돈(Chaos)’의 반대말로 ‘질서’를 뜻한다. 고대 사람들은 신화적 상상력을 통하여 우주가 무질서가 아니라 조화와 균형 속에 유지된다고 믿었다. 앞의 책,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