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사람들
정훈재 이사
Q. 안녕하세요, 이사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과신대 활동 외에도 평소 어떤 일과 관심사로 살아가고 계신지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훈재라고 하고, 과신대에 이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국내 제조기업에서 현재 해외 기술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본래 재료공학 전공으로 미국에서 2004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이어 박사 후 과정을 마친 후에 2006년 한국의 기업에 연구원으로 입사하여 10년 정도 연구개발 업무를 했습니다. 2016년 경부터는 사업 기획 관련 업무를 해오다가 최근에는 마케팅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통해 넓게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로 살아왔었는데, 연구 개발을 거쳐 사업기획에서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지난 여정은 그러한 재미를 업무에서도 느끼게 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유학 초기인 2000년에 하나님을 제대로 만난 경험이 바탕이 되어, 그 이후 기독교 신앙이 제 삶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의 가장 큰 관심사는 새롭게 제 삶의 일부가 된 신앙과 기존에서부터 이어져 오던 삶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되는가였습니다. 낭비가 없으신 하나님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할지라고나 할까요.
특히, 박사 과정에서 제가 얻은 것들과 제가 기여한 것들이 기독교 신앙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자연스럽게 ‘과학과 신앙’이 제일 먼저 고민하게 된 주제였습니다. 이는 곧 ‘일과 신앙’, ‘직업과 신앙’ 등의 주제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과신대는 초창기부터 참여하게 되었고 일터 사역도 다니던 교회의 사역 팀에서 활발히 활동했었습니다. 최근에는 출장 등 업무가 많아지는 등의 이유로 모든 사역은 내려놓은 상태입니다.
기독교 신앙 외에 관심사라고 하면, 인공지능이겠습니다. 업무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으니까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일상을, 또한 우리의 미래를 과연 어떻게 바꿔 나가게 될까요. 이러한 변화를 기독교 신앙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최근 업무로 많이 바빠지다 보니, 그렇게 깊이 들여다보지 못해서 늘 안타깝습니다.
Q. 과신대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과신대 활동을 오랫동안 이어오고 계신데요, 처음 과신대를 알게 된 계기와 그 당시 어떤 점에 이끌렸는지 궁금합니다.
2009년도에 우종학 교수님의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초판을 읽게 되었고, 그 책에서 제시하는 방향이 제가 가지고 있던 과학과 신앙에 대한 관점과 결국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한테는 큰 의미가 있었던 책이었죠. 2014년에 개정판이 나왔을 때, 페이스북에서 접하게 된 그 책에 대한 다양한 반발은 제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비판과 반론은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지만, 감정 섞인 반발은 놀랍기까지 하더군요. 이런 모습으로 남아 있어선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5년 말 무렵에 '창조론자들'이라는 책을 새물결플러스에서 출간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저도 그 프로젝트에 선구매 펀딩으로 참여했었습니다. 당시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모였던 서울남부 북클럽에도 참여했었고요. 그렇게 다양한 분들과 교류하면서 과신대는 자연스레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과학과 신앙에 대한 관점이 일치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우리의 삶에는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큰 관점이 비슷하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빠르게 변화해 가는 세상 가운데에서 교조적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본질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점점 중요해지는 시점입니다. 그 논의의 든든한 기초는 결국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합니다.
Q. 이사로 참여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나 역할에 대한 생각이 있으신가요? 이사로서 과신대 안에서 어떤 활동에 기여하고 싶으신지, 혹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방향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사실 제가 그렇게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업무적으로 많이 바쁜지라 물리적인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게 많이 큽니다. 과신대가 추구하는 신앙의 모습이 가지는 의미가 개인적으로 무척 큽니다. 한국 교회의 현실을 돌아볼 때, 과신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거라 생각됩니다. 어떻게 외연을 확대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은 저도 하게 되는데, 제가 드릴만한 아이디어가 없어서 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분당판교 북클럽을 오랫동안 이끌고 계신데요, 북클럽 활동을 통해 얻는 보람이나 의미는 무엇인가요? 또 꾸준한 모임을 유지해 오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함께 나눠주세요.
분당판교북클럽이 분립한 게 2018년인가 그렇더군요. 벌써 7년이 다 되었습니다. 북클럽이 가지는 일반적인 장점들은 다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평소라면 모르고 있었을 책을 읽게 되는 점과 함께 하는 분들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점 등을 통해 성장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모임 때마다 늘 감사하게 됩니다.
분당판교북클럽은 모두 과신대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기에 추구하는 신앙의 방향도 기존의 교회보다는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각자의 신앙의 방향이 일치한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겠습니다. 오직 일치하는 바는 변화와 불확실성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성경 앞에 기존의 사고를 먼저 들이밀지 않으려 한다는 자세 이겠습니다. 나눔의 과정 그 자체로 더욱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는 요소라고 여겨집니다.
요새는 다소 고인물 느낌이 들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하는 참입니다. 책 선정의 외연을 넓힌다던가, 외부 오픈의 기회를 더 늘린다던가 하는 점입니다.

Q. 북클럽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과신대에서 더 시도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활동이나 프로젝트가 있으실까요? 또, 개인적으로 직접 기획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분당판교북클럽이 7년을 이어오긴 했지만, 외연을 확장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과신대의 과제는 보다 더 많은 접점을 찾아서 외연을 확장하면서 과신대의 메시지가 기독교 전반에 넓게 스며들어가게 하는 것일 텐데, 그런 방향으로는 아직 아이디어가 잘은 없습니다. 아래 질문에 이어서 가야겠네요.
Q. 과신대 콘텐츠나 활동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특히 청년 세대나 과신대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눠주세요.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면, 사람들이 그 콘텐츠가 자신에 대해 의미가 있다고 느껴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을 챙기며 살기에도 너무 바쁘고 힘든 세상입니다. 현실 기독교는 그 힘듦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방향을 중심으로 포지셔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위로와 격려가 아니라, 논란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이다 보니, 관심을 받기 어려운 게 도리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한강 작가의 문학세계와 온라인에 범람하는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소설)의 차이는 명확합니다. 우리가 믿던 바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냉혹하고 잔인한 세계의 본질을 드러내면서 인간의 유대를 얘기하는 문학과, 독자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면서 선입관을 도리어 강화하는 문학의 길은 결국 다를 겁니다. 많이 다가가지 못한다 해서, 한강의 문학이 의미가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많이 다가간다 해서 더 가치가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좀 불편할지라도 '자신에 대한 이야기', '자신에게 필요한 이야기', 또는 '자신의 결핍을 공감하게 하는 이야기'로 과신대 콘텐츠가 느껴지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마케팅 언어로는 잠재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는 얘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Q. 과신대의 ‘과학과 신학의 대화’가 이사님께는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활동 속에서 느끼신 과신대만의 고유한 가치나, 개인적으로 얻은 통찰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이제 와서 보니, 조금은 독특했던 제 '과학과 신앙'에 대한 관점을 나눌 수 있었던 장이었습니다. 제가 혼자였다면 알지 못했을 더 넓은 논의와 더 깊은 통찰을 알게 해 주었지요. 무엇보다도 다양한 분들과의 교류가 컸습니다. 과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느껴 오던, 잘 풀리지 않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서 어느 정도 그 방향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견 상충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성경 말씀과 과학의 결과물들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었거든요.
박사 과정 동안 무척이나 엄했던 지도교수님에게 시달리면서 체득한 것은 과학적 사고방식이었습니다. ‘현상’에 대한 초기 관찰을 통해 가설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해서,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해서 가설을 검증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그 결과로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더하는 것, 그게 과학의 본질이라고 제 지도교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보태는 것은 'new understanding'이라는 것. 그게 본질이었습니다.
과학이 매우 탄탄한 기초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기초가 탄탄해지기까지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가늘고 약한 실오라기들이 하나씩 하나씩 간신히 형성되고, 그 실오라기들이 서로 연결되고 묶이면서, 조금씩 그 모양을 갖춰나가게 된 것이 과학이더군요. 제가 했던 연구들은 '현상'에서 시작되어 '새로운 이해'로 끝나는 작은 실오라기 하나였습니다. 제대로 형성된 실오라기들은 이미 형성되어 있던 다른 실오라기들의 묶음에 잘 맞아 들어가면서 기존에 인간이 자연에 대해 갖고 있던 '이해'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시켜 나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자연법칙의 체계겠지요.
우리 인간은 눈을 가린 채로 거대한 코끼리를 만지면서 그게 무엇인지 그려보고 있는 사람들 일지 모르겠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다른 얘기를 하지만, 결국 하나의 체계인 거죠.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전체의 체계는 하나님이 피조물을 움직여 가시는 섭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섭리의 극히 작은 일부분을 발견하고 지식으로 정리해서, 전달하는 역할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런 방향의 결론이 생각보다 많은 이들에게 낯설게 들린다는 사실이 조금씩 저를 놀라게 만들던 때에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이 결론이 저만의 생각이 아니었음을 알게 하였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Q. 마지막으로, 과신뷰 독자들과 과신대 회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하나님이 어떻게 운행하시는지에 대한 가설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부족한 이해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상상을 하자니, '가설'일 수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언제든지 부족함이 발견되어 개정될 수 있을 테니까요.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른 가설들을 세울 수밖에 없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눈 가린 사람들이 코끼리를 만지며 그리는 코끼리 그림 같을 테니까요.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를 존중하며 배울 건 배우는 대화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됩니다. 출발점은 다를지라도 하나님을 향해 같이 성장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과신대 사람들
정훈재 이사
Q. 안녕하세요, 이사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과신대 활동 외에도 평소 어떤 일과 관심사로 살아가고 계신지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훈재라고 하고, 과신대에 이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국내 제조기업에서 현재 해외 기술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본래 재료공학 전공으로 미국에서 2004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이어 박사 후 과정을 마친 후에 2006년 한국의 기업에 연구원으로 입사하여 10년 정도 연구개발 업무를 했습니다. 2016년 경부터는 사업 기획 관련 업무를 해오다가 최근에는 마케팅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통해 넓게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로 살아왔었는데, 연구 개발을 거쳐 사업기획에서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지난 여정은 그러한 재미를 업무에서도 느끼게 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박사 과정에서 제가 얻은 것들과 제가 기여한 것들이 기독교 신앙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자연스럽게 ‘과학과 신앙’이 제일 먼저 고민하게 된 주제였습니다. 이는 곧 ‘일과 신앙’, ‘직업과 신앙’ 등의 주제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과신대는 초창기부터 참여하게 되었고 일터 사역도 다니던 교회의 사역 팀에서 활발히 활동했었습니다. 최근에는 출장 등 업무가 많아지는 등의 이유로 모든 사역은 내려놓은 상태입니다.
기독교 신앙 외에 관심사라고 하면, 인공지능이겠습니다. 업무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으니까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일상을, 또한 우리의 미래를 과연 어떻게 바꿔 나가게 될까요. 이러한 변화를 기독교 신앙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최근 업무로 많이 바빠지다 보니, 그렇게 깊이 들여다보지 못해서 늘 안타깝습니다.
Q. 과신대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과신대 활동을 오랫동안 이어오고 계신데요, 처음 과신대를 알게 된 계기와 그 당시 어떤 점에 이끌렸는지 궁금합니다.
2009년도에 우종학 교수님의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초판을 읽게 되었고, 그 책에서 제시하는 방향이 제가 가지고 있던 과학과 신앙에 대한 관점과 결국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한테는 큰 의미가 있었던 책이었죠. 2014년에 개정판이 나왔을 때, 페이스북에서 접하게 된 그 책에 대한 다양한 반발은 제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비판과 반론은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지만, 감정 섞인 반발은 놀랍기까지 하더군요. 이런 모습으로 남아 있어선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5년 말 무렵에 '창조론자들'이라는 책을 새물결플러스에서 출간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저도 그 프로젝트에 선구매 펀딩으로 참여했었습니다. 당시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모였던 서울남부 북클럽에도 참여했었고요. 그렇게 다양한 분들과 교류하면서 과신대는 자연스레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과학과 신앙에 대한 관점이 일치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우리의 삶에는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큰 관점이 비슷하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빠르게 변화해 가는 세상 가운데에서 교조적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본질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점점 중요해지는 시점입니다. 그 논의의 든든한 기초는 결국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합니다.
Q. 이사로 참여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나 역할에 대한 생각이 있으신가요? 이사로서 과신대 안에서 어떤 활동에 기여하고 싶으신지, 혹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방향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사실 제가 그렇게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업무적으로 많이 바쁜지라 물리적인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게 많이 큽니다. 과신대가 추구하는 신앙의 모습이 가지는 의미가 개인적으로 무척 큽니다. 한국 교회의 현실을 돌아볼 때, 과신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거라 생각됩니다. 어떻게 외연을 확대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은 저도 하게 되는데, 제가 드릴만한 아이디어가 없어서 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분당판교 북클럽을 오랫동안 이끌고 계신데요, 북클럽 활동을 통해 얻는 보람이나 의미는 무엇인가요? 또 꾸준한 모임을 유지해 오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함께 나눠주세요.
분당판교북클럽이 분립한 게 2018년인가 그렇더군요. 벌써 7년이 다 되었습니다. 북클럽이 가지는 일반적인 장점들은 다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평소라면 모르고 있었을 책을 읽게 되는 점과 함께 하는 분들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점 등을 통해 성장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모임 때마다 늘 감사하게 됩니다.
분당판교북클럽은 모두 과신대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기에 추구하는 신앙의 방향도 기존의 교회보다는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각자의 신앙의 방향이 일치한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겠습니다. 오직 일치하는 바는 변화와 불확실성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성경 앞에 기존의 사고를 먼저 들이밀지 않으려 한다는 자세 이겠습니다. 나눔의 과정 그 자체로 더욱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는 요소라고 여겨집니다.
요새는 다소 고인물 느낌이 들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하는 참입니다. 책 선정의 외연을 넓힌다던가, 외부 오픈의 기회를 더 늘린다던가 하는 점입니다.
Q. 북클럽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과신대에서 더 시도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활동이나 프로젝트가 있으실까요? 또, 개인적으로 직접 기획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분당판교북클럽이 7년을 이어오긴 했지만, 외연을 확장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과신대의 과제는 보다 더 많은 접점을 찾아서 외연을 확장하면서 과신대의 메시지가 기독교 전반에 넓게 스며들어가게 하는 것일 텐데, 그런 방향으로는 아직 아이디어가 잘은 없습니다. 아래 질문에 이어서 가야겠네요.
Q. 과신대 콘텐츠나 활동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특히 청년 세대나 과신대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눠주세요.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면, 사람들이 그 콘텐츠가 자신에 대해 의미가 있다고 느껴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을 챙기며 살기에도 너무 바쁘고 힘든 세상입니다. 현실 기독교는 그 힘듦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방향을 중심으로 포지셔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위로와 격려가 아니라, 논란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이다 보니, 관심을 받기 어려운 게 도리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한강 작가의 문학세계와 온라인에 범람하는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소설)의 차이는 명확합니다. 우리가 믿던 바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냉혹하고 잔인한 세계의 본질을 드러내면서 인간의 유대를 얘기하는 문학과, 독자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면서 선입관을 도리어 강화하는 문학의 길은 결국 다를 겁니다. 많이 다가가지 못한다 해서, 한강의 문학이 의미가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많이 다가간다 해서 더 가치가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좀 불편할지라도 '자신에 대한 이야기', '자신에게 필요한 이야기', 또는 '자신의 결핍을 공감하게 하는 이야기'로 과신대 콘텐츠가 느껴지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마케팅 언어로는 잠재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는 얘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Q. 과신대의 ‘과학과 신학의 대화’가 이사님께는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활동 속에서 느끼신 과신대만의 고유한 가치나, 개인적으로 얻은 통찰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이제 와서 보니, 조금은 독특했던 제 '과학과 신앙'에 대한 관점을 나눌 수 있었던 장이었습니다. 제가 혼자였다면 알지 못했을 더 넓은 논의와 더 깊은 통찰을 알게 해 주었지요. 무엇보다도 다양한 분들과의 교류가 컸습니다. 과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느껴 오던, 잘 풀리지 않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서 어느 정도 그 방향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견 상충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성경 말씀과 과학의 결과물들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었거든요.
박사 과정 동안 무척이나 엄했던 지도교수님에게 시달리면서 체득한 것은 과학적 사고방식이었습니다. ‘현상’에 대한 초기 관찰을 통해 가설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해서,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해서 가설을 검증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그 결과로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더하는 것, 그게 과학의 본질이라고 제 지도교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보태는 것은 'new understanding'이라는 것. 그게 본질이었습니다.
과학이 매우 탄탄한 기초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기초가 탄탄해지기까지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가늘고 약한 실오라기들이 하나씩 하나씩 간신히 형성되고, 그 실오라기들이 서로 연결되고 묶이면서, 조금씩 그 모양을 갖춰나가게 된 것이 과학이더군요. 제가 했던 연구들은 '현상'에서 시작되어 '새로운 이해'로 끝나는 작은 실오라기 하나였습니다. 제대로 형성된 실오라기들은 이미 형성되어 있던 다른 실오라기들의 묶음에 잘 맞아 들어가면서 기존에 인간이 자연에 대해 갖고 있던 '이해'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시켜 나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자연법칙의 체계겠지요.
우리 인간은 눈을 가린 채로 거대한 코끼리를 만지면서 그게 무엇인지 그려보고 있는 사람들 일지 모르겠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다른 얘기를 하지만, 결국 하나의 체계인 거죠.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전체의 체계는 하나님이 피조물을 움직여 가시는 섭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섭리의 극히 작은 일부분을 발견하고 지식으로 정리해서, 전달하는 역할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런 방향의 결론이 생각보다 많은 이들에게 낯설게 들린다는 사실이 조금씩 저를 놀라게 만들던 때에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이 결론이 저만의 생각이 아니었음을 알게 하였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Q. 마지막으로, 과신뷰 독자들과 과신대 회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하나님이 어떻게 운행하시는지에 대한 가설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부족한 이해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상상을 하자니, '가설'일 수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언제든지 부족함이 발견되어 개정될 수 있을 테니까요.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른 가설들을 세울 수밖에 없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눈 가린 사람들이 코끼리를 만지며 그리는 코끼리 그림 같을 테니까요.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를 존중하며 배울 건 배우는 대화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됩니다. 출발점은 다를지라도 하나님을 향해 같이 성장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