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뷰 100호]
편집자의 변(辯)
글ㅣ김양현
과신뷰 편집장
좋은친구교회 담임, 과신대 정회원

사진: Unsplash의 Marcel Eberle
월간 과신뷰가 100호를 맞았다. 100이라는 숫자는 참 신기하다. 무언가를 완성한 느낌이자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00호, 100 개월, 10여년동안 무엇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일을 편집팀이 묵묵히 해 내었다. 무엇보다 편집팀에게 감사를 드린다.
월간 과신뷰를 통해 과학과 신학의 접목을 알리고자 했다. 정회원 뿐 아니라 과학 시대에 신앙을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했다. 과학은 신학을 배제하지 않으며, 신학은 과학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매일 쏟아지는 과학적 이슈를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알리고 싶었다. 수많은 이슈를 다루었다. 인공지능, 뇌 과학, 창조론, 동물, 생태, 기후, 기원, 진화 등에 대한 기독교적 고민을 내 놓았다. 이런 고민들이 독자에게 닿았기를 소망한다.
매월 과학자와 신학자, 목회자들에게 원고를 요청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민감한 이슈를 다루기에 꺼려하기도 했고, 바쁜 일정에 시간을 내어 글을 써야 하는 일이라 청탁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 주시고 다루어 주신 수많은 과학자와 신학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독자란에 글을 써 주시고, 과신뷰를 읽고 피드백과 응원을 해 주신 독자들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독자가 없다면 과신뷰는 아무 것도 아니다.
100호를 맞이하여 수고했다는 셀프 감격과 동시에 온갖 미비한 점에 대한 자책도 든다. 아울러 101호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넘친다. 월간 과신뷰가 과학 시대의 도전에 응전하는 수많은 기독 지성인들과 독자들에게 작은 불빛이 되기를 소망하며.
월간 과신뷰 편집장 김양현
[과신뷰 100호]
편집자의 변(辯)
글ㅣ김양현
과신뷰 편집장
좋은친구교회 담임, 과신대 정회원
사진: Unsplash의 Marcel Eberle
월간 과신뷰가 100호를 맞았다. 100이라는 숫자는 참 신기하다. 무언가를 완성한 느낌이자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00호, 100 개월, 10여년동안 무엇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일을 편집팀이 묵묵히 해 내었다. 무엇보다 편집팀에게 감사를 드린다.
월간 과신뷰를 통해 과학과 신학의 접목을 알리고자 했다. 정회원 뿐 아니라 과학 시대에 신앙을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했다. 과학은 신학을 배제하지 않으며, 신학은 과학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매일 쏟아지는 과학적 이슈를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알리고 싶었다. 수많은 이슈를 다루었다. 인공지능, 뇌 과학, 창조론, 동물, 생태, 기후, 기원, 진화 등에 대한 기독교적 고민을 내 놓았다. 이런 고민들이 독자에게 닿았기를 소망한다.
매월 과학자와 신학자, 목회자들에게 원고를 요청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민감한 이슈를 다루기에 꺼려하기도 했고, 바쁜 일정에 시간을 내어 글을 써야 하는 일이라 청탁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 주시고 다루어 주신 수많은 과학자와 신학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독자란에 글을 써 주시고, 과신뷰를 읽고 피드백과 응원을 해 주신 독자들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독자가 없다면 과신뷰는 아무 것도 아니다.
100호를 맞이하여 수고했다는 셀프 감격과 동시에 온갖 미비한 점에 대한 자책도 든다. 아울러 101호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넘친다. 월간 과신뷰가 과학 시대의 도전에 응전하는 수많은 기독 지성인들과 독자들에게 작은 불빛이 되기를 소망하며.
월간 과신뷰 편집장 김양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