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영화
에이리언 로물루스
글ㅣ 김양현 목사
과신뷰 편집팀장
좋은친구교회
감독 : 페데 알바레스
출연 : 케일리 스패니(레인 캐러딘), 데이비드 존슨(앤디), 아일린 우, 아치 리노(타일러 해리슨), 스파이크 펀(비요른)
가까운 미래 지구는 황폐되어 더 이상 주거가 불가능하다. 인류는 잭슨이라는 행성으로 이주하였다. 하지만 잭슨 행성 역시 무분별한 개발로 환경이 좋지 못하다. 또다시 인류는 이바가라는 지구와 흡사한 행성을 찾아냈고, 소위 부유층은 이바가로 이주했다. 이바가 행성은 잭슨에서 약 65광년 거리다. 즉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우주선을 타도 65년이 걸리는 먼 거리다. 잭슨에서 이바가로 이동하려면 특수 수면장치에 들어가 동면을 해야 한다. 그동안 우주선은 자동항법으로 이동한다.
반면 잭슨은 광산 개발을 위한 광부들과 식량 생산을 위한 노동자들만 남아 있다. 주인공 레인은 잭슨 행성에서 회사가 요구하는 노동조건을 완료했기에 이바가로의 이주를 신청하러 이민국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녀는 특별한 이유 없이 거절당한다. 왜 안되냐고 항의하자 잭슨에서의 노동기간을 일방적으로 늘려버렸다. 이제 레인은 죽을 때까지 잭슨에 머물러 살아야 한다. 그녀는 동생 앤디와 함께 숙소로 향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들이 그녀를 아지트로 부른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이바가 이주계획을 설명한다. 물론 불법 이주계획이다. 자신들이 최근 잭슨 행성 대기권 밖에 떠도는 폐 화물선을 찾았는데 아마 거기에 동면장치와 연료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에 그것만 확보하면 갈 수 있다고 레인에게 동참을 제안한다. 그런데 왜 레인에게 제안을 하는가? 실상은 레인의 동생인 앤디 때문이다. 앤디는 소위 인조인간이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로봇이다. 화물선 진입을 위해서는 앤디와 같은 로봇의 프로그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행은 소형 우주선을 타고 몰래 잭슨 행성을 벗어나 우여곡절 끝에 화물선에 도착한다. 화물선과 도킹한 후 앤디가 앞서 화물선의 해치를 열고 일행은 화물선 안으로 들어간다. 그들의 목적은 동면장치와 연료 확보다. 별 이상 없이 동면장치도 찾고 연료도 찾았다. 이것을 자신들의 우주선으로 옮기면 이바가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연료를 꺼내려할 때 이상한 인기척을 느낀다.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 이 알 수 없는 정체는 외계 생명체 즉 에이리언이다.
일행이 알게 된 것은 자신들이 찾은 버려진 우주선이 화물선이 아니라 특수 목적을 띈 것이었고, 그 목적은 얼마 전 에이리언과의 대 전투 후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체를 수거하여 실험을 하는 것이었다. 실험의 내용은 에이리언의 혈액을 추출하여 인간에게 주입하여 인간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우주여행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를 가졌으나 에이리언은 우주여행에 적합한 신체를 가졌기에 인간신체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것으로 강화하는 실험을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에이리언이 깨어났고 오히려 실험실 내 인간을 다 몰살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알을 키우고 있었다. 다행히 선체에는 앤디와 같은 인조인간 과학 로봇 룩이 있었다. 그는 홀로 에이리언과 맞서 싸우다 최후의 수단으로 선체의 온도를 급격히 내려서 에이리언의 활동을 중지시키고 냉각시켰다. 그런데 레인의 친구들이 우주선에서 동면장치와 연료를 빼내는 과정에서 우주선을 가동했고 온도가 상승하자 에이리언들이 깨어난 것이다. 그리고 레인과 동료들은 에이리언들의 공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활약을 하는 존재는 앤디다. 앤디는 레인과 친구들과 달리 프로그램된 로봇이라 우주선과 접촉하여 선체 구조를 파악하고 게다가 에이리언을 퇴치할 수 있는 방법까지 습득한다. 앤디가 설계될 때 그의 일차 목적은 레인을 지키는 것이었다. 레인의 아버지가 앤디를 그렇게 프로그래밍했다. 따라서 이 위기에서 앤디는 오로지 자신이 누나라 부르는 레인을 지키는 것에 집중한다. 하지만 일행이 에이리언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선체에 남아 있던 과학로봇 룩의 칩을 앤디에게 꽂아서 재 프로그래밍해야 한다. 고민하던 레인은 친구들의 설득에 허락을 했고, 앤디의 머리에서 기존의 칩을 제거하고 우주선내에 존재하던 룩의 칩을 주입한다. 다시 깨어난 앤디는 더 이상 앤디가 아니라 이젠 웨이랜드 유타니 회사의 충실한 과학 로봇 룩이다. 룩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우주선과 실험체를 지키는 것에 최적화 프로그램되어 있다. 몸은 앤디이지만 정신은 룩이다. 룩은 레인과 친구들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다. 그의 목적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실험체를 지키는 것이다.
돌변한 앤디로 인해 레인은 당황한다. 더 이상 앤디는 자신을 보호해 주는 동생같은 로봇이 아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과학로봇 룩이다. 앤디를 다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그의 머리에 인식되어 있는 칩을 제거하는 것뿐이다. 영화의 종반부는 레인과 앤디의 갈등, 친구들과 에이리언과의 사투가 중점적으로 펼쳐진다. 물론 후반부에 이르러 친구들이 하나씩 에이리언의 공격으로 죽어 나가고 레인이 홀로 남았을 때, 에이리언들이 레인을 공격하러 올 때 앤디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자신이 보고 있는 레인을 지켜야 할 것인지, 레인을 내버려 두고 회사를 위해 에이리언들을 살려두어야 할지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이 지점에서 앤디는 온전한 로봇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지 관객들은 지켜보게 된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앤디는 그의 뇌 속에 인식되어 있는 칩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감독은 앤디가 단순히 칩에 의해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처럼 감정과 기억이 그의 뇌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그린다. 자신에게 인식된 프로그램과 잔존해 있던 기억과의 갈등에서 혼란을 느끼던 앤디는 마지막에 레인을 지키는 것으로 결정하게 된다.
인간은 뇌의 지배를 온전히 받는 것인지, 아니면 온몸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지 잘 모르겠다. 만약 인간의 몸에 영화처럼 어떤 프로그램화 된 칩을 인식한다면 그는 로봇처럼 행동할 것인지, 그가 살아온 삶의 기억과 습득된 감정 등의 영향을 받을 것인지 잘 모르겠다. 영화는 그런 의문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최근 로봇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있다. 요리를 하는 로봇, 청소를 하는 로봇, 심지어 농구나 축구를 하는 로봇도 개발되어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결합되면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가 될까? 그는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프로그램이 되었겠지만 과연 그럴까? 아님 터미네이터라는 영화에서처럼 인간을 넘어서는 어떤 존재가 될까?
신학적으로도 상당한 질문이 요구된다. 이런 로봇 인간도 인간일까? 인간이 만들어 낸 어떤 존재를 하나님의 창조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아니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의 바벨탑일까? 만약 영화에 등장하는 앤디와 같이 인간과 같은 음식을 먹고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기능하는 인조인간이 등장한다면 그는 영혼이 존재할까? 그도 구원의 대상일까? 복제인간이 가능하다면 어떨까? 영혼도 복제가 되는 것인가? 생각이나 가치관도 복제가 되는 것인가?
영화에서 앤디는 극적인 순간에 룩이 아니라 앤디의 정체성을 찾게 되고 레인을 지킨다. 신화학자 기어츠의 말을 인용하면,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자 현실을 이끌어가는 매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영화와 같은 현실이 펼쳐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 치열하게 신학적으로, 윤리적으로 대비해야 마땅하다. 과학은 신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신학은 과학에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통해 다양한 질문과 토론의 장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p.s. 그런데 대부분의 영화에서 외계인은 왜 꼭 무시무시한 적으로 묘사될까? 왜 인류를 공격하는 존재일까? 외계인은 왜 잘 생기지 않고 이상한 괴물처럼 묘사될까? 칼 세이건은 이렇게 대답했다. “미국은 오래전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하여 빼앗은 전력이 있다. 외래인이었던 우리가 본토인을 몰아내고 이 땅을 차지했다. 그 과정에 무시무시한 무력을 사용했다. 따라서 미국인의 잠재의식 속에는 외래인은 무시무시한 존재이자 침략자라는 것이 내재되어 있다. 일종의 트라우마다. 따라서 대부분의 외계인 영화에서 침략자요 괴물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달 영화
에이리언 로물루스
글ㅣ 김양현 목사
과신뷰 편집팀장
좋은친구교회
감독 : 페데 알바레스
출연 : 케일리 스패니(레인 캐러딘), 데이비드 존슨(앤디), 아일린 우, 아치 리노(타일러 해리슨), 스파이크 펀(비요른)
가까운 미래 지구는 황폐되어 더 이상 주거가 불가능하다. 인류는 잭슨이라는 행성으로 이주하였다. 하지만 잭슨 행성 역시 무분별한 개발로 환경이 좋지 못하다. 또다시 인류는 이바가라는 지구와 흡사한 행성을 찾아냈고, 소위 부유층은 이바가로 이주했다. 이바가 행성은 잭슨에서 약 65광년 거리다. 즉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우주선을 타도 65년이 걸리는 먼 거리다. 잭슨에서 이바가로 이동하려면 특수 수면장치에 들어가 동면을 해야 한다. 그동안 우주선은 자동항법으로 이동한다.
반면 잭슨은 광산 개발을 위한 광부들과 식량 생산을 위한 노동자들만 남아 있다. 주인공 레인은 잭슨 행성에서 회사가 요구하는 노동조건을 완료했기에 이바가로의 이주를 신청하러 이민국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녀는 특별한 이유 없이 거절당한다. 왜 안되냐고 항의하자 잭슨에서의 노동기간을 일방적으로 늘려버렸다. 이제 레인은 죽을 때까지 잭슨에 머물러 살아야 한다. 그녀는 동생 앤디와 함께 숙소로 향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들이 그녀를 아지트로 부른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이바가 이주계획을 설명한다. 물론 불법 이주계획이다. 자신들이 최근 잭슨 행성 대기권 밖에 떠도는 폐 화물선을 찾았는데 아마 거기에 동면장치와 연료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에 그것만 확보하면 갈 수 있다고 레인에게 동참을 제안한다. 그런데 왜 레인에게 제안을 하는가? 실상은 레인의 동생인 앤디 때문이다. 앤디는 소위 인조인간이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로봇이다. 화물선 진입을 위해서는 앤디와 같은 로봇의 프로그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행은 소형 우주선을 타고 몰래 잭슨 행성을 벗어나 우여곡절 끝에 화물선에 도착한다. 화물선과 도킹한 후 앤디가 앞서 화물선의 해치를 열고 일행은 화물선 안으로 들어간다. 그들의 목적은 동면장치와 연료 확보다. 별 이상 없이 동면장치도 찾고 연료도 찾았다. 이것을 자신들의 우주선으로 옮기면 이바가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연료를 꺼내려할 때 이상한 인기척을 느낀다.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 이 알 수 없는 정체는 외계 생명체 즉 에이리언이다.
일행이 알게 된 것은 자신들이 찾은 버려진 우주선이 화물선이 아니라 특수 목적을 띈 것이었고, 그 목적은 얼마 전 에이리언과의 대 전투 후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체를 수거하여 실험을 하는 것이었다. 실험의 내용은 에이리언의 혈액을 추출하여 인간에게 주입하여 인간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우주여행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를 가졌으나 에이리언은 우주여행에 적합한 신체를 가졌기에 인간신체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것으로 강화하는 실험을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에이리언이 깨어났고 오히려 실험실 내 인간을 다 몰살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알을 키우고 있었다. 다행히 선체에는 앤디와 같은 인조인간 과학 로봇 룩이 있었다. 그는 홀로 에이리언과 맞서 싸우다 최후의 수단으로 선체의 온도를 급격히 내려서 에이리언의 활동을 중지시키고 냉각시켰다. 그런데 레인의 친구들이 우주선에서 동면장치와 연료를 빼내는 과정에서 우주선을 가동했고 온도가 상승하자 에이리언들이 깨어난 것이다. 그리고 레인과 동료들은 에이리언들의 공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활약을 하는 존재는 앤디다. 앤디는 레인과 친구들과 달리 프로그램된 로봇이라 우주선과 접촉하여 선체 구조를 파악하고 게다가 에이리언을 퇴치할 수 있는 방법까지 습득한다. 앤디가 설계될 때 그의 일차 목적은 레인을 지키는 것이었다. 레인의 아버지가 앤디를 그렇게 프로그래밍했다. 따라서 이 위기에서 앤디는 오로지 자신이 누나라 부르는 레인을 지키는 것에 집중한다. 하지만 일행이 에이리언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선체에 남아 있던 과학로봇 룩의 칩을 앤디에게 꽂아서 재 프로그래밍해야 한다. 고민하던 레인은 친구들의 설득에 허락을 했고, 앤디의 머리에서 기존의 칩을 제거하고 우주선내에 존재하던 룩의 칩을 주입한다. 다시 깨어난 앤디는 더 이상 앤디가 아니라 이젠 웨이랜드 유타니 회사의 충실한 과학 로봇 룩이다. 룩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우주선과 실험체를 지키는 것에 최적화 프로그램되어 있다. 몸은 앤디이지만 정신은 룩이다. 룩은 레인과 친구들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다. 그의 목적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실험체를 지키는 것이다.
돌변한 앤디로 인해 레인은 당황한다. 더 이상 앤디는 자신을 보호해 주는 동생같은 로봇이 아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과학로봇 룩이다. 앤디를 다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그의 머리에 인식되어 있는 칩을 제거하는 것뿐이다. 영화의 종반부는 레인과 앤디의 갈등, 친구들과 에이리언과의 사투가 중점적으로 펼쳐진다. 물론 후반부에 이르러 친구들이 하나씩 에이리언의 공격으로 죽어 나가고 레인이 홀로 남았을 때, 에이리언들이 레인을 공격하러 올 때 앤디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자신이 보고 있는 레인을 지켜야 할 것인지, 레인을 내버려 두고 회사를 위해 에이리언들을 살려두어야 할지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이 지점에서 앤디는 온전한 로봇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지 관객들은 지켜보게 된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앤디는 그의 뇌 속에 인식되어 있는 칩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감독은 앤디가 단순히 칩에 의해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처럼 감정과 기억이 그의 뇌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그린다. 자신에게 인식된 프로그램과 잔존해 있던 기억과의 갈등에서 혼란을 느끼던 앤디는 마지막에 레인을 지키는 것으로 결정하게 된다.
인간은 뇌의 지배를 온전히 받는 것인지, 아니면 온몸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지 잘 모르겠다. 만약 인간의 몸에 영화처럼 어떤 프로그램화 된 칩을 인식한다면 그는 로봇처럼 행동할 것인지, 그가 살아온 삶의 기억과 습득된 감정 등의 영향을 받을 것인지 잘 모르겠다. 영화는 그런 의문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최근 로봇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있다. 요리를 하는 로봇, 청소를 하는 로봇, 심지어 농구나 축구를 하는 로봇도 개발되어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결합되면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가 될까? 그는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프로그램이 되었겠지만 과연 그럴까? 아님 터미네이터라는 영화에서처럼 인간을 넘어서는 어떤 존재가 될까?
신학적으로도 상당한 질문이 요구된다. 이런 로봇 인간도 인간일까? 인간이 만들어 낸 어떤 존재를 하나님의 창조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아니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의 바벨탑일까? 만약 영화에 등장하는 앤디와 같이 인간과 같은 음식을 먹고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기능하는 인조인간이 등장한다면 그는 영혼이 존재할까? 그도 구원의 대상일까? 복제인간이 가능하다면 어떨까? 영혼도 복제가 되는 것인가? 생각이나 가치관도 복제가 되는 것인가?
영화에서 앤디는 극적인 순간에 룩이 아니라 앤디의 정체성을 찾게 되고 레인을 지킨다. 신화학자 기어츠의 말을 인용하면,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자 현실을 이끌어가는 매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영화와 같은 현실이 펼쳐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 치열하게 신학적으로, 윤리적으로 대비해야 마땅하다. 과학은 신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신학은 과학에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통해 다양한 질문과 토론의 장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p.s. 그런데 대부분의 영화에서 외계인은 왜 꼭 무시무시한 적으로 묘사될까? 왜 인류를 공격하는 존재일까? 외계인은 왜 잘 생기지 않고 이상한 괴물처럼 묘사될까? 칼 세이건은 이렇게 대답했다. “미국은 오래전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하여 빼앗은 전력이 있다. 외래인이었던 우리가 본토인을 몰아내고 이 땅을 차지했다. 그 과정에 무시무시한 무력을 사용했다. 따라서 미국인의 잠재의식 속에는 외래인은 무시무시한 존재이자 침략자라는 것이 내재되어 있다. 일종의 트라우마다. 따라서 대부분의 외계인 영화에서 침략자요 괴물로 묘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