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후감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
칼 W. 가이버슨 , 프랜시스 S. 콜린스 저 · 김정우 역 ㅣ 새물결플러스 ㅣ 2019
"이번 달 독후감을 읽으며, 많은 분들이 꼭 이 책을 함께 읽어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중한 독후감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과신뷰 편집팀
* 선정된 독후감은 제목 가나다 순으로 게시하였습니다. 다음 달 선정 도서는 게시글 마지막에서 확인해 주세요. 😉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를 읽고
글ㅣ박종춘
과신대 제주북클럽
그리스도인으로서 산지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성경을 읽고 나에게 필요한 것을 음미하기만 했지 실제 성경 그 자체에 대한 특별한 생각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성경은 당연한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라는 것에 더 이상의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 말은 모든 것을 성경에 쓰여 있는 대로 믿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과학과 신학의 대화’의 책모임에 참가하면서 믿었지만 의문을 가졌던 여러 내용들에 대해 더 깊게 읽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정확하게 2022년 6월 23일 목요일에 북촌교회에서 나누었던 제목의 책의 한국판이라 할 수 있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Q&A)에 대한 토론이었다. 나는 당시 ‘과학과 신학의 대화’ 책모임에 참석한 지 불과 석 달 정도밖에 안 되었을 때라서 모든 내용이 그저 신기하고 호기심 가득한 때였다. 특별히 창조신학에 대한 어설픈 지식과 막연한 믿음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찾은 듯하여 매우 흥분되었던 경험이 있다.
이번에 과학과 신학의 대화 책모임에서 토론하였던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난처한 질문과 솔직한 대답)를 읽으며 3년 전에 읽었을 때의 흥분이 다시 살아나 매우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책을 읽으면서 해소되어야 하는 의문은 오히려 더 살아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부정적인 의문이기 보다는 더 탐구하며 나아가고자 하는 변화의 의문일 것이다. 바이오로고스(BioLogos)의 관점대로 이 책도 “기독교인들이 세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신앙 사이의 어색한 긴장으로부터 반드시 해방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견지한다.(P.21) 또 “과학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P.39)로 보아야 하며 우리는 이 선물을 통해 신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을 읽으며 우리가 가장 의구심을 갖게 되는 부분이 창세기편이라 할 수 있다. 말씀대로 하나님은 과연 이 방대하고 복잡한 우주만물을 단 6일 만에 창조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과학의 지식으로만 생각해도 6일 만의 창조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표현하였을까? 창세기 전반에 흐르는 말씀은 어떤 역사적인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이야기로 알기 쉽게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것이다. 이 이야기와 비슷한 우리의 단군신화를 살펴보자. 몽고에 핍박당하고 국가가 어려움에 처하자 조선의 시조를 내세움으로서 우리의 주체성과 유구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역사서의 저자의 의도가 이야기로 담겨져 있다. 쑥과 마늘을 먹고 석 달 동안 동굴에 칩거하여 사람이 된 곰은 하늘의 왕 환인을 만나 혼인을 하고 그 아들 환웅을 나았는데 그가 바로 단군시조이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신화는 이야기의 재미를 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읽는 사람의 흥미를 자아내게 한다. 마찬가지로 구약의 창세기편도 이런 이야기의 재미를 통해 더욱 실감나게 해 주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과 하나님의 창조이야기, 인간의 악의 부흥과 하나님의 창조행위에 대한 불신의 문제, 과학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없는 우주와 만물의 탄생에 대한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 즉 미세조정의 문제, 심지어는 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의구심까지 많은 것들에 대한 의문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이에 대한 설명이 마치 정해진 결론을 두고 펼치는 변명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을 어느 누구도 증명할 수 없으며 그렇다면 이에는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자의 조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우리의 상상력을 동원해본다면 그 절대자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믿음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확률적으로 타당(Plausible)하다고 확증해준다.(P.206)
이러한 믿음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욱 확고해 진다. 하나님의 창조이후 수많은 생명들이 진화를 거듭하여 지금까지 왔으나 인간과 같이 뛰어나게 진화된 존재는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 왜 그럴까? 어떻게 인간만이 이렇게 탁월한 존재로 진화되었을까? 어떤 이유를 들이대더라도 설명할 수 없는 이 놀라운 사실을 두고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인간의 존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다른 생명들처럼 단순히 세포의 분열을 통한 진화를 거쳐 우연히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특별한 분의 계획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하버드대학교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태초로부터 지금까지의 녹화테이프를 처음부터 백만 번쯤 다시 튼다고 해도 지금의 인류와 같은 종이 진화의 결과로서 다시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P.287) 그만큼 인간은 그 어떤 생명보다 독특한 존재라는 것이다.
과학은 세계에 대한 임상적, 실제적 지식 및 세계의 작동방식을 밝혀 주는 것이고, 종교는 가치와 목적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라며(P.116) 양자는 겹치지 않는 교도권(non-overlapping magisterai, NOMA)이라고 굴드는 명명했지만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학과 신학을 별개의 지식체로 구분한다는 것은 오히려 끝도 없는 혼란만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고 본다. 과학이 신학에 제기하는 도전을 신앙의 걸림돌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인들로 하여금 성찰과 고민을 하게 만드는 훌륭한 도구로 여길 때 우리의 신앙은 더욱 깊어질 것임을 기대해 본다.
머리를 깨뜨리는 책과 만나다
-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를 읽고 -
글ㅣ이은경
과학을 좋아하는 딸을 둔 엄마
일찍이 프란츠 카프카는 ‘우리의 머리를 내리쳐 얼어붙은 마음을 깨뜨리는 책’만이 읽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그런 책을 만났다. 이 책은 몇 가지 측면에서 나의 머리, 굳은 머리를 깨트렸다.
우선 과학과 기독교 신앙은 적대적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트려 주었다. 사실 그렇게 알아왔고 배워왔다. 하지만 과학과 신앙이 적대적이라는 어떤 틀은 19세기에 앤드류 화이트가 쓴 『과학이 기독교 신학과 벌인 전쟁의 역사』와 비슷한 시기에 윌리엄 드레이퍼가 쓴 『종교와 과학의 갈등의 역사』라는 책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리차드 도킨스 같은 과학자들이 워낙 강하게 주장해서 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학자들도, 과학자들도 둘을 대립으로 보지 않고 상호 보완적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 창조과학회 등이 주장하는 젊은 지구론 같은 이론이 주류 이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머리를 망치로 얻어 맞는 기분이었다. 당연히 미국 사회에서 젊은 지구론이나 창조과학이 주류이기에 한국에서도 그렇게 가르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실제로 미국의 신학자들은 다윈의 이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지구가 오래 되었다는 생각은 다윈 이전 17세기부터 있어 왔다는 것을 듣고 위안이 되었다.
이 책은 지구가 오래 되었다는 것은 지질학적 연구와 무엇보다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을 통해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우라늄이 납으로 변환되는 것을 반감기라고 하는데, 우라늄 235의 반감기가 약 7억1,300만년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측정법을 따라 지구의 연대는 큰 오차 없이 약 45억년인 것이 측정된다. 이것은 대부분의 화학자가 인정하는 것이며 당연히 교과서에도 등장한다. 이런 내용들을 읽으니 상당히 위안이 된다. 그런데 젊은지구론자들은 왜 이런 사실을 굳이 부인할까?
셋째로 창세기 1장의 해석에 있어서 오래전 교부 오리게네스는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에는 하늘의 광명체가 없었는데 어떻게 24시간이 될 수 있겠느냐고 가르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께서 씨앗과 같은 원리를 자연에 심어 놓으셔서 그것들이 창발하고 자란다고 오래전에 가르쳤다고 한다. 중세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창세기가 과학 교과서가 아니라고 말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줄 뿐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칼뱅, 존 웨슬리, 벤자민 워필드 같은 위대한 목사님들도 오래된 지구를 자연스레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 한국의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미국에서 편협된 그것도 안식교에서 개발된 젊은 지구론, 노아 홍수 지질학에 경도되었는 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넷째, 이 책의 장점은 20세기 이후 최근의 과학적 성과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에 있다. 이를테면 양자역학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의 자유의지는 대립관계가 아니라 공생관계이며 양립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한다. 양자역학이 말해주는 것은 표면적 카오스(혼돈) 상태가 궁극적으로는 코스모스(질서)로 수렴된다고 한다. 그리고 미세조정이라는 천문학적 발견은 프레드 호일 같은 비기독교인 과학자도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해준다. 중력과 전자기력, 강한 핵력과 약한 핵력이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와 태양계가 되었고,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하도록 마치 유도된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런 부분이 하나님의 섭리, 창조를 설명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무언가 묵은 것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감동적인 부분은 마지막 장이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와 우주의 빅뱅의 장엄한 역사를 언급하는 부분이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창세기 1장 1절의 선언을 빅뱅이 일어난 순간과 연결시켰다. 빅뱅의 순간에 원리(로고스)가 생겨났고 이는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으로 나타나고 최초의 물질인 쿼크와 렙톤, 그리고 반물질이 생겨나고, 양성자와 중성자가 나타나는 것으로 연결시켰다. 또한 창세기 1장의 창조 선언인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으라’는 부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거대한 수소 구름이 중력으로 뭉쳐서 항성이 되고, 초거성이 되고, 그것이 폭발하여 흩어진 잔해가 중력에 의해 항성과 행성이 되는 과정을 잘 묘사하였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수소와 산소가 뭉쳐 물이 되고, 이어 아미노산, 탄수화물, 지방 등이 물을 통해 생기면서 생명체가 탄생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참으로 과학은 신학을 보충 설명해 주는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무신론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이나, 창조과학회 등이 주장하는 유사 과학이 아니라, 정확한 과학은 신학을 배척하지 않고 대신 보완해 주며 창조의 신비를 설명해 주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나의 얼어붙은 머리를, 가슴을 깨뜨려 하나님의 위대한 과학적 창조를 이해하기에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더욱 더 찬양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오래된 창조, 점진적 창조의 신비를 깨닫게 되었다.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책을 읽고 사유하며 토론함으로 우리 시대에 필요한 신앙의 깊이를 더욱 강화해 나갔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머리가 트이는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되어 기쁘다. 과학이라는 도구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글을 맺는다.
P.S. 과학을 좋아하고 궁금증이 많은 딸은 자주 이런 사항에 질문을 한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대답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 대답할 내용이 생긴 것 같아 좋다. 나와 같이 자녀들의 질문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5월 추천 도서

아론의 송아지
임택규 저 ㅣ 새물결플러스 ㅣ 2016
출판사 책소개
교회 안에서 신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해 일방적이고 문자적인 주장이 난무하는 것으로 인해 자괴감을 겪었던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은 현학적인 재주를 부리지 않고 친근한 느낌을 주면서도 과학적 사실에 대한 합리적 논증을 통해 독자들을 이성적으로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교회에서 창조과학으로 인해 불편한 믿음 생활을 하는 독자에게 권한다.
🌟 이달의 독후감으로 선정된 분에게는 커피 쿠폰을 감사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 원고 접수 : 과신대 편집팀 scitheoeditor@gmail.com
이달의 독후감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
칼 W. 가이버슨 , 프랜시스 S. 콜린스 저 · 김정우 역 ㅣ 새물결플러스 ㅣ 2019
"이번 달 독후감을 읽으며, 많은 분들이 꼭 이 책을 함께 읽어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중한 독후감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과신뷰 편집팀
* 선정된 독후감은 제목 가나다 순으로 게시하였습니다. 다음 달 선정 도서는 게시글 마지막에서 확인해 주세요. 😉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를 읽고
글ㅣ박종춘
과신대 제주북클럽
그리스도인으로서 산지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성경을 읽고 나에게 필요한 것을 음미하기만 했지 실제 성경 그 자체에 대한 특별한 생각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성경은 당연한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라는 것에 더 이상의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 말은 모든 것을 성경에 쓰여 있는 대로 믿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과학과 신학의 대화’의 책모임에 참가하면서 믿었지만 의문을 가졌던 여러 내용들에 대해 더 깊게 읽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정확하게 2022년 6월 23일 목요일에 북촌교회에서 나누었던 제목의 책의 한국판이라 할 수 있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Q&A)에 대한 토론이었다. 나는 당시 ‘과학과 신학의 대화’ 책모임에 참석한 지 불과 석 달 정도밖에 안 되었을 때라서 모든 내용이 그저 신기하고 호기심 가득한 때였다. 특별히 창조신학에 대한 어설픈 지식과 막연한 믿음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찾은 듯하여 매우 흥분되었던 경험이 있다.
이번에 과학과 신학의 대화 책모임에서 토론하였던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난처한 질문과 솔직한 대답)를 읽으며 3년 전에 읽었을 때의 흥분이 다시 살아나 매우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책을 읽으면서 해소되어야 하는 의문은 오히려 더 살아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부정적인 의문이기 보다는 더 탐구하며 나아가고자 하는 변화의 의문일 것이다. 바이오로고스(BioLogos)의 관점대로 이 책도 “기독교인들이 세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신앙 사이의 어색한 긴장으로부터 반드시 해방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견지한다.(P.21) 또 “과학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P.39)로 보아야 하며 우리는 이 선물을 통해 신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을 읽으며 우리가 가장 의구심을 갖게 되는 부분이 창세기편이라 할 수 있다. 말씀대로 하나님은 과연 이 방대하고 복잡한 우주만물을 단 6일 만에 창조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과학의 지식으로만 생각해도 6일 만의 창조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표현하였을까? 창세기 전반에 흐르는 말씀은 어떤 역사적인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이야기로 알기 쉽게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것이다. 이 이야기와 비슷한 우리의 단군신화를 살펴보자. 몽고에 핍박당하고 국가가 어려움에 처하자 조선의 시조를 내세움으로서 우리의 주체성과 유구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역사서의 저자의 의도가 이야기로 담겨져 있다. 쑥과 마늘을 먹고 석 달 동안 동굴에 칩거하여 사람이 된 곰은 하늘의 왕 환인을 만나 혼인을 하고 그 아들 환웅을 나았는데 그가 바로 단군시조이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신화는 이야기의 재미를 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읽는 사람의 흥미를 자아내게 한다. 마찬가지로 구약의 창세기편도 이런 이야기의 재미를 통해 더욱 실감나게 해 주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과 하나님의 창조이야기, 인간의 악의 부흥과 하나님의 창조행위에 대한 불신의 문제, 과학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없는 우주와 만물의 탄생에 대한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 즉 미세조정의 문제, 심지어는 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의구심까지 많은 것들에 대한 의문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이에 대한 설명이 마치 정해진 결론을 두고 펼치는 변명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을 어느 누구도 증명할 수 없으며 그렇다면 이에는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자의 조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우리의 상상력을 동원해본다면 그 절대자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믿음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확률적으로 타당(Plausible)하다고 확증해준다.(P.206)
이러한 믿음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욱 확고해 진다. 하나님의 창조이후 수많은 생명들이 진화를 거듭하여 지금까지 왔으나 인간과 같이 뛰어나게 진화된 존재는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 왜 그럴까? 어떻게 인간만이 이렇게 탁월한 존재로 진화되었을까? 어떤 이유를 들이대더라도 설명할 수 없는 이 놀라운 사실을 두고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인간의 존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다른 생명들처럼 단순히 세포의 분열을 통한 진화를 거쳐 우연히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특별한 분의 계획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하버드대학교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태초로부터 지금까지의 녹화테이프를 처음부터 백만 번쯤 다시 튼다고 해도 지금의 인류와 같은 종이 진화의 결과로서 다시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P.287) 그만큼 인간은 그 어떤 생명보다 독특한 존재라는 것이다.
과학은 세계에 대한 임상적, 실제적 지식 및 세계의 작동방식을 밝혀 주는 것이고, 종교는 가치와 목적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라며(P.116) 양자는 겹치지 않는 교도권(non-overlapping magisterai, NOMA)이라고 굴드는 명명했지만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학과 신학을 별개의 지식체로 구분한다는 것은 오히려 끝도 없는 혼란만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고 본다. 과학이 신학에 제기하는 도전을 신앙의 걸림돌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인들로 하여금 성찰과 고민을 하게 만드는 훌륭한 도구로 여길 때 우리의 신앙은 더욱 깊어질 것임을 기대해 본다.
머리를 깨뜨리는 책과 만나다
-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를 읽고 -
글ㅣ이은경
과학을 좋아하는 딸을 둔 엄마
일찍이 프란츠 카프카는 ‘우리의 머리를 내리쳐 얼어붙은 마음을 깨뜨리는 책’만이 읽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그런 책을 만났다. 이 책은 몇 가지 측면에서 나의 머리, 굳은 머리를 깨트렸다.
우선 과학과 기독교 신앙은 적대적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트려 주었다. 사실 그렇게 알아왔고 배워왔다. 하지만 과학과 신앙이 적대적이라는 어떤 틀은 19세기에 앤드류 화이트가 쓴 『과학이 기독교 신학과 벌인 전쟁의 역사』와 비슷한 시기에 윌리엄 드레이퍼가 쓴 『종교와 과학의 갈등의 역사』라는 책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리차드 도킨스 같은 과학자들이 워낙 강하게 주장해서 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학자들도, 과학자들도 둘을 대립으로 보지 않고 상호 보완적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 창조과학회 등이 주장하는 젊은 지구론 같은 이론이 주류 이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머리를 망치로 얻어 맞는 기분이었다. 당연히 미국 사회에서 젊은 지구론이나 창조과학이 주류이기에 한국에서도 그렇게 가르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실제로 미국의 신학자들은 다윈의 이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지구가 오래 되었다는 생각은 다윈 이전 17세기부터 있어 왔다는 것을 듣고 위안이 되었다.
이 책은 지구가 오래 되었다는 것은 지질학적 연구와 무엇보다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을 통해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우라늄이 납으로 변환되는 것을 반감기라고 하는데, 우라늄 235의 반감기가 약 7억1,300만년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측정법을 따라 지구의 연대는 큰 오차 없이 약 45억년인 것이 측정된다. 이것은 대부분의 화학자가 인정하는 것이며 당연히 교과서에도 등장한다. 이런 내용들을 읽으니 상당히 위안이 된다. 그런데 젊은지구론자들은 왜 이런 사실을 굳이 부인할까?
셋째로 창세기 1장의 해석에 있어서 오래전 교부 오리게네스는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에는 하늘의 광명체가 없었는데 어떻게 24시간이 될 수 있겠느냐고 가르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께서 씨앗과 같은 원리를 자연에 심어 놓으셔서 그것들이 창발하고 자란다고 오래전에 가르쳤다고 한다. 중세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창세기가 과학 교과서가 아니라고 말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줄 뿐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칼뱅, 존 웨슬리, 벤자민 워필드 같은 위대한 목사님들도 오래된 지구를 자연스레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 한국의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미국에서 편협된 그것도 안식교에서 개발된 젊은 지구론, 노아 홍수 지질학에 경도되었는 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넷째, 이 책의 장점은 20세기 이후 최근의 과학적 성과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에 있다. 이를테면 양자역학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의 자유의지는 대립관계가 아니라 공생관계이며 양립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한다. 양자역학이 말해주는 것은 표면적 카오스(혼돈) 상태가 궁극적으로는 코스모스(질서)로 수렴된다고 한다. 그리고 미세조정이라는 천문학적 발견은 프레드 호일 같은 비기독교인 과학자도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해준다. 중력과 전자기력, 강한 핵력과 약한 핵력이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와 태양계가 되었고,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하도록 마치 유도된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런 부분이 하나님의 섭리, 창조를 설명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무언가 묵은 것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감동적인 부분은 마지막 장이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와 우주의 빅뱅의 장엄한 역사를 언급하는 부분이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창세기 1장 1절의 선언을 빅뱅이 일어난 순간과 연결시켰다. 빅뱅의 순간에 원리(로고스)가 생겨났고 이는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으로 나타나고 최초의 물질인 쿼크와 렙톤, 그리고 반물질이 생겨나고, 양성자와 중성자가 나타나는 것으로 연결시켰다. 또한 창세기 1장의 창조 선언인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으라’는 부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거대한 수소 구름이 중력으로 뭉쳐서 항성이 되고, 초거성이 되고, 그것이 폭발하여 흩어진 잔해가 중력에 의해 항성과 행성이 되는 과정을 잘 묘사하였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수소와 산소가 뭉쳐 물이 되고, 이어 아미노산, 탄수화물, 지방 등이 물을 통해 생기면서 생명체가 탄생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참으로 과학은 신학을 보충 설명해 주는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무신론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이나, 창조과학회 등이 주장하는 유사 과학이 아니라, 정확한 과학은 신학을 배척하지 않고 대신 보완해 주며 창조의 신비를 설명해 주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나의 얼어붙은 머리를, 가슴을 깨뜨려 하나님의 위대한 과학적 창조를 이해하기에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더욱 더 찬양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오래된 창조, 점진적 창조의 신비를 깨닫게 되었다.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책을 읽고 사유하며 토론함으로 우리 시대에 필요한 신앙의 깊이를 더욱 강화해 나갔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머리가 트이는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되어 기쁘다. 과학이라는 도구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글을 맺는다.
P.S. 과학을 좋아하고 궁금증이 많은 딸은 자주 이런 사항에 질문을 한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대답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 대답할 내용이 생긴 것 같아 좋다. 나와 같이 자녀들의 질문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5월 추천 도서
아론의 송아지
임택규 저 ㅣ 새물결플러스 ㅣ 2016
출판사 책소개
교회 안에서 신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해 일방적이고 문자적인 주장이 난무하는 것으로 인해 자괴감을 겪었던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은 현학적인 재주를 부리지 않고 친근한 느낌을 주면서도 과학적 사실에 대한 합리적 논증을 통해 독자들을 이성적으로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교회에서 창조과학으로 인해 불편한 믿음 생활을 하는 독자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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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고 접수 : 과신대 편집팀 scitheoedito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