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후감

아론의 송아지
임택규 역 ㅣ 새물결플러스 ㅣ 2016
* 다음 달 선정 도서는 글 하단에서 확인해 주세요. 😉
『아론의 송아지』를 읽고
글ㅣ김바보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칼 바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신앙인은 성경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한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위대한 신학자인 그도, 미래를 볼 수는 없었나 보다. 2025년 'OO신문'에 기재된 모 교수의 사과문을 봤다면 황급히 한 마디를 덧붙였을지도 모른다.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단, 교단 신문말고."
그 신문은 세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가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 드러냈다. 결국 모 교수의 사과문이 한 교단의 신문에 실렸을 때, 많은 이들이 패배감과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교단의 '어른들'이 창조과학을 사랑한다는 것이 놀라움과 경이를 주었다. 적어도 그 교단에서 수학한 나에겐 그랬다.

@AI 생성 이미지
그 당혹스러움을 안고 만난 책이 바로 『아론의 송아지』다. 이 책은 과학과 신앙 사이의 충돌을 다루지만, 그것을 넘어 교회가 왜, 그리고 어떻게 진리를 왜곡해 왔는지를 묻는다. 금송아지를 만든 아론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하나님을 가시화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어떻게 되살아나고 있는지를 짚는다.
저자는 창조과학이 하나님의 영원하고 보편적인 진리를 문자적 해석이라는 ‘금송아지’ 안에 가두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신학적 성찰과 일상의 유머, 날카로운 과학적 통찰을 오가며, 독자들에게 다시금 신앙과 과학의 건강한 관계를 묻는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2부 전체를 창조과학의 논리를 해체하는 데 할애한다는 점이다. 장점은 분명하다. 창조과학 측의 논거 하나하나에 대해 반박을 가한다. 그만큼 설득력은 높지만, 반복되는 전개로 인해 피로감이 느껴질 수 있다. 독자에 따라서는 이 책의 1부를 먼저 읽고, 2부에서는 필요한 장만 골라 읽는 방식이 적합할 수도 있겠다.
한 챕터만 소개하자면, “달이란 밤하늘에 떠 있는 치즈 덩어리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7장은, 창조과학의 터무니없는 방식에 유머로 맞선다. 저자는 월석 10017의 충격파 속도(1.84km/s)를 각국의 치즈와 비교한다. 그리고 노르웨이산 예토스트 치즈(1.83km/s)가 가장 유사하다는 이유로, “달은 치즈로 이루어졌다”는 결론을 낸다. 우스꽝스럽지만, 창조과학이 사용하는 논리 구조를 유쾌하게 풍자한다. 이런 풍자 뒤에는 뼈아픈 진단이 깔려 있다. 왜곡된 신학이 어떻게 신앙을 조롱거리로 만들 수 있는지를.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내 머리는 유신 진화론을 향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길이 아니다. 나는 이 세상이 그분의 손으로 빚어졌음을 믿는다. 그리고 그 창조가 시간 안에서, 물질 안에서, 생명이라는 경이로 드러났다면—그 모습은 유신 진화론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칼 바르트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학교에서 배운 진화론이 틀렸다고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신문을 펴고 세상이 무어라 이야기하는지 귀 기울이는 일 아닐까.
하지만 이처럼 머리로는 진화를 수용하고, 가슴으로는 창조를 신앙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믿음조차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너무도 쉽게 오해받곤 한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은 때로 경계의 바깥으로 밀려나고, 설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교회가 이런 질문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옳게 믿는다는 말이, 누군가를 틀렸다고 단정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칼 바르트(1886 ~ 1968)
다시, 칼 바르트의 말로 돌아가 보자. 한 손에는 성경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 들자. 아까 말한 그 교단 신문을 봐도 좋다. 한 켠에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다는 기사가 분명 있을거다. 서로를 향한 싸움이 계속되는 사이,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문을 나선다.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 자신의 말이 옳다며 외치는 외침은, 방향 잃은 메아리처럼 교회 안에만 맴돈다.
나는 그들이 왜 떠나는지 묻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싸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이 싸움이 교회를 사랑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등 돌리게 만들었는가?
6월 선정 도서

지혜가 필요한 시간
프랜시스 S. 콜린스 저, 이은진 옮김 ㅣ 포이에마 ㅣ 2025
출판사 책소개
과학과 상식이 위협받고, 정치적 분열이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지금의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존경받는 과학자이자 신앙인 프랜시스 콜린스의 신간 《지혜가 필요한 시간》은 극심한 분열로 진통을 겪고 있는 미국 사회를 우려하며 쓴 책이다. 우리 문명이 오랫동안 의존해온 네 가지 지혜의 원천, 즉 진리, 과학, 신앙, 신뢰를 회복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코로나19 백신 논란부터 기후변화, 부정선거 음모론까지, 미국 내의 심각한 분열을 대표하는 사건들을 지목하면서 정치적 양극화, 거짓 정보의 만연, 신뢰의 상실 같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위기들을 냉정하게 성찰한다.
🌟 이달의 독후감으로 선정된 분에게는 커피 쿠폰을 감사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 원고 접수 : 과신대 편집팀 scitheoeditor@gmail.com
이달의 독후감
아론의 송아지
임택규 역 ㅣ 새물결플러스 ㅣ 2016
* 다음 달 선정 도서는 글 하단에서 확인해 주세요. 😉
『아론의 송아지』를 읽고
글ㅣ김바보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칼 바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신앙인은 성경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한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위대한 신학자인 그도, 미래를 볼 수는 없었나 보다. 2025년 'OO신문'에 기재된 모 교수의 사과문을 봤다면 황급히 한 마디를 덧붙였을지도 모른다.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단, 교단 신문말고."
그 신문은 세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가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 드러냈다. 결국 모 교수의 사과문이 한 교단의 신문에 실렸을 때, 많은 이들이 패배감과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교단의 '어른들'이 창조과학을 사랑한다는 것이 놀라움과 경이를 주었다. 적어도 그 교단에서 수학한 나에겐 그랬다.
@AI 생성 이미지
그 당혹스러움을 안고 만난 책이 바로 『아론의 송아지』다. 이 책은 과학과 신앙 사이의 충돌을 다루지만, 그것을 넘어 교회가 왜, 그리고 어떻게 진리를 왜곡해 왔는지를 묻는다. 금송아지를 만든 아론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하나님을 가시화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어떻게 되살아나고 있는지를 짚는다.
저자는 창조과학이 하나님의 영원하고 보편적인 진리를 문자적 해석이라는 ‘금송아지’ 안에 가두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신학적 성찰과 일상의 유머, 날카로운 과학적 통찰을 오가며, 독자들에게 다시금 신앙과 과학의 건강한 관계를 묻는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2부 전체를 창조과학의 논리를 해체하는 데 할애한다는 점이다. 장점은 분명하다. 창조과학 측의 논거 하나하나에 대해 반박을 가한다. 그만큼 설득력은 높지만, 반복되는 전개로 인해 피로감이 느껴질 수 있다. 독자에 따라서는 이 책의 1부를 먼저 읽고, 2부에서는 필요한 장만 골라 읽는 방식이 적합할 수도 있겠다.
한 챕터만 소개하자면, “달이란 밤하늘에 떠 있는 치즈 덩어리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7장은, 창조과학의 터무니없는 방식에 유머로 맞선다. 저자는 월석 10017의 충격파 속도(1.84km/s)를 각국의 치즈와 비교한다. 그리고 노르웨이산 예토스트 치즈(1.83km/s)가 가장 유사하다는 이유로, “달은 치즈로 이루어졌다”는 결론을 낸다. 우스꽝스럽지만, 창조과학이 사용하는 논리 구조를 유쾌하게 풍자한다. 이런 풍자 뒤에는 뼈아픈 진단이 깔려 있다. 왜곡된 신학이 어떻게 신앙을 조롱거리로 만들 수 있는지를.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내 머리는 유신 진화론을 향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길이 아니다. 나는 이 세상이 그분의 손으로 빚어졌음을 믿는다. 그리고 그 창조가 시간 안에서, 물질 안에서, 생명이라는 경이로 드러났다면—그 모습은 유신 진화론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칼 바르트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학교에서 배운 진화론이 틀렸다고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신문을 펴고 세상이 무어라 이야기하는지 귀 기울이는 일 아닐까.
하지만 이처럼 머리로는 진화를 수용하고, 가슴으로는 창조를 신앙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믿음조차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너무도 쉽게 오해받곤 한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은 때로 경계의 바깥으로 밀려나고, 설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교회가 이런 질문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옳게 믿는다는 말이, 누군가를 틀렸다고 단정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칼 바르트(1886 ~ 1968)
다시, 칼 바르트의 말로 돌아가 보자. 한 손에는 성경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 들자. 아까 말한 그 교단 신문을 봐도 좋다. 한 켠에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다는 기사가 분명 있을거다. 서로를 향한 싸움이 계속되는 사이,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문을 나선다.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 자신의 말이 옳다며 외치는 외침은, 방향 잃은 메아리처럼 교회 안에만 맴돈다.
나는 그들이 왜 떠나는지 묻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싸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이 싸움이 교회를 사랑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등 돌리게 만들었는가?
6월 선정 도서
지혜가 필요한 시간
프랜시스 S. 콜린스 저, 이은진 옮김 ㅣ 포이에마 ㅣ 2025
출판사 책소개
과학과 상식이 위협받고, 정치적 분열이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지금의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존경받는 과학자이자 신앙인 프랜시스 콜린스의 신간 《지혜가 필요한 시간》은 극심한 분열로 진통을 겪고 있는 미국 사회를 우려하며 쓴 책이다. 우리 문명이 오랫동안 의존해온 네 가지 지혜의 원천, 즉 진리, 과학, 신앙, 신뢰를 회복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코로나19 백신 논란부터 기후변화, 부정선거 음모론까지, 미국 내의 심각한 분열을 대표하는 사건들을 지목하면서 정치적 양극화, 거짓 정보의 만연, 신뢰의 상실 같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위기들을 냉정하게 성찰한다.
🌟 이달의 독후감으로 선정된 분에게는 커피 쿠폰을 감사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 원고 접수 : 과신대 편집팀 scitheoedito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