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방주에 새끼 공룡들을 태웠다고?
- 자네트 켈로그 레이 지음 / 노동래 옮김 / 새물결플러스
글 | 김양현
과신뷰 편집장
기독인문연구소 시시당 대표

주전 2세기 이집트에서 활동한 유대인 학자 아리스토불로스(Aristobulus)는 당대의 문자주의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모세는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다른 사물이나 자연을 빗대어 이야기했기에 이해력이 없는 이들은 겉으로 쓰인 글자에만 치중하게 되고 고양된 것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하고, ‘하나님이 서 계시다’는 것은 우주가 제대로 확립된 것을 의미한다.”
아리스토불로스는 당대의 두 가지 극단을 경계했다. 그리스화에 몰두한 나머지 하나님을 그리스 적 신화로 여기는 자들을 경계했고, 반대로 그리스화에 반대하여 토라 텍스트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자들도 경계했다. 그가 주장한 것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말씀의 진정한 뜻이었고, 그것은 상징과 은유로 해석될 수 있음을 가르쳤다.
오늘날도 두 극단이 존재한다. 과학의 발달로 성경의 내용을 부정하는 무신론 과학자들과 그에 반해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문자주의자들이다. 과학을 절대시하는 자들과 과학을 무시하는 자들이 양 극단에 존재한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후자의 경향이 강하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에도 놀란다고, 오늘날 교계는 무신론 과학자들의 공격에 놀란 가슴을 부여잡으며 과학 자체를 부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진: Unsplash의Amador Loureiro
<노아 방주에 새끼 공룡들을 태웠다고?>는 양 극단을 넘어서려는 시도다. 저자인 자네트 캘로그 레이는 노스텍사스 대학에서 18년간 생물학을 가르친 교수이자 그녀의 고백처럼 복음주의 교회에 출석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녀는 자라면서 과학을 부정하는 교회의 목소리나 혹은 과학을 억지적으로 성경에 끼워 맞추려는 창조과학의 말을 들어야 했다. 저명한 생물학자로서 그녀는 두 가지 모두 어색했다. 그녀는 과학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신앙을 고백할 수 있음을 말한다. 과학을 절대적으로 신봉하지 않지만, 과학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고민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우선 그녀는 창세기를 과학에 억지로 끼워 맞추지 말자고 제안한다. 창세기는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저명한 구약학자 존 월튼의 말대로, 창세기는 우리가 오늘날 과학이라고 부르는 학문이 없던 시절에 모세와 그 당시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그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는 수준에서 말씀을 주셨다. 당시 사람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도, 갈릴레이의 망원경도 없었다. 그들은 대기의 순환도 알지 못했고, 은하계나 블랙홀의 원리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하늘이 딱딱하다고 믿었고, 그 딱딱한 궤도에 태양과 달, 별들이 박혀 있어서 움직인다고 믿었다. 하나님은 그런 수준의 사람들에게 창세기 1장을 주셨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를 지나고 허블을 넘어 제임스 웹을 통해 우주를 관측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우리에게는 놀라운 수준의 축적된 과학 지식이 있고, 그 지식의 발견에 근거해 창세기를 재해석할 수 있다. 모세 당시 사람들은 하늘에 물이 고여 있다가 창이 열려서 비가 내린다 생각했지만 오늘 우리는 수증기가 구름이 되고 구름이 모여 비로 내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과학의 발견을 토대로 성경을 재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 계시된 하루를 오래된 시간으로 이해할 수 있고, 창세기 1장이 우주와 지구의 생성 과정대로 기록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핵심은 하나님께서 우주와 지구, 생명의 근원이자 창조자라는 변치 않는 사실이다.

사진: Unsplash의Sincerely Media
저자인 자네트는 이런 상식적인 이해 위에서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고 믿자고 제안한다. 우리는 놀라울 정도의 지질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 화석학의 시대를 넘어 탄소동위원소 측정법을 통해 지구의 역사가 약 45억 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노아의 홍수 사건이 당시 성경의 인류가 주로 거주하던 중동 지역에 일어난 대규모의 홍수라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억지로 새끼 공룡들이 방주에 태워졌다고 우길 필요가 없다. 또한 혹자들의 주장처럼 미국의 그랜드 캐년이 노아 홍수 때 생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는 다윈이 발견한 종의 기원을 넘어서 오늘날 유전자학을 통해 훨씬 더 많은 생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서 DNA 구조를 상당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공통조상으로부터 오늘날 현생 인류까지 이어져 온 계통 구조를 알고 있고, 게다가 혹자들의 어리석은 질문처럼 원숭이가 우리 조상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현생 인류는 약 15만 년 전 일만여 명의 집단으로부터 유래되어 왔다는 것도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사진: Unsplash의Logan Gutierrez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아담과 하와는 누구인가? 이에 관하여는 존 월튼, 트럼프 롱맨 3세 등의 저명한 구약학자들과 로렌 하스마 등의 생물학자들이 토론한 것이 있으니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일례로 존 월튼은 만여 명의 현생 인류 중 특별한 한 쌍의 부부를 하나님이 대표로 택하시고 그들을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인류에게 특별 계시를 부여하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이 절대적이라 할 수 없지만 앞으로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중요한 것은 성경을 해석하는 우리의 자세다. 성경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고 영감된 저자들이 기록하였다. 하지만 중요한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도 모세오경을 바벨론 포로기와 페르시아 포로기에 완성된 책으로 엮었다는 점이다. 구전이나 단편으로 존재하던 것을 포로기를 거치며 정경으로 완성하였다. 하나님은 당시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의 지혜를 사용하셔서 성경을 완성하게 하셨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해석의 여지도 남겨주셨다. 유대인들의 전통인 미쉬나, 탈무드 등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정경에 대한 해석과 적용이다. 무엇보다 우리 예수님께서 구약 정경을 재해석하셨다. 대표적인 것이 산상 수훈이다. “모세가 너희에게 이렇게 말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라는 문구를 통해 예수님은 구약 정경을 재해석하셨고 오늘 우리는 그것을 신약으로 받아들인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변치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원문을 주셨다. 당대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씀으로 주셨다. 그리고 상징과 은유도 많이 사용하신다. 아리스토불로스가 말한 대로,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기에 손이나 발, 눈이 없으시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손으로 만물을 지었다고 기록한다. 상징과 은유를 허용한다. 따라서 오늘날 과학의 발달에 따라 우리는 성경을 재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다. 저자의 주장대로 오히려 더욱 단단해지고 풍성해진다.
오늘날 신앙과 과학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 무신론 과학자들의 공격이 언짢은 신앙인들, 억지로 성경을 과학에 끼워 맞추려는 자들이 불편한 자들에게 이 책은 제3의 길을 제시한다. 명료한 과학 지식과 적절한 비유를 사용해서 설명하는 저자의 논리는 명쾌하다. 과학과 신앙을 함께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소개한다. 다시 말하지만 노아의 방주에는 새끼 공룡이 없었다. 
노아 방주에 새끼 공룡들을 태웠다고?
- 자네트 켈로그 레이 지음 / 노동래 옮김 / 새물결플러스
글 | 김양현
과신뷰 편집장
기독인문연구소 시시당 대표
주전 2세기 이집트에서 활동한 유대인 학자 아리스토불로스(Aristobulus)는 당대의 문자주의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모세는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다른 사물이나 자연을 빗대어 이야기했기에 이해력이 없는 이들은 겉으로 쓰인 글자에만 치중하게 되고 고양된 것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하고, ‘하나님이 서 계시다’는 것은 우주가 제대로 확립된 것을 의미한다.”
아리스토불로스는 당대의 두 가지 극단을 경계했다. 그리스화에 몰두한 나머지 하나님을 그리스 적 신화로 여기는 자들을 경계했고, 반대로 그리스화에 반대하여 토라 텍스트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자들도 경계했다. 그가 주장한 것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말씀의 진정한 뜻이었고, 그것은 상징과 은유로 해석될 수 있음을 가르쳤다.
오늘날도 두 극단이 존재한다. 과학의 발달로 성경의 내용을 부정하는 무신론 과학자들과 그에 반해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문자주의자들이다. 과학을 절대시하는 자들과 과학을 무시하는 자들이 양 극단에 존재한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후자의 경향이 강하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에도 놀란다고, 오늘날 교계는 무신론 과학자들의 공격에 놀란 가슴을 부여잡으며 과학 자체를 부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진: Unsplash의Amador Loureiro
<노아 방주에 새끼 공룡들을 태웠다고?>는 양 극단을 넘어서려는 시도다. 저자인 자네트 캘로그 레이는 노스텍사스 대학에서 18년간 생물학을 가르친 교수이자 그녀의 고백처럼 복음주의 교회에 출석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녀는 자라면서 과학을 부정하는 교회의 목소리나 혹은 과학을 억지적으로 성경에 끼워 맞추려는 창조과학의 말을 들어야 했다. 저명한 생물학자로서 그녀는 두 가지 모두 어색했다. 그녀는 과학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신앙을 고백할 수 있음을 말한다. 과학을 절대적으로 신봉하지 않지만, 과학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고민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우선 그녀는 창세기를 과학에 억지로 끼워 맞추지 말자고 제안한다. 창세기는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저명한 구약학자 존 월튼의 말대로, 창세기는 우리가 오늘날 과학이라고 부르는 학문이 없던 시절에 모세와 그 당시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그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는 수준에서 말씀을 주셨다. 당시 사람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도, 갈릴레이의 망원경도 없었다. 그들은 대기의 순환도 알지 못했고, 은하계나 블랙홀의 원리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하늘이 딱딱하다고 믿었고, 그 딱딱한 궤도에 태양과 달, 별들이 박혀 있어서 움직인다고 믿었다. 하나님은 그런 수준의 사람들에게 창세기 1장을 주셨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를 지나고 허블을 넘어 제임스 웹을 통해 우주를 관측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우리에게는 놀라운 수준의 축적된 과학 지식이 있고, 그 지식의 발견에 근거해 창세기를 재해석할 수 있다. 모세 당시 사람들은 하늘에 물이 고여 있다가 창이 열려서 비가 내린다 생각했지만 오늘 우리는 수증기가 구름이 되고 구름이 모여 비로 내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과학의 발견을 토대로 성경을 재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 계시된 하루를 오래된 시간으로 이해할 수 있고, 창세기 1장이 우주와 지구의 생성 과정대로 기록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핵심은 하나님께서 우주와 지구, 생명의 근원이자 창조자라는 변치 않는 사실이다.
사진: Unsplash의Sincerely Media
저자인 자네트는 이런 상식적인 이해 위에서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고 믿자고 제안한다. 우리는 놀라울 정도의 지질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 화석학의 시대를 넘어 탄소동위원소 측정법을 통해 지구의 역사가 약 45억 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노아의 홍수 사건이 당시 성경의 인류가 주로 거주하던 중동 지역에 일어난 대규모의 홍수라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억지로 새끼 공룡들이 방주에 태워졌다고 우길 필요가 없다. 또한 혹자들의 주장처럼 미국의 그랜드 캐년이 노아 홍수 때 생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는 다윈이 발견한 종의 기원을 넘어서 오늘날 유전자학을 통해 훨씬 더 많은 생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서 DNA 구조를 상당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공통조상으로부터 오늘날 현생 인류까지 이어져 온 계통 구조를 알고 있고, 게다가 혹자들의 어리석은 질문처럼 원숭이가 우리 조상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현생 인류는 약 15만 년 전 일만여 명의 집단으로부터 유래되어 왔다는 것도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사진: Unsplash의Logan Gutierrez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아담과 하와는 누구인가? 이에 관하여는 존 월튼, 트럼프 롱맨 3세 등의 저명한 구약학자들과 로렌 하스마 등의 생물학자들이 토론한 것이 있으니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일례로 존 월튼은 만여 명의 현생 인류 중 특별한 한 쌍의 부부를 하나님이 대표로 택하시고 그들을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인류에게 특별 계시를 부여하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이 절대적이라 할 수 없지만 앞으로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중요한 것은 성경을 해석하는 우리의 자세다. 성경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고 영감된 저자들이 기록하였다. 하지만 중요한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도 모세오경을 바벨론 포로기와 페르시아 포로기에 완성된 책으로 엮었다는 점이다. 구전이나 단편으로 존재하던 것을 포로기를 거치며 정경으로 완성하였다. 하나님은 당시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의 지혜를 사용하셔서 성경을 완성하게 하셨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해석의 여지도 남겨주셨다. 유대인들의 전통인 미쉬나, 탈무드 등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정경에 대한 해석과 적용이다. 무엇보다 우리 예수님께서 구약 정경을 재해석하셨다. 대표적인 것이 산상 수훈이다. “모세가 너희에게 이렇게 말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라는 문구를 통해 예수님은 구약 정경을 재해석하셨고 오늘 우리는 그것을 신약으로 받아들인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변치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원문을 주셨다. 당대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씀으로 주셨다. 그리고 상징과 은유도 많이 사용하신다. 아리스토불로스가 말한 대로,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기에 손이나 발, 눈이 없으시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손으로 만물을 지었다고 기록한다. 상징과 은유를 허용한다. 따라서 오늘날 과학의 발달에 따라 우리는 성경을 재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다. 저자의 주장대로 오히려 더욱 단단해지고 풍성해진다.
오늘날 신앙과 과학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 무신론 과학자들의 공격이 언짢은 신앙인들, 억지로 성경을 과학에 끼워 맞추려는 자들이 불편한 자들에게 이 책은 제3의 길을 제시한다. 명료한 과학 지식과 적절한 비유를 사용해서 설명하는 저자의 논리는 명쾌하다. 과학과 신앙을 함께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소개한다. 다시 말하지만 노아의 방주에는 새끼 공룡이 없었다.